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8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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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450g | 153*224*20mm |
ISBN13 | 9788997379064 |
ISBN10 | 8997379062 |
발행일 | 2012년 08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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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450g | 153*224*20mm |
ISBN13 | 9788997379064 |
ISBN10 | 8997379062 |
서문┃삶은 왜 늘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느껴질까 1장 사물의 질서 : 우리를 매혹시키고 숨 막히게 하는 그것 질서가 무질서보다 나을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정리한다 질서가 없으면 불안한 사람들 무질서가 주는 쾌락 사물들의 살아 있는 질서 세계가 선을 추구하길 원한다면 비틀거리면서도 깨달음이 교차하는 순간 내면 시계의 태엽을 감는 법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영원한 줄타기 2장 무질서의 기술 : 내면의 질서를 건설하는 철학적 방법 가짜 질서 청소를 했는데도 왜 여전히 혼란스러울까 우리를 탈진하게 만드는 낡은 사고의 울타리 행복이라는 이름의 러닝머신에서 내려야 하는 진짜 이유 우리 몸이 비명을 지를 때 사물에 숨겨진 의미 선택의 고통 혹은 결정의 기술 나에게 가능성은 있는가 자기 돌보기와 자기 포기 사이에서 저속함, 불만, 무관심의 결과들 질서는 자유의 실천이다 3장 철학적인 삶의 실천 : 창의적인 카오스가 만드는 세상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철학으로 창의적 사고를 훈련해보자 떠들어라, 그 곳에 질서가 있다 창의적이고도 예술적인 존재 애당초 완벽할 필요가 없었다면 삶이라는 텍스트에 쓰인 나라는 존재의 의미 놀이의 기쁨 4장 행복의 무대 : 내 삶에 어떻게 질서를 부여할까 준비 - 쓰레기통을 마련했다면 낡은 모델의 정리 - 내가 서 있는 바닥을 보라 잡동사니에 대한 고민 - 뇌와 서랍을 한번에 청소하는 법 빈 공간의 발견 - 무엇을 채울 것인가 마침내 기다려온 순간 -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 후기와 감사의 글 참고문헌 |
여러 개의 영수증과 메모, 필기구들이 널부러져 있는 사무실 책상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을 심난하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꼭 집어서 무엇 하나 빼서 버리기에도 뭣한 옷장들과 정리 하기 애매한 집안 창고를 보고 있자면, 이 상태로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자리합리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요즘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자주 보이는 정리정돈에 관한 자기관리 서적들은 이런 현대인들의 정신사나움(?)을 정확하게 꿰뚫고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일상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상태 만큼이나 정리되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다. 요즘 각광받고 있다는 정리 컨설턴트가 우리의 책상을 정리시켜 준다면, 우리의 꼬일 대로 꼬여버린 인생은 누가 정리해 줄 것인가?
우리는 우리 나름의 질서의 일부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소개 된다는 이나 슈미트의 이 책은 이런 나의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가지 힌트를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가 질서 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특정 체계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대형 마트에 품목 별로 정리되어 있는 제품들, 공공장소에서 모두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들은 마치 ctrl+c와 ctrl+v를 해놓은 것처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경들이다. 어떤 정해진 메뉴얼대로 행동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정리되어 있지 않은 물건들을 보면 우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것은 무질서의 부정성이 아니라 그저 익숙하지 않은 낯설은 것들에 대한 반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불안감과 반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 자신들도 그 질서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질서에 속해 있으며, 질서의 변화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질서를 움직일 수 없다. 포기하면 편해진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자연 질서의 일부에 불과한 우리 자신을 인식하고 받아 들인다면 우리의 인생은 한결 편해질 것이다. 언젠가 우연히 본 해외 프로그램에 나온 인문학자가 인간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작은 행동이 이 우주에 큰 의미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대칭적이고 균형있는 질서에 집착을 하는 것도 혹시 이런 엄청난 비밀을 모르기 때문은 아닌 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카오스(Choas)가 주는 삶의 행복
