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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

북클럽 『자본』 시리즈-07이동
리뷰 총점9.1 리뷰 4건 | 판매지수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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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304g | 126*186*19mm
ISBN13 9791185811994
ISBN10 118581199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의 말-거인과 난쟁이

1 착취의 진보

상대적 잉여가치 / 잉여가치를 늘리는 또 하나의 천재적 방법 / 경쟁의 강제법칙 / 추가 잉여가치 / 마르크스가 일일이 계산하는 이유 / 노동생산력 증대와 노동 단축은 별개 / 추가 잉여가치는 어디서 왔는가 / 강화된 노동 / 잉여노동은 기계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 착취의 진보 / 더 문명화하고 더 세련된 착취

2 ‘함께’의 착취

생산력을 높이는 두 가지 방법 / 작업방식과 기계의 변화 / ‘함께’의 효과 ①―평균노동의 실현 / ‘함께’의 효과 ②―생산수단의 절약 / ‘함께’의 효과 ③―추가 생산력의 창출 / 24개의 손을 가진 인간, 거인 노동자의 생산력 / 협업과 인간의 ‘유적 능력’ / 지휘자로서 자본가 / 위험한 진실 / 부르주아지가 원하지 않는 진실 / ‘함께’에 대한 배신 / 거인 노동자의 몫은 어디에? / 왕의 사업과 자본가의 사업

3 손이 된 인간-매뉴팩처의 노동자들

매뉴팩처, 손으로 하는 일 / 매뉴팩처의 두 가지 기본 형태 / 부분노동자, 손이 된 인간 / 500개의 망치―생산성 증대의 비밀 / 살아 있는 메커니즘 / 노동의 등급화와 자본가가 얻는 이득

4 사회적 분업과 매뉴팩처 분업 그리고 자본주의

매뉴팩처 시대의 학자 애덤 스미스 / ‘사회적 분업’의 두 가지 발생 형태 / 사회적 분업과 매뉴팩처의 분업 / 분업의 형태는 시대마다 다르다 / 자본의 부속물이 된 노동자 / 매뉴팩처 시대에 탄생한 학문 ①―산업보건학 / 매뉴팩처 시대에 탄생한 학문 ②―정치경제학 / 잉여가치 생산의 논리적 순서에 대한 오해 / 공장 밖을 서성이는 그림자

부록노트

I -도시와 농촌의 분리
II -마르크스의 인도론
III -아그리파의 우화
IV -과학적 관리법과 빨간 페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자본가에게 고용될 때 노동자들은 개인입니다. 서로에 대해 타인이지요. 하지만 작업이 시작되면 이들은 하나의 결합된 노동력을 이룹니다. ‘전체노동자’라는 거인으로 변하지요. 개별 노동자들은 이 거인 노동자의 특수한 기관이 됩니다. 거인 노동자의 수백 개의 손발 중 하나가 되어 내리치는 일만 하거나 자르는 일만 하거나 나르는 일만 합니다. 한 가지 작업에 특화된 ‘부분노동자’, ‘부분인간’이 되는 겁니다. 이 작업장에서 온전한 인격체는 거인 노동자뿐입니다. 그는 개별 노동자의 힘을 더한 것보다 더 큰 힘을 지녔고 작업속도도 빠릅니다. 당연히 수백 배나 많은 물건들을 만들어내지요. --- p.6

마르크스가 생산력이 높은 노동을 ‘강화된 노동’이라 부른다는 것은 노동의 추가 투입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보통의 경우보다 몇 배 늘어난 노동이라는 거죠. 노동시간은 그대로지만 실제로는 일을 더한 것과 같습니다. 꼭 고급노동, 복잡노동에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단순노동의 경우에도 작업속도를 높이면, 그러니까 노동강도를 높이면 노동시간이 같아도 실제로는 더 많은 노동을 한 셈입니다. --- p.54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은 이런 유적 존재의 성격을 잃어버립니다. 인간은 개별적 한계를 넘어선 유적 존재이지만 자본주의에서는 이것이 개별적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축소됩니다. 실천이든 이론이든 간에 자연과 관계하는 모든 행위가 먹고사는 문제로 축소되는 것이죠. 오로지 생존만 따지고 상품성만 따지고 돈만 따지지요. 굶주린 사람에게는 빵의 향기나 촉감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배고픔을 해소할 먹거리일 뿐이지요. 탐욕에 빠진 사람에게는 귀금속의 빛깔이나 물리적 속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재산을 불려줄 재물일 뿐이거든요. 이런 게 소외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노동의 매우 중요한 측면 중 하나가 바로 ‘유적 존재의 소외’라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유적 존재’는 인간의 본질인데요. 그런 점에서 이것은 인간본질의 소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p.80~81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인간을 대신해 인간존재의 유적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 있습니다. 온갖 사물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물이 있지요. 바로 화폐입니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폐는 인간과 인간이 갈망하는 사물 사이에 놓여 있는 ‘뚜쟁이’입니다. 사물을 사랑하고 싶다면, 사물을 누리고 싶다면, 먼저 이 뚜쟁이를 통해야 합니다. 사물을 갖고 싶다면 우선 돈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은 힘이 없지만 돈은 힘이 있고, 인간은 무능하지만 돈은 전능합니다. --- p.81

노동자들이 협업을 하면 추가 생산력이 나온다고 했는데요. 이는 말하자면 다수의 난쟁이 노동자들이 사라지고 한 사람의 거인 노동자가 출현하는 것입니다. 추가 생산력의 크기는 이 거인 노동자가 얼마나 온전한 형태로 출현하느냐, 즉 노동자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하느냐에 좌우됩니다. --- p.88~89

자본가가 생산과정을 지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만약 줄다리기에서 깃발을 휘두르는 사람의 목적이 줄을 당기는 사람들로부터 힘을 최대한 빼내 가기 위해서라면 아주 이상하게 들릴 겁니다. 더 많은 힘을 발휘하게 하는 이유가 더 많은 힘을 뽑아 가려는 것이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는 이상한 말이 아닙니다. 능력을 발휘하는 주체가 능력을 빨리는 대상이기도 하니까요. 자본가가 노동자들로 하여금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이유는 노동자들로부터 능력을 최대한 뽑아 가기 위해서입니다. --- p.92

