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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세입자

: 훈데르트바서, 첫 사랑의 문법

서윤후 저 / 국동완 그림 | 알마 | 2019년 10월 1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0 리뷰 1건 | 판매지수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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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338g | 134*195*16mm
ISBN13 9791159922688
ISBN10 1159922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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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흐려지지 않기 위해서
쓰레기소각장에서의 일주일
한 사람에게서 켜진 두 개의 이름
순수는 뒤에서 나를 부르고
수직과 수평
곰팡이에게 필요한 시간
어둠이라는 색깔
물로 그린 자화상이 있다면
그 자리는 그대로 두는 게 더 낫겠군요
겨울 숲에 날아든 새를 위해
사랑은 유머 일번지
나선형의 사랑 / 밤과 비
나선형의 사랑 / 대화의 굴곡
함께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프다(1971)
햇빛세입자
시 ― 밤 부엽토 잘 지내나요

풀베개가 되기 위한 새싹들의 전진
아침 퇴고
겨울잠 주무시는 선생님께
아직 지붕은 만들고 있거든요
소용돌이 속에서
잘 읽고 있어요
책 속에서 헤어진 사람들
보풀 떼고 입는 옷
아몬드 모양의 눈
나의 애독자에게
여기,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
시끄러움을 자처한다는 것
따뜻한 초조함
책상 일기
여러분 / 2018년 12월 10일, 서울과학기술대 시창작연습2 특강 원고
시 ― 사랑의 파도 위의 레겐탁

내가 훔친 인디언 보조개 한 개
식물 부음
타이쿤 형식으로
안식월
부동산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
나를 재워준 사람
슬픔이라는 생활
마음과 보자기
헐거운, 지난한, 그럼에도
한 뼘 나무의 두 마디 간격
꽃집에서
흑백 일기
지킨 약속보다 어긴 약속이 더 많다
시 ― 타오르는 겨울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정말 좋았던 시들은, 바람이 부는 곳과 햇볕이 드나드는 자리를 알고 제멋대로 창문을 열어둔 집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후자가 되고 싶어서, 애써 알고 배워온 것들을 잊어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숙련된 방식으로 시작하지 않게 된다. 서툴게 언어를 고르고 이미지를 불러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그 과정을 계속 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순수가 나를 불러줄 때까지.
--- p.27

상담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야기는,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제어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감정의 파동을 예민하게 감지하고는, 평정심을 위해서 불편한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한다는 점을 선생님은 꼬집었다. 물론 기쁜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기쁘거나 벅차오르는 감정마저도 냉철하게 억누르면서 지내온 내 방식이 지금 일어난 많은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수평대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나만의 균형 감각이 앞으로 가는 일엔 필요했지만, 깊어지거나 높이 가는 여정에 있어서는 불구의 자세에 가까웠다.
--- p.32

어둠 속에 모여, 더 어두운 것을 가리켜보는 것, 그래서 좀 더 어둡지 않은 것을 밝아 보인다고 말해보는 것, 그런 어둠과의 실랑이 속에서 우리의 문장이 계속되어간다는 것을 잠시나마 실감해보는 것이, 쓰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함께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겠냐고. 그래서 수업을 모두 마치는 날에는 가장 먼저 강의실에 도착해 출석부에 적힌 낯선 사람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읽어보며 혼자서 먼 배웅을 하기도 한다. 각자 문밖으로 나가면 다시 시작될 어두운 시간이 있을 것이기에. 온실을 떠나 거대한 숲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한편으론 안심이 되고, 한편으론 또 만날 것 같다는 이상한 예감을 혼자 겨누며 사람들의 이름을 자꾸 되뇌곤 한다.
--- p.43