요즘 젊은 세대들이 만들어 내는 신조어들 중의 하나가 바로 정신이 멍해지고 당황스럽다는 의믜의 '멘탈붕괴', 즉 멘붕이다. 복잡하고 힘든 세상사 때문인지 온라인 상에서 이런 멘붕 상태에 빠졌다는 네티즌들의 댓글을 발견하기가 정말 쉽다. 혼돈의 상태를 의미하는 '카오스'는 이런 멘붕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 들이고 있는 이런 '카오스'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아니, 그것은 새롭다기 보다는 우리가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의미에 대한 고찰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저자는 카오스가 결국 다양성의 모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카오스는 질서의 절대적 대립물이 아니며, 단순한 질서의 부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질서와 무질서, 코스모스와 카오스라고 대칭적으로 생각하던 개념이 알고 보면 아니라는 말이다. 대립적이고 대비되는 관계라기 보다는 서로의 일부를 공유하는 상호성이 있다는 관계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만약 이런 저자의 주장에 심적으로 동의한다면, 질서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 들인 것처럼 카오스라는 것도 충분히 받아 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의 이런 글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코스모스가 아닌 카오스로 가야 한다고 주장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람마다 각자 집을 꾸미거나 책상을 정리하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타인이 나의 영역에 들어와서 나름의 질서를 잡아 준다면, 그것을 제대로 된 코스모스 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타인의 눈에 무질서, 즉 카오스 상태로 보이는 그것이 알고 보면 나 자신에게는 질서, 코스모스 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 먹는다면, 카오스라는 새로운 동반자와 사는 것도 그렇게 어렵거나 힘들 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카오스와 더불어 카오스 안에서 잘 살 수 있다. 카오스적 과정들과 동행하며, 그것들을 '제거해야 하는 것'이나 '통제해야 하는 것'으로 보지 않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현상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사물들에 관여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그 사물들을 관심으로 '충전'시킬지가 더 중요하다.
- p.61
이 책을 읽고 싶어하거나 읽으려고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딱 한 가지는 철학 서적을 너무 철학적으로만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심각하게 파고들수록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철학 아니던가. 코스모스, 카오스 그리고 니체와 같은 명사들이 눈에 들어 온다고 성급하게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설 필요는 절대 없다. 이 책은 단지 우리들의 복잡한 인생 자체를 덜 복잡하게 바라볼 수 있게 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질서(Cosmos)와 무질서(Chaos)에 대한 것들을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풀어내는 철학 에세이다. 그런데 어렵다. 이 책을 보게된 이유는 내 주변에 강박적으로 질서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매우 날카롭고 조직적인 사유를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은 자신이 판단력을 심각하게 신뢰하며 늘 모든 현상들을 분석하고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조언하려는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지만 이러한 습성으로 인해 자신도 주변의 사람도 어렵게 만든다. 옆에 보면서 어떤 질서에 모든 사람들과 현상들을 편입시켜 그것을 통제하려는 그 습성이 너무나도 나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쁘게 보이는 것을 넘어서 어떤 강박관념이 사람들의 자류를 빼앗기까지하는 정신적 폭력으로 까지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이 책의 주제가 코스모스와 카오스, 즉 질서와 무질서를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전개하는 내용이 궁금했다. 살려고 마음먹었다가 근처 도서관에 신간으로 들어왔길래 일단 빌려서 보기 시작했다. 질서라는 뜻의 코스모스는 단순히 우리 주변의 질서뿐 아니라 우주와 나와의 질서로 확장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을 매우 예민한 철학적 사유로 전개해 나가기 시작한다. 질서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세계속에 이 모든 세계를 집어 넣으려는 편협한 자기 만족일 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런 맥락에서 이미 19세기 말에, 우리는 항상 가장 비슷하지만 절대 동일시하지 않은 사물들을 동일시한다고 한탄하였다. 우리는 사물들을 패턴과 책장 속으로 억지로 밀어넣는다. 뜻대로 잘 안 되면 새 패턴을 짜는 게 아니라 사물의 모퉁이를 살짝 잘라내고 그 위에 칠을 해 덮어버린다. 그래놓고는 아무리 해도 우리의 정신적, 외적 질서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의하애한다.
이 책의 저자는 완벽한 질서, 코스모스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모든 자아의 내면이 질서에 순응하는 이 세상이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질서의 혼돈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단호하게 철학적 사유를 키우라고 말한다. 철학적 사유란 어떤 패턴에 정해진 조직적 사유방식이 아니라 이 세상의 현상을 무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을 뿐 아니라 그 나름의 질서속에 스스로를 편입시킬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적 시각을 가진 관찰자 속에서 그 관찰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사람, 그리고 나아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점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탁월하게 설명한다.