이 신문이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실험을 끔찍하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혹시 자본가란 없어도 되는 존재, 생산에 불필요한 존재일지 모른다는, 자본가들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진실이 드러났기 때문 아닐까요. 어쩌면 더 두려운 것은 자본가에 대한 진실이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그냥 시키는 일이나 겨우 해내는 가련한 노동자들이 사실은 생산과 유통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라는 것 말입니다. 협동조합이 보여주는 정말로 위험한 진실은 그게 아닐까요. 노동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깨닫는 날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한발 더 나아가 자신들을 통치자로 그린다면, 다시 말해 그들 자신의 거번먼트를 상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야말로 부르주아들로서는 끔찍한 일이겠지요. --- p.99

기업은 공동체이지만 공동체에 대한 배신이기도 합니다. 공장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지만 ‘함께’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는 곳입니다. 적어도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서는 그렇습니다. 마르크스가 자본가적 지휘의 이중성이라는 말로 지적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지요. ‘함께’의 이유가 ‘착취’에 있는 한에서는 ‘함께’가 불가능합니다. 사회적 생산, 공동의 생산이 사적 소유를 위한 것인 한에서는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지요. 노동자들의 노동을 자본가가 구매한 상품의 소비과정으로 보는 한에서는 코뮨이 될 수 없습니다. 가축에게 사료를 주는 것과 동료와 빵을 나누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겁니다. --- p.102~103

이제 ‘독립’수공업자는 없습니다. 과거에는 독립수공업자였다고 해도 매뉴팩처로 들어가는 순간 더는 독립된 존재가 아닙니다. ‘부분노동자’라는 말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전체 일의 한 부분을 떠맡는 노동자, 제품의 일부분을 생산하는 노동자라는 뜻이었겠지만 이제는 노동자 자신의 존재론적 축소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고 할까요. ‘부분노동자’란 ‘부분으로 존재하는’ 노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부분인간’ 같다고 할까요. ‘부분노동자’는 온전한 노동자가 아닙니다. 그는 노동자라기보다는 노동자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26

매뉴팩처는 상품교환이 매개하는 사회적 분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었을 때 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가가 다수의 노동자와 많은 생산수단을 동원해 상품생산에 나선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의 상품유통이 활발하다는 뜻입니다. 즉 상품교환이 매개하는 사회적 분업이 상당히 발전해 있는 거죠. 사실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출현 자체가 그렇습니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자본의 근대적 생활사”가 “16세기 세계무역과 세계시장의 형성”으로 시작된 겁니다. 상품의 생산과 유통이 어느 정도 발전한 후에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출현하는 거죠. --- p.157

전체 공정을 여러 부분작업으로 나누고 노동자들을 평생 부분노동에 종사하는 부분노동자로 만드는 것, 전체 공정을 하나의 살아 있는 생산 메커니즘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은 노동형태만 보고 매뉴팩처의 작업장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해서 이것이 한 시대의 지배적 생산형태가 되었는지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스미스라면 이렇게 말하겠지요. 매뉴팩처 분업은 분업의 발전 형태인데, 분업은 인간본성에 속한 교환 성향에서 나온 것이라고. 결국 인간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인데요. 이것은 언젠가 말한 것처럼 역사가 아니라 형이상학입니다. --- p.168

우리가 이번 책에서 다룬 매뉴팩처 시대는 노동일 연장이 한계에 봉착한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노동일이 한창 늘어나던 때였지요. 자본의 논리적 전개상으로는 ‘절대적 잉여가치’ 다음에 ‘상대적 잉여가치’가 오지만 역사적으로는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납니다. 자본가는 노동일 연장을 통해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늘리면서 동시에 매뉴팩처 분업을 통해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도 늘리고 있었습니다. 상대적 잉여가치가 나타나면 절대적 잉여가치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그리고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절대적 잉여가치는 존재할 겁니다. 우리 시리즈의 지난 책들에서도 종종 언급했던 것처럼 자본의 논리적 전개 과정을 실제 역사의 전개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 p.183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노동자의 임금은 어디로 갔는가, 누구에게 갔는가

자본가에게 고용될 때 노동자들은 ‘개인’입니다.
하지만 작업이 시작되면 하나의 결합된 노동력을 이룹니다.
‘전체노동자’라는 거인으로 변하지요.
개별 노동자들은 이 거인 노동자의 특수한 기관이 됩니다.
하지만 임금을 지급받아야 하는 때가 되면
‘거인 노동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자본가 앞에 서 있는 것은 다시 왜소한 ‘개인 노동자’뿐입니다.
일은 ‘함께’ 했는데 ‘함께’는 사라지고 개인만 남습니다.
거인 노동자의 임금은 어디로 갔을까요.

1. 자본가는 ‘천재적인’ 방법으로 잉여가치를 ‘계속’ 늘린다!
― ‘상대적 잉여가치’와 ‘특별 잉여가치’의 개념과 ‘착취’의 진보에 관하여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을 더 심도 있게 공부해보자는 취지에서 2년여 대장정으로 기획된 [북클럽 『자본』] 시리즈가 이제 절반 능선을 넘어 고지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서며 그 일곱 번째 책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를 선보인다.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평이한 리뷰를 넘어 ‘철학자 고병권’만의 대담하고 도발적인 분석을 담아내고 있는 이 시리즈의 7권(신간)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는 마르크스의 『자본』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의 제10~12장을 다룬다.

시리즈의 지난 6권(『공포의 집』, 2019년 6월 발간)에서 저자는 마르크스의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개념을 소개했으며, 그 끄트머리에서 ‘자본이 맞닥뜨린 한계’를 언급했었다. 그때까지 자본가는 가치를 늘리기 위해 잉여노동을 확보해야 했고 그래서 ‘노동일’을 늘리는 방식을 썼는데, 이 방식은 물리학적?생물학적?정치적 한계가 뒤따랐다. 즉 ‘노동일’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도 24시간을 넘길 수 없다. 그렇다고 자본가가 노동자의 수를 마구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는 인구학적 한계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가’와 ‘자본주의’는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을 계속해서 일하게 하고 잉여노동을 짜내는 데 자본주의만큼 천재적인 체제는 없다. 자본은 자기 앞에 닥친 이 같은 ‘한계들’ 속에서도 기어이 출구를 찾아낸다. ‘노동일’이나 ‘노동인구’를 늘리는 것 말고도 놀라운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그 방법이란 바로 ‘상대적 잉여가치’를 늘려 ‘착취의 기술’ 자체를 고도화하며 ‘진보’시키는 것이다. 저자 고병권은 이 시리즈에서 종종 마르크스의 책 『자본』이 마치 ‘탐정소설’ 같다고 말하곤 했다. 밀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탐정처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그런 궁지에서도 자신들의 목표와 욕심을 결국 채워나갔는지 그 천재적인 기술을 드러낸다. 고병권의 신간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 1장에서는 ‘절대적 잉여가치’로 배를 불리던 자본가가 그 한계에 부닥치자 이번에는 ‘상대적 잉여가치’라는 기묘한 방법으로 ‘잉여가치율’을 높이는 자본가의 본질을 탐색한다.