나는 시의 마지막 문장을 늘 의심한다. 마지막을 위해 쓴 문장은 문을 닫고 영영 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 열려 있는 시, 문장들이 문을 여닫으며 환기하는 시, 그런 시가 살아 있는 시라고 믿는 나는 퇴고할 때마다 늘 마지막 문장을 지워서 보고는 한다. 그것을 어젯밤에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제는 채워서 이루고 싶은 게 있었고 오늘은 비우면서 이루고 싶은 게 있으니까. 어제는 허전해 보였을 것이다. 오늘은 마땅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시가 눈을 비비며 아침을 만난다. 탁자 위에 놓인 두 편의 시 위로, 거짓말처럼 햇빛이 기운다. 독백이 끝난 뒤 텅빈 의자를 비추는 핀 조명처럼.
--- p.80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통학 버스 타러 가던 길에, 봉고차 한 대가 내 앞에 섰다. 내 시를 읽어주던 선생님이었다. 창문을 내리고는 내 시가 적힌 종이를 펄럭이며 내게 무슨 말을 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시에 쓴 어떤 단어 대신에 이런 단어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었고, 나는 차 엔진 소리와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의 목소리 때문에 알아듣진 못했으나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버스에 올라타 생각했다.
내게는 고마운 일이지만, 이게 차를 멈춰 세워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
--- p.90

나의 작품은 마치, 삶이 시와 같을 순 없을 것만 같지만, 시가 삶에 끼어든 자체가 느껴진다고. 시가 삶에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내 삶도 시를 모사하기 시작했고, 생활의 반경과 시의 반경이 맞닿는 지점에서 긴장하고 위축된 근육처럼 경련하듯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더 많은 삶을 살아내고, 그렇게 돌아보면 삶 자체가 시처럼 보일 수도 있고, 삶 자체가 쓰다만 시처럼, 삶 자체가 시 한 편처럼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희망은 그렇게 날 선 종이처럼 온다.
--- p.104~105

나는 어떤 글을 쓰든지 간에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외할머니가 이 글을 어떻게 읽을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로, 이 문장이 흘러가 작은 연못이 되는 곳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발 담그며 푹 쉬고 있는 외할머니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매미 소리가 여름을 찢어가며 더위를 고조시킬 무렵, 그림자 작은 나와 동생은 그때만 해도 크고 웅장한 그림자를 가진 외할머니 뒤를 쫓아 시장에도 가고, 김밥도 먹고, 이상한 구구단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 여름이 나의 어딘가에 새겨져 무늬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리고 그 여름의 열기가 나의 춥고 얼어붙어가는 무언가를 녹여준다는 사실까지도. 훈데르트바서가 어느 날, 자신의 할아버지가 그릇에 예쁘게 꽃무늬를 그려넣은 것을 보고는 처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결심한 일처럼, 내 모종의 씨앗이 어디에서 불어왔는가 생각하면 그 방향은 따뜻하고 아늑한 쪽임이 틀림없다. 신파적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유일하게 생각하는 나의 드넓고 존재 자체로도 훌륭한 정원이 있다면 그것은 외할머니가 기르고 일궈온 작은 세계다. 나의 몇 가지는 그곳에서 걸음마를 배워 걸어나왔다.
--- p.121~122

여기에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건드리고, 그 이야기가 터져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또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노래 한 곡이 끌어당기는 우리 안의 이야기들, 각자의 이야기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이토록 작은 공간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 하거나 보여주고 싶어 하는 우리에 대해, 그리고 그것들이 끝끝내 건드리고 마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해.
--- p.127

첫 시집을 깊숙이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나다운 내가 있으니까요. 나는 여기 책 바깥에 있는데 책 안에 있는 것이 나를 원관념으로 무수히 많은 다발로 태어나 있으니까 징그럽고, 또 지금의 나보다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 p.144~145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더 많은 삶을 살아낸다면,
언젠가 삶 자체가 쓰다 만 시처럼,
한 편의 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시인 김소연은 이 책을 두고 “서윤후는 훈데르트바서를 곁에 두고 지내며, 그에게 닮아갔던 듯했다”라고 표현했다. 서윤후는 훈데르트바서의 예술에서 사랑의 방식을 발견하고, ‘궁금하다’는 기초적인 사랑의 문법을 따라 삶 자체가 쓰다 만 시가 되기를 매일 시도한다. 회사를 다니고, 시를 가르치고, 친구에게 너의 안식처가 무엇인지 묻고, 블로그에 책상 일기(‘DESK_RECORDING’)를 연재하면서.

