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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 개정증보판 ]
리뷰 총점7.8 리뷰 8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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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1993년 05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30쪽 | 248g | 152*217*20mm
ISBN13 9788932308678
ISBN10 893230867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2. 깊은 산속의 약초 같은 사람/신경림
3. 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그 누구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
4. 꽁꽁 얼어붙은 겨울 추위가 봄꽃을 한결 아름답게 피운다
5. 물이 갈라지듯 흙덩이가 곡선을 그으며
6. 엄동설한 눈 속에 삿갓 하나 받치고
7. 구경꾼과 구경거리
8. 다양한 개인이 힘을 합쳐 이룬 민주주의
9. 실패를 거울삼고
10. 뿌리 없는 것이 뿌리 박은 것을 이긴다
11. 삶이란 아픔이다
12. 맞고 보내는 게 인생
13. 스님과 노신
14. 한해를 보내면서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전우익
1925년 경북 봉화에서 대지주의 손자로 태어남.
일제 시대에 서울로 유학 와 중학을 마치고 대학까지 다님.
당시 대학을 함께 다니던 친구들이 해방 후 정국을 쥐고 흔드는 와중에 참자유인의 꿈을 안고 낙향.
'민청'에서 청년운동을 하다가 사회안전법에 연루되어 6년 남짓 수형 생활을 하고, 출소 이후 한동안 주거제한을 당하는 보호관찰자 신세를 지내다가 이제까지 줄곧 고향인 봉화 구천 마을에서 홀로 농사짓고 나무 기르며 살고 있음.
아호는 무명씨라는 뜻의 '언눔'.
소일거리-부들로 자리 엮기. 죽은 나무나 썩은 나무, 집 뜯은 나무의 쓰임새를 곱게 되살려 필통, 연필꽂이, 차받침, 책상, 향꽂이 등을 만들기. 자기가 만든 모든 것을 情人들에게 노나주기.
좋아하는 것-나무, 도연명과 노신, 김용준 선생의 『근원수필』,『체 게바라』에 나오는 아르티아 등.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잎을 훌훌 털어버리고 엄동을 맞을 비장한 차비로 의연하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스님의 모습과 겹쳐 든든하고도 선합니다. 고난의 길을 뚫고 가려면 간편한 몸차림을 하라는 가르침인가요? 해마다 낙엽을 보며 또 엄동에 까맣게 언 솔잎을 보며 느끼는 일입니다. 참 삶이란 부단히 버리고 끝끝내 지키는 일의 통일처럼 느껴집니다. 신진대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져야 생명의 운행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이치와 같습니다.

가을의 낙엽에서는 버림, 청산을 결행하고, 겨울의 얼어붙은 솔잎에서는 극한의 역경에서도 끝내 지켜야 할 것은 지키라는 것을 온몸으로 가르침을 배운다고 여기면서도, 그게 쉽지 않고 버리기도 지키기도 힘들다는 점만을 알 따름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정쩡하게 목숨만 이어 갑니다. 버릴 줄 알아야 지킬 줄 알겠는데 버리지 못하니까 지키지 못합니다.

느티나무는 가을에 낙엽 진 다음 해마다 봄이 되면 새 잎을 피울 뿐만 아니라 껍질도 벗습니다. 누에를 쳐보니 다섯 번 잠을 자고 다섯 번 허물을 벗은 다음 고치를 짓습니다. 탈피탈각이 없이는 생명의 성장과 성취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탈피 탈각을 하지 못하면 주검이겠지요. 단풍과 지는 해가 산천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것을 보면서 때때로 인생의 마지막을 저렇게 멋지게 마치진 못할망정 추접게 마치지는 말아야 하는데 하고 느낍니다.

사실 마지막이란 일상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거지 어디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게 아닐진대 삶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끝마침도 제대로 이루어지겠지요.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건 자연의 운행과 역사의 과제에 충실한 삶을 사는 건데, 세상의 흐름은 자연과 멀어지고 역사보다는 순간과 개인적인 삶으로 오르라드는 것 같습니다.
--- p.20-21
스님,종교 교리와 민족 해방, 인간 해방이란 이론도 무슨 씨 비슷한 데가 있지 않습니까? 그 씨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을 때 심어졌는지도 모르게 심어 그 사람이 씨를 싹틔워 키우고 꽃피워 열매 맺게 한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러한 것이 진짜 같은데, 요사이 논의들은 큰 나무를 옮겨 심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커서 가슴에 심기보다는 짊어지고 다녀야 할 판입니다. 그것을 짊어지고 다니느라 사람은 지치고, 이론은 사람들의 등과 다리에서 시들어 버리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심어 기르고 키울 수 있을 만큼 작고 작은 교리와 이론이어야 사람 사이에 씨로 뿌려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씨가 땅에 묻혀 싹을 틔우듯, 사람의 인격과 삶의 일부도 딴 사람에게 묻혀야 한다고 여깁니다.
--- pp.65-66

