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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항일의 불꽃

[ EPUB ]
김상웅 | 두레 | 2019년 08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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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19년 0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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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54.13MB?
ISBN13 978897443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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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운동단체, 조선의열단
의열단,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군)로 이어지는 ‘의열단’의 역사를 한눈에!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의열단 이야기’

의열단을 빼놓고 항일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1919년 11월 10일, 중국 지린성에서 김원봉을 포함해 조선의 열혈청년 13명이 항일독립운동의 결사체 의열단(義烈團)을 창단한 지 올해로 100주년이다. ‘정의로운(義) 일을 맹렬히(烈) 실행하는 단체(團)’라는 뜻의 의열단. 의열단은 창단 때부터 ‘마땅히 죽여야 할 일곱 대상(7가살)’과 ‘다섯 가지 파괴 대상(5파괴)’을 정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항일의 불꽃’이란 말이 어울릴 만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장투쟁으로, 의열단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제가 가장 두려워하고 증오한 항일단체, 독립운동단체였다. 창단 후부터 10년 동안 크고 작은 의열투쟁을 34번이나 일으켰다. 창단 단원들은 일제 군경과 밀정들에게 쫓기고, 수시로 황천길을 넘나들면서도 한 사람도 변절하거나 투항하지 않았다.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맞춰 이후 의열단은 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군)의 핵심세력으로 독립투쟁을 이어갔다. 그러나 조선의용군이 충칭파(임시정부 측)와 옌안파로 나뉘면서 역사적 비극의 운명을 맞는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 조국의 서울(충칭파)과 평양(옌안파)으로 나뉘어 귀국한 의열단원들은 남북 어디에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잊히거나 소외당하거나 제거되었다. 이들에게 일제강점기가 ‘통분의 시대’였다면 해방 이후는 ‘통탄의 시대’였고, 지난 100년은 ‘통한의 100년’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비견할 만한 독립투쟁을 벌인 ‘항일의 불꽃’ 의열단을 빼놓고는 항일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의열단이 없었으면 많이 건조했을 것이다. 일제에게 깔보였을지도 모른다. 의열단은 민족혼을 잇고 침략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겨레의 거룩한 독립투쟁단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열단은 단체보다 김원봉이라는 단장 한 사람에 더 주목되어 알려진 게 사실이다. 창립 단원과 나중에 참여한 유명·무명의 단원들은 대부분 망각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자 대한민국 근현대 인물 연구의 권위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기념해 어느 한 사람의 역사가 아닌, 의열단 창단에서부터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군)로 이어지는 ‘의열단’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와 함께 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아 의열단과 그 후계 단체들은 정명(正名)을 찾고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들어가는 말: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의열단

1장 의열義烈의 사력
1.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항일단체, 조선의열단 / 2. 의를 위해 몸을 던진 지사들 / 3. 조국 해방 전쟁에 나선 단체들

2장 의열단을 창단하다
1. 배신자가 없었던 의열단 창립 단원 / 2. 김원봉, 의백義伯으로 선임되다 / 3. 일곱 부류의 암살 대상과 다섯 가지의 파괴 대상 / 4. 진보적인 의열단 강령 / 5. 폭탄 제조기술을 익혀 실전에 대비하다 / 6. 황상규와 김대지의 역할

3장 왜적을 타도하자
1. 실패로 끝난 첫 번째 거사 / 2. 박재혁, 부산경찰서장을 처단하다 / 3. 최수봉,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다 / 4. 김익상,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던지다 / 5. 일본 육군대장 저격

4장 신채호, 「의열단선언」 짓다
1. 김원봉, 신채호를 찾아 베이징으로 / 2. 신채호의 「의열단선언」 / 3. 일제는 한민족 생존의 적이다 / 4. 강도정치에 타협하거나 기생하는 자는 우리의 적이다 / 5. 외교론·준비론 미몽을 버리고 민중직접혁명을 선언하노라 / 6. 양병 10만이 일 척의 작탄만 못하나니 / 7.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자 / 8. 의열단 총회 열어 결의를 다지다 / 9. ‘불멸의 문헌’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다

