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07월 26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52쪽 | 274g | 135*193*15mm |
ISBN13 | 9788954657129 |
ISBN10 | 8954657125 |
발행일 | 2019년 07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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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52쪽 | 274g | 135*193*15mm |
ISBN13 | 9788954657129 |
ISBN10 | 8954657125 |
MD 한마디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삶과 죽음을 그린 걸작]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 욘 포세가 '탄생의 아침과 죽음의 저녁'을 독특한 문체로 그려낸 소설로, 삶과 죽음이 마침표도 없이 이어지듯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이 남아있는 이들에게 스며들어 서로의 삶이 쉼표로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오래도록 마음 깊은 곳에 남을 이야기. - 소설MD 김도훈
I 7 II 31 옮긴이의 말 137 |
『아침 그리고 저녁』은 '이세상' 소설이 아니다 별다른 문턱 없이 이어지는, 저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 추운 세상에서 언제나 혼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요한네스는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물론, 심지어 저세상을 향해 가는 길에도 소중한 사람들과 늘 함께 했다 언젠가 물에 빠졌을 때 무슨 이유인지 페테르가 함께였고,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향해 가는 길 역시 페테르가 함께 했다 평범한 어부가 태어나고 또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말한다 삶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묻고 말하는 시간의 연속이라고, 혼자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라고. 때론 고통스럽지만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시간들, 삶이란 따로 또 같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리라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pp. 131~133 중 발췌) 어부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바다가 더이상 그를 원하지 않는” 때까지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마침표도 없이 이어지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삶과 죽음이 마침표도 없이 이어지듯 한 사람의 삶은 물론 죽음까지도 남아있는 이들의 삶에 스며들어 서로의 삶이 쉼표로 이어져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혼자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삶과 죽음 이야기를 마주하고, 아침 그리고 저녁 늘 곁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과 머리맡에서 체온을 나누는 털뭉치를 생각한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했던가 삶과 죽음은 죽음을 생각하는 건 언제나 삶을 생각하는 일이다 오늘도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고, 서로가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지금 이 순간을 마음 깊이 간직해본다 |
얼마 전에 <욘 포세의 3부작>을 읽은 인연으로 고른 책입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노르웨이 출신 작가로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으며, 특히 소설과 희곡 부문에서 주목받는 작품을 여럿 발표해서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분이라고 합니다.
<욘 포세의 3부작>의 3부작을 읽었지만, 충분히 소화내지 못했으면서도 다시 그의 작품을 읽게 된 것은 어쩌면 무모한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의지할 데 없어진 젊은이가 비정한 세상에서 삶을 도모하다가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임신한 아내에게 쉴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지만 그가 택한 방법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가 싶습니다. 물론 작가는 구체적으로 이를 적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 역시 선문답처럼 느껴진 작품입니다. 1부와 2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책의 제목처럼 아침과 저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올라이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입니다. 1부에서는 올라이의 아내 마르타가 요한네스를 낳는 순간을 묘사하고, 2부에서는 요한네스가 죽음을 맞는 순간을 묘사합니다.
출생의 순간은 불과 21쪽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죽음의 순간은 무려 103쪽으로 묘사했습니다. 요한네스가 이 책의 주인공인 것은 분명하지만 탄생의 순간에는 요한네스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올라이와 마르타가 주인공 같아 보입니다. 아마도 세상에 나오는 순간 아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를 해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아기는 자신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과연 알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부에 들어서면, “요한네스는 잠에서 깨어나 뻣뻣하고 찌뿌듯한 몸으로 오래 거실 옆방의 커튼으로 가려놓은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라고 시작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요한네스가 올라이의 아들인지 아버지인지 조금 헷갈리게 됩니다. 하지만 아내 에르나와의 사이에서 일곱 아이를 가졌다는 대목에 이르면 올라이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날의 요한네스의 행적이 묘합니다. 여늬날처럼 아침을 먹고 마실을 나섭니다. 부두에서는 오랜 친구 페테르를 만나 배를 타고 고기를 낚으로 나갑니다.
하지만 요한네스는 주위가 평소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뭔가 여느 때와 사뭇 다르다, 그런 그를 번갯불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다, 페테르가 저렇게 멀쩡히 snsdiv에 서 있다니, 페테르는 죽지 않아? 페테르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게 아니었나, 그렇지 않나?(68쪽)”
이 구절에서 보면 마침표가 찍혀야 할 자리에 쉼표가 찍혀있습니다. 전작 <욘 포세의 3부작>에서 설명을 들은 것처럼 욘 포세는 “마침표가 없으면 모든 텍스트는 사람들이 내적으로 생각하고 고심하는 모습을 담아낸 길고 긴 덩어리의 형식(263쪽)”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열 번 남짓 마침표가 찍힌 대목들이 있습니다. 마침표가 찍힌 대목은 요한네스가 확신할 수 있는 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과 일상에 관한 대목들에서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요한네스는 집을 찾아오는 딸 싱네와 마주쳤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쑥 통해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죽음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시 만난 페테르로부터 자신이 이미 죽었음을 통보받습니다.
