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9년 07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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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373g | 135*190*20mm |
ISBN13 | 9788950981969 |
ISBN10 | 8950981963 |
출간일 | 2019년 07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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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373g | 135*190*20mm |
ISBN13 | 9788950981969 |
ISBN10 | 8950981963 |
집사람, 남성 아내, 시시한 일상을 살아내는 시민… 삶을 반짝이게 하는 남성 페미니스트 연대기 과제와 책임을 떠맡아 열렬히 응답하는 두 번째 페미니스트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간 남성 페미니스트의 고백록 『두 번째 페미니스트』는 저자 서한영교가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현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물으며, 삶의 작은 단위부터 구체적으로 가꾸고 돌보는 일에 대해 풀어간 책이다. 시적 언어에 경도된 문학지망생이 눈이 멀어가는 애인의 곁에 머무르기로 하고, 100일간 아기를 품에서 키우며 돌봄을 도맡는 ‘남성 아내’로 변화하기까지, 그는 자기 안의 여성성을 발견하고 키워나갔다. 너무나 확실했던 남성의 세계가 점점 불확실해져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들의 언어에 자주 불끈거리게 되면서, 편하게 살았던 세계를 뒤집고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간 저자의 고백이 이 책에서 펼쳐진다. 동시에 여성과 두루두루 우정을 나누며 언어의 미세한 오류들을 점검하기 시작한 남성 페미니스트의 성장기가 담겨 있고, 수유하는 애인의 곁에서 애간장을 태우며 한철을 보낸 사랑의 기록, 속싸개 위에 아이를 눕히고 최상의 섬세함을 다해 자장가를 불러준 육아 일기가 시인의 섬세한 언어로 그려져 있다. 저자는 그의 어머니, 이모, 친구와 동료 중 절반인 여성들과 훌륭하게 살아가기 위해, 남성적 동일성을 위해 억압해야만 했던 자신의 여성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나는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오류를 끌어안은 채, 정체성으로서의 격렬한 페미니스트라기보다 과제와 책임을 떠맡아 열렬히 응답하는 ‘두 번째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애썼다. 첫 번째 사람을 지키고 선 두 번째 사람으로서. |
프롤로그 우와, 의 세계 008 1부 감히, 우리라고 말하기 위해 나의 페미니스트 연대기 013 여인, 미인, 연인 그리고 애인 026 애인은 시각장/애인이에요 037 감히, 우리라고 말하기 위해 045 불안의 떨림에서 설렘의 떨림으로 049 2부 집사람 처음 심장 055 너로 인해 우리는 마법에 걸렸단다 057 새로운 눈으로 여행하기 059 저는 잔액 부족 하우스의 집사람입니다 065 지구에서 첫 번째 밤을 보내게 될 너를 위해 068 술과 담배를 끊었다 070 어떤 파괴 - 독박육아 072 곁에 있어 076 만삭 079 해달 081 초유 083 분홍의 시간 085 언어의 경계에서 덜컹거리며 말하기 091 처음 해본 연습 094 야만의 육아법 096 육아휴직 102 남편 104 3부 아버지 이응 107 수유 109 울음과 노래가 있어 112 새끼들, 생명의 질감 114 새벽 쪽잠 116 쮸쮸 연결고리 119 어머니와 어머니들 120 100일, 호랑이와 곰의 시간에 관하여 123 엄마라는 어마어마한 126 가사노동 분할의 어려움 128 토요일 밤의 집사람 회의 134 짐승처럼 사랑하기 138 이렇게 아버지가 되어간다 140 아버지는 어땠을까? 143 위대한 유산 148 남편, 그 인간, 이 새끼 151 어떤 싸움의 기록 153 엄마에게 젖이 있다면 아빠에게는 품이 있다 156 언어의 기원전, 옹알이 159 ‘돌보다’의 지층 161 아이가 퀴어라면 164 은근히 미지근하고 조심스러운 연민의 시선들 167 동반자 1인 170 문턱에 걸린 유아차와 휠체어 173 어린이집 신청 176 우리 서로 처음 생일 179 4부 순간일지 영원일지 181 5부 남성 아내 나의 자주색 원피스 215 이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 218 애인은 헐벗고 다닌다 220 공공 수유 223 아빠는 페미니스트 226 살림과 비트 228 농부님이 길러주셨지요 231 담요 농사 234 걸레질하는 무릎 236 삶을 반짝이게 하는 일 238 돈 벌어야지에서 돌봐야지로 240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아빠 242 나 차상위계층 247 또 이사 249 빨간모자 해병대 할아버지 253 맘충이라고 했다 256 지옥에서 온 날씨 260 한계를 다루는 기예, 육아 요가 264 슬로 슬로 ㅋㅋ 268 나에게 들려주려 했지 271 마이너스 엄마들 274 낱말 연습 277 완모파티 280 6부 바다를 건너려는 나비들처럼 두 번째 페미니스트 285 자본주의 비무장지대 293 시민과 시인으로서의 시시한 일상 300 감은 눈 위로 내리는 사랑을 위하여 305 에필로그 감히, 의 세계 307 추천사 ‘자본주의 비무장지대’를 만들고 있는 시인의 기도 309 |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어 읽게 된 책이다.
