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회화적‘인 저자의 문장력이다. 상황을 설명할 때의 그 구체적이고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묘사가 매우 인상적이다. 내가 읽은 e-book기준으로 6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소설이고 문단도 길어서 언뜻 읽기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나, 정작 읽어가면서는 그 긴 문단이 묘사하는 상황이 쉽게 머리속에 그려질 정도로 친절하고 상세하기에 그리 길다고 느끼지 못하고 읽게 된다.
프랑스 문단의 문제작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읽고 나면 이 책은 한마디로 불륜의 종말을 다룬 소설이다. 좋게 말해도 금지된 사랑을 갈구하던 여인과 온가족의 비극적인 종말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결혼과 거의 동시에 자신이 꿈꾸던 낭만적인 생활이 아님을 깨달은 엠마 (보바리 부인), 이후 그녀는 이 남자, 저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고, 한번 선을 넘자 그 이후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을 넘나든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바보같을 정도로 아내를 사랑한다. 하지만 엠마는 그런 남편이 너무나 싫고, 길어진 불륜에 필연적으로 남편 몰래 가산을 탕진하고, 결국은 비극적 사랑의 결말이 아닌, 빚 독촉에 못이겨 음독 자살을 하고, 아내를 잃은 슬픔과 아내가 남긴 빚 청산에 허덕이던 남편도 곧 세상을 떠난다. 남겨진 딸은 할머니에게 보내졌다가 할머니 사후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신세가 된다.
엠마가 불륜일지언정 그 남자들중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래도 이해를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마치 ‘남편 아닌 누군가‘가 필요한 것 처럼 그 시점에 눈에 띄는 남자중 제일 나은 사람에게 그냥 집착하는 것으로 보였다. 빚에 쪼들려서 옛 정부를 찾아가서 결국은 빚갚는 것을 도와달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면서 다시 시작하자며 매달리는 장면은 그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문장력으로 이 소설의 가치를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용만 놓고 보면 하이틴로맨스보다 과연 나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600여 페이지의 소설에 50여 페이지의 작품 해설이 붙어있고, 해설자는 이 책을 불륜만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해설이 너무 길어서 다 읽지는 않았다.
[책속으로]
결혼하기 전까지 그녀는 사랑을 느낀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응당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엠마는 여러 가지 책들에서 볼 때는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였었던 희열이니 정열이니 도취니 하는 말들이 실제로 인생에서는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이 가져다주는 불안, 아니 어쩌면 이 사내의 존재에 의해서 야기되는 흥분은 지금까지 장밋빛 날개를 지닌 커다란 새처럼 찬란한 시의 천공을 날아다닌다고 여겨졌던 저 멋들어진 정열을 자기 자신도 마침내 갖게 되었다고 믿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영위하고 있는 이 고요한 생활이 지금까지 꿈꾸어 왔던 바로 그 행복이라고는 아무래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반대로 남자란 모름지기 모르는 것이 없고, 여러 가지 재주에 능하고 정열의 위력, 세련된 생활, 온갖 신비들로 인도해 주는 능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사내는 무엇 하나 가르쳐줄 것도 없고, 무엇 하나 아는 것도 없고 무엇 하나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너무나 흔들림 없는 이 평온과 이 태연한 둔감, 그녀 자신이 그에게 안겨주고 있는 행복 그 자체에 대하여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샤를르는 곁에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키스를 했다.
“왜 이래요, 주름이 가잖아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이렇게 잠시 그의 심장에 부싯돌을 문질러보았지만 불꽃이 일지 않는 것을 보자, 원래 자기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이면 이해를 하지 못하고 뻔한 통념의 모습을 갖추지 않은 것이면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그녀였기에 샤를르의 정열에는 이제 더 이상 남다른 것이라곤 없다고 간단히 믿어버렸다.
