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1999년 06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356쪽 | 549g | 152*223*30mm |
ISBN13 | 9788931003666 |
ISBN10 | 8931003668 |
발행일 | 1999년 06월 30일 |
---|---|
쪽수, 무게, 크기 | 356쪽 | 549g | 152*223*30mm |
ISBN13 | 9788931003666 |
ISBN10 | 8931003668 |
벌써 4반세기나 지났습니다만 1984년에 조지 오웰이 화제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가 쓴 미래소설 <1984>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완성했던 시점은 1948년 이었습니다. 36년 후의 세계를 미루어 짐작한 소설이었기 때문에 그의 예언대로 세상이 바뀌었을까 궁금할 수도 있었겠습니다.
1984년의 대한민국은 1980년 서울의 봄이 비상계엄조치로 막을 내리고 광주 민주화운동 등 격동의 시절을 넘어 매우 경직된 사회로 넘어가 있던 시기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따라서 조지 오웰이 내다본 그런 사회와 흡사하다고 볼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미래학자 데이비드 굿맨은 1978년 시점에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예언했던 것들이 얼마나 맞추었나 보았더니 137가지 가운데 무려 100여 가지가 실현되었더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때로부터 무려 40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들어맞고 있는지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오웰은 세계가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의 세 개의 초강대국으로 개편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만, 이 부분 만큼은 점차 세계가 분화되는 추이를 보이고 있어 다른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떻든 3개의 초강대국은 전쟁이 일상화되어 있을 뿐아니라 적과 동지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사는 사회는 오세아니아의 하급공무원인데 대형이라고 하는 지도자를 신처럼 떠받들면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텔레스크린을 통하여 모든 국민들을 상시 감시하는 폐쇄적인 사회입니다. 유라시아나 이스트아시아의 사회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아마도 같은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똑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어느 조직도 완벽하게 같은 모습이나 성향의 사람들로 채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좋게 말해서 개성적이거나 혹은 튀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1984>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상황이 변함에 따라 역사를 변조하는 일을 합니다. 즉 오세아니아의 실권을 틀어쥐고있는 대형은 국민들의 생각과 행동 심지어는 섹스까지도 틀에 맞추도록 하고 있지만 그 틀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제거되고 있습니다.
주인공 스미스 역시 오세아니아사회가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인식과 함께 일탈을 꿈꾸던 중 줄리아라는 젊은 여성으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으면서 반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됩니다만 조직이 깔아둔 덫을 피하지 못하고 걸려들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조직의 배신자가 조용히 사라지거나 총살을 당하는 것과는 달리 스미스의 경우는 반사회적 사고의 틀을 바꾸는 실험을 받은 다음에서야 처형되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반사회행동을 시도하기 전까지는 증오하던 대형을 죽어가는 순간 사랑하게 만들 정도로 조직은 철두철미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가 하면 개인감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고체계 자체를 단순화하기 위하여 언어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많은 단어를 없애면서 단어를 포괄적이며 간단하게 바꾸기도 합니다. 오웰은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당의 슬로건이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고 되어있을 정도로 인간의 본성을 아주 치밀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조지 오웰은 이 미래에는 소비에트체계가 힘을 얻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결국 붕괴하고 말아 예측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해 온 체제가 대형과 흡사한 방식으로 국민을 감시하는 그런 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수 있는 것일까. 우리들도 모르는 사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악의적인 목적에 의해서는 아니지만 우리들은 CCTV에 의해 우리의 생활 일부가 노출되고 있다. 누군가에 의한 감시는 아니지만 가끔은 의도치 않은 곳에 있는 카메라가 낯설고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딘가에서 나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우리들이 느끼지 못하는 구속이 아니라 강제의 의한 감시가 이루어진다면 살아갈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의해 살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고 꼭 읽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년>. 요즘 학창시절 읽었던 책을을 하나씩 다시 읽어보고 있다. 어린시절 받아들였던 느낌과는 전혀 다른 감정들을 만나는 나름의 재미가 있어 읽기 시작한 것이다. 동물농장을 읽은 후 이제 <1984년>을 읽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48년에 집필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이 아닌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많은 부분들이 현실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에 놀라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윈스턴 스미스는 자신의 나이가 서른아홉살임은 확실하지만 태어난 해가 1944년인지, 1945년인지 확실치 않다고 말한다. 스미스가 살고 있는 1984년은 감정의 존엄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남은 감정은 공포, 증오, 고통만 있다고 말한다.
