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2년 10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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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71쪽 | 548g | 140*210*30mm |
ISBN13 | 9788994343761 |
ISBN10 | 8994343768 |
출간일 | 2012년 10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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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71쪽 | 548g | 140*210*30mm |
ISBN13 | 9788994343761 |
ISBN10 | 8994343768 |
투철한 역사의식, 투명한 문체, 인간을 향한 깊은 연민… 러시아 대표 작가 울리츠카야의 대작으로 만나는 인간성과 역사의 참모습! 제2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걸작선이다. 세 편의 소설에는 대를 이어 세상의 풍파에 맞서 강인함과 인내를 나누는 여성을 그림으로써 문학작품에 있어 새로운 여성성을 창조해냈다는 평을 받은 작가의 특징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일상에 대한 섬세하고 세밀한 관찰과 친숙한 문체가 인간을 향한 깊은 연민과 맞물려 넓은 관용의 미학을 이끌어낸다. 대표작인 중편 「소네치카」와 장편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을 한 권으로 엮어, 작가의 다양한 문학적 면모를 종합적으로 만나볼 수 있다. 표제작 「소네치카」는 울리츠카야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다준 대표작이다. 러시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것은 물론, 프랑스에서 그해 가장 위대한 책에 수여하는 메디치상을 수상하는 등 러시아 안팎으로 울리츠카야의 이름을 알리며 많은 관심을 이끌어냈다. 여성과 가족에 대한 작가의 세계관이 가장 집약된 작품으로, 주인공 ‘소네치카’의 일대기를 부드럽고도 담담하게 그렸다.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은 작가가 가장 깊숙이 천착하는 주제인 가족에 대한 장편소설로, 고대 그리스신화를 모티프로 가져왔다. 유장한 세월 속 변모하는 가문의 운명을 끈기 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묵묵히 수용하고 용서하고 치유하는, 변하지 않는 모성의 위대함이 장대한 서사 속에서 빛을 발한다.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은 푸시킨의 동명 소설에 등장하는 백작부인을 닮은 노파 ‘무르’의 이야기이다. 토지문화재단은 제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울리츠카야를 선정하면서 “그의 섬세한 펜 아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 등 러시아 대문호들이 이끈 ‘구원의 미학’이 장엄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이 점이 울리츠카야가 21세기 세계문학 발전에 기여하게 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밝혔다. 소설 속 인물들은 혹한의 러시아에서 역사의 풍람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연약하지만 위대한 보통 사람이다. 사랑과 배신,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경험하지만 대단원에 이르러서는 결국 화해와 용서로 막을 내린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밟혀 휘청이면서도 억척스레 삶을 지킨 이들의 모습은 지금, 여기 한국을 사는 우리에게도 인간의 존엄과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
소네치카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스페이드의 여왕 작품 해설 제2회 박경리문학상 심사평 |
우선 러시아 문학을 생각하면 광할한 눈밭이나 추위가 떠오른다.커다란 대지위에 삶을 이어온 민족답게 스케일이 크고 방대한 무대를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제2회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한 '소네치카'는 현대 러시아 문학을 이끄는 작가중 한명으로 꼽히는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아주 오래전 전쟁이 휩쓸고 간 황량한 터전에서 비롯된 사랑과 삶의 끈질긴 모습을 그린 '소네치카'는박경리가 그렸던 '토지'의 '서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에서 느껴지는 강인함과 인내의여인상을 닮았다.'소네치카'는 넓은 어깨와 길고 가느다란 체격, 마른 다리와 평퍼짐한 엉덩이를 가진 못생기고 볼품없는소녀였다. 오로지 책을 읽는 낙으로 살던 소네치카는 독서광이 되어 전쟁후의 퇴락한 도시의 도서관사서로 근무하게 된다. 이곳에 책을 빌리리온 마흔 일곱살의 로베트트 빅토르비치와 첫 대면을 하게된다.1930년대 초 프랑스에서 고국으로 갑작스러운 귀향을 하게 된 그는 5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지금은보호관찰하에 공장관리부에서 화가로 일하고 있다.
