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비밀이야』의 작가 박현주가 작은 용기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전하는, 상쾌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 누구나 한두 번은 경험해 본 상황 초등학교 교실, 아마도 마지막 교시가 한창인 것 같은데, 창밖에 비 내리고 한 아이 고개 돌려 밖을 바라봅니다. 살짝 근심스러운 표정. 앞면지에 그려진 이 첫 장면을 보는 독자들은 십중팔구 ‘비 오는 날, 우산 없는 아이 이야기구나!’ 할 겁니다. 맞습니다. 첫 그림만 보고도 짐작할 만큼 이런 이야기는 드물지 않습니다. 다들 어린 시절 한두 번은 경험해 본 상황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빤한 이야기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산. 서둘러 책을 덮지 마세요. 이야기는 예외 없이 ‘문제 상황’을 다룹니다. 아무 문제없는 상황에서는 아무 사건도 생겨나지 않으니까요. 또, 대개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문제 상황을 다룹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테니까요. 그럼에도 그 이야기들이 다 다른 까닭은 반응하고 대처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 다른 까닭이지요. 그러면, 이 그림책의 주인공 아이는 비 오는 날 우산 없는 이 문제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했을까요? |
표지에 힘차게 달려가는 여자아이가 있다. 가방을 두 어깨에 걸고 두 주먹을 얼굴 높이에 오를 만큼 힘차게 저으며 달려가는 여자아이의 붉은색 상의가 마음이 한껏 상기되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아이의 얼굴도 발그레 물들었고 하다못해 그림자마저 붉은 기운을 띠고 있다. 비가 오는데, 세로로 좍좍 그어지는 빗줄기가 세찬데, 무슨 그림자람. 어떻게 붉은 그림자람. 그렇더라도, 그렇기에 더, 여자아이의 달리기가 시원하게 다가온다.
앞 면지를 열면 창으로 교실이 보인다. 모두가 수업을 듣고 있는데 붉은색 상의릉 입은 여자아이가 걱정스레 창밖을 내다본다. 우산을 안 가져온 까닭일 게다. 우산을 갖고 올 식구마저 없겠지. 그러니 걱정 가득한 눈으로 비가 그치기를 바라겠지. 그러나 좋은 일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랑 교실을 빠져나온다. 우산이 있거나 우산을 갖고 올 식구가 있는 아이들은 시끌벅적 장난도 치며 교실을 빠져나간다. 여자아이는 걱정 가득하다. 학교 건물 밖에는 이미 식구들이 여럿 와 있다. 아저씨 한 명이 마중 올 사람 없냐고 묻는다. 엉겹결에 엄마가 오실 거라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건물 안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데 준호가 온다. 작년에 같은 반을 했던 아이다. 준호는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가며 너는 안 가냐고 묻는다. 여자아이는 준호처럼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달린다. 준호랑 문방구까지 달린다. 문방구에서 비를 피하며 서 있는데 준호가 편의점까지 달리기 경주를 하자고 제안한다. 지는 사람이 음료수 사 주기란다. 여자아이가 돈이 없다고 말할 새도 없이 준호가 “준비, 땅!” 소리치고 달리기 시작한다.
준호가 이겼다.
음료수도 준호가 샀다.
“다음에 갚아.”
“그래. 이번엔 미미분식까지, 어때?”
내가 먼저 말했다.
여자아이의 마음이 이전과 다름을 알 수 있다. 비를 한걱정하며 바라보던 학교에 있던 여자아이가 아니다. 그러니 미미분식까지 하는 달리기는 여자아이가 이긴다. 다음은 피아노학원까지다. 다시 한 번 함께 뛰려고 하는데 준호가 피아노학원으로 들어가 버린다. 같이 뛸 동무가 없다. 그러나, 상관없다. 이미 비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여자아이가 되었으니 혼자 뛰어가면 그만이다. 아무리 비가 와도, 함께할 동무나 식구가 없어도, 이까짓 거!
아이는 수업시간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창밖을 걱정스레 바라봅니다. 밖엔 비가 오고 있거든요. 아이는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답니다. 우산을 가져올 엄마도 없는 상황입니다. 엄마가 우산을 가져 올 수 없는 상황은 여러 가지일 겁니다. 어쩌면 아이에겐 엄마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빤 일을 해야만 하고요. 아님, 부모님이 맞벌이부부여서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데, 아침에 우산 가져오는 것을 깜박 했을지도 모르겠고요. 아무튼 아이는 창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이 비가 잠시 후 그쳤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크겠죠.
