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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하다

하와이하다

선현경 저 / 이우일 그림 | 비채 | 2019년 10월 1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3 리뷰 63건 | 판매지수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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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44g | 130*185*20mm
ISBN13 9788934999232
ISBN10 8934999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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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드디어 우리에게도 기동력이 생겼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 이 년 동안 포틀랜드에서 대중교통만 이용하다 차가 생기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그래 이 섬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해변을 낱낱이 찾아다녀보리라. 이 차와 함께 달려가 서핑도 배우고 잠수도 해봐야지.
차를 구입한 기념으로, 미국에서 이 년이나 지내면서 한 번도 못 가본 월마트Walmart와 코스트코Costco로 향했다. 크고 무거워 살 엄두를 못 낸 묶음 상품들을 사기로 했다. 맥주도 박스로 구입하고 물과 탄산수도 마음 놓고 샀다.
집에 도착해 우일이 내리며 앞좌석 문을 닫았는데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뒷좌석 유리창이 스르륵 내려갔다. 뭔가 조임쇠가 빠졌을지 모른다며 스위치를 작동했더니 반대쪽 창문마저 내려간다.
그날부터 뒷좌석 창은 손으로 밀어 올려야 닫혔다. 누구나 밖에서 열고 닫을 수 있는 수동 창이 되었다. 차를 잠그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 다음 날 트렁크를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는데 프라스틱으로 된 손잡이가 힘없이 바스러졌다.
--- p.25-26

얼마 전부터 알게 된 하비 친구 스펜서는 한국 TV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은 일본계 하와이 아저씨다. 그 역시 보디보드를 타다 알게 되었는데 만날 때마다 〈효리네 민박〉과 〈정글의 법칙〉을 이야기하더니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 표정까지 연기해 보여준다. 최근의 한국 프로그램은 잘 모른다는데도 나만 보면 한국 TV 프로그램 이야기를 꺼낸다. 바다 위에 둥실둥실 떠서 영어로 한국 프로그램에 대해 듣고 있으면 다 집어치우고 한국말을 하고 싶다.
〈나의 아저씨〉는 나도 보고 싶은데, 넷플릭스에도 없고 온디맨드ondemandkorea(미주 한국인을 위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사이트)에도 없다. 종영되면 어디라도 뜨겠지. 그나저나 스펜서의 아이유 흉내는 정말 못 봐주겠다. 말도 안 된다. 설마 아이유가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 p.125

감기에 걸렸다. 덕분에 나는 따뜻한 해변에 누워 책을 읽고 우일 혼자 보디보드를 타고 있었는데, 한 시간쯤 타던 우일이 조금 상기된 얼굴로 올라왔다. 머리를 와이키키 월(와이키키 해변과 퀸스 해변을 나누는 경계)에 부딪쳤단다. 왼쪽 어깨에 연두빛 이끼가 묻어 있다. 모자를 벗어보니 머리 껍질이 벗겨져 덜렁거리며 피가 흐르고 있다.
“집에 가자. 피 나잖아.”
“어떤데? 많이 안 좋아?”
“아니, 깊지는 않지만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하게 피부가 까져서 피가 흘러.”
“에이 별거 아니네. 쫌만 더 타다 가자. 오늘 파도가 너무 좋아!”
머리 껍질을 덜렁거리며 다시 바다에 들어간다. 좀비 같다. 파도가 유난히 좋기는 했다. 한일자로 넓고 힘 있게 들어오는 깨끗한 파도다.
--- p.144

은서의 조언대로 나도 슬쩍 브라를 벗어던지는 일상을 살고 있다. 벗고 살아보니 그동안 어찌 매일같이 착용했나 싶을 정도로 편하고 시원하다. 당연히 입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안 입을 수도 있는 일상으로 바꾸고 보니, 오랜 기간 갑갑하게 산 내 가슴에게 미안했다. 이리 쉽고 간단한 일이었는데 그간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고생이 많았다.
하이힐을 신고 드레스를 입고 싶은 날이 있듯이 브래지어를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생겼다. 잘만 입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선택형 브라 생활자로 살다 보니, 내 작은 가슴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작은 가슴이 좋아지니 몸에 자신도 생긴다. 나이가 들어 새롭게 반하게 된 내 신체 부분이 생기다니, 노브라를 미리 실천한 세상의 모든 그녀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 p.187-188

마지막으로 난로를 사용할 때 그는 다짐하며 외워두었는데 막상 돌아가 켤 생각을 하니 난감해진 것이다. 그 사용법이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힘들어한다. 아, 이 남자 이렇게나 그릇이 작다. 고민을 모래알에 숨겨둔 반지 찾듯 찾아낸다. 현실적인 석유난로 고민이 내 알 수 없는 두리뭉실한 고민을 한방에 날려 보낸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린 이렇게나 다르다. 그래서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한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나 뻔뻔하게 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 p.29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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