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몬(Mammon)
세상이 왜 이렇게 엉망이 되었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마태복음 6장 24절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재정 강사답게 얘기를 하자면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려고 하늘에서 맨발로 뛰어오셨습니다.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건 안 된다, 절대로!”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긴다는 말은 심지어 하나님을 이용해서 돈을 좀 벌어 보자까지 가 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교회를 이용해서, 믿음이나 기도를 이용해서, 하나님을 이용해서, 예수님의 피를 이용해서 돈 좀 벌어 보자 하지 않습니까? 목적을 돈에 두기 때문에 이 두 가지가 필수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법입니다. 이 땅에 이미 선포되었기에 변경이 불가한 법입니다.
그런데 ‘재물’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맘모나스’(Mammonas)입니다. 돈을 관장하는 귀신의 이름이죠. 영어로 ‘맘몬’(Mammon)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너희가 ‘하나님 신’과 ‘돈 신’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하나님도 섬기고 돈도 섬기려 할까요? 구약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 내십니다. 시내 산에 데려와서 율법을 제정하고 이스라엘 나라의 헌법으로 선포하신 뒤 이스라엘 사람들을 40년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특별 훈련시키십니다. 40년 동안이나 그랬으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체질이 되었을 것 같지 않습니까?
가나안에 들어간 뒤 20여 년에 걸쳐 하나님 나라의 국토를 회복하시고 땅을 분배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일을 마치고 죽으면서 두 가지 유언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과, 남겨 둔 이방 족속을 진멸하라(헤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가 죽고 나자 여호와 하나님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왜일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제불능이라서 그럽니까? 머리가 모자라서 그럽니까? 40년이나 광야 훈련을 받았으면 체질이 됐을 법도 한데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입니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척박한 광야에서 무려 40년 동안이나 만나만 먹고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추수하던 날 아침까지 먹었습니다. 그 만나가 맛있었을까요? 먹을 때마다 군침이 돌았을까요? 아침도 만나, 점심도 만나, 저녁도 만나, 그 다음날 아침도 만나, 점심도 만나, 저녁도 만나… 1년 365일, 40년이나 먹은 그 만나가 맛있었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어땠을까요? 은혜, 감사를 되뇌며 맛있게 먹었을 것 같습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와 보니 그 땅에 사는 족속들은 기름진 쌀밥을 수북하게 담아 한 그릇씩 먹고, 고기도 종류별로 배부르게 먹고, 채소도 종류대로 맘껏 먹고, 주먹만 한 포도알을 쌓아놓고 먹었습니다. 그들의 풍요로운 식탁과 비교할 때 만나는 어땠을까요? “저런 것은 다 사탄 음식이여!” 했을까요? 그들 앞에서 기가 죽지 않았겠습니까?
또 그들의 의복은 어땠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출애굽 때 입었던 동물 가죽 옷이 가나안에 입성할 때까지 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40년간을 하루같이 입은 옷이 예쁘고 좋았을까요? 사시사철 입어도 싫증나지 않고 입을 때마다 감격했을까요? 가나안 사람들은 사시사철 옷이 바뀌고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런 의생활의 격차를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무슨 기분이 들었을까요? 기가 팍 죽지 않았을까요?
또 주거생활은 어땠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 생활 내내 천막생활을 했습니다. 낮에는 40℃가 넘고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맹추위를 오로지 천막 하나로 견뎌야 했습니다. 그들이 양치질을 제대로 했겠습니까, 샤워를 제대로 했겠습니까? 또 화장실은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임시인생을 무려 40년이나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사람들은 돌집에서 살았습니다. 거실이 있고 안방 건넌방이 있고 식탁이 있고 화장실도 따로 있습니다. 이런 문화적 격차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래도 “우리는 선민이여! 저런 건 다 사탄 문화여!” 하면서 거드름을 피웠을까요?