지난 세기 양자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는 물리학과 철학의 ‘만남’을 집중 조명하여 이런 사실을 발혀냈다. "자연의 온갖 형태를 만들었고 우리의 영혼, 즉 우리 사고 능력의 구조를 책임지는 것은 동일한 정돈하는 힘들이다.“ 그러니까 몇 십 년 고전물리학이 양자물리학으로 발전하면서 우리도 이미 확고부동한 실체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관계 속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그에 따라 사물들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관찰자는 관찰 대상을 변화시킨다. 이 역시 과학의 세계를 뛰어넘어 사고 전환을 이루어낸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밝혀낸 중요한 깨달음이다. (p.44)
이 책을 읽으면서 질서와 무질서에 대해서 이렇게 집요한 사유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세계는 코스모스지만 무수히 많은 카오스가 존재한다. 개별적 카오스들은 어쩌면 전체적 코스모스 속에 편입되어있는 지도 모른다. 카오스를 혼돈스럽게 여기지 말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약동하는 운동의 힘에 맡긴다면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코스모스의 질서속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의 설명을 들으면 현대 철학의 첨예한 담론인 차이와 동일자 이론이 생각났다. 현대 시대의 우울과 파괴는 주체가 모든 차이의 타자들을 동일성이라는 질서에 편입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철학자들은 진단했다. 그래서 현대 시대의 문제점을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동일성’이라는 질서에 편입시키려는 폭력이라고 보고 ‘차이’에 대한 이론을 만드는데 현대철학이 집중하지 않았나 싶다. 주체와 타자의 차이는 결국 카오스와 코스모스와 일맥상통한다. 주체의 입장에서 모든 타자는 카오스이다. 그러나 주체로써의 타자는 카오스가 아니라 코스모스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결국 전체 질서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일 것이다.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이라는 제목을 듣고 실용서나 자기계발서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촘촘한 철학책이다. 우리는 늘 주변의 사물, 생각과 관계를 정리하며 질서를 잡으려고 한다. 삶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하루하루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꽉 짜여진 질서에는 오히려 숨이 막힌다. 이러한 삶의 질서와 무질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철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철학은 어떻게 정리정돈을 돕는가>는 알려준다.
이 책은 플라톤 철학부터 현대 양자역학 이론을 거론하며 ‘완벽한 정리정돈’ 개념을 비판해나간다.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을 호도 한 것이다. 저자는 혼돈이야 말로 질서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춤추는 별을 낳기 위해서는 가슴속에 카오스를 품고 있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은 저자의 말을 뒷받침 한다.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오스라는 가능성을 사랑하며 삶의 무질서를 껴안어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질서를 성찰할 수 있다. 이는 깊은 내면까지 이끌어 준다. 보지 못할 뿐 카오스는 생각보다 훨씬 더 질서정연하다. 삶에 질서를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 둬야한다고 역설한다.
의미란 사물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며,현실로 발전되는 아이 디어다. 목적은 특정 행동의 근거이며, 완전히 정해진 결과를 추구하는一따라서 실제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자 하고 그럴 수 있는-의도다. 여기서는 과정이 결정되고 계획된다. 무엇인가가 사전에 제출된 과제에 부합하면 그것은 합목적적이다. 하지만 목적은 시물에 내재하지 않는다. 목적으로부터 마법이 등장하는 경우도 극히 희귀하다. p.153
그렇다면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가기 위한 비법은 뭘까? 지은이는 단호히 철학적 사유를 기르라 말한다. 철학은 거창하고 복잡한 개념의 나열이 아니다. 철학은 혼돈에서 나름의 질서를 찾기 위해 싸운 흔적이다. 으 치열한 내적 결투를 통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카오스 속에서도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장엄한 길을 목격 할 수 있게 된다.
편안한 마음으로 꼼꼼하게 관찰할 때 비로소 진짜 중요한 것을 골라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철학은 정답을 마술로 불러내는 조언자가 아니다. 철학은 관찰 도우미 같은 것이다. 새 안경이나 창문을 닦는 걸레 같은 것이다. 다들 경험해봤을 것이다. 봄 햇살이 겨울 창에 비쳐들면 지난겨울 몇 달 동안 창문에 덕지덕지 앉은 더러운 때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가 우리는 베일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있다가 태양이 지적을 해주자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p.254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람일수록 정리정돈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굳이 정리정돈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머리 속에는 자신의 방구조와 물건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은 보이지 않지만 자신만의 '질서'가 확실하기에 그 안에서 창의성이 발휘 되는 셈이다. 철학은 만능 청소기는 아니지만, 만능 등대는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