“나의 작품은 마치, 삶이 시와 같을 순 없을 것만 같지만, 시가 삶에 끼어든 자체가 느껴진다고. 시가 삶에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내 삶도 시를 모사하기 시작했고, 생활의 반경과 시의 반경이 맞닿은 지점에서 긴장하고 위축된 근육처럼 경련하듯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더 많은 삶을 살아내고, 그렇게 돌아보면 삶 자체가 시처럼 보일 수도 있고, 삶 자체가 쓰다 만 시처럼, 삶 자체가 시 한 편처럼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희망은 그렇게 날 선 종이처럼 온다.”(104~105쪽)

서윤후에게 시는 “빛과 어둠 중에서 어둠에 더 가까운 얼굴”이다. 하지만 작은 방에 머물며 사유로 세계를 탐험하기보다 쓰는 사람들의 세계 곁에 머물기를 선택하는 사람이기에, 그의 삶을 닮은 시는 따뜻하고 다정하다. 건조한 일상에서 차분히 시적인 것을 찾는 시인 서윤후 특유의 감수성이, ‘무의식’을 대하는 태도를 고심하고 그 만남의 순간을 기록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국동완의 그림과 어우러져 생동하는 분위기가 책 안에 고루 깃들어 있다.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듣는 실내악처럼, 《햇빛세입자》는 삶이 시를 닮기를 원하는 독자들이 조용히 귀 기울여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진지하되 절박하지 않고,
성실하되 집착하지 않고,
혼자 쓰되 곁에 머물면서


이 책은 시인 서윤후가 훈데르트바서에게 받은 영향, 시 쓰기의 경험담, 일상과 생활의 장면이 담겨 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독자의 머릿속에 남게 되는 것은 분석되지 않은 하나의 이미지, ‘시로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의 모습이다. 빛 한 점 없이 지내던 고시원에서 물이 침대까지 차오르고,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변화하는 도시의 풍경에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고 그것밖에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재미있기에 입이 마를 때까지 시에 대해서 떠든 젊은 시인이, 책 안에 있다. 진지하되 절박하지 않고, 성실하되 집착하지 않고, 혼자 쓰되 곁에 머물면서. 무엇보다 자신이 쓰는 시에 정직하고자 애쓰면서. 예술이 펼쳐 보이는 사유에 매혹되어 본 적 있는 독자라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삶을 바친 두 예술가와의 만남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서윤후는 내가 오래 상상하며 기다려온 시인의 초상에 아주 근접한 사람이다. 서윤후를 멀찌감치에서 지켜보며 늘 생각했다. 미래의 시인이 지금 여기에 한 걸음 먼저 도착해 있구나 하고. 그게 나는 매번 고마웠다. 그러하므로, 서윤후의 둘레를 숨김없이 놓침없이 느끼기 위하여 《햇빛세입자》를 더 천천히 더 찬찬히 읽어갔다. 서윤후는 이번엔 훈데르트바서를 곁에 두고 지냈고, 그에게 닮아갔던 듯했다. 원칙을 만들고 원칙을 지키며. 인간을 아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며. 유연하게. 자유롭게. 그리고 근본적이게…. 덕분에, 내가 기다려온 한 시인을 나는 보다 자세히 만나게 되었다. 자세히 만나게 되었던 덕분에, 내가 무엇을 기다려왔는지도 보다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참 좋았다. 한 시인의 미래가 미덥게 와닿는다는 것. 더 미더워지면 더 기쁠 것 같았는데, 어쩐지 기쁨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래 품어왔던 고마움이 한결 더 짙어진 탓이겠다. 전부를 보답할 수는 없을지도 모를 만큼의 고마움에는 미량의 슬픔이 어쩔 수 없이 보태지나 보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의 사이좋은 시간”이 되나 보다. 당신도 이 책을 읽고서 나처럼 되길 바란다. 부디 당신도, 서윤후가 마련해둔 “기쁨과 슬픔의 사이좋은 시간”을 고마워하며 겪게 되기를.
- 김소연(시인)