회원리뷰 (87건) 리뷰 총점7.8

혜택 및 유의사항?
파워문화리뷰 더불어 사는 삶을 꿈꿨던 한 농사꾼의 편지글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i*****n | 2018.10.01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다. 불과 몇 년 전과는 다른 모습의 사회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고, 이러한 모습이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버렸다. 마치 속도 경쟁이라도 하듯 매일이다시피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일반 사람들로서는 그러한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으려 해도 좀처럼 발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누구나 다;
리뷰제목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다. 불과 몇 년 전과는 다른 모습의 사회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고, 이러한 모습이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버렸다. 마치 속도 경쟁이라도 하듯 매일이다시피 새로운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일반 사람들로서는 그러한 사회의 변화를 따라잡으려 해도 좀처럼 발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누구나 다 느끼고 있듯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경제력에 의해 개인의 능력이나 가치가 평가되기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온갖 기술을 동원해서 새로운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은 돈이 없어 편리한 기능의 제품들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이러한 계층간의 격차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이다.

  

사회가 점점 빠른 것을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경제적인 측면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언론 등에서는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 그에 대해 온갖 합리화를 꾀하곤 한다. 마치 사회의 빠른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이며, 그러한 변화에 맞춰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하여 급격한 변화에 맞추지 못하면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때문에 나는 광고 문구나 각종 정보들에서 사용되는 과장된 표현을 접하면서, 문득 거부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마도 이런 경험은 나 혼자만의 특별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과연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렇듯 빠르게 변화해 가는 시류(時流)를 좇아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진정 그것은 아닐 것이다. 온갖 첨단 기기로 연출해낸 현대화된 삶의 방식은 그에 걸맞는 경제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간에 유포되는 혁신적 기술의 설명들에는 변화된 사회의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현상만이 엿보인다. 그 속에 인간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체로 그러한 설명들에는 언제나 사람은 주체가 아닌, 변화된 사회에 그저 적응해야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해 가는 사회 속에서 구속받지 않는 자유를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를 얽매고 있는 일상의 생활은 그러한 자유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더 살펴보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비록 그러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지금 세상에서는 보편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생활을 비춰볼 수 있게 한다. 책으로만 대했지만, 아마도 전우익 선생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비록 자신의 삶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항상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는 자연에서 얻어진 각종 재료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나누어준다고 한다. 이렇게 사는 생활에서 그는 삶의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르치려고만 들지 배우려고 안 하는 자세가 못마땅하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입만 가지고 제 말만 하려 들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여겨, ‘귀만 있지 입이 없는나무를 좋아한다고도 한다.

  

전우익의 책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에는 이러한 그의 삶의 방식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지인(知人)들에게 썼던 편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서문 역할을 하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이곳 풍토는 세상에 알려지는 날이 곧 끝장나는 날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독특한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에 이 책이 선정도서로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실제로 그 이후 그의 말처럼 자신의 생활이 정말 끝장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글을 통해서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의 인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나는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은 빠르게 변화해 가는 사회 속에 휩쓸려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아주 편안한 목소리로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한 번쯤 생각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들고 싶다.

