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다른 작품
포르투갈의 높은 산
20세기의 셔츠
# 읽고 나서.
표류해서 살아남는 류의 영화나 책을 읽으며, 정말 제일 참기 힘든 게 '외로움'일까, 정말 혼자서는 힘든 걸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초반에 먹고, 살아남는 걱정이 먼저겠지만, 기본적 욕구가 충족이 되면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기분을 견디기 젤 힘들어하게 되나 보다 하고 말았다. 너무나도 다행히 그런 기분을 느껴볼 경우가 없었긴 했지만 가끔, 타향에 사는 내가 이곳에 혼자 남는다면, 외동인 딸이 나중에 혼자 남는다면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파이는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부모님과 살다 정치적 문제로 인도 내 상황이 불안정해지자 캐나다로 이주하기로 결정한 부모님과 배에 오른다. 팔려가는 몇몇 동물과 함께. 항해 중 어느 날 밤 이유를 알 수 없는 굉음과 함께 배는 침몰하고, 가족을 다시 볼 기회도 없이 파이는 구명조끼가 입혀져 구명정으로 '던져'진다. 비는 침몰하고 작은 구명보트에 살아남은 파이는 곧 배에 그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심지어 헤엄쳐 살아남은 호랑이 리처드 파커까지 태우게 된다. 그리고 300일 가까이 되는 긴 항해를 하게 된다.
어느 특정이 아니라 '신'의 선한 존재를 믿는 파이는 동물에 관한 지식, 구명보트에 있던 서바이벌 가이드에 의지해 호랑이와 함께 항해하며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채식주의자였던 파이가 살아남기 위해 살생을 하며 적응하고, 식인 섬에 도달하기도 하고, 기적같이 표류하던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육지에 도달한다.
침몰한 배에 대한 조사를 위해 도달한 일본인들은 파이의 이야기를 듣고 믿지 못한다. 그런 그들에게 파이는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슷하지만 조금 더 잔인하고 조금 더 현실감 있는 이야기. 그리고 그들에게 되묻는다. 어느 이야기가 마음에 드냐고. 신을 믿는지와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아마 파이가 겪은 모험담일 것이다. 잔인한 살육의 현장이 진실이라도 눈 감고 싶어질 것이다. 파이가 겪은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도 진실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소설은 어차피 허구이기도 하니까. 소설 속 소설가가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라고 했던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06년에 읽고 이번에 독서모임을 위해 재독했다. 책 읽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파이 이야기는 읽으면서 기억나는 부분이 많다며 읽었다. 영화에 아름다운 장면이 많다고 하는데 아직 보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영상으로도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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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예술가들을 후원해 주지 않으면, 우리의 상상력은 극악한 현실의 제단에 희생될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되고, 쓸모없는 꿈을 꾸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 - 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어머니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어머니 자신이 독서광이었으니까.
어머니는 아들이 책에 코를 박고 있는 것을 보면 그저 좋아했다. 나쁜 책만 아니면 어떤 책이든 상관없었다.
어디서나 대답은 하나겠지.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소망하며 이주한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일을 우리가 어쩔 수 있을까? 다가오는 삶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것을.
"난 죽지 않아. 죽음을 거부할 거야. 이 악몽을 헤쳐 나갈 거야. 아무리 큰 난관이라도 물리칠 거야. 지금까지 기적처럼 살아났어. 이제 기적을 당연한 일로 만들 테야. 매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필요하다면 뭐든 할 테야. 그래, 신이 나와 함께하는 한 난 죽지 않아. 아멘."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호랑이 위에 걸터앉아 있을 건지, 상어 떼 위에 있을 건지. 선택의 폭은 그 정도뿐이었다.
공포심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공포심만이 생명을 패배시킬 수 있다. 그것은 명민하고 배반 잘하는 적이다. 관대함도 없고, 법이나 관습을 존중하지도 않으며, 자비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에 접근해, 쉽게 약점을 찾아낸다. 공포심은 우리 마음에서 시작된다. 언제나.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구!"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