하지만, 삶이 언제나 내 바람대로만 되는 건 아닙니다. 수업이 끝나 한 사람 한 사람 학교를 떠나는 시각, 아인 망설입니다. 이 비를 맞고 가야할까? 아님 기약 없지만 비가 그치길 기다려야 할까? 이런 망설임이겠지요. 쏟아지는 비를 향해 당당히 맞서 나가야 하지만, 여전히 그런 용기가 아이에겐 없습니다.
이때, 지난해에 같은 반이었던 준호라는 아이가 시합을 하자며 빗속으로 뛰어듭니다. 그 모습에 아이 역시 빗속으로 뛰어들죠. 함께 편의점에서 간식을 먹고 또 다시 빗속을 뜁니다. 준호가 다니는 학원까지 말입니다. 그리곤 준호는 학원으로 쏙 들어가죠. 아주 쿨 하게 말입니다.
이제 또 다시 아이 혼자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내리는 빗줄기에 맞설 용기가 이미 아이에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까짓 거!” 하며, 비를 맞으며 힘차게 뛰어간답니다.
그림책, 『이까짓 거!』는 우산도 없이 비 내리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우산이 없어도 겁먹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내어 당당하게 맞서 헤쳐 나갈 것을 말입니다. 아이가 커 가면서 우산도 없는 비 내리는 상황이 어디 한 두 번일까요? 앞으로도 수없이 그런 순간들을 만나게 되겠죠. 그럴 때마다 주춤거리고 주저앉는 인생이 아니라 그림책 속 아이처럼 당당히 맞설 수 있다면 좋겠네요.
또한 아이로 하여금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함께’ 빗길을 뛰었던 준호의 모습이 참 멋집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과연 준호에겐 정말 우산이 없었을까? 어쩌면 준호의 가방 속에 우산 하나 고이 접혀 들어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말입니다. 그 우산을 함께 펴고 비를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준호처럼 ‘함께’ 비를 맞으며 뛰는 모습이야말로 더 큰 용기를 갖게 해주는 좋은 방법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날 때, 이처럼 힘겨운 순간을 ‘함께’ 맞설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제 자신의 역할을 끝났다는 것 마냥 쿨 하게 학원으로 들어가는 그런 멋진 친구가 말입니다. 아니 우리 아이가 또 다른 아이에게 이런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네요.
숲노래 그림책
그림책시렁 537
《이까짓 거!》
박현주
이야기꽃
2019.9.25.
어릴 적에 “아, 비 오네. 우산 없는데.” 하면 우리 언니는 “비가 와서 뭐가 어떤데? 맞으면 되지.” 하고 말했습니다. 언니는 언제나 씩씩했고, 저는 늘 힘알이 없는 동생이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비를 맞이하는 언니를 바라보면서 ‘나는 뭘 걱정하고 뭘 생각했을까?’ 하고 돌아보곤 했어요. 예전에는 등짐이며 신주머니는 비막이가 안 됐습니다. 비가 오면 쫄딱 젖어요. 이때 언니는 “젖으면 말리면 되지, 뭘 걱정해?” 했지요. 그래요. 말리면 되지요. 돌이키면, 동무들하고 놀 적에 비가 오든 말든 대수롭지 않았고, 비가 오면 혀를 낼름 내밀면서 비를 먹는 놀이를 했어요. 소나기가 퍼부으면 “이야, 머리 감자!” 하면서 깔깔깔 뛰놀았습니다. 《이까짓 거!》에 나오는 두 아이는 비가 오는 날 비를 그으면서 달리기 내기를 합니다. 배움터를 다니는 아이들로서는 아무래도 ‘내기·겨루기’가 흔하기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몸짓일 테지요. 그러나 비에 온몸을 옴팡 씻고 나면 옷이고 등짐이고 내려놓고서 까르르 춤을 추면서 새로운 놀이를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온몸을 맡겨 앙금을 씻어요. 두 팔을 벌려 하늘은 안아요. 빗물은 사랑입니다.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