  

그는 이 책에서 물을 푸지 않으면 샘이 말라버리듯 편지를 쓰지 않으면 생각까지 말라버릴까 두려워글을 쓴다고 한다. 편지라는 양식이 그렇듯이, 이 책의 내용은 저자가 살아가면서 느낀 생각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글을 읽는 내내, 책의 곳곳에서 나는 저자의 넉넉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신경림 시인은 이 책의 발문을 통해서, ‘나만이라도 좀 덜 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몸소 실천하는 저자를 깊은 산 속의 약초처럼 귀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 그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약초처럼 이 사회의 아픈 곳을 치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개정판을 내면서 새롭게 적어 넣었을, 책의 앞부분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내용은 이 책을 펴낸 그의 생각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 없니더. /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

  

저자는 한때 사회안전법에 걸려 주거제한을 당했던 보호관찰자로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비극적인 현대사의 피해자중의 한 사람이었던 그는 늘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고민한다. 어느 스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부들로 자리를 엮으면서, 날줄은 역사이고 씨줄은 현실과 같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그리하여 씨와 날이 단단히 매어져야 자리가 되듯 역사와 현실이 잘 어우러져야 제대로의 삶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인식으로까지 나아간다. 또한 서울에 가는 길에 팔당댐을 보면서, ‘흐르는 물을 막는 건 마치 역사의 흐름을 막는 일과 흡사하다고 여긴다. 역사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아버리면 필경 왜곡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왜곡의 사례를 우리는 최근의 역사에서 수도 없이 찾아낼 수 있다. 아마도 저자는 물길을 막아선 거대한 규모의 댐에서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왜곡된 욕망을 읽어냈을 것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저자의 관점에서, 자연적인 물의 흐름을 막아버리는 댐의 존재는 마땅히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또한 당시 정권의 무자비한 고문으로 죽은 이한열을 떠올리면서, ‘그를 진짜로 살리고 죽이는 것은 백성들이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즉 이한열의 죽음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묻히지 못한다면 그게 진짜 죽은 것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반문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어느 사이엔가 까마득한 기억의 저편으로 남겨졌던, 이한열의 장례식이 열리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신촌에서 시청 앞 광장까지 그의 뒤를 따르던,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한열을 가슴에 품고있는 것일까? 혹시 일상에 치여 그저 수많은 기억 중의 하나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농사꾼이라고 여기는 저자는 노동의 고역에서 벗어나, 노동 과정 자체를 즐길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진정으로 저자가 자신이 하는 노동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여 저자는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경독(耕讀)의 일체화를 들고 있으며, ‘참된 경()은 독()을 필요로 하며, ()도 경()을 통해서 심화되고 제구실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인식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 을 떠나 살고 있는 도시인들에게는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겠지만, 자신의 삶과 현실을 굳게 결합시켜 인식하는 저자의 자세만큼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하겠다.

  

저자는 늘 주변의 모든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것을 현실의 폭넓은 인식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땡볕이 드는 마당에 사흘 동안 널어 곯게 한 다음에 뿌리만 잘라 파를 심으면서, ‘땡볕과 뿌리를 잘리면서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아픔을 참고 견딘 뒤 그 아픔을 끝끝내 가슴에 새기면서 큼지막하게 자란파의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낸다. 이러한 파 농사의 경험을 통해 그는 뿌리는 근본인데 사람이 바뀌자면 역시 새로운 사람이 탄생할 수 없으며, ‘새로운 사람들의 집단적 탄생 없이는 세상은 바뀌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바뀌자면 그 알맹이인 사람이 바뀌어야한다고 역설하고, 우리 스스로가 주체로 인식하는 정신적 각성을 촉구하기도 한다. 저자의 글은 쉬운 문체로 쓰여져 아주 쉽게 읽히면서도, 나에게는 오랜 동안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었다. 아마도 다른 독자들 역시 이 책을 읽은 다음에 깊은 여운을 느꼈을 것이라 믿는다.

  

이 글을 쓰는 중에 이 책의 저자인 전우익 선생의 부음(訃音)을 접했다. 어느 기사를 통해 저자가 20041219() 아침에 노환(老患)으로 돌아가셨음을 알리고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의 제목처럼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미냐고 하면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논밭을 거저 주다시피 했다고 한다. 마음만큼이나 넉넉했던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자양분이 되었으리라고 믿는다. 이제 이승에서의 고단한 삶을 마감하고 영면(永眠)에 드신 전우익 선생의 영전에, 조문을 가지 못하는 대신 이 글을 바친다. 아직 온갖 부조리가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에, 아마도 선생이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은 세상 사람들이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하리라고 여겨진다.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 따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지키기 위해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 같습니다.”