대형(大兄 : Big Brother)은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
당이 내세운 '대형'에 의해 세상은 움직이고 있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고 그들의 눈에 벗어나는 말과 행동을 할수 없는 것이다. 서로에게 사적인 감정을 가질수도 없고 친밀감도 없다. '동무'라는 호칭외에 다른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두려운 존재라 생각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지만 그 아이들이 자라 자신의 부모들을 감시하게 되는 무서운 세상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윈스턴 스미스는 노트를 구입하고 펜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가 사는 세상에서는 종이에 글을 쓴다는 것은 중대행위라는 것을 알지만 그는 1984년 4월 4일이라는 작고 서툰 글씨로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미래를 향해, 혹은 과거를 향해, 사고가 자유롭고 인간의 개성이 서로 다를 수 있으며 고독하지 않을 시대를 향해, 진실이 존재하고 한번 이루어진 것은 없어질수 없는 시대를 향해.
획일성의 시대로부터, 고독의 시대로부터, 대형의 시대로부터, 이중사고의 시대로부터 - 축복 있으라! - 본문 36쪽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감시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순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적극적으로 복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윈스턴 스미스는 조용히 그러한 체제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다. 마음속에서 일어난 반항은 행동으로까지 이어간다. 하지만 마지막의 윈스턴 스미스를 보면서 우리들은 그를 비난이 아니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수 밖에 없다. 어쩌면 냉혹한 현실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거대한 힘 앞에 한 사람의 반항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슬픈 생각까지 드는것이 사실이다. 책속에 흐르는 암울한 분위기는 책을 덮으면서까지 이어진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말자는 말은 이 책을 읽으면서는 할수 없게 만든다.
책제목이 제대로 하는 이야기가 지금의 현실과 별차이 없이 적중한것 같다는 생각이 많다.
1984년이 되기 전에 이러한 상상한 이야기들이 어찌 그대로 재현이 되는지...
조지 오웰의 예견같은 소설에 놀아난 기분이다.
그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빅브라더의 단어 자체가 사전적 의미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이 감정이 말살이 되어버린 철저한 전체주의 사회 이야기를 통해 멋진 소설로 희안하 한다.
1984는 조지 오웰(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 Eric Arther Blair)의 대표작으로
21세기를 예견하는 이야기로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세상이다,
지금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당시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이야기가 아닌가...
지문과 홍채로도 생체 인식을 할 수 있는 과학의 발달도 이야기가 나오고
휴대전화와 전자 메일 그리고 통신 시스템으로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자 그것이 당연시 되는 미래이다.
오세아니아 의 가상의 세상에서 개인을 지배하는 ‘당(Party)’이 등장하고 주인공은 이름이 아닌 숫자의 이름으로 맞추어야 한다,
암울한 미래에 대한 모든것을 그대로 증명된 것을 반사회적 확정적인 일들을 하고 극성스러운 감시망을 피해서 사랑도 피워보았지만 당 감시의 틈을 벗어날 수 없다.
윈스턴의 반항적인 일들이 과거의 일들을 지금의 역사적 일들과 함께 이루기위한 반사회적 행위들을 수정하는 일들을 하는데....늘 모든 일에 반문적인 원스턴.
하지만 윈스턴의 행동들은 늘 범위들은 오브라이언에게 노출이 되어 그의 편이라고 그를 자연스럽게 설득하여 그러한 행위들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윈스턴과 그가 사랑한 그녀를 조사하받는 자리로 자리를 변형시켜버린다.
뒤통수 맞아버린 그들은 처음에서 부정을 하지만 나중에 서로 고발적인 태도를 취한다.
조지오웰의 이야기 1984를 보면서 이런 적중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회주의도 보고 대단한 신어의 향연도 느낄수 있다.
1984의 소설뒤의 부록편은 이 고전의 읽어야 할 필요성과 의미를 전달을 하고 있다.
신어의 원리와 작품해설 그리고 옮긴이의 말을 읽고 보니 더욱이 더 이해가 잘되는 구성을 가지고있게에 보는 구성에 읽는 내내 고전을 왜 읽는지를 알게 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