그들은 이방 족속을 찾아가서 “너네들 왜 이렇게 잘살아?” 했더랍니다. 그랬더니 그들 왈, “응, 그거? 햇빛을 주는 신이 있고 비를 주는 신이 있고 열매를 맺게 해주는 신이 있어. 그 신들에게 잘 보이면 이렇게 되는 거야. 그런데 잘못 보여서 태풍의 신이 쓸어버리면 끝장이지. 그래서 우리는 그 신들에게 잘 보이려고 날마다 온갖 짓을 다해”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하~! 그렇구나. 그런 신도 다 있냐? 우리는 여?와 신밖에 모르는데….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그들의 신을 섬기기 시작한 거죠.
그러면 여호와 신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그들은 여호와 신은 창조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전쟁에서 대신 싸워 이겨 주시는 그런 용도의 신쯤으로 생각했으므로 이방 신과는 역할이 다르다고 여겼습니다. 이것을 여호와께서 그냥 간과하실 리 없죠. 그래서 그들을 징계하시면 그제야 그들이 돌아서곤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 돈 신인 맘몬을 동시에 섬기다가 여호수아의 유언을 지키지 못했고 하나님 눈 밖에 나 처절하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돈 때문에 망한 것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기다가 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400년의 암흑기를 보내고 주님이 하늘에서 맨발로 뛰어 내려와 “하나님과 돈 신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 너희 조상은 그러다가 망했더란다. 너희도 너희 조상처럼 망하고 싶으냐?” 하신 것입니다. --- pp.32-37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여전히 아벨의 제사를 원하십니다! 아벨처럼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릴 때는 ‘아벨의 고백’을 꼭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이 헌금은 제 목숨입니다. 제 생명을 받아 주세요!”
또 십일조를 드릴 때는 ‘선악과 고백’이 하나 더 필요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선악과는 하나님의 소유권 표지입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고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따라서 하십시다.
“하나님, 나의 모든 소득과 나의 모든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으로 이 헌금을 드립니다! 받아 주세요!”
십일조든지 감사헌금이든지 구제헌금이든지 헌금을 드릴 때는 반드시 봉투를 만들어서 온 식구가 무릎 꿇고 둘러앉아 이와 같은 고백을 한 다음 교회로 가져오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고 와야 로마서 12장 1절의 산 제물이 됩니다. 지금까지처럼 월례행사 하듯이 기계적으로 헌금통에 집어넣는 것은 가인의 제사입니다. 이런 헌금은 하나님께서 안 받으십니다. 하나님께 전달이 안 되면 아무리 큰돈을 드려도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교회를 돕는 일은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과 통하지 않는 헌금이라면 썩어 버립니다. 생명의 고백이 없으면 헌금은 돈에 불과해서 썩고 맙니다. --- pp.138-139
적자일 때도 십일조 한다?
맨날 적자인 가정에서는 십일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드리기도 어렵고 안 드리기도 찝찝하시죠? 원칙을 먼저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돈을 맡기실 때 지출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우선순위(priority)란 두 개 이상의 요인이 상충할 때 어느 것을 먼저 하고 어느 것을 나중에 하느냐를 정할 때의 기준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돈을 주시며 어떤 우선순위를 우리에게 요구하실까요?
(중략)
적자인 사람은 대개 이 우선순위를 반대로 적용합니다. P3-P2-P1 이런 식으로요. 돈 생기면 옷부터 한 벌 사 입고, 여행 한 번 다녀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쌀 한 봉지 사고 김치 사고 나니 돈이 떨어졌네, 합니다. 월세, 관리비는 못 내겠네, 헌금은 꿈도 못 꾸겠네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살림을 방치하십니다. 하나님께 두 손 들고 찾아올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P1부터 지출하십시오. 적은 돈이라도 헌금을 먼저 떼 놓고, 그 다음에 투자할 금액을 단돈 천 원이라도 하고, 그리고 융자금 이자를 먼저 갚고, 그런 다음 필수적인 것을 해 나가는 겁니다. 만일 10번 교통비 항목에서 돈이 떨어졌다면 거기까지만 하는 겁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순종하는 이 사람의 살림을 보시며 “내 말대로 하다가 최소한의 생활도 어렵게 됐구나. 하고 싶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구나” 하시며 안타까워하시죠. 그래서 이 살림에 개입하기 시작하십니다. 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직접 풀기 시작하시죠.