 

** 이 책의 초판본은 1993년에 출간되었지만, 1995년에 개정증보판이 간행되었다. 하지만 지난 2002년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선정도서가 되면서 독자들에게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은 초판본이 아닌, 개정증보판(20041월 발행)을 읽고 쓴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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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j******1 | 2016.06.0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중학교 다닐때였나. 당시 매 회에 감동받았던 프로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였던 이 책. 저 프로 다시하면 좋겠다. 진짜 감동스런 프로였는데. 아무튼 저 프로 보다가 느낌표 선정도서를 마구 사재끼곤했는데 그 중 가장 읽기 힘든 책이었달까.워낙 책을 안읽어서였겠지만 말도 너무 어렵고 펴기만 하면 폭풍 졸아댔던 책이다. 이제서야 펼쳐든건 집 안 서재에 먼지쌓인 책들부;
리뷰제목

중학교 다닐때였나. 당시 매 회에 감동받았던 프로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였던 이 책. 저 프로 다시하면 좋겠다. 진짜 감동스런 프로였는데. 아무튼 저 프로 보다가 느낌표 선정도서를 마구 사재끼곤했는데 그 중 가장 읽기 힘든 책이었달까.


워낙 책을 안읽어서였겠지만 말도 너무 어렵고 펴기만 하면 폭풍 졸아댔던 책이다. 이제서야 펼쳐든건 집 안 서재에 먼지쌓인 책들부터 좀 읽고 새 책을 읽던지 하자는 마음에서였다. 얇아서 금방 읽을것같기도 했고.


농사꾼 전우익 선생님이 농사를 지으며 느끼는 세상의 이치를 편지로 죽 써내려간걸 그대로 엮어낸 책인데 어렵다고 하면 중간중간 나오는 농업 용어?가 좀 어렵고, 사실상 금방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다. 


중간중간 나오는 민병산 선생님의 구절, 노신의 말, 아Q정전의 구절 등이 많이 나오는데 그 주옥같은 말들과 이치들을 농사와 맞물려 쓴 부분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밭에 자라는 곡식을 사람이 성장하는 것과 비유하기도 하고 밭일하면서 중요한 부분등을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잊지말아야할 것들과 결부시켜 말해주기도 한다. 얇은 책인데도 마음에 새길 구절이 많았던 책. 나중에 나이가 더 들면 다시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p.27

스님,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별볼일 없는 말은 길게 마련이지요. 저는 요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삶이란 그 무엇(일)엔가에 그 누구(사람)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이라고."


p.31

호미, 낫, 괭이를 치는 쇠도 유하면 굽고 강하면 부러집니다. 굽지 말고 부러지지 않게 사는 길이 유강을 겸비하는 거라지요. 한 줄기의 부들, 하잘것없는 쇠붙이에서 인생을 배워야 되나 봅니다. 굽은 척, 죽은 척, 자는 척해야 하는 기막힌 세상에 살고 있는 걸 모르진 않습니다.


p.61

나무가 싹터 크고 가지 치는 데서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나무는 자체의 힘과 이십사 절기와 사계절의 리듬을 타고 다지며 커 가는데, 사람들은 억지와 경쟁으로 자신과 이웃, 줄기까지도 갉아 먹으면서 크려고 하니까 일이 뒤틀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p.110

사람의 감정은 한정된 화분에다 기를 것이 아니라 넓은 땅에 길러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밀실 속에 가둘 것이 아니라 사회라고 하는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고 공명정대하게 길러야 한다. '담' 높이를 낮춰야 하며 개인의 '방'과 '거리'가 잘 소통되어야 한다. - 민병산


p.111

현대의 모든 단체는 오직 강력하게 되려고 조직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를 배척한다. 그 조직에 참가하고 있는 각 개인이 표명하는 사상이나 정신적 가치로 강력해지려 하지 않고 그들의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결속과 통일로 강력해지려 한다. - 아Q정전


p.112

인생을 사랑하고 사악한 편견으로부터 생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빵과 서커스만으로 만족하는 그런 인간이 되지 말자는 것이다.

인식의 길은 어디까지나 철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못하면 각자의 입장을 변명하는 재료에 그치고 만다.

주위가 소란할 때일수록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자. 높이 지르는 소리는 오히려 세상의 소요 속에 묻혀버리고 말기 때문에.


p.130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 따 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 방어 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지키기 위해서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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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모르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좋은 편지_모창 최(Mochang Choi)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2015.12.0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이 책을 읽다가, 인터넷으로 찾아본 저자 전우익. 그는 돌아가셨다. 1925년 생이니 그럴만도 하지만, 허무하고 슬프다. ​이렇게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생각을 하고,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산 분을 살아계실 땐 모르고 지내다가 결국 돌아가셨다니. 아아 나의 무지여.  ​ 내가 얼굴 한번 못 뵈었어도, 나는 광장을 읽으며 최인훈 작가가 아직 살아계시다는 것이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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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인터넷으로 찾아본 저자 전우익.

