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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슬슬

마냥, 슬슬

숨, 소리-0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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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7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204g | 120*190*20mm
ISBN13 9791186452462
ISBN10 1186452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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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애주가의 결심』으로 등단한 주류 酒類 문학 신예 은모든 작가가 `술`에 대한 두 번째 작품집을 냈습니다. 5개의 소설에는 일상에 녹아든 술의 의미를, 5개의 에세이에선 술잔에 담긴 우리의 삶을 느낄 수 있어요. 편마다 작가의 테이스팅 노트가 포함되어서, 애주가들의 술푼 삶에 안주가 되어줄 책입니다. - 소설 MD 이주은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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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걷고 짧은 대화를 나누며 인주는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살고 있는 인물이 되었다. 무대에 서듯 다른 사람이 된 채로 미소 짓거나 한숨 쉬었고, 위로와 응원의 말을 들었으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단지 복숭아만 조심한다면, 그녀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 「단지, 복숭아만 조심한다면」 중에서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아빠처럼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라는 말.
윤선은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알았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애틋하고 짠하게 여기는 사람은 엄마였다. 하지만 윤선은 쾅! 하고 닫힌 문 안쪽에서 엄마처럼 수십 년간 똑같은 레퍼토리로 한탄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빠처럼 문을 거세게 닫고 밖으로 나가는 편을 택할 것이다. 그러니 비난받아 마땅한 것일까? 너의 성격이 문제라던 남자들의 말이 마구잡이로 되살아나며 윤선의 마음을 할퀴었다.
--- 「엔드 데이」 중에서

날짜만 잡아. 내가 한 잔 살게
라고 적은 뒤에는 상앗빛 조명 아래 놓인 위스키 잔을 찍어 보냈다.
호선은 친구의 답장을 기다리며 다시금 술잔을 들었다. 시나몬 위스키 한 모금을 삼키자 십여 년 전, 그 어린 날의 고단했던 기억과 달콤한 추억이 한데 섞인 맛이 났다.
--- 「누구나 곧바로 응용할 수 있는 5분 레시피」 중에서

남의 일기장을 몰래 읽는 것은 몰상식한 짓이다.
하지만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일기장이 펼쳐져 있다면, 내심 누군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애당초 트위터 계정의 자기 소개란에 ‘일기장’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트윗을 살피는 일에 일기장을 훔쳐 읽는 것 같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있는 것일까?
--- 「덕의 추천」 중에서

사십 대에 접어들고 자신의 이름을 내 건 병원을 운영하게 된 후에 호정을 괴롭히는 근심 걱정의 규모는 확실히 전보다 커졌다. 특히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어둠 속에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면 평소 별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있던 일까지 날카로운 촉수를 드러내고 머릿속 이곳저곳을 찔러 댔다. 이따금 독주를 들이켜고 나면 잠을 설치지 않고 침대에 뻗어 있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죽은 듯이 자다가 앓고 난 뒤처럼 묘한 개운함 속에 눈을 뜨게 됐다.
--- 「부활의 맛」 중에서

보기만 해도 해방감을 느끼는 단어 1위는 펍이나 바의 메뉴판에 적힌 ‘해피 아워’라 하겠다. “일과를 마치셨나요? 할인해 드릴 테니 한잔하시죠!”라는 말을 압축한 이 단어에서는 절로 ‘해피’가 솟아난다.
--- 「해피 아워」 중에서

거기에 하나 더. 애매한 시기에 이국으로 떠나와서 적당한 생활을 하는 날들의 감촉. 그 역시 B가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해도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한 달 벌어 다음 한 달을 사는 것. 그 이상의 고민과 장기적인 인생 계획은 일단 귀국 후로 미뤄 두고 모르는 체 하는 것. 그로 인해 중요한 것을 미뤄두고 있다는 압박감이 부풀어 오르는 형상을 지켜보는 것. 그것은 서른을 목전에 두고 별다른 대책 없이 워킹홀리데이를 다녀 온 나 역시 경험한 일이었던 것이다.
--- 「임시변통 칵테일」 중에서

집에는 보드카를 희석시킬 주스는커녕 얼음 한조각도 없었다. 그러자 B가 왕년에 바텐더로 일한 경험이 있다며 (옳거니!) 그때 고안했다는 더 없이 간단한 칵테일 제조에 돌입했다.
B는 보드카 위에 설탕을 넣고 후추를 뿌렸다. 그리고 머들러를 재빨리 휘저어서 설탕을 녹였다. 강력한 알코올의 기운을 단맛과 후추 향으로 눈가림한, 헛웃음이 나올 만큼 임시변통 적인 칵테일이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마실 만했다. 이미 취기가 오른 뒤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 「임시변통 칵테일」 중에서

역사의 시시한 조각에서도 살뜰하게 교훈을 발견해내는 그들의 활약은 패키지여행 내내 이어졌다. 가이드는 때로 터프한 농담을 했지만 친절했다. 게다가 반드시 들러야만 하는 쇼핑센터로 말할 것 같으면 심드렁하게 들어갔다가 제법 마음에 드는 실크 스카프를 건지기도 했다.
그런즉 그럭저럭 따라다닐 만은 했지만 시간을 되돌린다 하더라도 그 여행에서 내가 제일 해보고 싶었던 것은 하나다. 나는 이국의 산책로를 마냥 걸어보고 싶었다. 슬슬 돌아다니고 싶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현대 한량이 추구해야 할 삶의 자세는 ‘마냥’과 ‘슬슬’ 사이에 걸쳐져 이리 기울었다 저리 기울었다 하는 게 아닐까 싶다.
--- 「마냥, 슬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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