5장 이어지는 의열투쟁
1. 박열, 일왕 부자 처단을 기도하다 / 2. 김상옥,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진 뒤 일경과 전투 / 3.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를 시도하다 / 4. 일제 정보자료에 나타난 의거 준비 과정 / 5. 김지섭, 일왕궁 입구에 폭탄을 던지다 / 6. 이인홍과 이기환, 밀정 김달하를 처단하다 / 7. 이종암 등의 군자금 모금 의거 / 8.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에 폭탄 던지다 / 9. 이해명, ‘변절’한 박용만 처단

6장 의열단의 의기와 자료(사료)
1. 머리에는 민족주의, 가슴에는 아나키즘 / 2. ‘조선 독립에 모든 것 바친다’ / 3. ‘오직 자유를 위한 행동뿐이다’ / 4. 의열단의 ‘3·1 혁명 10주년 선언’

7장 내외의 거센 도전과 새로운 진로
1. 명성이 높아지고 세력이 강화된 의열단 / 2. 정세 변화와 안팎의 시련 / 3. 황푸군관학교에서 정치·군사교육 받다 / 4. 진보인사들과 의열단 진로 논의 / 5. 폭렬투쟁에서 ‘민중혁명’으로

8장 폭렬투쟁에서 대중운동으로
1. ‘조선전민족단일혁명당’을 추진하다 / 2. 의열단원들, 국내에서 노농운동 지도 / 3. 일제의 만주 침략으로 국민당 정부와 합작하다 / 4.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 설립 / 5.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는 의열단 양성소 / 6. 노래로 민족의식 일깨우다 / 7. 민족시인 이육사 / 8. 혁명음악가 정율성

9장 민족혁명당 모태 역할
1. 민족혁명당, 좌우 진영을 통합하다 / 2. 민족·민주 혁명 이념 제시 / 3. 각 계파 안배된 민족혁명당 간부진 / 4. 이청천 계열 이탈로 당세가 약해지다 / 5. 『민족혁명당보』 발행 / 6. 민족혁명당의 ‘실천적 의의’

10장 조선의용대 창설과 항일전
1. 조선의용대를 창설하게 된 배경 / 2. 신채호, 뤼순감옥에서 옥사하다 / 3. 1938년 10월 10일, 조선의용대가 창설되다 / 4. 조선의용대 창설에 얽힌 뒷이야기 / 5. 의열단의 후신, 조선의용대 / 6. 일본 반전운동가들과 연계투쟁 / 7. 임시정부에서도 한국광복군 창설 / 8. 장제스, 김구와 김원봉을 초청해 한중연합전선 제의

11장 두 쪽으로 갈라진 조선의용대
1. 조선의용대의 다양한 활동 / 2. 반파시스트동맹 결성 / 3. 조선의용대, 분열될 위기를 맞다 / 4. 중국공산당의 김원봉 고립 작전 / 5. “망명자 가족 생계유지 때문”이라는 이유

12장 거듭된 희생과 시련
1. ‘셈해지지 않는’ 희생자들 / 2. 타이항산에 묻힌 윤세주 / 3. 김원봉이 쓴 윤세주 약사 / 4. ‘내명년에는 조국에 진입하겠다’ 선서하더니! / 5. 조선의용군 무명 전사자에게 바치는 노래

