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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좀 쉬며 살아볼까 합니다
숨 좀 쉬며 살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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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좀 쉬며 살아볼까 합니다

: 숨 막히게 살다 뇌가 막힌 마흔한 살 작가의 인생 경로 수정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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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6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330g | 148*218*20mm
ISBN13 9791156757504
ISBN10 1156757509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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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에는 노트북의 음성입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차피 빼앗겨버릴 보물이라면 처음부터 손에 넣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음성 입력 프로그램은 이 짧은 문장을 인식하지 못했다. (…) 내가 걱정했던 최악의 사태가 일어난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건 팔꿈치나 목의 신경장애가 아니라 뇌의 장애다. --- p.23

어쨌든 현장 취재를 통해 따끈따끈한 기사를 써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현장에서는 이미 은퇴했으면서 마치 지금도 현장 취재를 하는 듯한 표정으로 발언하는‘늙은 참견꾼’이나 ‘강연회 저널리스트’로 먹고사는 수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초조해진 나는 자신을 재촉하듯 수면 시간을 줄이고 취재 횟수를 늘려갔다. --- p.25

상당히 심각한 상태임을 인식은 했지만 먼저 ‘이 상태가 평생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불안했다기보다 단순히 멍한 상태에서 ‘평생 이런 식이라면 내 인생은 끝이야……’라는 체념에 가까운 느낌이 밀려왔다. --- p.29

나의 뇌는 왼쪽 세계를 ‘보고 있어도 무시’하거나 왼쪽 방향으로 주의력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 것이다. 단순히 열쇠를 걸지 않았을 뿐인 용변을 보던 노신사에게는 큰 실례를 저질렀다. --- p.35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에 뇌경색이라는 질병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제 그들의 인식, 감각을 공유할 수 있고 글쓰기 능력도 잃지 않았으니 최고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사회에서 ‘성가신 존재’ 취급을 받으면서도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으니 그들을 대신해 부자유스러운 감각과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사명이다! --- p.38

인간은 정말 전기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매우 정밀한 기계 같다. 손을 펼치려 할 때 오줌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은 선이 끊어지거나 합선된 부분이 있는 자동차 장비에 실시하는 통전 테스트와 비슷하다. 헤드라이트의 배선에 통전을 시키려 하는데 브레이크 램프가 깜박거리는 식이다. --- p.51

한데 동전을 몇 개 세다 보면 지금 어디까지 세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런 나를 점원이 초조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기색을 느끼면 마음은 더욱 초조해지면서 공황 상태에 빠져 동전지갑을 점원에게 집어던지고 “당신이 계산해!”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 p.73

이처럼 취재기자에게는 처음 대면하는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좋을지를 순간적으로 간파하고 적절한 거리, 각도, 말의 속도와 억양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는 기술이 필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더욱 초조해졌다. 뭔가 이질감을 주는 소통 방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취재기자 일은 이제 끝장이다. --- p.79

한여름 이른 아침, 출근을 하던 직원들은 이런 수확물들을 담장 위에 늘어놓고 있는 나를 정신병자 보듯 묘한 눈길로 흘깃거리며 지나간다. 후후후, 너희 ‘어른들’의 건전하고 정상적인 뇌로는 즐거움과 호기심이 넘치는 이 세상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어. --- p.85~86

입원 직후에 남아 있던 ‘말을 할 수 없다’, ‘발음이 안된다’는 증상은 뇌경색으로 입과 혀, 목구멍의 근육에 왼손과 비슷한 마비가 발생해서 생겼다. 입과 목구멍 전체에 치과에서 사용하는 마취 주사를 맞은 것 같은 상태다. 이를 통틀어 ‘구음장애’라고 한다. --- p.94

모든 감정이 강렬해져 있었다. 병동을 나와 바깥 공기를 들이마실 때, 드립 커피를 마실 때, 반년 전에 태어난 친구 딸의 풍성한 머리카락에 뺨을 비빌 때, 간지럽다고 칭얼거리는 귀여운 목소리를 들을 때, 아무튼 어떤 경우에도 목 뒤의 머리카락이 곤두서면서 팔에 소름이 돋는 듯 한 감각이 느껴졌다. --- p.104

이날부터 나의 내면에 숨어 있던,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강렬한 감정은 떨리는 목소리와 폭포수 같은 눈물로 표출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넘쳐난 감정은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가 아니었다. 폭력적일 정도로 강렬한, 감사와 기쁨과 사랑의 감정이었다. --- p.117

음식점처럼 딱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제공해달라고요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규칙은 내가 정해 채찍질을 해왔을 뿐이다. 정말 한심하다. 눈물이 흐른다. --- p.135

모든 것이 이런 느낌이었다. 나는 ‘절약’을 이유로 쓸데없이 일을 늘려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는 점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선의를 가장한 강요’가 나의 가장 큰 결점일 것이다. ‘아내를 위해, ○○를 위해’ 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몰아넣은 결과 뇌경색까지 발병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상대방이 원해서 해준 게 아니라 다 ‘내 취향 혹은 독선’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 p.155

병에 걸리기 전에 나는 이런 식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 한두 시간 정도 만족스러울 때까지 마당을 청소한다. 더운 날씨에 진땀이 흐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속 시원히 정리가 되었다는 판단이 들면 집 안으로 들어가 손을 씻는다. 그때 내친김에 주방 설거지를 하는 것이 ‘휴식’이다. 하지만 아내는 그걸 휴식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휴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조용히 쉬는 것이라는 말이다. --- p.163

나는 흰 근육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이는 ‘근육량 유지 겸 스트레스 해소용’ 운동일 뿐 ‘지속적인 운동’은 아니었다. 선배가 한 말은 가끔씩 강도 높게 몸을 움직이는 운동선수출신의 중년이야말로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때문에 갑자기 세상을 뜰 위험성이 높다는 뜻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독자 여러분 중에도 공감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 p.172

동시에 강렬한 죄책감도 밀려온다. 지금 누리는 평화는 많은 행운이 겹친 결과다. 나만큼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행복이 미안하게 느껴진다. 이런 감정은 뇌경색을 앓고 나서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정말 혜택 받은 사람이고 운이 좋은 사람이다. 만약 뇌경색이 위험한 부위에 발생했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아니면 지금보다 더 무거운 장애가 남았을 것이다. --- p.180

‘다양한 거리에 응원단’을 만들려면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거나 다양한 상황에서 조금씩이라도 자신의 단점이나 결점을 드러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궁지에 몰린 사람이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대상, 다시 말해 안전기지’는 굳이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만들어줄 수 있다. 당사자가 ‘이 사람이라면 의지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응원단을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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