‘상대적 잉여가치’를 늘린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노동력의 가치(가격)를 떨어뜨리고 노동생산력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고병권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노동생산력을 높이면 ‘비용’이 줄고 ‘이윤’이 올라간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기보다는 생산수단의 가치(불변자본)와 노동력의 가치(가변자본)를 일일이 구별하고 노동생산력의 상승이 결과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실제로 어떤 값을 변화시키는지 따진다. 그리고 여기에 입각해 ‘특별 잉여가치량’, 곧 자본가가 이른바 ‘노동생산력 증진’을 통해 얻게 되는 추가 잉여가치를 계산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가가 얻는 그 ‘추가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투자’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을 짜 넣는) 노동’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노동생산력이 증대하면 상품 1개의 판매가격에서 비용에 해당하는 부분이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엄밀히 말하면 비용에 들어가는 항목이 모두 감소하는 게 아니고 그중 ‘노동력의 가치’에 해당하는 부분만 줄어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생산력이 올라갔다는 것은 사용하는 원료나 기계의 비용은 그대로인데 제품 1개당 들어가는 노동량만 줄어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동력의 가치(=가격)를 그만큼 떨어뜨렸다는 의미다. 그러나 노동생산력이 증대한다고 해서 전체 노동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심지어 노동생산력 증대란 곧 노동강도의 강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날카로운 진단이다. 결국 자본가는 ‘강화된 노동’ 덕분에 상대적 잉여가치(와 특별 잉여가치)를 얻어내는 것이라고 저자 고병권은 설명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의 경우를 비교해볼까요. 처음에 잉여노동에 대한 자본의 갈망은 노동시간의 외연적(extensiv) 확장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지요. 그런데 노동시간의 외연적 확장이 한계에 부딪히자 이번에는 내포적(intensiv) 강화를 꾀합니다. 이것이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잉여노동이 노동시간의 연장(Extensitat) 즉 ‘연장된 노동’의 형태를 취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노동시간의 강도(Intensitat) 즉 ‘강화된 노동’의 형태를 취하는 거죠. 이 두 가지는 자본주의에서 잉여노동에 대한 자본의 갈망이 표현되는 기본 형태입니다.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노동강도를 높이거나. 노동자 입장에서는 이것을 과로의 두 가지 기본 형태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과로란 ‘장시간 노동’이거나 ‘고강도 노동’입니다. - 본문 56쪽, 1장 착취의 진보

2. 거인 노동자와 난쟁이 노동자들 그리고 자본주의
― 노동자는 ‘함께’ 일하지만 자본가는 노동자가 ‘함께’ 일한 값을 치르지 않는다

자본가는 노동생산력을 증대함으로써 노동자의 가치(=가격)를 상대적으로 떨어뜨려 잉여가치(자본가의 표현으로는 ‘이윤’)를 얻는다. 그렇다면 노동생산력 증대를 위한 자본가의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 고병권은 이 책의 2장에서 그중 한 방법인 ‘협업’의 문제를 꼼꼼히 분석해준다. 마르크스의 통찰에 따르면, 협업 즉 노동자가 ‘함께’ 노동할 때 자본가가 얻는 효과는 세 가지다. 첫째는 평균노동의 실현이고 둘째는 생산수단의 절약이며 셋째는 추가 생산력의 창출이다.

근대의 매뉴팩처 노동자는 ‘혼자’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함께’ 일한다. 자본가는 그저 다수의 노동자를 한곳에 모았을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숫자만 많아져도 달라지는 것이 있다. 한 명이 일하는 것과 열두 명이 일하는 것은 다르다. 어떤 ‘초과’ 내지 ‘잉여’가 거기서 발생한다. 노동력을 산술적으로 따지면 열두 명의 노동자는 노동자 한 명의 열두 배이지만, ‘함께’ 일하면 이런 식의 합산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리고 일정 규모 이상의 노동자가 모이면 이른바 ‘평균 노동자’라는 것이 존재하게 된다. 이 말은 공장이나 작업장 내에서 노동자들이 집단화되면 각 사람 특유의 차이나 우연적 편차가 해소되어 자본가가 전체 노동력을 보다 원활히 획득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자본가로서는 소수만 고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통제 불가능한 우연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큰 이점이다.

또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면 ‘실질적’으로도 자본가는 이익이 늘어난다. 우선 생산수단의 ‘절약’을 통한 이윤이 생긴다. 단지 많은 노동자들을 ‘함께’ 일하도록 시키기만 하면 ‘대상적 조건들’과 관련된 혁명이 일어나, 생산수단에 대한 효율적 이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한곳에 모으면 건물은 물론이고 용기, 기구 등을 함께 쓸 수 있다. 건물을 예로 들면, 어차피 임대료를 내야 한다면 한곳에 모여 일하도록 하는 것이 각각 건물을 구하는 경우보다 이득이다.

‘함께’의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함께’ 일하면 작업을 더 잘게 쪼갤 수 있다(‘분업’의 효과). 똑같은 일이라도 작업을 더 작게 나누면 생산량이 늘어난다. 예컨대 높은 곳으로 벽돌을 나르는 일을 할 때 저마다 벽돌을 들고 나르는 것보다는 쭉 늘어선 뒤 한 사람이 곁의 사람에게 전달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한마디로 작업속도가 빨라진다. ‘함께’ 하는 노동은 이처럼 공간 축소의 효과를 냄으로써 자본가에게 이익을 선사한다.

마르크스와 그의 해석자인 고병권은 이렇게 ‘함께하는 노동자들’의 모습(“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에서 ‘거인 노동자’를 본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더불어 사는 존재로서 ‘함께’ 일할 때 발휘되는 놀라운 힘이 거기서 나온다는 지적이다.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에서 저자는 마르크스의 표현 중 ‘결합노동자’ 혹은 ‘전체노동자’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결합을 노동자들의 결합으로, 즉 노동자들의 합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결합노동’의 수행자로서 ‘거대한 결합노동자’를 상상하는 것으로, 단지 노동자들의 무리(복수형)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한 사람의 노동자’(단수형)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거인 한 명이 일하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자 고병권이 발견한 ‘거인 노동자’다.