도회가 벌써 얼마나 먼 옛날 일처럼 생각되는 것인가! 대체 무엇이 그저께 아침과 오늘 저녁 사이를 이토록 멀리 떼어놓는 것일까? 보비에사르에 갔던 일은 마치 폭풍우가 밤 사이 산에다가 엄청난 균열을 만들어놓듯이 그녀의 생활 속에 구멍을 하나 뚫어놓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체념했다.
그녀는 파리의 지도를 샀다. 그리고 지도 위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으면서 수도(首都)의 이곳저곳을 두루 가보았다. 큰 거리를 따라 올라가보고 거리 모퉁이마다, 길과 길을 나타내는 선들의 사이, 집을 나타내는 흰색 네모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결국은 피로해져서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 몇 개의 가스등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극장 전면의 기둥들이 늘어선 회랑 앞에서 사륜 마차의 발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내려지는 것이 보였다.
그녀를 가까이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권태로운 전원, 우매한 소시민들, 평범한 생활 따위는 이 세계 속에서의 예외, 어쩌다가 그녀가 걸려든 특수한 우연에 불과한 반면, 저 너머에는 행복과 정열의 광대한 나라가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진 나머지 물질적 사치의 쾌락과 마음의 기쁨을 혼동하고, 습관에서 오는 우아함과 감정의 섬세함을 혼동하고 있었다. 인도산 식물의 경우가 그렇듯이 연애에도 그것을 위해 준비된 땅과 특수한 기온이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떤 돌발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난당한 선원처럼 그녀는 삶의 고독 위로 절망한 눈길을 던지면서 멀리 수평선의 안개 속에서 혹시 어떤 흰 돛단배가 나타나지 않는지 찾고 있었다. 그 우연이, 그녀에게로 불어오는 바람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어떤 기슭으로 그녀를 데리고 갈 것인지, 그것이 쪽배일지 삼층 갑판의 대형선일지, 고뇌를 싣고 있는지 아니면 뱃전까지 가득한 행복을 적재하고 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바로 그날 그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자리를 차고 벌떡 일어나기도 했고,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놀라곤 했다. 그러다가 해가 지면 언제나 더 한층 마음이 슬퍼져서 어서 내일이 오기를 바랐다.
어느 날, 출발에 대비하여 서랍 속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그녀는 무엇인가에 손가락을 찔렸다. 그것은 그녀의 결혼 꽃다발을 묶은 철사였다. 오렌지의 꽃봉오리는 먼지로 누렇게 바랬고, 은테를 두른 비단 리본은 가장자리가 풀어져 있었다. 엠마는 그것을 불 속에 집어던져 버렸다. 그것은 마른 짚보다 더 빨리 탔다. 이윽고 재 위에 빨간 덤불 같은 것이 되어 남더니 드디어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그것이 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분지로 된 조그만 열매들이 터지고 놋쇠 철사가 뒤틀리고 장식끈이 녹아버렸다. 종이 꽃잎은 오므라들어 난로판을 따라 검은 나비처럼 흔들리더니 마침내 굴뚝 속으로 날아가버렸다.
장소가 달라졌는데 일어나는 일들이 똑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살아온 몫이 좋지 않았으니까 이제 남은 몫은 아마 더 나은 것이 되리라.
엠마 쪽으로 말하면, 자기가 그를 사랑하는지 어떤지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다. 연애란 요란한 번개와 천둥과 더불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에서 인간이 사는 땅 위로 떨어져 인생을 뒤집어엎고 인간의 의지를 나뭇잎인 양 뿌리째 뽑아버리며 마음을 송두리째 심연 속으로 몰고가는 태풍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는 집 안의 테라스에서 물받이 홈통이 막히면 빗물이 호수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태연히 안심하고 있다가 문득 벽에 금이 간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래, 매력적이야! 정말 매력적이야!…… 저 사람 혹시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자신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어머, 누구긴? 나지!”
그것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삶과는 무관한 순수한 감정, 희귀한 것이기에 기꺼이 키워가는 그런 감정이었다. 그것을 소유해서 맛보는 즐거움보다 잃어버리는 일이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그런 감정이었다.