욘 포세는 노르웨이에서 흔히 만나는 피오르의 자연을 배경으로 바다와 바람, 비와 외딴집과 보트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오랜 사물들이 사람보다 오래 머물며, 그들의 죽음과 삶을 담아내고, 흔적을 간직한다는 점을 알려주려 했다고 옮긴이는 전합니다. 욘 포세의 작품에서는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라는 사실 아래, 사람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열망을 동시에 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도 하나의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났으면 뭔가 흔적이라도 남겨야 하지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고 책을 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사는 간단하다. 오로지 주인공의 시점에서 바라본 영상을 담을 뿐. 그러나 단 한 줄의 줄거리로 요약될 수도 있는 이 소설은 어째서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것인지.
죽음은 단연 무섭고 반갑지 않다. 삶을 치열하게 살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도 있지만 막상 떠올리면 막막하고 두렵다. 고통이 더해진 누군가의 죽음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하지만, 격랑 같은 삶을 살다가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죽음은 무척이나 마음 시린 것이 아닌가. 절대로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아닐 수 있을까.
그러나 <아침 그리고 저녁>은 이러한 ‘죽음’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아름답게 미화하거나 과장해서 그려내지 않았다. 그저 생과 사의 경계에 선 한 남자를 둘러싼 주변의 세계들을 촘촘하게 담아냈다. 오랜 시간 살아온 터전, 어우러지는 자연, 먼저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들, 기억, 남아있는 모든 존재들을. 책 속에서 흘러가는 주인공의 일상은 ‘모든 것이 다르면서 여느 때와 같고,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으면서 동시에 다르다(58쪽)’. 어제, 그리고 지난주, 비슷하게 흘러갔을 ‘오늘’을 흘러가듯 잠잠히 서술하고 있으나, 책의 후반부 어딘가 다른 그림을 발견하고 그것이 하나로 맞춰질 때 독자는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한다.
초록의 오랜 바닷속 물로 된 오래된 집 그곳에 오래된 모든 것 더이상 없고 빛나는 별들 멀리 물러났다 가까이 다가와 흐릿한데 모든 것에 별과 같은 광채, 땅속으로부터 드러난 부드럽고 또렷한 차가운 선 하나 그리고 저 고요 이 그곳에서 비롯되었으나 더이상 그 안에서 오지 않을 있어야 할 것 그러나 다시 오지 않고 사라지는 무엇 그 소멸은 늙음에 다름 아니나 결코 그와 같지 않으며 저 또렷한 외침 맑게 외침 별처럼 또렷하고 이름처럼 감각처럼 바람 이 숨 고요한 숨 그러고 나서 고요히 고요히 고요한 움직임들 (19쪽)
책 속에 묘사된 아이 탄생의 순간, 무의식으로 내뱉는 언어는 언뜻 보면 시 혹은 정리되지 않은 비문과도 같지만 각각의 어절을 발음할 때마다 야릇한 기분이 들게 된다. 고요하고 잠잠하지만 역동적으로 뛰고 있는 생의 모든 것들을 상상하게 한다. 소설 속에는 생과 사가 혼재되어 있다. 섞이고 섞이고, 마침내 분리되는 순간 ‘아침과 저녁’이라는 이 책의 제목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눈부신 아침, 그리고 저녁. 다가오는 죽음이 마치 날마다 이어지는 아침과 저녁의 순환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떠나는 거야, 자네와 내가(129쪽)”
최근의 숱한 안타까운 죽음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이 책을 만나며, 모두가 이렇듯 (갑자기 찾아온 죽음은 혼란스러울지라도) 평온하고 잔잔하게 사랑하는 존재들을 떠올리며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 24쪽,
다 잘될 거야, 그럼그럼, 마르타가 여전히 느리고 깊은 숨을 쉬며 말한다, 이 세상 바깥의 고요한 어딘가에서 오는 숨이라고, 올라이는 마르타가 누워 있는 침대 옆에서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 요한네스는 큰 소리로 울고 또 울며 세상 밖으로 울려퍼지는 제 목소리를 듣는다, 울음.소리는 아이가 새로이 속한, 세상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다뜻하고 검고 조금 붉고 조금 축축하고 온전한 것은 더이상 없다, 이제 저 자신의 움직임뿐이다, 모든 것을, 존재하는 모든 것을 메우려는 듯한, 무엇인가,
● 54쪽,
그래, 아침을 유달리 좋아한 적은 없지만, 아침에는 항상 너무 춥고 집안이 썰렁하니까, 어차피 춥고 흐린 날씨라 해도, 아침은 유독 흐리고 추운데다 하늘도 아침이면 제일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래 누가 뭐래도 하늘이 눈부시게 푸른 여름 아침도 물론 있었고, 이따금 하늘빛이 부드럽고 가벼운 새벽도 있었지만, 그래 물론 그렇지만, 그의 눈에는 항시 달리 보였다, 춥고 흐린 아침이라는 생각을 얼마나 자주 했던가, 밝고 부드럽든, 어둡든 심지어 칠흙 같든,
● 74쪽,
부잔교와 부표에 묶여 있는 그의 작은 노 젓는 배, 그리고 보트하우스들과 거리 위쪽의 집들을 바라보며 그는 그 모든 것에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낀다, 야생초들과 그가 아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그가 속한 자리다, 그의 것이다, 언덕, 보트하우스, 해변의 돌들, 그 전부가, 그런데 그것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치 소리처럼, 그렇다 그 안의 소리처럼 그의 일부로 그 안에 머물 것이었다, 요한네스는 손을 들어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본다, 모든 것이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것을, 하늘 저 뒤편에서, 사방에서, 돌 하나하나가, 보트 한 척 한 척이 그에게서 희미하게 멀어져가고 그는 이제 더이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오늘은 모든 것이 과거 어느 때와도 다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일까?