13장 분단된 조국에서
1. 남북으로 갈려 입국한 조선의용군 / 2. 최후의 의열단원, 이승만을 쏘다 / 3. 의열단 무명전사 위령탑을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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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의열단!
의열단은 공허한 구호나 정강을 거창하게 내건 단체가 아니다. 의열단이 내세운 행동강령은 ‘실천’이었다. 수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진 데 비해 의열단이 역사의 조명을 받은 것은 백절불굴의 행동(실행)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일을 결정하면 곧 실행에 옮긴다. 특히 암살과 파괴라는 두 가지 양식의 직접행동으로 식민지 통치의 근간을 제거하려 했다. 이런 면이 일제가 의열단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1919년 11월 10일,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의 초선 청년 13명(김원봉, 곽재기, 강세우, 권준, 김상윤, 배동선, 서상락, 신철휴, 윤세주, 이성우, 이종암, 한봉근, 한봉인)이 창단한 의열단은 10년 동안 크고 작은 의열투쟁을 34번이나 일으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국민에게는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일제 경찰관서 폭파, 일본군 고위장교 저격, 일제 수탈기관 폭파, 일왕 거주지 폭탄 투척, 밀정과 변절자 암살 등 그 유형도 다양했다.

의열단,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조선의용군, 광복군으로 이어지다
의열단은 암살과 파괴 투쟁의 한계를 절감하고,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맞춰 의열단의 진로를 ‘폭렬투쟁에서 대중운동으로’ 전환한다. 또한 의열단 지도부는 의열단 간부학교라고도 불리는 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를 설립한다. 모든 경비는 중국에서 부담하지만 운영은 의열단이 맡아서 했는데, 사실상 이 학교는 의열단원 교육기관이자 의열단 양성소였다. 민족시인 이육사와 혁명음악가 정율성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1934년 한국독립운동사에 큰 방점을 찍은 최대규모의 좌우연합 정당인 민족혁명당이 만들어지는데, 대표는 김규식이었으나 실권자는 당세가 강한 김원봉이었다. 김구를 중심으로 하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민족혁명당에 참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도 민족혁명당 창당의 핵심세력이 의열단 계열이라는 점을 들었다. 이후 1930년대 후반 중국 관내의 한국 독립운동 진영은 사실상 김구의 한국독립당과 김원봉의 민족혁명당의 양대 세력이 주축을 이루게 된다.
1938년 10월 10일, 민족혁명당 간부들은 내외 정세 변화를 지켜보다가 마침내 조선의용대를 창설한다. 이는 의열단 간부학교(조선혁명정치간부학교)와 황푸군관학교 졸업생 등 100여 명의 청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원봉은 이런 기회가 올 것이라 내다보고 오래전부터 의열단과 여러 단체를 통해 유능한 청년들을 교육·훈련시켜왔던 것이다. 곧, 조선의용대는 사실상 의열단의 후신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용대 창설은 외교론이나 실력양성론에 실망해온 무장투쟁론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또한 이들의 존재와 활약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서둘러 창군하게 하는 간접적인 효과를 낳았다. 나중에는 광복군의 인적자원의 보충원이 되어주었던 한편, 조선독립동맹 산하 조선의용군의 실질적인 조직기초이자 충원기반으로도 기능했다.
그러나 조선의용군은 임시정부 측과 옌안파로 갈리고, 해방 후에 충칭파는 서울로 입국하고, 옌안파는 평양으로 각각 입국하면서 역사적 비극을 맞게 된다.

