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Q_ P_. 산 세월은 삼십일 년하고도 삼 개월. 키 178센티미터, 몸무게 67킬로그램. 갈색 눈, 갈색 머리. 보통 체구. 팔과 등에 주근깨 약간. 양쪽 눈 모두 난시여서 운전 중에는 안경 필요. 외모 특징, 없음.---p.9
닥터 E_의 진료실에서 머리가 무거워지지 않으면 좋겠다. 내 머리는 마치 팬케이크 반죽처럼, 날것처럼 부드럽고 걸쭉하고 핏기 없는 물질로 변한다.---p.25
내 마음대로 조종할 좀비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오 년 전이었다.---p.41
좀비로 안전한 대상은 타지 사람이다. 히치하이커, 부랑자, 쓰레기 같은 부류. (비쩍 마르거나 마약 중독자나 에이즈 환자만 아니라면.) 또는 시내에서 얼쩡대는 집도 절도 없는 흑인.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인간.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인간.---p.45
번쩍이는 안경 너머 아버지의 눈. 내가 욕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똥 싸던 두 살 때처럼 날 바라본다. 작은 고추를 쪼물대던 다섯 살 때, 티셔츠에 다른 애의 코피를 묻히고 왔던 일곱 살 때, 친구 배리가 웅덩이에 빠졌던 열한 살 때처럼. 아버지의 눈이 가장 강렬하게 내게로 온 것은 열두 살 때였다.---p.54
그제야 온 우주에 Q_ P_ 혼자뿐임을 알았다. 어떤 일이 벌어지길 바란다면 스스로 그 일을 해야 한다.---p.142
왜 Q_ P_에게는 그런 친구들이 없었을까? 나를 좋아하는 친구, 형제 같은 친구, 쌍둥이 같은 친구가 왜 없었을까?’ 이제 그들은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어린 자식들은 날 제대로 보지 않는다.---p.165
쉬워 보이는 일이 실은 몹시 어려웠다. 심장이 있다면, 상심하게 되는 법이다.---p.177
뼈는 물에 뜰까? 그렇다 해도 살이 붙어 있지 않으면 뼈들은 흩어진다. 그래서 서로를 잃게 되면 거기에 어떤 정체성이 있을까? 그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p.221
진정한 좀비는 영원히 내 것이 될 것이다. 그는 모든 명령과 변덕에 복종할 것이다. “네, 주인님” “알겠습니다, 주인님” 하면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보며 말할 것이다. “사랑합니다, 주인님. 오직 주인님뿐입니다.” 진정한 좀비는 ‘아니다’라는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고 오직 ‘그렇다’라는 말만 할 수 있으니까. 그는 두 눈을 맑게 뜨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내다보는 것은 없고 그 뒤에서는 아무 생각도 없을 것이다. 내 좀비는 심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공손할 것이다. 웃지도 히죽거리지도 못마땅해서 콧등을 찌푸리지도 않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곰 인형처럼 폭 안길 것이다. 우리는 침대에 한 이불을 덮고 누워 11월의 바람소리와 음악대학의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을 것이다. 우리는 종소리를 세면서 같은 순간에 나란히 잠들 것이다.
『좀비』는 악인의 입장에서 서술된 일지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악덕을 설득하거나 악행에 대해 변명하지는 않는다. 악을 권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보기보다 위험한 책은 아니다. 차라리 『좀비』는 독자로 하여금 잠시 그 악인이 되어보도록 한다. 이건 추천장도 아니고 사용설명서도 아니고 초대 편지도 아니다. 입체영상을 보게 해주는 안경 같은 것이다. 이걸 쓰면 사이코패스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자기 내면을 관찰할 수 있다. 어쩌면 반대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입체로 존재하는 세상이 이 안경을 끼면 평면으로 보인다. 사이코패스의 시선은 매우 폭력적으로 세계를 단순화하니까. 조이스 캐럴 오츠의 짧고 멋 안 부리는 문장 덕에 우리는 너무나 손쉽게 연쇄강간살인범이 될 수 있다. 그냥 미끄럼 타고 내려가듯 악의 심연에 뚝 떨어진다. 악은 이토록 쉽고 간결하고 명쾌한 것이던가, 어리둥절해질 지경이다. 악의 화신이 된다는 건 전혀 어렵지 않더라. 타인들을 입체로 보지 않는 것, 오로지 자기만 들여다보는 것, 제 욕망만을 보는 것. 단순화, 평면화, 내면화, 그리고 단절.
박찬욱(영화감독)
눈을 뗄 수 없고, 잊어버리기 힘든 소설.
라이브러리 저널
이 얇고 사디스트적인 소설은 음울한 연극 이상의 현실성으로 가득하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오츠의 작품 중 가장 무서운 소설이다. 두렵고 계시적이기까지 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번에 끌고 간다. 북리스트
가장 심오한 차원에서 독자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동시에 인간의 어떤 면도 진실로 낯선 것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