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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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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FoP 시리즈이동
듀나 | 알마 | 2019년 07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5 리뷰 10건 | 판매지수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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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7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342g | 114*189*30mm
ISBN13 9791159922602
ISBN10 115992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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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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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가 땅 속에 묻힌 지 보름쯤 지난 날 밤이었습니다. 한참 잘 자고 있는데 멀리서 대문을 쿵쿵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와 함께 저음으로 웅웅 울리는 남자 목소리가 났어요.
자정이 한참 지난 한밤중에 누가 대문을 두드리며 “이리 오너라!”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짜증이 난 저는 이불에서 기어나왔습니다. 별당까지 들릴 정도로 요란하게 고함을 지르고 있는데 바깥 행랑채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데 한밤중에 남의 집 앞에서 저 난리냔 말입니다.
하품을 하며 안채 쪽으로 걸어 나왔는데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열린 중문 너머로 집안 여자들과 종과 머슴 들이 몰려나와 있는 게 보였는데 아무도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았어요. 다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멈칫거리며 수군대고 있었습니다.
밤바람에 정신이 맑아지자 저 역시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_「구부전」
--- p.25~26

물에 젖은 흐릿한 욕실 거울을 바라보며 아무런 생각 없이 칫솔을 꺼내던 윤정은 갑자기 깜짝 놀라 이를 악물었다.
그동안 흐릿하게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모든 것들이 그 순간 한꺼번에 정리되고 명확해졌다.
나는 사랑에 빠졌어, 윤정은 생각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내 것이 아니야. _「추억충」
--- p.108~109

신 교수는 뒤늦게 신성과학자의 얼굴에 생긴 반짝이는 긴 상처를 눈치챘다. 상처는 왼쪽 눈 밑에서 시작해 뺨을 가로질러 목 뒤에서 끝났다. 과학자는 신 교수의 시선을 눈치채고 엄지로 상처를 쓱 문질렀다.
“영생파 광신도 짓이에요. 두 달 되었어요. 많이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제자 한 명은 다리를 하나 잃을 뻔 했어요. 다행히도 요새는 의술이 많이 좋아졌지요. 그 미치광이는 알렉산드리아 경찰이 사살했어요.”
“죽고 나서 영혼이 천국으로 날아가던가요?”
“살아있을 때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영생파 신도들만 있는 천국이라니, 끔찍하지 않습니까? 왜들 그렇게 자신의 불멸성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까요?”
영생파는 동방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이교 집단이었다. 그들은 하늘과 땅속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모든 사람들은 죽은 뒤에 심판을 받고 둘 중 하나로 들어가 영원히 격리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당연히 모든 과학자들을 싫어했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천문학자들도 싫겠지만 영혼의 영원성을 부정하는 신성과학자들은 더 싫었다. 그 신성과학자가 탤런트 보유자라면 더욱 그랬다. _「왕의 넋」
--- p.135~136

다섯 시간 뒤, 시립경기장 지하실에 이동 우리를 설치한 보안회사 직원들은 라두들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컨테이너에서 나와 이동 우리로 들어
간 라두들은 목이 짧고 머리가 조금 더 둥글고 컸으며 날개가 없을 뿐 그림책에 나오는 용과 같았다. 그들은 우리 안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을 가둔 창살의 냄새를 맡았다. 둔하게 번들거리는 그들의 붉은 눈은 안에 발광체를 박은 유리알처럼 무표정했다. 오히려 그들 등에 심은 전자문신 쪽이 더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회사 직원이 컴퓨터로 지시를 내리자 라두들의 넓적한 등짝에는 맥주회사 광고가 번뜩거렸다.
우리 문 하나가 열리고 가말록이 기어 나와 몸을 일으키자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가말록은 컸다. 아무리 작게 봐도 8미터는 넘을 것 같았다. _「가말록의 탈출」
--- p.156~157

오늘 딸을 돌려보냈다. 해초로 만든 옷을 입고 보트 위에 누워 있는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예뻐 보였다. 해초밭에 도착하자 우리는 항아리에 담아온 물고기의 진액을 아이의 몸에 뿌리고 서서히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스물을 세기도 전에 진액 냄새를 맡고 온 작은 물고기들이 아이의 옷과 살을 물어뜯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얼굴이 물고기 떼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버지로서 나는 딸의 끝을 봐야했다.
집에 돌아와 내가 목탄으로 그린 아이의 초상화를 꺼냈다. 아내는 말렸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을 했다. 화로 속에서 그림이 불타는 동안 아내는 울면서 내 등을 후려쳤다. 나는 아내를 애써 무시하며 불타고 남은 재를 그러모았다. 나는 밖으로 나가 재를 바람에 날렸다. 마지막 한 줌의 재가 허공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아내는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상실감을 이해한다. 누군들 자기 아이의 장례식을 치르고 싶겠는가. 누군들 그 참혹한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겠는가. 누군들 초상화와 이름을 붙들고 그 아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환상을 만들고 유지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세계는 같지 않다. 죽은 자들을 받아들이면 우린 그 대가로 우리의 삶을 바쳐야 한다. _「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 p.181~182

약간의 운과 몇억 년의 시간이 더해져 겨자씨에 자생 문명이 발생한다면, 그들은 이 광경을 어떻게 이해할까? 나는 겨자씨 저편에서 태어난 지적 생명체들이 적도 대륙의 해안을 타고 대장정을 떠나는 모습을 상상한다. 서쪽으로 가는 동안 그들은 지평선 너머의 거대한 무언가가 구름 뒤에 가려져 있는 걸 볼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언덕이나 산일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산처럼 보이던 것은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고 점점 거대해진다. 한참을 걸은 뒤에야 그것이 그들의 태양을 삼킬 만큼 거대한 천체라는 걸 알아차리겠지. 티타니아가 하늘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용감한 몇 명은 겨자씨에서 가장 높은 산인 헬레나의 꼭대기로 올라가볼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지금까지 구름 속에 가려져 있던 티타니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늘에 거꾸로 박힌 둥그렇고 거대한 세계. 그들은 공포에 질릴까. 아니면 갑작스럽게 닥친 경외감 때문에 겁먹는 것조차 잊어버릴까. _「겨자씨」
--- p.227~228

“당신이 온 세계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줘, 마법사.”
길잡이가 말했다.
“그 재미없는 이야기를 왜?”
마법사가 웅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니까. 어떻게 세상이 공 모양일 수가 있어?”
“중력 때문이야.”
“여기도 중력이 있잖아. 그런데 왜 세상이 둥글지 않아?
“여긴 원래 그런 곳이니까.”
“당신네 세계에선 커다란 불덩어리 주변을 둥근 돌들이 돈다고? 그 돌들 위에서 사람들이 산다고?”
“응.”
“어디에 가면 그 돌덩어리를 볼 수 있어?”
“못 봐.”
“당신은 거기서 여기로 왔잖아. 왜 나는 당신네 세계로 못 가는 거야?”
“정확하게 말하면 난 그 세계에서 온 게 아니야. 그 세계에서 여기로 온 꿈을 꾸는 거지.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어.” _「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에서」
--- p.279~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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