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 연주자란 어떤 존재여야 된다고 생각합니까?
로스트로포비치: 연주자란 작곡가와 청중 사이에 있는 존재입니다. 사제와 비슷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제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제는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연주가 행복합니다. 작곡가의 뜻을 다른 나라 말로 통역할 필요 없이 음으로 전달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 p.265, 「로스트로포비치와의 인터뷰」 중에서
나는 가끔 바이올린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무대에 서 있는 연주자가 활이 아니라 칼을 들고 있는 것 같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마치 한 자루 칼을 들고 사자 무리 앞에 홀로 마주 선 검투사 같다. 성악가는 또 어떠한가.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지옥의 정령들마저 숨을 죽이고 눈물을 떨어뜨리게 만든다는 오르페우스와 마주하는 느낌이다. 음악에 숨이 막히고 음악에 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위대한 연주자들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되짚어보면 작곡가의 경우는 그나마 악보가 남아 있어서 그들의 위대성을 충분히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연주자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그들의 진짜 모습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최고의 카스트라토였다는 파리넬리의 음성은 물론이고 바로크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다는 비버의 연주, 작곡가이기 전에 피아노의 달인이었던 베토벤의 연주, ‘악마의 제자’라 불린 파가니니의 연주는 모두 시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거장들의 연주를 제대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레코딩 기술이 나온 이후부터다.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이렇게 말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머리와 가슴과 기술을 하나로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음악은 고통을 받게 되죠. 머리가 없으면 패배자가 될 것이고, 기술이 없으면 아마추어로 떨어지게 됩니다. 가슴이 없으면 연주자는 기계가 되고 말 것입니다. 자, 그러니 연주를 한다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은 없는 셈이죠.”
그러나 역사에는 호로비츠처럼 그 위험천만한 일을 기가 막히게 이루어 낸 음악의 사제들이 수없이 많았다. 토스카니니, 푸르트뱅글러, 카라얀, 번스타인, 아바도, 하이페츠, 루빈스타인, 칼라스, 비욜링, 세고비아 등 열거하기도 벅찬 이름들. 이 책은 그에 관한 이야기다. 레코드로만 남은 거장들,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명인들을 기억하고 싶은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들어가는 말」 중에서
한마디로 그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열혈한이었다. 그는 여든 살의 나이 에도 계단을 두 칸씩 밟고 올라가는 성미였다고 한다. 잠도 서너 시간밖에 자지 않았고, 한 번도 큰 병에 걸린 적이 없었으며, 몸이 몹시 아플 때는 혼자 몰래 치료를 받았고, 죽을 때까지 무언가에 몰입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토스카니니도 자기 성격의 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여든 살의 토스카니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제 노인이다. 그런데 어째서 하느님은 열일곱 살 소년의 피로 나를 괴롭히는 것일까?”
--- p.20,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중에서
당시 BBC의 존 프리만은 재기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그 많은 시간 동안 다시 지휘를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까?” 클렘페러에게 들을 수 있는 답은 단 한마디뿐이었다.
“네버never!”
--- p.53, 「오토 클렘페러」 중에서
[슈피겔]지의 편집장 클라우스 움바흐가 첼리비다케에게 물었다. “카라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겨운 사람이지. 음악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없는 사람이야. 아주 뛰어난 장사꾼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름인데요.” “그건 코카콜라도 마찬가지지 않나.”
--- p.77,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중에서
“그는 두 가지 속성을 항상 같이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베토벤과 현대음악에 몰두한 ‘머리 긴 음악가’의 모습이었으며, 또 하나는 소년 같고, 적당히 속어도 사용하며, 재즈를 좋아하고, 미국 도시의 배경을 가진 모습이었다. 그 어떤 위대한 출판물도 번스타인이란 인물처럼 미국의 음악적 풍경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 p.99, 「레너드 번스타인」 중에서
많은 사람이 어떻게 말할까에 대해선 배우면서, 어떻게 들을까에 대해선 배우지 않는다. 다른 이에게 귀 기울인다는 것은 사는 동안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음악은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준다.”
--- p.113, 「클라우디오 아바도」 중에서
모든 것에 자신감이 넘쳤던 루빈스타인은 다른 피아니스트들을 경계하지 않았다. 언젠가 그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피아니스트는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회에는 갈 게 못 돼. 나보다 못 치면 기분이 좋지 않고, 더 잘 치면 입장이 곤란해지거든.”
--- p.143,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중에서
“하이페츠는 항상 나의 우상이었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나는 하이페츠의 초기 녹음들을 들으며 자랐다. 하이페츠는 그 당시에도 이미 위대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늙어서 그 음반들을 다시 들으며 생각해보니 그 언제보다 더욱 위대하다.”
--- p.211, 「야샤 하이페츠」 중에서
“오늘날 화려한 기교를 가진 바이올리니스트는 많지만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연주자는 부족하다. 이것은 그들의 기교가 진정한 최고의 기교는 아니라는 말과 같다. 해석력이 좋은 자가 테크닉이 뛰어난 자보다 훨씬 천재에 가깝다. 이건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다.”
--- p.239, 「나탄 밀스타인」 중에서
카루소가 뮌헨 국립극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공연할 때 일이다. 갑자기 무대장치가 쓰러지면서 카루소의 머리를 때렸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어서 공연은 계속되었는데,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극장장에게 한 직원이 다가와서 이렇게 속삭였다.
“극장장님, 만약 카루소가 불구의 몸이 되었다면, 차라리 때려죽여버리는 편이 나았을 거예요. 그 종신연금을 우리가 어떻게 지불할 수 있겠습니까?”
--- p.339, 「앤리코 카루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