그는 돌아가셨다. 1925년 생이니 그럴만도 하지만, 허무하고 슬프다.

​이렇게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생각을 하고,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산 분을 살아계실 땐 모르고 지내다가 결국 돌아가셨다니. 아아 나의 무지여. 

내가 얼굴 한번 못 뵈었어도, 나는 광장을 읽으며 최인훈 작가가 아직 살아계시다는 것이 너무 힘이 되고 기뻤다. 살아계신 한 언젠가 한번 얘기라도 나눠볼 수 있으리라,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

박원순 시장의 아름다운 가치사전을 보고 알게된 이 책을 빌리고 나니, 아내가 집에 있는 책이란다. 아아! 집에 있는 책을 먼저 모두 읽고 도서관 책을 봐야 하나? ​게다가 예전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에도 소개되었단다.

​어쨌거나, 저자가 봉화에서 농사지으며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만든 이 책을 보며, 저자는 자기 주변의 하나 하나를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깊은 사색과 사유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유를 통해 형성된 저자의 혜안은 책 곳곳에 흐르며 나를 일깨웠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사색은 커녕, 그것이 곁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지나치며 살아가는가. 

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함께 사색했고, 또 나를 돌아보았다.

인상적인 부분 몇 군데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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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지는 해가 산천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것을 보면서 때때로 인생의 마지막을 저렇게 멋지게 마치진 못할망정 추접게 마치지는 말아야 하는데 하고 느낍니다. 사실 마지막이란 일상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거지 어디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게 아닐진대 삶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끝마침도 제대로 이루어지겠지요.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건 자연의 운행과 역사의 과제에 충실한 삶을 사는 건데, 세상의 흐름은 자연과 멀어지고 역사보다는 순간과 개인적인 삶으로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한로와 추상이 낙엽과 결산을 결행하듯 각자는 자기에게 추상같을 수 있어야 타락과 답보에서 벗어나 옳게 살 수 있고, 민족도 때때로 추상을 내리고 벽력을 쳐서 민족 정기를 바로 세워야 제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버무림은 단풍도 낙엽도 가져오지 못하고 더더욱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압살시키고 말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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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올 겨울도 춥겠지요. 우리는 통계 숫자로 사는 게 아니라, 그해 여름 그해 겨울을 살기에 언제나 그해 겨울과 그해 여름이 가장 춥고 더워요. 덥지 않은 여름이 없고, 춥지 않은 겨울이 없듯이 역사도 수월할 때가 없었을 겁니다. 마디에 옹이라고 우리는 분단까지 겹쳐 더 어렵게 살지만 역사란 그때마다 어려운 문제 하나 둘 쯤 안겨 사람들을 부추기고 시험하나 봅니다. 언제 어떻게 풀어 가는가를 보는 것 같습니다. 역사란 참 짖궂은 것 같기도 한데 인간들의 오만과 퇴화를 막고 애국과 매국, 알맹이와 쭉정이를 선별해 내는 체 같기도 해요.

훅훅 달아 오르는 삼복에도 밭을 매다 보면 처녀 죽은 넋씨바람이 때때로 불어 오고 뽑은 풀이 금방 시들어 버리는 통쾌함이 더위를 이기게 합니다. 한겨울에도 지게 지고 집을 나설 때는 좀 썰렁하지만 어울려 산에 오르고 나무를 하다 보면 더워지고 한짐 지고 집에 오면 화끈해져요. 덥다고, 춥다고, 어렵다고 움츠려 들지 말고 일을 하다 보면 꾀도 나고 힘도 납니다.

안동에서 서울 가는 철로도 평탄한 길보다는 수많은 굴, 강, 가파른 고개, 낭떠러지를 굽이굽이 돌아갑니다. 인생 행로나 역사는 우여곡절이 있게 마련인데 그걸 어떻게 뚫고 왔는가 하는 것이 역사같고, 이어가는 것이 현재를 옳게 사는 방법 같습니다. 수많은 호미질에서 꾸덕살이 생기듯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민족의 마디와 저력이 돋아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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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투쟁을 하듯 농산물 제값 받기 요구와 우리의 농사를 위축시키고 압살(미국산 밀 때문에 국산 밀은 전멸했습니다)시키는 외국 농산물 수입 반대 투쟁도 하는가 봅니다.