그러므로 적자 인생이라면 먼저 돈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 모든 돈에 대한 대책은 하나님께만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대책을 마련하기 바랍니다. --- pp.150-151
신용카드 알뜰 작전
신용카드는 사용하자마자 빚을 지게 하는 무서운 속임수가 들어 있습니다.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떤 빚도 지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는 물건입니다. 그러므로 결제 기능을 바꾸기 바랍니다.
이것을 보완한 카드가 체크카드입니다. 체크카드는 사용하는 순간 통장에서 결제되는 카드입니다. 잔액이 부족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안 됩니다. 그것 안 사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신용카드가 더 편리합니까, 체크카드가 더 편리합니까? 신용카드는 잔액이 없어도 물건을 살 수 있으니까 더 편리합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가 진짜 숫자입니까? 아닙니다. 언제 얼마가 빠져나갈지 다 기억합니까? 못 합니다. 그러면 통장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지요? ‘에라 모르겠다. 일단 쓰고 보자.’ 이게 신용카드가 주는 독배입니다. 일단 쓰고 보면 망하는 길로 진입합니다. 체크카드는 할부가 되지 않으니 더욱 좋습니다. 소비벽을 어떤 것도 통제하지 못하는데 이 카드는 나를 자동으로 관리해 줍니다. 과소비도 막아 주고 소득공제에는 오히려 체크카드가 더 유리합니다. 신용카드는 마일리지다, 포인트다, 적립이다 해서 우리를 한없이 유혹하지만 그런 돈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내가 쓴 돈에서 나옵니다. 나에게 100원을 돌려주기 위해서 200원을 미리 더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일리지가 많을수록 더 많이 손해 봤다는 뜻입니다. 장사꾼이 손해 보는 것 보았습니까?
포인트나 적립이나 마일리지를 받기 위해서 카드를 쓰는 사람도 있는데 미친 짓입니다. 포인트는 구매 시에 즉석에서 사용하십시오. 절대로 쌓아 두지 마십시오. 쌓을수록 그들이 이익을 보고 나는 손해만 봅니다. 그동안 물가 오르지요, 카드를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 가게에 오랫동안 못 갈 수도 있고, 5년 후면 자동으로 삭제되어 기껏해야 본전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익만 있습니다. 무얼 바라고 다음에 사용하겠다고 벼릅니까?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고 그날 즉시 바로 사용하십시오. ‘더 큰 선물’이요? 그게 우리 인생을 바꿔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외여행을 갈 때는 반드시 카드를 소지하기 바랍니다. 그 나라 동전을 아무리 많이 가져와도 우리나라에 오면 어느 은행도 바꿔 주지 않습니다. 카드로 결제하면 1원 단위까지 깨끗하게 떨어지므로 이익입니다. 또 교통카드는 반드시 가지십시오.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추려서 가져야지 카드가 우리를 이용하도록 놔두면 안 됩니다.
카드의 편리성, 유리성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예컨대 현금서비스나 카드론은 절차가 너무나 간단하잖아요. 은행에서 융자받으려면 며칠씩 인터뷰해야 하고, 서류 떼야 하고, 사인하고, 도장 찍고, 승인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등 아주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그런데 카드는 집어넣기만 하면 즉석에서 돈이 나옵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그게 독약이라는 걸 사람들이 모르니까 독배를 들고 즐거워하다가 죽어 가는 것입니다. 제 전직이 무엇이었다고요? 카드 장수!
--- pp.205-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