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9년 06월 26일 |
---|---|
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366g | 113*185*30mm |
ISBN13 | 9791170400011 |
ISBN10 | 1170400019 |
출간일 | 2019년 06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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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366g | 113*185*30mm |
ISBN13 | 9791170400011 |
ISBN10 | 1170400019 |
『두근두근 내 인생』, 『비행운』, 『바깥은 여름』 저자 김애란의 첫 산문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드물게 만난 눈부신 순간 사람의 이름, 풍경의 이름, 사건의 이름…… 작가 김애란의 한 시절과 고민, 마음이 담긴 이야기들 소설을 통해 내면의 모순을 비추어보며 사람에 대한 성찰을 완성해온 작가 김애란이 소설가, 학생, 딸, 아내, 시민,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고백한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들』이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김애란은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과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 명랑한 상상력이 넘치는 생동감 있는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왔다. ‘1부 나를 부른 이름’은 작가의 성장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 문학청년 시절, 성장기 환경에 대한 사연들로 가득하다. ‘2부 너와 부른 이름들’은 작가가 주변 인물들과 타인에 관해 쓴 글이다. 동료 문인들을 비롯하여 작가 자신의 주변에 대한 깊이 있는 눈길을 담아낸다. ‘3부 우릴 부른 이름들’은 문학 관련 글과 개인적인 경험담을 모았다. 작가가 지나쳐온 여행과 인생의 순간들에 대한 비망록이 돋보인다. 작가 자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그 자신의 이야기에는 때로 서러운 음색으로, 때로 구성진 입담으로 다가온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한 이야기인 동시에, 잊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김애란은 특유의 섬세하고 따스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2002년 등단한 이후 만 17년여라는 시간 동안 김애란이 기록해온 김애란의 다채로운 진면목이 속속들이 담겨 있다. 김애란은 말한다. 어디 먼 데 가지 말고 우리 삶에서부터 살펴보자고,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은 어디 엉뚱한 데 있는 게 아니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잊어버리고 만 김애란 작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우리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고서야 김애란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한다. 모두 기억되어야 할 이름으로 문학을 쓰고 삶을 살아간다고,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고. |
1부 나를 부른 이름 나를 키운 팔 할은 언제나 꿈꿔온 순간이 지금 여기 야간비행 한여름 밤의 라디오 당신과 조우 속삭임 여름의 풍속 기우뚱-하다 현수막 휘날리며 부사副詞와 인사 나의 기원, 그의 연애 말의 약점 카드놀이 초겨울 안아볼 무렵 몸과 바람 2부 너와 부른 이름 생일 축하 여름의 속셈 그녀에게 휘파람 연호관념사전 말言 주변에서, 말주변 찾기 그녀의 푸른 손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다운 - 『숨그네』 헤르타 뮐러 두근두근 산해경山海經 3부 우릴 부른 이름들 알록달록한 점점點點 리듬의 방향 - 권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폴란드 북부도서 그단스크 문장 영향권 점, 선, 면, 겹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아는 얘기, 모르는 노래 빛과 빚 잊기 좋은 이름 -단편 「물속 골리앗」 작가노트 작가의 말 |
1.김애란 작가님의 책은 처음이네요?
김애란 작가님의 이름에서 '애끓는 슬픔'이 느껴져요.(작가님께는 죄송합니다.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ㅠㅠ ) 작가님의 이름이 소설의 방향이나 내용을 단정하는 것도 아닌데, 말도 안되는 생각에 사로잡혀 '김애란'작가님의 책은 들었다 놓은 적이 많았어요. 그러다 이번엔 기회가 되어 읽는데요. 제가 오해했어요. 귀여우시기도 하고, 키득키득 글로 웃기십니다. 글에서 깊이가 드러날 땐 확 달라지는 반전매력이 있어요.역시나 추천하는 책은 이유가 있네요. 많이들 읽는 책들의 작가님은 역시 이유가 있었어요.
