MD 한마디
시인은 말합니다. 왜, 멀어지는 침묵의 꽁무니를 따라 이토록 열심히 쫓으며 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한 게 바로 삶일진대, 시인은 그런 순간을 포착해 '시'답게 '그'답게 말합니다. 시인의 바람처럼, 사랑받는 시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좋으니까요. - 시 MD 김도훈
시인의 말 1부 우리는 시끄럽고 앞뒤가 안 맞지 봄꿈/ 더 지퍼 이즈 브로큰/ 공공 서울/ 눈금자를 0으로 맞추기 위해/ 불과 아세로라/ 심야산책/ 왼손잡이의 노래/ 동창생/ 개와 나의 위생적인 동거/ 반드시 한쪽만 유실되는 장갑에 대하여/ 몰/ 치와와/ 미래일기/ 참 재미있었다 2부 손까지 씻고 다시 잠드는 사람처럼 미래는 공처럼/ 허클베리-경언에게/ 맛/ 신은 웃었다/ 레이스 짜기/ 삼박자/ 여름이 오다/ 다이얼/ 적록색맹에게 배운 지혜/ 잠실/ 이석/ 잠을 뛰쳐나온 한 마리 양을 대신해/ 밤의 이야기/ 가족사진 3부 이렇게 긴 오늘은 처음입니다 해는 중천인데 씻지도 않고/ 나는 미사일의 탄두에다 꽃이나 대일밴드, 혹은 관용, 이해 같은 단어를 적어 쏘아올릴 것이다/ 우리는 친구/ 북/ 진술서/ 실패한 번역/ 맨드라미/ 치(齒)/ 대관람차/ 환상통/ 아코디언/ 구충제 먹는 날/ 자유로 4부 별 뜻 없어요 습관이에요 시/ 착한 기린의 눈/ 너무 느리게 생각하고 너무 급하게 돌진하는 코뿔소/ 겨울에 쓰는 여름 시/ 두 마리 앵무새가 있는 구성/ 은둔형 오후/ 만성피로/ 기린을 보여주는 사람은 난장이를 숨긴다/ 엔젤링/ 푸가/ 구경하는 집/ 촙/ 탈(脫)/ 마침내의 날/ 웃는 돌 해설 - ‘못다 한 이야기’ 조연정(문학평론가) |
소개
나는 미사일의 탄두에다 꽃이나 대일밴드, 혹은 관용, 이해 같은 단어를 적어 쏘아올릴 것이다*
내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사고 현장에 우두커니 서서
나는 왜 떨어지고 있는 것인가 점심은 먹고 떨어지는 것인가 옷매무새는 잘 여미고 떨어지는 것인가 몇 층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인가 나는 내가 떨어지는 모습을 처음 목격하기 때문에 내가 떨어지는 것을 끝까지 내버려둔다 떨어진 것이 내가 확실한지 알기 위해서
난간 위에서 누군가 외친다
밑에 떨어진 사람 없어요?
아직 다 떨어지지 않았지만 일단은 나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떨어지는 나를 지켜보는 중인 내가 나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이미 누군가 떨어진 적이 있다면 그것도 나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이미 떨어진 사람이 파다하다면 내가 파다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가 과거에 떨어진 나를 수습하기 위해 떨어지고 있는 중인 나를 그만둬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 오래 떨어지고 있는 중인 나를 사람이라 불러도 괜찮은 것인가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운동화와 뿔테안경이 도착한 지 한참 지났지만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가발과 속눈썹이 찰랑찰랑 내려앉은 지 오래됐지만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손발톱과 치아가 후드득 쏟아진 후에도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가슴과 엉덩이, 눈동자와 눈빛이 뭉개진 후에도 내가 도착하지 않는다 전봇대마다 실종 전단이 들러붙은 후에도 나는 도착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지나가버린 것을 끝까지 모른다
내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꾸벅꾸벅 존다
꿈결에 사고 현장을 벗어나버린 줄도 모른다
걷는다 어딘지도 모른다
*사실상의 인간, BINA48의 말.
같은 그리고 다른 그리고 이제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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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사랑과 너와 내가 같음과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주었고 시간을 가로지르는 법을 골똘히 생각해 보았던 어지럽고 가지런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