지금까진 농사 짓는 데 비, 바람, 가뭄, 병충해 막으면 됐는데 몇 해 전부터 외국 농산물이란 괴물까지 막아야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살기가 자꾸 복잡해져요. 미국 담배 들어오자 담배 농사 짓던 이웃이 땅 두고 도시로 떠나갔습니다.​

이건 그 어떤 큰 틀이 잘못되었거나 씨가 옳지 않은 모양입니다. 틀이 삐딱하면 아무리 애써 봤자 자리를 바르게 맬 수 없습니다.

국군과 경찰이 외국 농산물 들어오는 걸 막아 준다면 농민들은 없는 돈 써가며 여의도에 가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그들에게 떡하고 술 받아다 줄 텐데. 오히려 우리 농사 지키겠다는 농민들을 잡아 가둡니다.

세상이라는 틀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잘못된 틀은 사람을 잡습니다. 논밭만 있으면 농사 지을 수 있다고 여겨 왔는데 세상이란 큰 틀이 잘못되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깨달은 농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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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품 수출을 더 확대할 수 있다며, 정책적으로 희생시킨 우리 농산물​. 그래서 늘어나는 수입을 천문학적 혜택을 입는 수출 기업들이 과연 피해를 본 곳에 제대로 정말 제대로 보상을 해주었는가? 추가로 벌어들이는 돈의 반도 지출 안해도 모두가 농촌을 떠나고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은 이렇게 까지 심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땅에서 성실히 자기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채 바뀐 세상에, 팔로가 막히고 경쟁력을 잃어 도시로 공장으로 흘러들어갈 수 밖에 없다. 순식간에 자영농이 소작공(월급쟁이 종)으로 전락하는 순간.

​경쟁력도 없이 굶어 죽을 수 없어 흘러든 도시는 그로 인해 지가가 계속 오르고, 내 한몸 누일 집을 구해 입에 풀칠하는 것 조차 힘이 든다.

 

이게 뭐지?

2년 전에 4천 만원 올려주어, 3억 5천만원이었던 우리 집 전세 시세는 지금 4억 2천만원이다. 올 여름 계약만료가 되면 더 오르지 않는다 해도 최소 7천 만원을 올려주어야 한다.

회사 다녀 쓸 것 못쓰고, 허리띠 졸라매도 2년간 모을까 말까 한 돈이 고스란히 2년전과 하등 달라진 것 없는 같은 집에 사는 조건으로 사라진다.

​어떤 가족의 2년 모아둔 (혹은 빚까지 보태야 하는 그 이상이) 노동의 결과가 그대로 공중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집을 가진 자는 가졌다는 이유로 내 노력의 결과를 고스란히 가져가 누린다. 나는, 집을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 노력의 결과를 고스란히 빼앗긴다.

