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사카베 요의 의학 미스터리 소설 『신의 손』(2010년, NHK출판)이 학고재에서 출간되었다. 구사카베 요는 오사카 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현직 의사 출신으로, 두 번째 소설 『파열』이 10만 부가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의 작가 가이도 다케루의 뒤를 잇는 의학 미스터리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 책 『신의 손』은 안락사법 제정을 둘러싼 의사, 정치인들의 암투와 의문의 연쇄 살인을 소재로 다루었다. 의사들의 치열한 논쟁과 음모가 정치가들의 이권 투쟁으로 번져가는 과정이 치밀한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문체로 펼쳐진다. 살인 사건의 배후가 점차 드러날수록 등장인물들이 겪는 혼돈과 절망의 묘사는 의료 현장을 겪은 작가의 경험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안락사라는 주제를 환자가 아닌 의사의 시점으로 그려낸 점 또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안락사를 둘러싼 12개의 살인 사건!
마지막 한 장을 넘겨야만 비로소 밝혀지는 미스터리
극한의 고통에 시달리던 스물한 살의 말기 항문암 환자 쇼타로. 소설은 병원의 간판 의사인 외과 부장 시라카와가 쇼타로를 안락사시키며 시작된다. 환자가 안락사 당했다는 익명의 투서가 파문을 일으키고, 결국 시라카와는 과실치사에 살인 혐의까지 더해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
한편, 일본전의료협회 ‘JAMA’는 안락사법 제정을 위해 시라카와를 안락사의 선구자로 포장하여 여론 조작을 시도한다. JAMA는 현 의료 제도에 불만을 가진 의사들이 새로운 의료 질서를 위해,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다. 거물 정치가를 후원하면서 의사와 의료를 통합 관리하는 의료청을 설립해 활동 영역을 넓히고자 한다. 안락사법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살해당하며 수사망이 좁혀지는 가운데 놀랍게도 죽음의 배후로 지목된 JAMA의 대표와 부대표마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시라카와는 한 의사의 양심이 거대 의료산업의 이해와 정치권의 이권 투쟁에 철저히 이용되는 현실에 절망한다. 안락사법이 제정되어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사람들이 죽은 이유는 무엇인가? 주인공 시라카와는 모든 혼돈을 뒤로한 채, 애인이자 간호사인 유키에와 함께 시골 보건소에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독자들이 끝까지 손을 놓지 못하도록 작가가 만들어둔 여러 복선과 치밀한 장치다. 연쇄 살인의 배후에 어른거리는 ‘선생’의 미스터리한 존재는 마지막 장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안락사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과 의사들이 펼치는 대결
안락사법 제정을 둘러싼 음모와 스캔들의 논스톱 전개
“지금처럼 안락사법이 없는 상황에서는 안락사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안락사를 시행하면 살인죄가 되니까요.” (1권, 204쪽)
이 소설은 안락사를 둘러싸고 의사와 환자뿐만 아니라 법 정비에 대한 정치적 문제와 여론까지 상세하게 그린 완전한 사회적 소설이다. 안락사 법제화를 결정하는 정치인과 관료, 언론인, 변호사, 경찰, 제약 회사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각각의 입장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현실감이 넘친다. 안락사를 주제로 내세웠지만 입법을 주요 소재로 삼아 생명 존엄을 주제로 한 다른 소설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안락사가 없기 때문에 고통 받는 환자와 가족, 의료비 상승으로 야기되는 의료 붕괴, 안락사 약제를 비롯해 현재 의료 시스템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가 얽혀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인간의 목숨마저 이권과 야망을 위한 수단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주인공 시라카와의 흔들리는 심리 묘사와 죽어가는 환자를 세밀하게 표현한 부분은 서툰 공포보다 섬뜩하게 다가온다.
가이도 다케루의 뒤를 잇는 의학 미스터리의 대가,
구사카베 요 국내 최초 소개!
의사 출신 작가가 현대 의료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
“의료 현장에는 생사의 드라마가 있죠. 나의 테마는 의료의 어둠입니다.”
지난 2월, 산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구사카베 요는 10만, 20만 부의 베스트셀러를 써내는 비결을 이렇게 밝혔다. 작가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의사의 관점에서 소설을 써 작품에 냉철하고 현실적인 힘을 부여한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사회와 시대의 요구를 잘 반영한다는 평이다.
국내 독자에게는 아직 낯선 이름인 구사카베 요는 2003년 데뷔 이래 의료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으로 일본에서 10만 부가 넘는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는 인기 작가다. 신작 출간 당시 도서관에서 대출 대기인이 500명이 넘었다는 독자 평이 있을 정도다. 현직 의사 출신답게 리얼리티가 압도적이다. 과감하고 빠른 전개 때문에 장편임에도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힘이 있는 대작이다.
■ 주요 등장인물
주인공
시라카와 다이세이시립 교라쿠 병원 외과 부장. 소화기외과 의사.
“현 상황은 안락사 금지법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안락사를 시행하면 살인죄가 되니까요.”
안락사법 추진파
니미 데이이치일본전의료협회JAMA의 대표. 심장외과 의사.
“안락사를 행하는 의사는 신의 손을 위임받게 되는 것입니다!”
야마나 게이스케JAMA의 집행 이사. 시라카와와 대학 동기이며 같은 의국 출신. 소화기외과 의사.
“마침내 나도 일본 의료의 지배자로 등극하는 것인가?”
안락사법 반대파
후루바야시 야스요안락사한 쇼타로의 어머니. 수필가.
“쇼타로는 분명 어떻게 해서라도 살고 싶었을 겁니다. 분명 안락사 따위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예요!”
히가시 고로히라마사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
“안락사 약이 개발됐다고 들었습니다. 안락사 인체 실험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외
무라오 시로진무리전드 제약 회사 영업 사원.
"이 자리를 빌려 개발 책임자로서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어 안락사를 실연하겠습니다.”
후루바야시 쇼타로스물한 살에 안락사로 숨진 항문암 환자. 야스요의 아들.
“살아날 가망이 없다면 고통을 멈추는 쪽을 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