『자본』 본문에서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함께’를 무상으로 취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근대사회의 이념에 따르면 자유와 평등의 주체는 개인입니다. 시장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는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납니다. 구매자인 자본가가 꺼내는 돈이 사유재산이듯이 판매자인 노동자가 내놓는 노동력도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말하듯 1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자본가는 “단지 100명의 개별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이지 100이라는 결합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는 것은 아니”지요. - 본문 103쪽, 2장 ‘함께’의 착취

3. 자본의 부속물로 전락한 매뉴팩처 노동자들
― 사회적 분업과 매뉴팩처 분업 그리고 부분노동자

고병권이 분석한 마르크스에 따르면 ‘매뉴팩처’는 두 가지 방식으로 발생한다. 하나는 서로 독립된 수공업 부문의 노동자들을 하나의 작업장에 모으는 방식(마르크스는 ‘마차 생산 매뉴팩처’를 그러한 예로 제시)이고, 또 다른 방식은 동일한 업종의 여러 수공업자를 한데 모은 경우(마르크스가 든 예는 ‘바늘 제조업’)다. 이 두 가지는 그대로 매뉴팩처의 두 가지 기본 형태가 되는데, 마르크스는 전자를 ‘이종적 매뉴팩처’, 후자를 ‘유기적 매뉴팩처’라고 부른다. 전자는 상호 독립된 작업으로 생산된 부품들을 조립해서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경우로, 부품들 자체가 준생산물이다. 하지만 후자는 부품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그런데 둘 중 어떤 방식이든 간에 매뉴팩처는 기본적으로 ‘분업’에 기초한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분업의 방식이 자본가에게는 여러 가지 이점을 더해준다. 앞서 언급했듯 생산수단의 낭비를 줄일 수 있고, 원료와 부품의 이동거리가 줄어들기에 소요되는 노동력과 시간도 결과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 이런 이점을 간파해서인지,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책을 ‘분업’에서 시작하는데, 스미스의 그 주장을 요약하자면 인간의 교환 성향이 분업을 발전시켰고 분업은 인간의 재능과 생산력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매뉴팩처가 인간의 교환 성향에서 필연적으로 발전해 나올 수밖에 없는 분업형태라는 것이 애덤 스미스의 주장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묻는다. 정말 그런가? 자본주의사회의 매뉴팩처 분업이나 사회적 분업이 자연발생적 분업의 발전 형태일까? 또 자본주의사회에서 매뉴팩처의 분업이 과연 사회적 분업과 동일한 것일까? 마르크스는 스미스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그는 분업에 대해 단 하나의 새로운 명제도 내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분업을 강조했다는 점 때문에 매뉴팩처 시대를 총괄하는 정치경제학자로 불린다.”

신간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의 3장과 4장에 걸쳐, 저자 고병권은 스미스가 주장한 대로 매뉴팩처 분업이 곧 사회적 분업과 동일한 것일까 하는 문제를 분석·고찰한다. 애덤 스미스의 주장과 달리 ‘사회적 분업’과 ‘매뉴팩처 분업’ 사이에는 너무나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음을 그는 밝혀내면서, 아울러 자본가의 이중성을 논박해나간다. 매뉴팩처 분업이 탄생시킨 노동자의 실제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떠한지, 매뉴팩처 분업을 통해 과연 노동자와 자본가 중 누구에게 더 큰 이득이 돌아갔는지, 누가 더 행복해졌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근대의 매뉴팩처 분업이 난쟁이 노동자들을 얼마나 불구화했는지를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함께’ 거인 노동자로서 일한다. 그 거인 노동자 덕분에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챙겼다. 그러나 임금을 지불할 때가 되면 자본가는 ‘거인 노동자’는 지우고 상처투성이 ‘난쟁이 노동자들’만 눈앞에 남긴다. 그 난쟁이 매뉴팩처 노동자들은 이제 노동수단이나 도구와 마찬가지로 그저 거인 노동자의 ‘손’으로만 존재하는 부분인간으로 자본가 앞에 서게 되며, 자신들이 확대한 잉여가치 가운데 대부분을 그들에게 빼앗긴다. 게다가 그들이 만들어놓은 분업 체계에서 벗어나게 되면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들의 일터 바깥에서는 또 다른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앞서 나는 ‘부분노동자’를 ‘부분적인 일을 하는 노동자’로 읽지 말고 ‘부분으로 존재하는 노동자’로 읽자고 했습니다. 일종의 ‘부분인간’이라고요. 부분노동자는 온전한 노동자가 아닙니다. 노동자의 실존에 큰 변화가 생긴 거죠. 처음 노동력을 판매할 때 노동자는 자본가와 대등한 인격체입니다. 온전한 인간이고 온전한 노동자이지요. 그런데 매뉴팩처에서 오래 일하고 나면 ‘부분노동자’가 됩니다. 특정 부분노동에 최적화된 사람이 되는 거죠.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능력은 배가됩니다. 하지만 자본가의 작업장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특정한 배치를 이룰 때만 그렇지요. 그곳을 떠나면 어떻게 될까요. 평생 동안 바퀴만 조립해온 노동자를 떠올려봅시다. 그는 그 일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능력자입니다. 그런데 해고 통보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갑자기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무능력자가 됩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는 사람이지요. - 170쪽, 사회적 분업과 매뉴팩처 분업 그리고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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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자본』]이란?
천년의상상 출판사는 철학자 고병권이 ‘독자들과 함께’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어나가는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그간 ‘난공불락의 텍스트’로 여겨지며 수많은 독자들을 중도 포기하게 만든, 그래서 늘 미련이 남는 책 마르크스의 『자본』을 철학자 고병권의 오프라인 강의와 더불어 제대로 읽어나가려는 기획입니다. 2018년 8월부터 2년여 동안 격월간으로 『자본』을 더 깊이 해석한 단행본이 먼저 출간되고, 책 출간 다음 달에는 오프라인 강의가 진행됩니다(이 강의는 온라인으로도 제공). 자세한 출간 일정은 책 속의 ‘일러두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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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매뉴팩처 안에서 파편화되고 무능해지는 개인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초* | 2022.02.19 | 추천13 | 댓글0 리뷰제목
‘북클럽 자본시리즈’ 제7권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는 마르크스 [자본] 1권의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 대해서 쓴 글 중 10장에서 12장까지의 읽기이다. 10장의 제목은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이고, 11장은 ‘협업’ 그리고 12장은 ‘분업과 매뉴팩처’이다. 자본이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일이나 노동인구를 늘려야했으나 한계에 이르자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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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자본시리즈’ 제7권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는 마르크스 [자본] 1권의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 대해서 쓴 글 중 10장에서 12장까지의 읽기이다. 10장의 제목은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이고, 11장은 ‘협업’ 그리고 12장은 ‘분업과 매뉴팩처’이다. 자본이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일이나 노동인구를 늘려야했으나 한계에 이르자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상대적 잉여가치를 늘리는 방법이었다. 앞 권인 6권에서 절대적 잉여가치에 대해 설명한 저자 고병권은 7권과 8권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근대정치학은 두 종류의 인간을 상정한다. 집합적 통일체로의 인간과 그 구성원인 개별인간이 그것이다. 주권자라 불리는 집합적 통일체로서의 인간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거인에 비유된다. 반면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군주나 정부의 돌봄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흔히 난쟁이로 비유되곤 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자본가에 고용될 때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노동자는 독립된 개인의 자격으로 고용되지만 작업이 시작되면 결합된 노동력을 이루어 거대한 시스템을 구성한다. 그러나 임금을 받을 때는 전체 시스템의 한 부분인 개인으로 다시 돌아온다. 상대적 잉여가치란 바로 이런 구조 속에서 생겨난다고 말한다.