효율이라는 논리 속에서 종속화 되어가는 우리의 삶. 효율적이라고 작은 발전소를 지역별로 동네별로 여러 개 안 짓고 아주 큰 원자력 발전소 하나 짓는게, 효율적이라고 동네 골목 골목 조그마한 가게들 다 없애고 큰 마트 하나만 두는 게, 효율적이라고 우리 농사 다 없애고 모두 수입해다 먹는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 효율이라는 것의 수 십배 이상의  얼마나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지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다윈이 '종의기원'에서 설명하는 자연계 생물에 빗대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외래종 들어와 자생종이 다 죽고나면, 나중엔 살리고 싶어도 살리는 것이 아주 불가능 하다. 그나마 내 땅의 자생종 중한 줄은 알면서 더 큰 심각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가 지금 신경쓰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일까? 얼마 뒤에 사고나서 재난 입을걸 모르고 당장 오늘 한 푼 싸게 사는게 그렇게 중요한가? 국가가 석유/가스 등에 세금을 과중하게 매기니, 당장 국민은 비싼 가스나 석유로 난방하지 않고 싸보이는 전기를 쓴다. 게다가 산업용 전기는 가정용 전기보다 훨씬 싸다. 이것 역시 공업에 혜택을 주겠다는 정부의 정책이다. 정유회사인 우리회사 조차 세금 많이 붙은 기름으로 보일러를 돌리는 것 보다 한전에서 싼 전기를 쓰는게 효율적이라 그렇게 한다. 석유/가스는 저장 가능하고 가정별/지역별로 분산 배치 가능한 에너지다. 전기는 저장 불가능할 뿐 아니라 소수의 아주 큰 발전소에서 전국으로 보낸다. 한마디로 난방으로 치면 중앙난방이다. 저장 불가능한 특징 때문에, 한번 전기 피크가 일어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온 국가 혹은 불특정 광범위 지역의 전기가 나간다. 전기가 싼 이유는 발전용 원료에는 세금을 안 매기기 때문이다. 국가가 자초해서 위험으로 우리 자신을 몰아 넣는다. 이렇게 해놓고 발전 용량이 딸리니 가정에 전기세를 누진제로 받는다. 국가 전체 전기 소비중 일반 국민의 가정용 소비는 20%도 되지 않는다. 공장에서 쓰는 산업용 전기는 할인되므로 한전은 적자가 난다. 그 적자는 역시 일반 시민이 세금으로 매운다. 2중고다. 거기에서 혜택을 보는 주체들은 과연 희생당한 다수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이건 혜택을 보는 주체의 잘못이라기 보단 시스템을 이렇게 만든 국가의 잘못으로 보는것이 맞다. 발전소가 분산되어 있으면, 연료가 분산되어 있으면, 문제가 생겨도 지엽적으로 끝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너무 크게 과점/독점화 되고 중앙화 되면, 그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여 우리가 손 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작은 단위로 분산하면 위험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사고 나서 망하면 그 몇 푼이 중요한게 아님을 알고 후회할텐데. 꼭 재앙이 와야 그것을 깨닫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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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이번에는 삶이라는 글자와 작은 점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의 고장에서 가장 작은 물건을 가리키는 형용사가 좁쌀과 담배 씨인데, 돌가지 시가 담배 씨만큼 작아요. 올 봄에 돌가지 씨를 뿌리며 깨달았습니다. 씨는 작아야 뿌리기도 묻기도 간수하기도 쉽겠다고. 그래서 씨는 이렇게 작게 생겨났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씨가 좀 굵은 율무, 콩, 땅콩은 심어 놓으면 짐승들이 파먹기도 하는데, 작은 씨는 짐승들이 건드리지도 못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데 어떻게 건드릴 수 있어요? 낙락장송으로 자라는 솔 씨는 쌀의 오분의 일이 될까 말까 하고, 몇백 년을 살고 몇 아름드리로 크는 느티나무 씨는 이파리 뒤편에 붙어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작은지 이제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하여튼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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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읽으며 콩과 같이 씨앗이 크면 그 양분으로 인해 가장 생존이 힘든, 새싹을 틔우는 초반 생존율을 압도적으로 ​​높일 수 있어 생장에 도움이 된다는 걸 보고 참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윗 글을 읽으며 이제는 씨앗이 작을 때의 장점을 또 알게된다. 이 세상은 얼마나 오묘한 것인지. 작은 것은 작은 데로, 또 큰 것은 큰 대로 이유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엇 하나 성급히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판단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다시한 번 느낀다.

종의 기원을 읽고 내가 콩에 대해 썼던 것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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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같이 씨앗이 실한 놈들은 그것이 떡잎이 되어 양분 역학을 함으로써 가장 생존이 어려운 어린 시절에 영양을 공급한다. 고로 생존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씨앗이 작고 자체 영양을 많이 가지지 않은 경우)에 비해 훨씬 높다.

오호! 콩 같은 것을 보면서 아무생각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생물의 생존이 가장 어려운 시기는 태어난 직후이다. 씨앗은 영양분과 햇빛을 받아야 자랄 수 있을텐데, 상대적으로 어린 싹은 큰 나무들이 다 햇빛을 가린 아래에서 싹이 트기 때문에 초기에 햇빛을 받아 자체로 영양분을 만들어 생존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가장 확실한 예가 우리가 먹는 콩나물이다. 콩나물을 키울 때, 빨리 이파리 나지 말라고 물만주고 검은 천으로 덮어 놓는다. 햇빛 전혀 없이 자체 영양분으로 콩나물 뿌리가 길어진걸 봐라. 광합성 없이 뿌리를 그렇게 까지 길게 키울 수 있으면 땅에서 영양을 잘 흡수할 수 있어 생존 확률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자라지 못하고, 우리가 그것을 맛있게 먹는다. ㅋㅋㅋ