첫눈에 소네치카가 자신의 아내가 되어줄 여자임을 직감한 로베트트는 두 번째 만남에서 청혼을 하게되고나이차가 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서로 다져진 소네치카의 지성에 반했던 것일까.아니면 정말 운명처럼 그녀를 받아들였던 것일까.비록 쇠락하기는 했으나 로베르트는 재능있는 화가였고 지성을 지닌 인물이었다.전후의 고국은 가난했고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결혼한 둘은 바시키리야의 다블레칸노보 마을에 정착하여첫 아이를 낳게 된다.억척스럽고 성실한 소네치카의 자신의 아름다운 집을 얻기위해 돈을 모으고 결국 원하던 집을 얻게된다.로베르트 역시 예전의 재능과 명성을 회복하여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들의 유일한 혈육인 타냐는아주 개성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로 가난을 모르는 소녀로 성장하여 난잡하고 자유분망한 생활을 하게된다.타냐와 같은 반에 있던 야샤는 폴란드출신으로 영민하고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여 러시아로 숨어들어온소녀였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낌없이 몸을 내돌리는 그녀는 타냐의 사랑에 힘입어 소네치카의 집에들어오게된다.금욕주의자처럼 보였던 로베르트는 사실 조국으로 돌아오기전까지 숱한 여성편력이 있었지만 욕망도 쇠락하여조용한 삶을 살던 중 야사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거의 딸아이와 같은 나이에 있는 소녀에게 청춘의 샘물과도 같은 열정을 얻은 그는 활기차게 그림을 그리게 되고결국 '하얀 그림'시리즈를 완성하게 된다.소네치카는 로베르트의 작업실에는 거의 들어가는 법이 없다가 어느 날 급한 일로 작업실을 찾게 된다.그곳에서 벌거벗은 남편과 야사를 보게되지만 그들을 용서하고 심지어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난 도무지 소네치카의 이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로베르트와의 결혼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할만큼 과분한 행복에 감사했던 소네치카에게 로베르트의 외도는마치 자신의 과분한 행복에 대한 댓가처럼 받아들여졌다.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과분한 상대에게 내미는 백지수표처럼.로베르트에게 소네치카는 안신과도 같은 고향의 이미지라면 야사는 열정을 북돋우는 화석과도 같은 존재랄까.결국 그녀와의 정사중에 급사를 하게 되고 소네치카는 성대한 장례식으로 존경하는 남편을 보내준다.제멋대로 자라 행방이 묘연했던 타냐는 열정적인 재능을 지닌 로베르트와 성실한 소네치카의 유전적 장점을나중에야 발현하여 안정된 삶을 살게되고 야사역시 소네치카와 함께 살다가 독립하여 결혼을 하게된다.대하소설 한편을 읽는 듯한 소네치카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조선의 여자의 일생과 많이 닮았다고 느껴진다.순종적이면서도 강인한 여인의 모습.아마 이런 점이 '박경리 문학상'을 받게된 이유가 아니었을까.1943년생이니 세계대전의 혼란속에서 성장한 작가로서는 소네치카가 살았던 시대의 생활상을 잘 표현할 수있었을테고 그 시대 어머니들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낸것 같다.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끔찍한 순종과 헌신의 모습이겠지만 그래도 어쩌랴. 그렇게 여인들이 그 고단한시간을 지나고 아픈 상처를 극복하고 살아왔음을.역시 '토지'의 서희의 모습이 겹쳐지는 역작이다.
이제와서 알고보니, 아직도 형제 자매들을 두고도 수십년을 이산가족인 채로 볼 수 없고 갈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린 북한에, 그 지척에 피붙이가 있을 수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만 빼고 세계 곳곳, 특히 서구 사람들이 북한을 꽤 여행하는 듯하다. 북한에 뭔가 멋진 관광지와 볼 거리 오락 거리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은 지구의 마지막 공산주의 체제를, 그 억압(이라고 믿고 있는)과 탄압 속에서 굴러가고 있는 공산주의의 살아있는 박물관을 보고 싶어하는 거다. 우리들의 사고와 가치관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어쩌다 태어나고 보니 소속된 그 체제 속에 깊숙히 뿌리를 박고 있다.
나는 소설속에서, 스테레오 타입의 여성이 희생과 인내 잘해줘봐야 그 인내 속의 강인함 모성 같은 걸로 다루어지는 게 가끔 못마땅하다. 그런 게 요구되는 사회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고 선하지 못한 인간이 되어 버리는 사회에서 그거 말고 다른 이상적인 여성상을 원하느냐 라고 하면서, 그것이야 말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똑같이 비슷비슷한 좋게 말해 헌신적인 삶, 실제로는 착취되는 삶만이 퍼져있다면, 왜 그 똑같은 삶이 소설 속에서 반복되는 것이 왜 어떻게 소설이 되고, 좋은 소설이 되고, 상 받는 소설이 되고, 널리 읽히는 소설이 되는가.