 

생산물의 가치(w)=생산수단의 가치(c)+노동력의 가치(v)+잉여가치(m)이다. 그리고 노동일은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합이다. 잉여가치란 잉여노동이 대상화 된 것이며, 잉여가치율은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비율 즉 m/v이다. 따라서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일을 늘리거나 고용을 늘려야 한다. (필요노동은 정해져 있기에 늘어난 시간만큼 잉여노동이 되거나, 고용의 증가로 잉여노동의 합이 커진다) 그러나 시간과 인구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자본은 새로운 길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노동력의 가치하락을 통한 필요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었다. 이처럼 노동일을 연장하거나 고용을 증가시키지 않고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비율을 바꿈으로써 얻어지는 잉여가치를 바로 상대적 잉여가치라 부른다. 이는 자본가가 그것을 염두에 두고 행동한 것이 아니라 작업방식이나 노동수단을 혁신함으로써 경쟁업체보다 생산성을 높인다는 생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혁신은 생산량 증가로 자본가의 눈앞에 직접적인 이익을 준다. 마르크스는 생산량 증가분이 주는 잉여가치를 추가 잉여가치라 부른다. 상대적 잉여가치가 전체 가치 생산물중 자본가와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의 비율을 바꾼 것이라면, 추가 잉여가치는 자본가들 사이에서 이익의 재분배가 일어난 것이다. 흔히 자본가들은 잉여가치율대신 이윤율(m)을 따진다. 이윤율(m=w-k)은 생산물의 가치(w)에서 비용가격(k=c+v)을 뺀 것이다.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잉여가치를 따지는 것은 비용과 이윤만을 가지고 따질 때 노동과의 관계는 사라지고 이윤이 자본 스스로의 운동으로 창조된 것이라는 환상을 품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시 말해 자본가가 원하는 것은 가치가 아니라 잉여가치이고 노동이 아니라 잉여노동이란 것을 이해한다면 이윤이나 이윤율을 사용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또 마르크스는 이런 노동생산력 증대를 강화된 노동으로 이해했다. 절대적 잉여가치는 연장된 노동의 형태를 취하고 상대적 잉여가치는 강화된 노동의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 자본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복리가 아니라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노동생산력을 증대함으로써 노동력가치의 상대적 비중을 줄이는 방법, 즉 상대적 잉여가치를 올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작업방식의 변화와 기계의 변화가 그것인데 저자는 작업방식의 변화가 이 책 7권의 주제라면 기계의 변화는 8권의 주제라고 말한다. 작업방식의 변화란 일정규모 이상의 노동자가 모여 ‘함께’ 일하는 것, 다시 말해 협업하는 것을 말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협업함으로써 자본가가 얻는 효과는 세 가지로 평균노동의 실현, 생산수단의 절약, 그리고 추가생산력의 창출이 그것이다. 이렇게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마르크스는 전체노동자 혹은 결합노동자라 했고 저자는 거인노동자라 부른다. 그리고 거인의 노동력에 대한 임금은 개별 노동자들에게 지불되지 않고 자본가의 차지가 된다. 노동자 추가생산력의 크기는 거인노동자가 얼마나 온전한 형태로 출현 하는가 즉 노동자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하느냐에 좌우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위해 자본가의 지휘가 필요하며 이 지휘는 최대한의 노동을 짜내 노동생산력을 증대코자 하기 때문에 착취이며 억압을 띨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공장의 자본가는 지휘자이자 진압봉을 든 경찰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협업은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약식의 기본 형태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적 협업은 전통적 협업의 발전 형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의 생산방식은 매뉴팩처이다. 매뉴팩처는 생산과정에 기계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사람의 손이 주요한 노동수단이었다. 마르크스는 매뉴팩처가 두 가지 형태로 발생한다고 보았는데 하나는 서로 독립된 수공업 부문의 노동자를 하나의 작업장에 모으는 이종적 매뉴팩처이고, 다른 하나는 동일한 업종의 여러 수공업자를 한데 모은 유기적 매뉴팩처이다. 그리고 어떤 매뉴팩처가 되었든 간에 노동은 기본적으로 분업에 기초한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분업은 노동자들의 노동이 부분노동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들을 부분노동자라 부른다. 그 결과 노동자는 독립성을 잃게 되고 그만큼 유능한 매뉴팩처 노동자, 즉 숙련공이 된다. 이는 노동자가 전체 생산 메커니즘의 한 기관으로 전락하여 기계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가지 일밖에 하지 못하는 분업은 노동의 종류뿐만 아니라 등급의 분화를 촉진하고 노동의 가치하락에 기여하게 된다. 당시의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매뉴팩처를 두고 사회적 분업이며 자연발생적인 분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사회적 분업이 독립된 다수 생산자를 전제로 한다면, 매뉴팩처 분업은 자본가에게 철저하게 예속된 부분노동자들 간의 협업이라며 매뉴팩처 분업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특유의 창조물이라고 강조하며 자본가들의 이중성을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매뉴팩처는 자본의 원리 내지 목적을 실현하는 방법 중 하나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법이라는 것이다. 착취사회에서는 진보도 이렇게 착취의 진보가 되고 만다.

