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뭐니 해도 내가 이제껏 본 사랑에 관한 말 중 압권은 <논어(12권 10장)>에 나오는 "애지 욕기생 愛之 欲其生",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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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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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선생이라는 내 직업이 두려울 때가 있다. 내가 별 생각없이 한 말이 젊은 학생들의 마음에 두고두고 남거나 어떤 때는 그들의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난 스승의 날 병희에게서 온 편지에는 "선생님 말씀에 힘입어 저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인문관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제게 선생님이 '졸업하면 뭐 하니? 넌 좋은 선생이 될 텐데'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래서 전 선생님이 되었습니다"라고 쓰고 있었다.
좋은 선생이 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병희이지만, 난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난 주 청첩장을 들고 찾아온 민우는 병약하다고 부모님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결혼한다고 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고.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줄 겁니다." 오래 전 영문학개론 시간에 내가 브라우닝의 시를 가르치면서 결론적으로 그렇게 말했었다는 것이다.
(중략)
민우가 자신의 청첩장에 인쇄한 이 시는 영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랑의 이야기로 꼽히는 로버트 브라우닝과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의 열애의 기록으로서, 마흔 살의 노처녀이자 장애인이었던 엘리자베스 배릿이 당시로서는 무명 시인이었던 여섯 살 연하의 로버트 브라우닝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들이면서 쓴 연시이다.
현재는 문학사적 위치가 남편의 명성에 가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그녀는 남편보다 훨씬 유명한, 워즈워스의 뒤를 이을 계관시인의 후보로 꼽히는 시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재기가 뛰어나 네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던 그녀는 이미 열한 살 때 <마라톤 전쟁>이라는 4권으로 된 서사시를 발표했다.
유복한 가정, 아름답고 전원적인 환경 속에서 시재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배릿의 소녀 시절은 행복했다. 그러나 열다섯 살 되던 해에 그녀는 말에 안장을 얹다가 척추를 다치고 다시 몇 년 후에는 가슴이 동맥이 터져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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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민우를 가르칠 때 내가 이런 브라우닝 부부의사랑이야기를 해주었나보다. 사랑의 힘을 믿는 민우의 앞날에 행복과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절실히 소망하며 나는 결혼 축하 카드에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또 다른 시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를 적어 주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방법을 꼽아 볼게요.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만큼, 넓이만큼, 그 높이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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