그 콩 하나에 얼마나 많은 양분을 지니고 있는지, 참으로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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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아픔 가운데서도 분단의 아픔이 가장 큰 아픔인데, 우리가 얼마나 분단의 아픔을 몸소 아파했습니까? 감기만 좀 들어도 배만 좀 아파도 약방을 찾으면서 민족의 통양에 대해서 고뇌하고 분노하고 호소하고 뜻과 힘을 모아보려고 얼마나 힘써 봤습니까? 수월한 안거에 연연해서 타성에 빠져들수록 조국의 운명은 점점 옥죄어 들기만 하는 게 아닐까요?

정신과 육체의 수많은 병이 나돌고 사람들은 약으로 수술로 병을 다스리려 드는데 말도 안 돼요. 병은 크게는 세상에서 작게는 생활(삶)에서 옵니다만 세상과 각자의 삶을 고치려 들지 않고 병만 고치려 하는 것 같아요.

스님, 참된 아픔이란 정말 소중한 것 같습니다. 우리 어머님들의 뼈빠지는 아픔이 없었더라면 저희들은 태어나지도 못했지요. 지금의 갖가지 자질구레한 아픔들은 우리가 참된 아픔을 회피한 데서 옷 것일 테지요. 수월하게 살아보자고 아픔을 피하는 동안 아픔이 홀로 커서 감당하기 힘들게 된 거죠. 앓아서 아픔을 없애고, 새로운 삶과 세상까지도 앓아서 탄생시키는 길밖에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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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25년 생으로 6.25가 났을때 이미 성년이었다. 온 정신으로 광복과 분단, 동족 상잔 까지를 다 경험한 그가 느끼는 멀쩡한 조국의 분단은 얼마나 뼈아픈 것이었을까? 갖은 고초 끝에 겨우 조국의 광복을 보나 했더니, 그 즉시 이어진 분단과 동족상잔.

이제는 우리 남북이 한나라일때 태어나 온전한 그 모양의 나라에서 산 분은 거의 살아계시지 않고, 분단 이후 세대가 지날 수록 우리 나라라는 의식은 희미해져 간다. 그대신 당장 남보다 잘 먹고 살고 남위에 서는 것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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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스님도 아시다시피 노신은 의학 공부를 때려치우고 문학 쪽으로 갔지요. 그 이유를 그는 "무릇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체격이 제 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할지라도 하잘것없는 구경거리와 구경꾼이 될 뿐이다. 우리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이다. 정신을 뜯어고치는 데는, 당시의 나의 생각으로는 문예였다. 그래서 문예 운동을 하려고 생각했다."([외침] 서문)고 했지요. 동족의 죽음을 구경거리로 삼은 구경꾼의 모습은 [아Q정전]의 끝부분에서도 나타나지요.​

이러한 그의 태도는 과학을 지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과학자의 정신'을 더 소중히 여겨서 과학을 새로운 '정신', '윤리'로 받아들인 것이지요. 그게 바로 노신의 서양 수용 방법의 특색이겠지요. 일반적으로 과학을 편리한 지식이나 기술로 배우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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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 본문의 노신은 중국의 작가 루쉰이고, 내가 다음으로 블로그에서 얘기할 책은 [아Q정전]이다.

 

 

아래는​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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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2. 깊은 산속의 약초 같은 사람/신경림
3. 삶이란 그 무엇인가에, 그 누구엔가에 정성을 쏟는 일
4. 꽁꽁 얼어붙은 겨울 추위가 봄꽃을 한결 아름답게 피운다
5. 물이 갈라지듯 흙덩이가 곡선을 그으며
6. 엄동설한 눈 속에 삿갓 하나 받치고
7. 구경꾼과 구경거리
8. 다양한 개인이 힘을 합쳐 이룬 민주주의
9. 실패를 거울삼고
10. 뿌리 없는 것이 뿌리 박은 것을 이긴다
11. 삶이란 아픔이다
12. 맞고 보내는 게 인생
13. 스님과 노신
14. 한해를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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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시대착오주의자로 비웃을지 몰라도 깊은 산 속 약초처럼 귀한 사람임은 부정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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