 

부분노동자들이 숙련되어 갈수록 이들의 저항도 거세진다. 거인노동자는 언제든 믿음직한 일꾼에서 무서운 투사로 돌변하기도 한다. 공장은 자본가가 전적으로 지배하는 공간임에도 매뉴팩처 생산형태에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또 다시 고민한다. 그때 작업장 밖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있다. 저자가 다음 권에서 다루는 상대적 잉여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한 두 번째 방법 기계이다. 기계는 어떤 식으로 노동력의 가치를 떨어뜨릴까? 다음 권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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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포토리뷰 Think 8. 노동자들이 받는 몫은 정당한 걸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異**********나 | 2020.09.18 | 추천4 | 댓글2 리뷰제목
<가내수공업에서 매뉴팩처 공장으로 노동자들은 일터를 옮겨갔다> (출처: 나무위키)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의 주권을 한 사람(국왕)에게 위임하여 통치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만인은 각자를 위해서 투쟁적일 뿐이니 '정치전문가'인 국왕에게 주권을 일임하고 감시하는 역할로 물러나는 것이 국가를 위해 바람직하다며 초기 형태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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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수공업에서 매뉴팩처 공장으로 노동자들은 일터를 옮겨갔다> (출처: 나무위키)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의 주권을 한 사람(국왕)에게 위임하여 통치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만인은 각자를 위해서 투쟁적일 뿐이니 '정치전문가'인 국왕에게 주권을 일임하고 감시하는 역할로 물러나는 것이 국가를 위해 바람직하다며 초기 형태의 '사회계약론'을 주장했더랬다. 그런데 '매뉴팩처 시대'가 도래하면서 '거대공장'이 만들어지고 가내수공업에 머물러 있던 노동자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듯 흡수하여, 마치 '한 사람의 거인'처럼 노동자들을 일사분란하게 일하도록 만들었다. 애덤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분업'을 통해서 생산을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따로' 일을 하는 난쟁이 노동자가 아닌 '일사분란'하게 공동의 작업을 해내는 '거인 노동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의 효율적인 면에서 '거인 노동자'의 탄생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해서 소비자에게 더 많이, 더 싸게 '상품'을 공급할 수 있으니 대단한 효율인 셈이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본가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렇다. 노동자의 처지로 '거인 노동자'를 보았을 땐, '동일한 시간'을 일하며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효율성을 낳았는데도 '임금'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이득도 없는 '노동 방식'이었던 셈이다. 노동자는 별다른 생산효율성을 얻지 못하고 자본가의 배만 불려주는 이런 방식의 착취는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자본가들은 '이윤창출'을 위한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여 '또 다른 잉여노동'을 찾아냈다. 이전의 '천재성'이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늘리는데 혈안이 되었다면, 이번의 '천재성'은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건드리지도 않고 '잉여가치'를 창출해내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 '필요노동시간'은 노동자가 받는 임금만큼의 생산을 한 시간이고, '잉여노동시간'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을 초과한 만큼의 생산을 한 시간이다. 이를 더 쉽게 표현하면, '필요노동시간'은 자본가가 본전을 챙긴 노동시간이고, '잉여노동시간'은 자본가가 착취로 챙긴 노동시간이란 말이다.

 

  그래서 자본가는 '잉여노동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리기 위해서 노동자들의 건강이나 복지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루 16시간이고, 20시간이고, 필요하다면 연장근무를 통해서 40시간까지도 '합법적 노동시간'으로 만들어서 '잉여노동'을 늘려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체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고도 '필요노동시간'은 줄이고, '잉여노동시간'을 늘리는 천재적인 발상을 해낸 것이다. 바로 일사분란하게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거인 노동자'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전부'가 아닌 '부분 노동'을 시키려 한다. 왜냐면 '분업'을 해야만 노동생산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인 노동자들은 '전체의 공정'으로 나누어서 각자의 분업을 특화해서 할 뿐이다. 하나의 바늘을 만들기 위해 '철사를 자르는 사람'은 자르는 작업만, '구멍을 뚫는 사람'은 뚫는 작업만, '뾰족하게 가는 사람'은 가는 작업만 하게 된다. 이렇게 한 가지 작업에만 오랜 시간 하다보면 '신체가 특수하게 변해 버린 사람'이 된다. 쉽게 말해, '가위질을 잘 하는 노동자', '망치질을 잘하는 노동자', '숫돌을 잘 돌리는 노동자'로 점점 변하고 만다. 자신이 맡은 공정은 누구보다 잘하는 '전문가'가 되지만 다른 공정의 작업을 할 수가 없는 '불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단순 반복을 위한 작업에 특화된 '신체변형 노동자'가 되어 버린 뒤에는 노동의 보람이나 즐거움 따위는 느낄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노동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져 버리고 만다. 커다란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삶은 어떻게 될까.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지고 빠른 속도로 건강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더구나 힘들게 노동한 대가인 '임금' 또한 형편없다. 빈곤에 빠진 노동자계층은 어느새 자본가들이 마련해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안달이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니, '안달'이 아니라 '생존'일 것이다. 지금 일하고 있는 노동자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도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을 하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버린 노동환경이 자본가의 거대한 공장 '매뉴팩처'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자본가들이 돈을 버는 길은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은 '비싼 상품'이 아니라 '많은 이윤'인 탓에 상품을 '고가'에 파는 것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고부가가치', 다른 말로 '고잉여가치'였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값싼 상품을 마구 만들어내는 '값싼 노동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했으며, 더 많고 더 넓은 시장의 확대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일손을 덜어주고, 안락한 노동환경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자본가들은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면서도 '노동강도'는 절대 낮출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힘든 노동자들을 생각하며 '혁신적인 기계'를 내놓는다고 해도 자본가들은 이런 기대를 허물어뜨리고 '고잉여가치'를 위해서 박차를 가할 뿐이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지취자 역할'만 맡는다. 이를 테면, 양계장 주인은 암탉의 달걀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을 고려하며 24시간 '백열등'을 켜놓는 것 대신에 '적색 LED등'으로 교체하는 것에 머뭇거리지 않지만, 늘어난 달걀 생산량만큼 지치고 힘들 암탉의 건강증진을 위한 고민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왜냐면 양계장 주인은 달걀을 직접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백열등'일 때보다 '적색 LED등'으로 교체하면 한 달에 약 8000만 원의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결과를 보면 더욱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자본가는 거인 노동자의 협업을 지휘하면서 '함께' 노동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가 CEO라고 부르는 이들의 평균 연봉은 일반 노동자들의 약 40배나 된단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그 격차가 200배가 넘었고, 미국의 기업은 무려 270배 이상일 정도였다고 한다. 노동자간의 임금 차이는 그에 비하면 '새 발의 피'보다 훨씬 적었던 것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에서 일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 노동자일까? 아님 CEO일까? 물론 CEO도 기업을 운영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기업을 운영하는 일이 '전체 이득의 대부분'을 가져도 될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걸까? 과연 CEO의 몫은 정당한 걸까? 혹시 '거인 노동자의 몫'을 공평하게 나누어주지 않고 독차지한 것은 아닐까?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는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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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마르크스 – 거인의 출현을 알아보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초*공 | 2019.11.2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 받다》 강연 및 독서 후기[북클럽 ‘자본’ 시리즈] 제7권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마르크스 - 거인의 출현을 알아보다 19세기 자연주의 소설의 효시가 된 작가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에서 유럽 모더니티의 도시 파리에 거주하는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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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 받다 