마땅히 죽여야 할 일곱 대상(7가살)과 다섯 가지 파괴 대상(5파괴)
의열단은 창단하면서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을 희생하기로 함,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의 확고한 자라야 단원이 됨’ 등을 포함한 ‘공약10조’를 채택했다. 그러나 일제에게 더 큰 공포를 준 건 ‘7가살(마땅히 죽여야 할 일곱 대상)’과 ‘5파괴(다섯 가지 파괴 대상)’였다.
7가살의 대상은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대만 총독, 매국적, 친일파 거두, 적의 밀정, 반민족적 토호열신’이고, 5파괴의 대상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의 중요 기관’이었다. 이처럼 처단대상과 파괴대상을 명확히 적시함으로써 활동목표를 공개했다. 이는 의열단이 어느 독립운동단체보다 격렬하게 일제와 싸우고자 하는 단호한 결의와 치열함, 조선 민중의 소망을 담아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의열단의 이념적 지표가 된, 신채호의 「의열단선언(조선혁명선언)」
신채호는 망명 초기부터 무장투쟁론을 제기하면서 임시정부와는 달리 직접행동에도 나섰던 언론인이자 사학자이다. 김원봉의 부탁으로 신채호는 의열단의 ‘정신’을 담은 문서를 작성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의열단선언」이다. 이 선언은 의열단에 새로운 활기와 투지를 심어주었고, 이후 모든 의열투쟁의 현장에는 반드시 이 「의열단선언」을 살포했다.
「의열단선언」은 5개 부문으로 되어 있는데, 의열단선언문답게 철저하게 의열혁명론을 주창한다. 이전까지의 의열단 활동이 다소 즉흥적이고 비체계적인 투쟁이었다면, 「의열단선언」 이후 항일투쟁 노선이 한층 더 정당화되었고 이념적 지표도 갖추게 되었다. 「의열단선언」은 곧 항일운동기의 모든 독립운동가들과 한국의 전 민족구성원들에게 독립에 대한 확신과 목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제시해준 ‘민족해방전쟁의 선전포고문’이자, 그 어떤 선언문을 뛰어넘는 위대한 선언문이었다.

조선 독립에 모든 것 바치다
의열단은 조선 독립에 모든 것을 바쳤다. 이들이 벌인 굵직한 주요 활동으로는 밀양 진양 폭탄 반입 사건(1920), 박재혁의 부산 경찰서 폭탄 투척(1920),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1920), 오성륜·김익상·이종암의 상하이 황푸탄 의거(1922), 박열의 일왕 부자 처단 기도(1923),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1923), 김지섭의 도쿄 니주바시 사쿠라다몬 폭탄 투척(1924), 이인홍과 이기환의 밀정 김달하 처단(1925), 이종암 등의 군자금 모금 의거(1925),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및 식산은행 폭탄 투척(1926), 이해명의 ‘변절자’ 박용만 처단(1928) 등이 있다.
그리고 의열단의 전통은 해방 뒤에도 이어졌다. 다만 상대가 왜적이나 밀정에서 국내의 독재자로 바뀌었을 뿐이다. 1952년 6월 25일, 피난 수도인 부산에서 열린 6·25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저격하려 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당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이가 의열단원 유시태였다. 유시태의 시도는 총알이 발사되지 않아 무위로 끝났다.