2.왜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문장이 급(이런 단어를 감히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심히 주관적인 단어이니 이해해주세요)이 달라보였어요. 이분은 그냥 '찐작가님'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김애란 작가님의 문장은 제가 굉장히 매력을 느끼는 표현들이 많아요. 이런 표현들에 왜 그리 매력을 느끼나 했는데 시적인 요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은유, 비유, 압축 등 시를 좋아하시고 많이 쓰시는 분들이 쓰는 문장은 대체로 그렇더라고요. 어떻게 저런 비유를 끄집어내지? 어떻게 저런 사소한 걸 가치있는 존재로 끄집어 내지? 싶은 표현과 문장들이 많아 감탄했어요. 산문도 이런데 소설은 어떨까 싶어 궁금해요.
저는 책에 밑줄을 잘 안 치는 편인데요, 가끔 '하아! 밑줄 치고 싶어 죽겠다!' 이런 마음이 들어서 괴로운(?) 문장들이 있는데요. 은유작가님의 문장이 많이 그랬어요. 김애란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은유작가님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하아...밑줄 치고 싶어 죽겠다'
**누군가 이미 (도서관)책에 밑줄을 그었더라고요. 이런 매너없는! 이라고 욕 나올 뻔했지만, 좋은 문장이라 약간은 줄 친 이가 이해 됐어요.
3.이 책은 산문 모음집이에요. 기억나는 산문이 있나요?
먼저 '부사'를 변호하시는 산문인 <부사와 인사>요. 예전에 글쓰기 스터디를 하면서 출판사 편집자이자 리드해주셨던 분이 '부사'에 대해 어떤 책 내용을 인용하신 적이 있었어요.
나는 부사를 '매우'좋아하며, 절대, 제일, 가장, 과연, 진짜, 왠지, 퍽, 무척 좋아한다. 등단한 뒤로 이렇게 한 문장 안에 많은 부사를 마음껏 써보기는 처음이다. 기분이 '참' 좋다. p.87
당시에 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고, 부사의 남용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했던 걸 공식처럼 외우고 있었거든요? 저도 당시에 '부사'를 금지어처럼 여겼었죠. 근데 저 문장을 들었을 때 신세계를 봤다고 할까요?
'옛다! 이거 봐봐라!! 내가 부사란 부사는 다 써재낄테다!!!!'라는 듯 따발총으로 우다다다다 부사를 남용하시는 그림이 그려지죠. '이야!! 이렇게 신박한 표현이!! 진짜 멋져!!' 스티븐 킹에게 ㅆㄷㄱ 한 대 날려주는 듯한 그 표현에 제 속이 다 시원했어요. 근데 그 표현이 바로 이 책 김애란 작가님의 글이었더라고요. 이 책을 읽고야 알았다니!! 이 문장을 이제야 발견하고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요. 물론 부사가 들어간 표현이 좋다고 하신 건 절대 아니고요. 미움받는 부사에 측은함으로 변호하신 듯한 글이에요. 그래도 이 한 문장이 부사에 대한 제 억압된 심정을 자유하게 해줬어요. 김애란 작가님 덕분에 제가 부사를 마구 남용합니다. 그래서 전 좋은 글은 포기했어요.
다른 하나는 <점,선, 면, 겹>이요. '연필'이 이 글에서 주로 다뤄졌어요. 좋아하는 문장에 작은 포스트잇 테이프를 붙이는데, 이 산문은 단락마다 붙여대고 싶었어요.
'어떤 문장 아래 선을 그으면 그 문장과 스킨십하는 기분이 든다.'
'나는 내가 줄 그은 책과 잘 헤어지지 못한다. 거기 남은 연필 자국이 왠지 저자와 악수한 뒤 남은 손자국 같아.'
"밑줄 치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은데 그럴 수 없어 한글 문서에 옮겨 적은 후 출력해서 밑줄을 마음껏 쳤어요."
등등 많아요.
