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네요. 여기 이 소포를 대신 받아주실 수 있나요?”
살림이 신발 상자만 한 소포를 바닥에서 들어 올렸다. 엠마가 보자마자 자기에게 온 것이 아님을 직감했던 상자였고, 역시 그녀의 직감이 맞았다.
“이웃집 소포를요?”
이웃의 소포를 대신 받아주는 경솔한 짓을 하게 될 경우 야기될 결과를 상상하자 무릎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친절을 베풀어 치과 의사에게 온 책들을 대신 받아주었을 때처럼, 엠마는 다른 일을 할 엄두도 못 내고 몇 시간을 어두운 거실에 앉아 ‘언제’ 일이 벌어질까, ‘언제’ 초인종이 정적을 깨고 원치 않는 방문자가 모습을 드러낼까 초조하게 기다리고만 있을 게 뻔했다.
손에서 땀이 나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동안, 엠마는 분 단위로 시계를 확인하고 나중에는 심지어 초침을 따라 초를 헤아릴 터였다. 다른 이의 물건이 마침내 집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리고 소포에 적힌 수신자의 이름을 보았을 때, 소포를 대신 받아주는 일은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이 되었다.
--- p.74
“전부 다 착각이라고? 호텔방의 남자, 주사, 통증, 피. 그렇지? 어쩌면 임신했다는 것도 거짓말일 수 있겠네. 그것도 환상에 불과했던 거야, 그렇지? 그리고 다락방에서 나는 벨 소리도 내 귀에만 들리는 환청이고…….”
엠마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맙소사.
벨 소리가 그녀의 귀에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멎었다.
엠마는 숨을 멈추고 페인트칠이 시급해 보이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당신도 벨 소리를 들었지?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 p.119
도망쳐.
당장.
그 시선이 그녀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헤집은 덕에, 벌어진 틈새로 모든 용기가 빠져나갔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액체라면, 내 뒤로 붉은 흔적이 남겠구나. 그 흔적만 따라오면 길 잃을 위험 없이 돌아올 수 있으니 참 편리하겠군. 엠마는 생각했다.
엠마는 손에서 미끄러진 썰매 줄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다시 안간힘을 써가며 동물병원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어두운 집 창문 뒤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릴 유령의 눈을 등지고.
그녀가 과연 돌아올 수는 있을까.
--- p.136
엠마는 이제 무선전화기를 손에서 떨어뜨릴 정도로 격렬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팔란트의 멍한 눈 때문도 아니었고, 그의 집에서 도망친 일 때문도 아니었다.
소포 때문이었다.
살림이 오늘 아침 그녀에게 맡기고 간 소포. 미스터리한 이웃 앞으로 온 소포.
사라졌던 소포가 다시 나타났다.
책상 위에.
원래 있었던 그 자리에.
아까 그녀가 두었던 바로 그 자리에.
원래부터 늘 거기 있었던 것처럼.
--- p.180
“난 미치지 않았어.”
엠마는 초고해상도 모니터에 이마를 대고 울기 시작했다.
“슈타인 부인, 두려워하지 말아요.”
남자가 말했다. 그러나 흰 가운을 입은 정신과 의사와 간호사 두 명이 콘라트 옆에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엠마는 정확히 그것을 느꼈다. 모든 세포를 사로잡는 두려움이 영원히 그녀 안에 둥지를 튼 것 같았다.
엠마는 현기증이 났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무릎을 꿇고 무너지며 잡을 곳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 p.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