강연 독서 후기

[북클럽 자본시리즈] 7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마르크스 - 거인의 출현을 알아보다

 


19세기 자연주의 소설의 효시가 작가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에서 유럽 모더니티의 도시 파리에 거주하는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있는 인구 이동의 양상은 농촌 지역의 인력이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제르베즈는 시골에서 미혼모로 아이를 낳아 연인 랑티에와 파리로 상경한 여인이다. 랑티에는 바람을 피우고 제르베즈를 버린다. 아이들과 남게 제르베즈는 세탁부가 되어 열심히 일하며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지만, 도시는 홀로된 젊은 여인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함석공 쿠포의 끈질긴 구애로 결혼을 하게된 제르베즈는 이웃집 청년 구제의 짝사랑이기도 하다. 소설의 내용은 여기서 그만 얘기하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현실이 흥미롭다. 에밀 졸라가 소설에서 묘사한 시대는 공장의 기계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정황을 담았다. 공장에는 거대한 기계 도입되어 노동자들은 해고당하기도 하며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하던 상황이었다. 공장의 생산 과정에 기계가 도입되어 발생하는 노동자의 소외 현상을 소설에서 발견할 있다. 기계의 도입에 따른 노동자의 대량 해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노동자들이 기계의 출현에 위협을 느끼던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펴볼 있는 것다. 소설의 어느 장면에서는 숙련공 구제가 기계와 경쟁을 벌여 승리하는 대목이 나온다. 내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인간의 승리 아니라 근소한 차이였다는 점이다. 잠깐 동안의 대결에서 인간이 기계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있을지 모르지만, 피곤을 모르는 기계 앞에 언제나 월등한 결과물을 생산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이 승리한 경쟁이었지만 석연치 않은 승리였던 것이다.

 


상품 생산과정의 분업화로 달인 이들 숙련공들은 기계의 도입으로 해고당하면 무용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번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 받다 저자 고병권 선생의 표현에 따르면 가지 일에 익숙해진 숙련노동자들은 직장을 떠나면 존재적 변형 경험하게 된다. 무기력하고 소외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편 소설 목로주점에서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우울증에 다름없는 무기력증에 빠져버린 제르베르를 비롯한 주인공들은 돈을 버는 대로 모두 맛있는 음식과 술로 배를 채우며 삶을 소진하고 그렇게 살다가 사라지는 존재로 그려진다. 사회의 부품과도 같은 존재로서 살아가는 도시 하층민의 삶은 자본가가 지배하는 삶의 양식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다. 작가 에밀 졸라는 이러한 도시 하층민의 일상과 이들이 처한 암울한 상황을 세심하게 소설에 담아냈. 바로 시대상이 아마도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주목하고 있는 현실과 부합할 같다.

 


 

자본가의 갈망과 절대적/상대적 잉여 가치에 대해

 

이번 일곱 도서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노동일 관련되어 있다. 노동일은 지난 6권을 떠올려보면, ‘하루 노동시간 의미하며, ‘필요노동시간’ + ‘잉여노동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시간, 노동일을 연장하여 많은 잉여수익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인간 노동자에겐 물리적, 생물학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하루 24시간 이상 일할 없으며,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에 휴식과 수면, 영양 섭취, 화장실 이용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활동으로 실제 노동일은 더욱 짧아질 수밖에 없다. 자본가의 욕망 추구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자본가가 노동일(혹은 잉여노동) 연장하여 잉여가치를 얻으려는 노력은 곧바로 제약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제약 조건 속에서 자본가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잉여노동을 늘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를 실행할 있는 방법은 필요노동 시간을 줄여 잉여노동시간 분을 많이 확보하는 길이 있다. 여기서 필요노동시간을 줄인다는 말은 노동력의 가치 줄인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가능한 경우는 여러 산업 부분에서 생산성 혁신 통해 동일한 노동시간에도 많은 상품들을 만들어 내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면 노동시간을 강제로 늘려 얻는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대신, 노동력의 가치를 떨어뜨려 실질적인 필요노동 시간의 여분을 줄임으로써 추가적인 잉여분을 자본가가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잉여분의 가치를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마르크스는 언급했다. 여기서 중요한 조건은 여러 산업 분야에서 생산력이 크게 증가해야한다는 전제다. 그래야 생활수단의 가치(: 노동자들의 생활 필수품 가격) 떨어지게 되어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질 있다는 점이다.

 