여기서부터 다뤄지는 '세월호사건'도 마음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세월호 사건은 제가 첫째 낳고 산후 우울증 겪을 시기에 바로 겪은 일이라 잊을 수가 없어요. 내가 봐야 구조자수가 는다는 느낌으로 뉴스를 '새로고침'하곤 했는데 여기서 다시 다뤄지니 너무 가슴 아픈 것이 또 제 마음을 찌르더라고요. 그래서 기억나네요.
4. 좋았던 문장 하나 공유해주세요.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 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 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작가라 '이해'를 당위처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지만 나 역시 치수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하다. 나란 사람은 타인에게 냉담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렇게 애쓰지 않으면 냉소와 실망 속에서 도리어 편안해질 인간이라는 것도 안다. 타인을 향한 상상력이란 게 포스트잇처럼 약한 접착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해도 우리가 그걸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지 않을까. 그런 얇은 포스트잇의 찰나가 쌓여 두께와 무게가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우리이기 전에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알려주는 말들. 그리하여 나와 똑같은 무게를 지닌 타자를 상상토록 돕는 말들을 생각했다. 우리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청이 아니라 나와 너로 만나는, 그리하여 한 번 더 철저히 '개인'이 되는, 그 개인의 고유한 내면을 깊이 경험해보도록 돕는 문학의 언어를. p.252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p.269
이해에 대한 문장들이 저는 많이 와닿았어요. 그냥 남을 이해하려고 위로하려고 애쓰기만 했는데요. 그 이해가 어떤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한 문장들이었어요. 또 상대에게 '너를' 이해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어졌어요. 조심스러워졌고, 저의 무지함도 인정하고 숙여야 함을 꾹꾹 제 마음에 새기게 되었어요.
5.마무리 해주세요.
생각과 표현의 깊이에 반해버렸요. 그래서 어떤 문장들은 헤아리기 어렵기도 했는데요. 그냥 맘편히 패스했고요.
마무리고 뭐고 두말할 것 없이 전 다른 김애란 작가님 책으로 넘어가보려고요. 이 한 문장에 마무리 됐죠?^^
매번 소설을 참 재미있게 읽어서, 첫 산문집이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를 많이 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게 읽은 <잊기 좋은 이름>은 김애란 작가의 소설들처럼 담담하고 따뜻한, 때로는 가슴이 시리고 찡한 이야기들이 한가득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주변 환경을 작가가 직접 보여주고 들려주는 느낌이었다. 가족과 친구, 동료들의 이야기에 따뜻한 애정이 묻어 있어서 읽는 동안 마음이 시리기도 훈훈하기도 했다.
살았던 기간에 비해 깊은 인상을 남기고 큰 영향을 주었다는 '맛나당' 생활 이야기를 읽는데, 모르는 곳인데도 그 칼국수집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삼익피아노와 밀가루 포대가 공존하던 맛나당에서 작가는 알게 모르게 어머니가 긍정적이고 주체적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배웠다고 고백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맛나당'에서 어린 작가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긍지로 얼굴이 빛나는 어머니의 손칼국수를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필 '정숙'이라는 말이 붙은 컴퓨터실에서 등단 소식을 듣는 바람에, 공중제비를 돌고 싶을 만큼 기뻤지만 양껏 기뻐하지 못한 작가의 지난날 이야기에 웃으면서도 짠했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소설가였기 때문에 시와 소설 사이에서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 담담하지만 섬세하고 따뜻하게 인물을 그려내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들을 너무 좋아해서 역시 시보다는 소설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시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선에도 못 올랐다는 그 시가 문득 궁금했다.