회원리뷰 (1건) 리뷰 총점8.0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주말 햇빛세입자는..._047 (햇빛세입자)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J*y | 2022.09.17 | 추천8 | 댓글6 리뷰제목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왜 이 책을 추천했냐 물어보니, 생뚱맞게도 그 역시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며 이참에 읽어볼 계획이라 말한다. 그저 언젠가 들렀던 전시회에서 이 책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왠지 눈길을 끌어 사진을 찍어두었었는데, 이참에 읽을까 싶다며 멋쩍게 웃는다.   그렇게 조금은 갸우뚱 해지는 이유로 나 역시 이 책을 만났다. 하긴 어떤 책은;
리뷰제목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왜 이 책을 추천했냐 물어보니, 생뚱맞게도 그 역시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며 이참에 읽어볼 계획이라 말한다. 그저 언젠가 들렀던 전시회에서 이 책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왠지 눈길을 끌어 사진을 찍어두었었는데, 이참에 읽을까 싶다며 멋쩍게 웃는다.

  그렇게 조금은 갸우뚱 해지는 이유로 나 역시 이 책을 만났다. 하긴 어떤 책은 그렇게 예기치않은 순간 엉뚱한 인연으로 닿기도 한다.

 

햇빛세입자 그리고 훈데르트바서

 

햇빛이 세를 들어 사는 걸까? 아니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는 곳에 내가 세를 들었다는 말인가? 훈데르트바서..왠지 사람이름처럼 느껴지기는 하는데, 어느 나라 사람일까? 아니 어쩌면 사람 이름이 아닐 수도 있겠다. 표지에 적힌 제목과 뜻 모를 이름을 한참 들여다보며 무슨 뜻일지 추측해보기도 했다.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화가이자 건축가였다. 저자는 1928년 태어나 2000년 세상을 떠난 그 그리고 그의 작품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나는 훈데르트바서에 푹 빠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p.13

 

   자꾸만 그의 얼굴과 작품, 그가 설계한 건물이 아른거렸다. 사로잡혔다는 말을 처음으로 몸소 실감했다. 나는 아른거린다는 느낌이 아름다움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사랑을 예감했다. 계속 생각난다는 것, 아른거리는 신호가 나에게로 쏟아지는 것은 사랑의 암호이기도 하기 때문에...(후략) p.17

 

책의 중간 책의 제목이기도 한 햇빛세입자의 글에 이어 훈데르트바서의 나무세입자를 적어두기도 했다. 아마도 훈데르트바서를 향한 그의 마음을 적고 싶었나 보다.

 

   나무가 자랄 곳을 처치하고 그 자리에 건물을 세우는 것이니, 원래 있던 나무에 다시 자라날 공간을 줘야 한다는 것은 훈데르트바서의 주장이었다. ‘나무 세입자로도 잘 알려진 그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그것을 실현했다. p.51

 

   햇빛세입자

 

   1. 창문을 본떠 집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세입자는 아무런 소리 없이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줍니다.

   2. 햇빛세입자는 그림자를 소개해줍니다.

   (중략)

   4. 햇빛세입자는 가끔, 인간이 무분별하게 세워놓은 건물로 길을 잃기도 합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집은 우울합니다. 기본적으로 우울하기 때문에 치명적이지는 않습니다. 자주 눈을 비비게 될지도 모릅니다.

   5. 아침에 가장 영리한 시계가 되어줍니다.

   (중략)

   8. 햇빛세입자는 외부와 내부를 잇는 최초의 통로가 됩니다. 일시적으로 열리는 시간이 있으므로, 그 시간을 즐길 것을 권장합니다.

   9. 날씨를 간접적으로 중계하는 수다쟁이가 되기도 합니다. 햇빛세입자는 돌연 사라져버리기도 하고, 뜬금없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놀라지는 마세요. 인기척을 내지 않습니다.