개념의 구체적 사례로 마르크스는 특별잉여가치(혹은 추가잉여가치) 제시한다.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특별잉여가치는 특정 기업의 노동생산력이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을 경우 해당 자본가가 추가로 얻는 잉여가치 의미한다. 마르크스가 가정하고 있는 자본가는 사업을 통해 사회에 이익이 되는 활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의 사업은 본질적으로 공익의 목적이란 없거나 2차적인 목적일 뿐이다. 자본가에겐 우선 이윤이 생겨야 계속 사업을 이어갈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란 전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자본가들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합법적으로사업을 해나가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문제 하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의 죽음의 밥상에서 피터 싱어는 우리의 먹거리의 윤리학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더하여 기업의 윤리를 짧게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여기에서 월마트의 사례를 들고 있다. 2003 현재, 월마트의 CEO 리스콧의 연봉은 기본급 보너스, 스톡 옵션을 포함하여 1740 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10년이 지났지만, 현재 환율로 계산해보면 200억이 넘는 연봉을 받은 것이다. 당시 월마트에서 일하는 풀타임 정규직 조합원의 연봉이 1 8천달러 수준이었다고 하니, 연봉 격차는 960배를 넘고 있다. 책의 1부와 2 끝에서 각각 언급하는 월마트의 사례를 통해 싱어는 월마트의 저렴한 상품 가격이 다른 누군가에게 비용을 전가한 결과일 있다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모습을 찾아 있다. 대기업에 부품 혹은 물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의 공급업자들은 대기업의 비용절감 전략의 대상이 된다. 월마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말하는 갑의 횡포는 월마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특히 월마트는 노조를 배제했었고, 4 가족의 조합원이 연봉으로는 빈곤선 이하의 기준이었다. 2005 기록에서 월마트 종업원 자녀의 거의 절반이 건강보험에도 들어있지 않거나 국가 의료보조를 받는다고 했다. 이를 버지니아 유뱅크스의 저작 자동화된 불평등 소개된 현실을 떠올려보자면, 국가의 금전적 지원을 받는 수혜 대상자에겐 사생활의 노출과 엄격한 규정의 준수를 강요 받는 상황으로 이들에게 되돌아오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피터 싱어는 자신의 저서에서 월마트에서 음식을 먹는 일도 상당한 윤리적 문제 내포할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강화된 노동과 착취의 진보, 그리고 거인 노동자의 탄생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 노동자의 노동일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특히 노동법이 제정되기 전의 19세기에는 나이 어린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15시간 이상 노동을 해야 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자본 출간한 1800년대 후반에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10시간 정도 언급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는 8시간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좀더 줄은 셈이다. 이처럼 생물학적 존재로서 노동자들은 노동일을 연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대신 자본가들은 노동의 강도를 높여 노동 생산력을 높이고자 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나온다. 채플린은 연장을 들고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나사를 조이며 작업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그는 다른 생각을 틈이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컨베이어 벨트의 속력이 빨라진다. 노동의 강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영화에선 개인 노동자로서 노동강도가 증가하여 노동 생산력을 증가하는 상황을 보여주었지만, 여러 노동자들이 함께일함으로써 추가 생산력을 발휘할 있다. 하나의 완성된 상품을 만들어내는데 많은 사람들을 투입하면 노동의 세분화가 이루어진다. 개별 노동자가 모여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데 거대한 노동자 되어 상품 생산에 추가적인 효율을 발휘하게 된다. 추가 생산력을 통해 추가적인 잉여를 만들어내지만, 추가 잉여가 노동자들에게 지불되는 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책에서 여겨 보아야할 지점은 마르크스가 주목했던 바로 이런 지점들이 아닐까. 이번 책의 제목인 거인으로 일하고 난쟁이로 지불받다 표현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나고 있다.      

 


개별 노동자가 거대한  전체 노동자 일부로서 부품화되는 것이다. 업무의 세분화에 있어서 끝판왕은 소련식 테크노크라시의 사례일 같다. 미국의 역사학자 로렌 그레이엄은 자신의 저서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에서 스탈린의 집권 이후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교양 교육이 사라져버렸다고 진단한다. 그레이엄 교수가 만난 소련 엔지니어 중에는 제지 공장용 베어링전공으로 학위를 받은 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같은(특정) 기계의 동력 파트나 다른 부품에는 세분화된 다른 학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기록에는 이런 내용도 보인다.

 

경공업 위원회는 기계 종류별로 압축기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링 전공을 만들었다. 중공업 위원회는 유성 페인트와 비유성 페인트를 다루는 엔지니어를 위한 별도 과정이 필요하다고 고집했다. 농업 위원회는 개별 농작물을 담당하는 농학자, 개별 동물을 다루는 수의사를 키워냈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124

 

다른 기록도 보인다.

 

소련 엔지니어링 교육에서 전공 분야가 급증했던 것은 전통 엔지니어링 분야를 끊임없이 세분했기 때문이었다. 기계공학은 관련 전공 수십 개로 나뉘게 되어, 심지어 농기계, 공작기계, 주조 설비, 자동차, 트랙터, 비행기 엔진 세부 전공이 생겨났다. 금속공학에서는 구리와 합금을 다루는 전문가를 따로 양성했고, (…) 엔지니어링 파편화는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124

 


서양의 과학사가들이 평가하듯 소련의 지나치게 세분화한 전공 엔지니어 양성은 전체의 일부로서만 기능하는 인력을 양성했다. 중앙 정부에서 어떤 일이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구성원들은 아무런 의문이나 개선의 여지 없이 자신이 맡은 업무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은 과도한 전체주의 혹은 독재체제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출간된 《북클럽 자본7권의 중심 화두는 노동자들이 모여 협업을 하면서 도출되는 전체 노동자혹은 거인 노동자 존재가 것이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모인 거인 노동자 단순히 개별 노동자들의 수가 더해진 산술적인 결과만이 아니라 무언가 놀라운 일들을 더하여 해낼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적인 인간은 사회적 인간’, 다시 말하면 인격이 축소된 평균적인 노동자로서 파악되는 인간으로 특정된다. 책의 후반에서는 매뉴팩처의 분업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채플린의 영화처럼 개별 노동자는 전체 공정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그저 앞의 일만을 전체 공정의 리듬에 맞춰 처리해내야 한다. 따라서 평생 가지 기능을 해내는 숙련노동자 탄생하게 되는 것이 매뉴팩처 분업 시기부터라고 한다. 이런 여건에 우리 몸이 맞추어져 신체의 변형이 일어나고 직업병이 발생하는 것도 바로 시기부터라고 있다. 개별 노동자는 거인 노동자의 일부로서 주어진 기능만을 담당할 , 여기에 새로운 생각이나 의견을 가질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결국 상황은 노동자들의 존재, 노동자들의 몸이 자본가의 부속물이 되어버린다는 점을 마르크스는 말하고 싶었던 같다.

 


특히 마르크스는 이런 양상이 노동생산력의 혁신으로 자본가는 추가 잉여를 얻게 된다는 점과 맞물려 있음을 중요하게 지적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바로 지점에 주목하고, 현상을 파악하는 모습이 바로 마르크스가 많은 후대사람들에게 여전히 놀라움을 안겨주는 이유가 것이다. 자본 썼던 마르크스가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았는지 책을 읽으면서 점점 알게 되고, 동시에 놀라움도 더해간다. 사회 현상에 대한 명민한 관찰이 군데 저서에 드러나는 경우는 많지만, 전반을 통해 자신이 파악한 현상 이면의 양상,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책을 통해 이렇게 유기적이고 치밀하게 담아 놓을 있었을까 놀라게 된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동의하는지의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다.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파악해보지 않고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이가 있다면, 사람은 단순히 지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만하다. 오늘날 자본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새롭게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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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3건) 한줄평 총점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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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4점
끝까지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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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h****n | 2020.12.16
구매 평점5점
1권부터 꾸준히 읽고 있어요~ 8권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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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a*****e | 2019.11.18
구매 평점5점
자본의 난해한 거짓말을 명쾌하게 밝히는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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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c******e | 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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