먹구름을 예감한 곤충처럼 심란해졌다는 표현 때문에 좀 웃었다. 어쩌면 이런 표현을 생각했을까. 어떤 마음인지를 너무 잘 알겠고, 나도 그런 마음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생각에 여기서 좀 터졌던 것 같다. 읽고 싶다기보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작성했다는 작가의 그 당시 희망 목록은, 아마 대학교 1학년 때 받아 들었던 권장 도서 100선에서 어려운 책만 추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겠지.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이런 적 있었어! 하면서 반가웠던 장면들이 몇 있었는데, 이 헌책방 대목이 유독 그랬다. 요즘은 사러 보다는 팔러 가는 일이 더 많은 곳이지만.
부사 이야기에도 크게 공감했다. 부사를 되도록 안 쓰는 게 좋은 문장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지만, 부사를 안 쓰고는 양껏 오바를 할 수 없는데요...? 이렇게 많은 부사를 써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던 저 많은 부사들을, 나는 글 한 편 쓸 때 거의 모든 종류 다 쓰는 느낌이다. 되도록이면 너무 많이 안 쓰도록 노력하겠지만, 나는 부사가 너무 좋다.
창비 50돌을 위한 글이라는 '생일 축하'는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농담이 불가능한 시기'를 버텨낸 선배들이 마련해 준 찧고 까불며 놀 수 있는 마당에서 하는 작가의 농담은 선배들의 진담에 빚지고 있다는 부분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은 오랜만에 방문한 모교 도서관에서 느꼈다. 철제 서가들은 그대로인데 20살 새내기 때 그 느낌이 아니라서 마음이 이상했었다.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 때문이었나 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해주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김연수 작가 이야기를 담은 부분이 좋았다. 서른다섯 무렵의 김연수 작가, 서른다섯 무렵의 김애란 작가 이야기를 곧 그 무렵이 되는 내가 읽고 있다는 게 기분이 묘했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들려주는 '산 문장'에 머물면서, 서른다섯이 되면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막내 동생이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막내는 그 친구들보다 한 학년 아래였다. 같은 학교가 아니었음에도, 누군가의 형제였고 친한 친구였고 안면이라도 있는 사이라서 관계가 없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고 한다. 막내는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우울해했다. 막내뿐만 아니라 친구들 대부분이 그랬다. 작가 말대로 우리 모두 '아는 사람'였는데, 안산에서 학교를 다녔던 그 또래들이 받은 충격은 오죽했을까 싶었다. 작가의 시선은 우리와 같은 것을 보고 알아버린 또래 학생들에게 머물렀다가, 제발 그냥 놔두라는 절절한 애원을 하는 유족들을 향했다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슬픔을 나누기 위해 모인 분향소에서 만난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서 멈춘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해 4월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어쩔 줄을 모르겠다.
모의고사를 풀 때 저 작품이 나와서 문제를 풀던 내가 식은땀이 날 것 같았다. 전짓불 뒤에 누가 있었을까. 어느 편이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저 소설을 처음 지문으로 만난 날 악몽을 꿨다. 실제로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닌데도 그 순간이 너무 무서웠다. 잊기 좋은 이름에서 저 대목을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작가도 '원초적인 두려움'을 일깨우는 장면이라고 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동안 많은 소설을 쓰면서 수많은 인물과 이름을 만들었을 작가에게는 잊혀진 이름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는 마지막 말이 너무 좋았다. 마음에 남는 구절들이 너무 많아서, 추리고 추렸는데도 인용한 부분이 이렇게 많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부담스럽지 않은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주변 사람과 환경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싶어질 때 종종 꺼내 읽어야겠다.
문장 하나하나 읽어내려갈 때마다 늘 감탄하게 되는 김애란 작가님의 책 잊기 좋은 이름을 구매했다. 사실 산문집인줄 모르고 또 저자와 제목만 보고 구매한 책이어서 소설집이 아니라 받아보고 당황하기는 했지만, 읽기 좋은 사이즈와 가벼운 책의 무게가 좋아서 주문한 책들중 이 책을 제일 먼저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서 든 생각은 아, 역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평소의 생각도 다르구나, 소설의 문장이 정말 남다르게 아름다웠는데 산문도 정말 잘 읽힌다. 작가님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