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내가 그 변화에 감동했다고는 할 수 없고, 오직 매혹되었을 뿐이지. 마치 베일이 찢어지면서 어떤 새로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았어. 그 상앗빛 얼굴에서 나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그리고 치열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도는 것을 보았거든. 완벽한 앎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한 순간에 그는 욕망, 유혹 및 굴종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세세하게 되살아보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는 어떤 이미지, 어떤 비전을 향해 속삭이듯 외치고 있었어. 겨우 숨결에 불과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두 번 외치고 있었어. <무서워라! 무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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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내가 기선의 갑판 위에서 납작이 누워 있을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지고 있더군, 지배인이 그의 숙부와 강둑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었던 것일세, 나는 다시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거의 잠이 들 뻔했는데 바로 그때 누군가가 내귀에 입을 대다시피 가까운 곳에서 말을 하더군. <저야 어리아이만큼이나 남을 해칠 줄 모르는 인간이지요, 하지만 남이 저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답니다. 제가 지배인이 아닙니까? 제가 받은 명령은 그를 그곳으로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더군요> 나는 두 사람이 바로 내 머리맡에 있던 기선 앞부분의 강가에 서 있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꼼짝하지 않았지. 도무지 꼼짝하고 싶지도 않더군, 졸음에 겨웠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