● 133쪽,
그리고 요한네스가 올려다보니, 페테르의 고깃배는 난바다를 향해 서쪽 항로로 나아가고 있다
나갈 수 있으려나, 파도가 높은데다 비바람까지 부는데? 요한네스가 말한다
갈 수 있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요즘 책장에서 한 두 권씩 정리를 시작하면서 읽지 않은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구매하기는 출간된 달에 맞춰 사놓고 지금에서야 보니 벌써 일 년이 넘었으니, 반성도 하게 되는 책이다.
이 책보다는 삼부작을 먼저 읽었다.
그 작품에서도 여전히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쉼표 없는 문장, 친절한 대사톤도 많지 않은 여백이 남겨주는 느낌들이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첫 장면인 아기의 탄생 부분에서 작가가 드러내 보고자 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 인간들의 하루하루 삶이 그저 보통의 하루 삶이 아니란 느낌이 절실히 와 닿는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고 자신 또한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어부로 살아가는 올라이는 산통 중인 아내의 소리를 들으며 곧 태어날 사내아이의 이름을 자신의 아버지 이름으로 결정한다.
그 뒤에 시간은 훌쩍 뛰어넘어 할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요한네스는 오늘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일어나지만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신체의 변화, 연금생활로 이어나가는 그의 삶은 단조롭다.
비싸다고 생각되는 담배를 끊을 수 없는 그의 유일한 즐거움인 담배와 커피를 피우면서 마시고 집을 나서는 그-
서로가 도와가며 머리를 잘라주며 생활하던 친구 페테르가 보이고, 그렇지만 이미 페테르나 아내 에르나는 이미 이 곳 사람들이 아니다.
같은 듯 다른듯한 모습과 말을 통해 요한네스는 그들과 대화나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정작 한순간에 그들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고는 있다지만 망각의 인간인지라 우리들은 죽음에 대한 그 어떤 심오한 생각을 매일 하며 살아가진 않는다.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이나 친구, 동료들의 어떤 상황들을 통해 비로소 죽음이란 것을 크게 느끼게 되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또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결코 비범하다거나 특출하지 않은 어부 요한네스 삶을 통해 저자는 탄생과 죽음이란 동반자의 길을 드러내 보인다.
살던 곳을 떠나 다시 정착한 곳에서 자식들을 낳아 손자들이 몇 명 인지도 모를 정도의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가는 요한네스 부부, 막내딸 싱네가 가까이 있어 더욱 친근함과 하루에 안부 인사를 하는 생활은 유일한 안식처다.
아내가 떠나고 자신이 홀로 남은 생활의 연속, 책은 요한네스란 평범한 인물의 탄생과 죽음이 실제 자신에게 오면서 죽음이란 것을 맞이하고, 그 자신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그의 가족이 그에 대한 절차를 마치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죽음에 대한 것을 실감하는, 존재의 무(無)에 대한 여운을 남긴다.
한 인간의 탄생과 죽음 뒤에 남겨진 것은 기억이란 것으로 저장이 되고 곧 이 기억은 나 자신을 둘러싼 가족들과 타인들에게 기억 속에 남겨진 존재로 남겨진다는 것, 그렇기에 평범하게 살다 간 요한네스란 인물의 삶은 곧 우리들의 모습이란 사실이 공백이란 여운이 주는 문장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작품이다.
찬란한 아침처럼 이 세상에서 태어난 존재, 살아가면서 파도와 잔잔한 밀물과 썰물의 삶을 이어나가면서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느끼는 그 누구인 모두에게 저녁에 서서히 지는 일몰의 모습은 또 하나의 우리를 반추하는 듯하게 느껴진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란 말이 문득 떠오르게 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