며칠 전에 친한 언니네 집에 놀러갔다가, 그 언니가 요즘 즐겨 본다고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줬다.
미니멀 유목민 박작가라는 유튜버. 내가 신문기사에서 보고 책으로도 읽었던 작가였다. 그런데, 그 언니가 재밌다고 보여준 동영상에는 게스트로 박작가의 매형이 나왔는데, 나는 오히려 매형에 눈이 꽂혔다. 왠지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었던 듯. 그 때 내가 느꼈던 매력이란, 우선 자유로워 보였고, 얼굴에 천진난만한 즐거움이 가득했으며, 그러면서도 멋졌다. 말하는 것에서 뭔가 편견이나 아집 같은 게 없어보였다. 아무튼, 이 사람이 눈에 확 들어와서, 작가라길래 이름을 알아두었다가 검색해 보았더니, 이 책이 나왔다. 그래서 얼른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게 되었다. 역시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박작가의 책에서 자기 누나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었는데, 그 분의 남편인 것. 아무튼 책 내용은 스포일 수 있으니(리뷰를 쓰면서 스포를 걱정하다니... 나도 웃김. ㅋㅋ) 일단 패스하고,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일단 나는 다시 삶에 대한 의욕을 어느정도 느끼게 되었다.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시 올 한 해 해야할 일들 때문에 우울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위로가 된 것 같다. 삶을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덮자마자 운동하러 나갔다. ㅎㅎ
그리고, 인문학 책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샘솟듯 생겨났다. 이 분이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그런지 여러 작가들과 책을 인용하는데, 그 가운데 읽고 싶은 책들이 생겼고, 그것들을 찾아보다가 다른 책들도 줄줄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독서에 대한 의욕을 불러 일으켰으니 좋은 책이라 하겠다.
지구에 돈만 벌러 오지 않았다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겠다
시를 살아내겠다.
는 작가의 말이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역시 삶은 다르게 살기로 한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법이다.
또 한 가지, 집에서 육아를 하면서 우울증이 왔는데 너무 힘들어 자기를 도와주는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더니, '휴식하라'고 했다고...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그를 위해 산책하기, 여행하기, 땀흘리기를 처방하셨다. 그런데, 다른 건 당시 다 불가능해서 달리기를 했단다. 땀 흘리기 위해. 시간만 나면 나가서 달리기를 했다고... 이 부분을 읽는데 눈물이 핑~~. ㅠ
사랑은... 존재론적 결단이다. (42)
다른 세상은 없다... 다른 삶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자크 메스린
저자의 네 글자 이름을 보고 여성 페미니스트라고 단정지었다. 내 머릿속에 이름 네 글자는 여성(의 평등 의식)으로 박혀 있고 앎이 그 수준이었는데 서한영교님을 통해 수정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차례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편견과 잘못된 지식을 내려놓아야 했다. 또한 실천하지 않는 앎의 무력함과 쓸모없음을 다시금 되새겼다.