안나 카레리나가, 마담 보봐리가 그토록 윤리적 지탄을 받는 여성이 주인공임에도 수백년동안 읽히는 이유는, 그녀들의 삶이 용감무쌍하고 본받을만 하고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녀들이, 비록 독자들에게조차도 지탄받을 인격을 드러내는 일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그 여성들이 하나의 인간으로 다뤄지고, 그 불륜의 ‘악마적’ 욕망의 이면에 남녀 보편적인 그러니까 인간적인 진신들을 비추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체제가 배경이 되는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체제 내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무엇을 생각하였는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다. 북한을 여행하는 이유와 같다. 뭐 대단한 오락거리를 찾는 게 아니라, 그 체제 속의 사람들, 무늬만 공산주의의고 사유재산과 자유가 보장된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인권유린과 핵미사일과 같은 어두운 베일 속에 숨겨진 그 곳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확인하고 싶어서 서구 사람들이 북한에 여행을 가듯. 소비에트 연맹 시절의 러시아 소설을 읽었다.
스테레오 타입의 주체성 없는 여성의 대표는 미인이다. 미인에 대한 찬사가 빠진 자리에 추녀의 이미지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큰 키에 책만 읽는 소네치카는 도서관에서 만난 남편과의 삶 속에서, 자신이 그 남자에게 너무 너무, 그러니까 남자에게 부당하리만큼 과분하다고 생각한다. 세대만큼의 차이가 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인 남편이 당하는 체제적 억압과 그로 인한 가난마저도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 행복은 하늘같은 남편과 함께하는 한 어떤 역경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딸의 친구와의 관계를 확인한 후에도, 올 것이 왔다, 이 남자를 나혼자 오래 차지하는 것은 부당했다라고 생각할 정도다. 보통 막장 코드라 하면 부적절한 관계가 겹치기로 일어나거나 자극적이고도 부적절한 관계가 형성될 때 그렇다. 뭐 출생의 비밀과 불치병 같은 고전적 막장 말고 막장의 창의력은 무궁무진하다.
(늙은) 남편이 너무 멋있고 대단한 예술가여서 젊은 여자를 사랑해도 되고, 아니 그러는 게 당연하고, 자신은 그 젊은 여자애 마저도 품을 수 있다면, 막장 맞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진짜 막장이 아니다. 이 여자애가 딸의 친구인데, 딸이 사랑한다. 그러니까 이 고아애를 한 가족 세 사람이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극적 소재도 얼마나 밋밋하고 재미없게 쓰느냐에 따라 막장 코드를 벗어나 ‘박경리 문학상’을 받는 대단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문학상은 재미없어야 되는 거냐고!!!! 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이 자극적 막장 소재를 얼마나 잔잔하고도 평이하게 그리고 있는지, 하마터면 눈치채지 못하고, 타샤를, 야사를, 소네치카를, 그리고 우리의 늙고 잘난 그 러시아 예술가들에게 공감하며 이해할 뻔 했다는 것이다.
책소개를 하자면, 세 편의 중편이 들어있고, 그 중의 하나인데, 주로 가족 드라마인 것 같고. 작품 설명과 리뷰들을 읽어보면 세 편에 들어있는 소설들의 주제는 일관되게 가족과 여성의 인내로 다루어지는 듯하다. 바로 밑의 리뷰에서 로저 젤라즈니의 소설 속 여성은 번역되면서 둘이 대화할 때 남자는 반말 여자는 존댓말을 쓰는데, 고양이 인간들이 우주어를 쓰면서 한국적 존대-하대 문화를 흡수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리 남성 중심의 어머니들에게서 태어났다고 해도, 21세기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셔서 번역자들은 이 점을 신경써서 번역해주었으면 좋겠다. 부졸드 소설 속 여성들은 비록 그 미래의 세계에서조차 고립된 채로 700년을 지내니 다시 원시적 남녀차등의 문화로 돌아가는 행성이 배경이지만, 그 속에서 여성의 활약은 눈부시다. 여성은 존중받고, 대상화되지 않음에도 여전히 우주 전체를 달굴 엄청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는 뜨거운 로맨스를 갖는다. 여러 소설들을 배회하다가 소네치카 같은 여성들을 만나니, 이런 의문이 든다. 공산주의는 실패했다고 쳐도, 애초에 여성과 남성의 그 엄청난 간극을 메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면서 ‘공평’하다는 ‘공산’주의는 대체 왜 시작한거니. 이건 진보 인사들이 유독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는 현 시점에서도 돌이켜볼 만한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