그러자 엠마에게는 자기 내부가 이토록 술렁거리고 있는데도 주위의 사물들이 이처럼 조용한 것이 어쩐지 놀랍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자기가 왜 그렇게까지 샤를르를 싫어하는 것일까, 그를 사랑하려고 애쓰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하고 자문해 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샤를르 쪽에서는 이처럼 되돌아오는 감정이 발붙일 이렇다 할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 결과, 그녀로서는 막연히 희생을 치를 의향만 가진 채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망설이고만 있었다.
이때부터 레옹의 이 같은 추억은 그녀의 권태의 중심처럼 되어버렸다. 그것은 러시아의 황야에서 나그네들이 눈 위에 버리고 간 모닥불보다도 더 강하게 권태 속에서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그녀는 거기로 달려가서 그 옆에 웅크리고 앉아 꺼져 가는 그 불을 조심스럽게 헤적여보았고 불 기운을 돋울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이었다. 가장 아득한 기억들이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잡을 수 있는 기회건, 실제로 겪은 일이건, 마음속으로 상상한 일이건, 산산이 흩어지는 관능의 욕망이건, 마른 나뭇가지처럼 바람에 꺾이는 행복의 계획이건, 자신의 보람 없는 정조건, 깨어져버린 희망이건, 집안의 잡일이건, 자신의 슬픔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긁어모으고 무엇이든 받아들여 이용하려고 들었다.
그러나 땔감이 저절로 떨어진 것일까, 아니면 땔감을 너무 많이 쌓아올린 탓일까, 불길은 그만 사그라져 버렸다.
이윽고 마음이 가라앉자 엠마는 자기가 그를 터무니없이 비방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비방하다 보면 우리는 늘 그들에게서 어느 정도 멀어지게 마련 이다. 우상에는 손을 대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칠해 놓은 금박이 손에 묻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그의 인격이 그녀에게 더욱 깊숙이 흡수되어 가는 것에 반발심이 생겼다. 이렇게 한결같이 이기기만 하는 엠마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어!” 하고 그녀는 혼잣말을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한번도 행복했던 적도 없었다. 인생에 대한 이런 아쉬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의지하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썩어 무너지고 마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그러나 만일 어디엔가에 강하고 아름다운 한 존재가, 열정과 세련미가 가득 배어 있는 용감한 성품이, 하프의 낭랑한 현을 퉁기며 하늘을 향해 축혼의 엘레지를 탄주하는 천사의 모습을 한 시인 같은 마음이 존재한다면 그녀라고 운 좋게 그를 찾아내지 못하라는 법이야 있겠는가? 아! 턱도 없는 일! 사실 애써 찾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 거짓이다! 미소마다 그 뒤에는 권태의 하품이, 환희마다 그 뒤에는 저주가, 쾌락마다 그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고 황홀한 키스가 끝나면 입술 위에는 오직 보다 큰 관능을 구하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 남을 뿐이다.
그러나 편지를 쓰고 있노라면 어떤 다른 남자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그것은 그녀의 가장 뜨거운 추억들과 가장 아름다웠던 책들의 내용과 가장 강렬한 욕망들이 한데 어울려 빚어낸 환영이었다.
더군다나 만약에 딸이 정말 죽었다면 그가 알았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닌 것이었다! 주변의 들판은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다. 하늘은 푸르고 나무들은 살랑거리고 양떼가 지나갔다.
"그래요, 이젠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심지어 그는 태어나서 여지껏 한번도 입에 담아본 적이 없는, 단 한마디 엄청난 말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이게 다 운명 탓이지요!”
이 운명을 인도한 당사자인 로돌프에게는 그 같은 처지에 놓인 사내가 하는 말 치고는 어지간히도 마음 좋게 들릴 뿐 아니라 우스꽝스럽기조차 했고 약간 비굴하게도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