예상과 다른 그의 성별에 솔직히 읽는 내내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고무줄의 관성대로 나는 원래 내 생각 패턴과 질서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여자들이 감수하는 출산과 육아 노동을 넘보며 마치 훔치는 것처럼 경계했다. 아무리 엄마의 자리에 있으려 해도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읽어 나갔다. 그의 말이 많아질수록 ‘애인’의 입장과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의 말에 가려진 진짜 말이 따로 있을 거라는 미심쩍음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과 상관없이 그의 글은 충분히 훌륭했다. 시인을 꿈꾼다는 그가 어쩐지 동시나 동화로 다시 말 걸어올 것 같다. 어느 순간 차분하고 단아한 어투와 문체와 “글썽거림”이 어린이 정서를 담는데 어울리겠다는 확신이 든다. 사실 나는 이전에 없던 말로 현상을 정확히 구체적으로 포획하는 낱말을 사랑한다. 관성적으로 써온 익숙한 말을 뒤집어보고 새롭게 단장하는 손길을 애정한다. 요새 나는 갓 지은 듯한 모국어의 ‘말맛’과 생생한 어감에 사로잡혀있다. 그런 나의 욕구를 세심히 충족시키는 책이다.
늦은 밤 그날(이해치 초과)을 소화 시키지 못해 체증에 시달릴 때면 티브이를 기웃거린다. 나에게 벗어나 다른 이의 생각과 생활방식을 만났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짧은 여정이 되어준다. 어제는 남성 파트너와 춤을 추는데 마음과 몸이 열리지 않는 사연이 소개되었다. 전문가는 여성이 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어 그런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장면을 보는데 나는 어떤지 (돌)보게 되었다. ‘너는 낯선 복장으로 모르는 남자와 접촉이 있는 춤을 기꺼이 출 수 있니?’ 아니 그렇게 춤춰볼 생각이나 해봤니? 지극히 이차원적인 삶.
삶은 거듭 나아짐, 즉 일상의 감각을 되살리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의 몫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그런 생각 중에 모험하고 결심을 실천하려 애쓰는 자를 목격한 것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애인과 살며 자식을 원하는 애인의 뜻대로 살아보는, 기꺼이 반응하는 사람은 문장력을 넘어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의 에너지와 흔들리며 다시 자신을 추스르는 성찰이 좋았다. 자꾸 이것저것 재며 물러서고 포기하고 변명하며 생생한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나에게 없는 점이 그에게 가득했다.
기존의 가장의 역할에서 벗어나 ‘집사람’으로서 다른 집사람(가족)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려는 최선의 몸짓이 진정한 (지)성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사회적 품’을 넓히며 성장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차곡차곡 쌓인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고 변호하며 자기 스타일을 확보해나가는 모습이 일정 부분, 성인 같다. 한쪽으로 기운 한국사회의 편중됨과 위험요소들을 바로잡으려는 응시와 사유와 실천이 무모하도록 아름답다.
왜 그렇게 그가 무모하고 아름답기를 원하는지 리뷰를 쓰는 지금 알겠다. 그렇다면 그는 그가 그리는 세계를 응축하며 자신의 꿈을 실현(‘실화’화)하고 있다는 소리일 게다. 갑자기 그가 너무 부럽다. 자신의 이상과 삶과 그 간격을 남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받는다는 게 쉽지 않다. 그와 나는 언어로만 만났기에 그 과정이 더 투명했어야 할 텐데 그는 진정 듣고 싶은 인정을 받은 셈이다. 대단히 잘 살고live 있으니 힘내요~ 그리고 기회 되면 오늘날의 당신을 있게 한 애인의 목소리도 함께 들려주세요.