   10. 햇빛세입자가 드나드는 자리에서부터 집은 유연해집니다. 암막 커튼으로 입장을 막았다면, 지금 당장 열어 젖히세요. 집에도 기분이 있다면 햇빛이 드는 자리에서 턱을 괴고 싶어 하니 그 게으름을 햇빛 속에 놓아주세요. pp.73-74

 

시인이기도 한 저자의 글은 조용조용히 마음에 닫는다. 저자가 들으면 멋쩍게 헛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단단히 땅을 딛고 서 있는 느낌보다는 어딘가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왠지 서글픈, 하지만 막연히 슬프다고 하기에는 부드러운 느낌이 공기를 감싸는 시간을 만난다.

 


 

*기억에 남는 문장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평적인 마음에도 수직의 비가 내릴 수 있다. 그것이 때로는 땅을 촉촉하게 만들 것이며, 널따란 수평의 대지 위에 나무처럼 자라 나의 생태계를 풍성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누군가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내 잔잔한 수평 위로 구슬을 던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을 가만히 붙잡아두기 위해서 물 아래 오리들의 바쁜 갈퀴처럼 힘을 더해야만 했다. 그 안간힘이란 것은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므로,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 잘 견디고, 단단한 사람처럼 보이길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p.33

 

사랑은 두 사람만 아는 유머 같아요. 그러니까 수백 명의 사람들 속에 있어도, 그 둘만 아는 유머를 알아보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을 수 있는 거요. p.58

 

일기를 오랫동안 써왔다. 일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기 쓰기가 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가에 대한 기록으로서 시간에 대한 존중이자 예의를 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으면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 같아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없었다. p.86

 

요즘엔 아침에만 볼 수 있는 풍경에 사로잡혀 있다. 어제와의 실랑이를 끝마치고 다시 새로운 시간에 접속하게 되는 그 접합 부근에서 나는 과거와 미래 사이 가장 풍부한 현재가 된다. 아침은 내게 그런 것을 준다. 원래 그런 것을 주려고 했지만 나는 이제야 받게 되었다. pp.86-87

 

나는 퇴고할 때마다 늘 마지막 문장을 지워서 보고는 한다. 그것을 어젯밤에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제는 채워서 이루고 싶은 게 있었고 오늘은 비우면서 이루고 싶은 게 있으니까. 어제는 허전해 보였을 것이다. 오늘은 마땅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p.87

 

시를 쓰다 보면 종종 마지막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헤매는 경우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마지막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것이다. 흰 종이 위의 검은 언어가 전하는 것은 마지막이겠으나 그 의미로 계속 숨 쉬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마지막, 문을 닫으면 다시 문이 열리는 세계가 그려지는 마지막을 언제나 꿈꿔왔다. p.94

 

예전이 그립다고 상정하는 것 속에는 그때만의 무모함이 담겨 있기도 하다. p.110

 

시간이 약이야, 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는데 나는 그 말을 자주 사람들에게 처방한다. 대신에 그 시간을 같이 해줄게” “함께 있어줄게라는 말을 덧붙인다. 너 혼자서 견디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필요할 때 그 시간이 첩첩산중으로 다가올 때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뜻이다. pp.175-176

 

헤매지 말라고 느슨하게 묶어준 것도, 흐르지 않도록 꽉 묶어준 것도 다르지 않은 것이겠다. 그렇게 펼치면 보자기의 양끝에는 다시는 펼 수 없는 주름이 져 있고, 나는 그 아름다운 무늬를 좋아한다. 그런 무늬를 누군가에게 만들어준 적은 없는 것 같아서, 아주 가끔 잘 포개어놓은 몇 장의 보자기를 보기만 한다. p.179

 

이별은 많은 약속을 철회하는 일이다 두 사람의 약속이 한 사람의 약속이 되는 순간이고, 그렇게 약속을 갈라 나눠 가진 채 미제로 남기는 것이다. 폐허에 세워진 시계탑 앞을 서성이거나, 함께 쓰던 물건을 흘러가는 시간에게 쥐어주거나, 약속을 지켰던 장면이 상영되는 극장 안에 홀로 앉아보는 일이다.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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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n | 202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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