eBook 회원리뷰 (1건) 리뷰 총점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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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의열단, 항일의 불꽃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j*****1 | 2019.12.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일제가 대한제국을 침략한 뒤 가장 두려워했던 대상인 항일단체, 조선의열단! 1920년대 김원봉과 조선의열단! 일제는 이들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을 뿐만 아니라 현장사살 등 암살 명령을 내렸을만큼 일제에겐 두려움과 증오의 존재였던 증거이다. 1919년 11월 10일 조선의열단은 중국 지린성의 농부 판씨 집에서 김원봉을 비롯한 그의 동지 13명이 발기해서 창단된지 100주년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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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대한제국을 침략한 뒤 가장 두려워했던 대상인 항일단체, 조선의열단! 1920년대 김원봉과 조선의열단! 일제는 이들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을 뿐만 아니라 현장사살 등 암살 명령을 내렸을만큼 일제에겐 두려움과 증오의 존재였던 증거이다. 1919년 11월 10일 조선의열단은 중국 지린성의 농부 판씨 집에서 김원봉을 비롯한 그의 동지 13명이 발기해서 창단된지 100주년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해방 후 남과 북에서 모두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잊혀지거나 소외당해온 조선의열단과 그 후계 단체들은 창단 100주년을 맞아 정명을 찾고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다. 김원봉을 비롯한 그의 동지 13명은 단 한 사람도 변절하거나 투항하지 않았다. 의열단 단원들은 일종의 결사대원들이었다. 적진에 들어가 적을 죽이거나 기관을 파괴하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그들이 맡은 임무였다. 스스로 택한 길인 의열투쟁은 조국 해방이라는 숭고한 사명을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요인 암살이나 주요 시설파괴를 목적으로 한다.  이들은 망국의 치욕을 자신들의 피로써 능히 씻을 수 있다고 믿고 행동한 거룩한 순교자들이다. 일제의 요인을 암살하는 특무와 반역자들을 처단하는 것을 주요한 행동강령으로 삼았고 가슴 속에서 불타던 적개심은 그들에게 환락과 아울러 비극을 가져다 주었다. 의열단원들은 주로 단독으로 거사했으며 스스로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다가 사살되거나 붙잡혀 옥고를 치르거나 처형당했다. 몇 사람이 함께 거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단독 거사였던 만큼 힘들고 고독한 싸움이었다. 의열단이 1919년 창단하여 1929년 상하이에서 해단할 때까지 수행한 의거만 해도 34건이다. 일제 경찰관서 폭파, 일본군 고위장교 저격, 일제 수탈기관 폭파, 일왕 거주지 폭탄 투척, 밀정과 변절자 암살 등 유형도 다양했다. 의열단은 창단하면서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공포의 조선총독을 비롯하여 마땅히 죽여야 할 대상 즉 7가살과 함께 다섯 가지의 파괴대상을 선정했다. 처단대상을 명확히 함으로써 활동목표를 적시한 것이다. 총독정치의 우두머리와 하수인, 그리고 민족반역자 모두를 세분화해서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파괴해야 할 핵심기관으로 통치기관인 조선총독부, 수탈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 선전기관인 매일신보사, 폭압기관인 각 경찰서와 기타 중요기관을 적시했다. 어느 독립운동단체보다 격렬하게 일제와 싸우고자 하는 결의, 치열함과 조선 민중의 소망을 담아 보여줬다. 해방이 된 뒤 의열단은 김원봉과 일부 대원은 남쪽으로 일부는 북쪽으로 들어왔다. 김원봉은 친일파들로부터 갖은 수모와 암살 위기를 겪은 뒤 북한으로 가서 활동하다가 1958년 이후 행방을 감추었고 북쪽을 택했던 조선의용대 출신들도 옌안파 숙청으로 거세되었다. 참으로 허망하고 통탄할  일이다. 해방된 뒤에 의열단은 긴 세월동안 금제의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 친일파들과 불의한 쪽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거나 대학, 신문사, 기업 등을 만들어 상류층이 되었거나 국회의원, 판검사, 고급공무원, 교수, 언론인, 재벌이 되었다. 친일파들의 후손들은 권력과 부를 세습하여 동조자들을 끌어 모아 큰 세력을 형성하여 대를 이어 양지쪽을 차지해왔다. 일제강점기 때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의열단은 남한에선 좌파로 몰리고 북한에서는 옌안파로 몰려 희생당한 참담한 상황이 벌어졌다. 친일을 모태로 하는 족벌언론과 그 계열의 수구 정치인들은 일본군 장교 출신들과 친일문인들은 기리면서 항일투사들은 적대시하는 등 토착왜구들의 적폐가 샛별처럼 빛났던 우리 민족의 영웅인 김원봉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서훈을 가로막고 있는 작태가 한심스럽고 일제에게 짓밟혀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라 치가 떨린다. 20세기 민족 모순의 한 정형을 보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역사는 왜곡되어서는 절대 안되고 진실을 꼭 밝혀야 한다는 강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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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단원들은 일종의 결사대원이었다. 이들은 단 한 사람도 변절하거나 투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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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 | 2019.12.27
구매 평점4점
그 유명한 의열단과 김원봉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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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봄 |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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