# 남성 페미니스트로서의 운명이란 끊임없이 실패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평생 거듭” 해야만 하는 실패 속에 있어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 (24)
# 아가, 너에게 들려주기 위해 요즘 나는 세상의 반짝이는 것들을 발견하려고 몸을 쫑긋 세우며 지내고 있단다. (58)
# 언어를 돌보기 위해 혀를 멈추면서, 내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오늘도 탐색해본다. (92)
# 삶에 리듬이 실리면 슬픔도 견딜 만해지고, 분노도 견딜만해진다. (113)
# 인식은 시선을 만든다. 시선은 태도를 만든다. 태도는 가치를 만든다. (168)
# 내 삶의 국면에 따라 세계의 문제를 사유하는 강도와 온도는 달라진다. (174)
# 서로서로 잘 지내자는 말 같다. 부부. (207)
# 자기성찰 모드로 진입하여 잡초 솎듯 내 안에서 자란 못난 남자(사람) 하나를 뽑아낸다. 얼마쯤 뽑아내야 할까. 아마 죽기 전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길고 긴 여정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222)
# 육아를 하면서 나는 나를 더 이상 고집하지 않는다. 대신 이전의 나를 찢고 나올 나를 기다린다. 나를 강제하는 파시즘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본연의 나라는 거짓말에서 벗어나 나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타자인 아이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나는, 집사람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에게 오고 있다. (270)
[오탈자 205쪽] 체셔 토끼 - 체셔 고양이
표지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잘 봐준다 하더라도 하트를 느낌표나 물음표처럼 묘하게 비틀어놓은 듯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또다른 집사람이 잘 구분할 수 있도록 강렬한 대비를 의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한 해석일지라도 틀리지 않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는 '애인'과 같이 '살기' 시작했고 아이를 낳았다. 둘 모두 집사람으로서 살림을 했고 생명을 길렀다. 그 시간들을 글로 적었지만 저자는 스스로를 '두 번째 페미니스트'라 말한다. 여성들이 겪는 일상적 차별과 폭력을 온전히 겪을 수 없는 남성이라서다.
저자는 문단에서의 한 사건 이후 남성으로 살아왔던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 이상한 세계에서 너무도 편히 지냈다는 사실이 불편했고, 여성들은 그 세계 속에서 계속 상해가고 있는데 남성인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 이상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자신의 미세한 언어들을 점검했으며, 여성들과 두루두루 우정을 나누며 자신의 세계를 몇 번씩 반복해 뒤집어나갔다고 했다.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이자 직접적인 성차별의 수혜자의 위치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페미니즘 공부를 통해 '나에게 부과된 남성, 학생, 노동자 같은 사회적 이름에 대한 이해가 곧 나에 대한 이해와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하게 한다. 개인의 정체성은 그를 둘러싼 사회적 배경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 여성 혐오가 기본으로 깔린 세상에서 서로 평등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발버둥쳐야 한다는 것. 공부를 했다고 하면서도 남성으로서 내 여자를 지켜야(=단속해야) 한다는 몹쓸 가부장적 무의식이 있었다고 하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싶다.
그는 10년 간 만나고 헤어졌던 '미인'과 '연인'의 관계를 맺었고 '애인'으로 정착시켰다. '위대한 사랑은 그 자신이 사랑할 자까지 창조한다'는 니체의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할 만큼 연인을 통해서 구원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스스로를 극복하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면서 '혼인'을 했다. 다시는 입지 않을 웨딩드레스 대신 관 속에 누울 때도 입을 수 있는 '기억의 옷'을 입은 채로, 감정의 질서를 넘어선 존재의 결단이었다. 남성-공적 영역/여성-사적 영역으로 성 역할을 분배하는 공간 배치를 거부하고 서로를 '집사람'이라 불렀다. 집을 근거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집을 길들일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합리적으로 예측된 확률보다 불확실한 우연을 맞이하는 사랑의 기적'은 아이를 품고 세상에 내보내는 일로 이어졌다. 말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자장가를 두고 '삶에 숨어 있는 영원한 BGM'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런데 부모 역할을 준비하면서 사회의 이상한 기준과 비난을 새로이 맞닥뜨리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에 대한 합리적 관리(행복, 건강, 경쟁력)를 하는 것이 마땅히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정확하게 잘 수행하려는 사람들에게 헬리콥터맘, 몬스터 패런츠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육아와 가사노동은 엄마들에게 모조리 맡겨놓고 그런 엄마들에게 맘충이라고 하는 것을 가증스럽게 느꼈다. 저자는 말한다. '부모 노릇을 점점 어렵게 만들어 과도하게 안전/질병/실패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키는 사회 자체에 오히려 헬리콥터 사회, 몬스터 사회라고 이름 붙여야 하지 않나. 그리고 이런 몹쓸 이름들은 왜 꼭 여성들에게만 붙나(p.62).'
가사노동과 정서노동을 분담한 만큼 출산도 함께 준비했다. 그러나 육아 경험담을 검색하더라도 자기 키워드 밖의 정보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어서 부분적이고 파편적이었다고 했다.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각자의 바다만 있었다(p.97).' 전문과와 의사의 소견에 모든 결정을 맡기지 않고 차라리 주변의 조언과 오래된 지혜에 귀를 기울였다. 스승과 동료와 지지 집단을 만들었다. '이렇게 곁이 두꺼울수록 크게 넘어지지 않고 지나치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곁의 두께를 충분히 확보하면 무엇을 하건 안정감이 든다(p.77-78).' 적어도 100일은 충분히 애인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회사는 그의 요청에 퇴사라는 답변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남성 주부의 본격적인 돌봄.
'수술실에 들어간 당신을 기다리며 벼락 모양으로 혼자 병실에 앉아 남편이라는 이름으로는 죄짓지 않겠다고 다짐'한 저자는 수술을 마친 애인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려다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아이를 마주하면서 생각으로는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질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자주 깨닫게 되었고, 그 돌봄의 세계감을 통해 함부로 취급되고 있는 생물들의 비명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했다. 사사로운 문제가 발생하면서 서로에 대해 여유가 없어졌음을 감지하기도 했고, '그 여유라는 것은 상대방을 헤아리고 있을 때에나 나오는 것이어서 이는 곧 서로를 보살피고 있지 못하다는 말과도 같았다'는 것을 직면하기도 했다.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집사람 회의를 열게 된 계기였다.
구체적인 돌봄을 몸으로 살아내면서 1만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인류의 모국어 '밥 먹자'를 생각했고, '어머니의 수고만으로 차려지는 집밥을 이제 그리워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돌봄은 돌아보는 것이고, 보는 것이고, 돌아버리는 것임을 경험했다. '발바닥의 세계를 혓바닥으로 탐구'하는 아기와 함께 4대문(현관문, 창문, 베란다 문, 냉장고 문) 안에 갇혀서 퇴화되는 기분을 느꼈고, 아이를 그리워하고 싶어했다. 아이와 전혀 분리되지 못했으므로 '아이를 그리워하고 싶다'고 쓴 부분에서는 지난 시간이 떠올라 울컥했다. 육아가 삶의 한계를 다루는 기예임을 요가를 하면서 깨달았고, 육아는 나를 위하지 않고 나의 이름을 지우며 나로 수렴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리고 저자는 고백한다. '시를 쓰는 대신 시를 살고 있음을 처음으로 알았다.'
이 모든 과정을 아름답게만 포장하고 싶지 않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살아내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것이지, 한 사람의 희생이 담보로 되는 돌봄은 거부하고 싶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같이 성장하고 싶어서다. 한편 최근의 소설과 에세이에서 날카로워진 말과 행동을 '마음이 뾰족해졌다'고 표현하는 경우를 많이 봤고 식상하게 느껴졌는데, 이 책에서 모서리에 대해 공감되는 문장을 만나 반가웠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애인은 나를 격렬히 앓고 있는 중이었다. 왜 나는 항상 누군가 찔려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때가 되어서야 나를 알아차리는 걸까. 내 모서리는 왜 항상 뾰족하기만 한 것인지. 달라져야 했다.' 투명하게 자기를 되돌아보는 태도, 자기를 박박 긁어낸 시간들 때문에 가능한 문장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글을 써준 두 번째 페미니스트에게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