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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 당신이 모르는,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리뷰 총점8.5 리뷰 2건 | 판매지수 222
베스트
사회비평/비판 top100 1주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16g | 135*210*16mm
ISBN13 9791190422017
ISBN10 11904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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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프롤로그 모욕과 증명 사이 17

1부 관문

키워드 1. 모욕면접 29
덧붙임 패싱: 거짓 혹은 진실 46
인터뷰 직장에서 어떤 차별을 겪고 있나요? ① 51

2부 꾸밈

키워드 2. 꾸밈노동 55
키워드 3. 블라인드 면접 72
덧붙임 필요한 건 편한 옷 87
인터뷰 직장에서 어떤 차별을 겪고 있나요? ② 90

3부 위계

키워드 4. 유리천장 95
키워드 5. ‘어린 여자’ 정체성 121
덧붙임 퀴어 교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법 137
인터뷰 직장에서 어떤 차별을 겪고 있나요? ③ 142

4부 능력

키워드 6. 정규직 147
키워드 7. 공정 168
키워드 8. n포 세대 195
덧붙임 우리는 차별이 무엇인지 모른다 218
인터뷰 퀴어인 당신은 다르게 노동하고 있나요? 224

에필로그 낡은 작동 설명서를 버리고 227
덧붙임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로 만나다 241

감사의 말 247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바이섹슈얼bisexual인 미리는 잘리지 않기 위해, 임금을 떼이지 않기 위해, 안전하기 위해 ‘패싱’한다. 패싱passing이란 지나치는 일이다. 누구도 가던 걸음을 멈춰 뒤돌아보지 않도록, ‘그들처럼’ 보이는 일. 미리는 남녀가 짝을 이루는 것이 ‘정상’이라는 사회에서 ‘평범’을 행세한다. --- p.32

성소수자들이 이력서를 쓰면서 “자신이 모범적인 이성애자 여성/남성으로서 평생을 살아왔음을 증명” 하는 곤혹을 치러야 하는 것처럼, 비성소수자도 증명의 의무를 피해갈 수 없다. --- p.43

사는 일이란, 사람들이 나를 다르다고 느껴 뒤돌아보지 않고 지나가도록 하는 일의 연속이다. 우리는 다르지 않기 위해 연기하고 ‘노오력’하고 경쟁한다. 패싱은 ‘저들’만의 일이 아니다. --- p.44

나를 ‘나’로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는 현실로 인해 그 정도가 조율된다. 드러내지만 말하진 않는다. 온전히 드러냈다가는 폭력이나 해고가 따를 수 있다. 이력서에 성별정체성을 적은 이후 어떤 구인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트랜스젠더 나이스처럼 말이다. 대가를 무엇으로 치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 p.49

‘여자처럼’ 꾸미고 ‘여자처럼’ 말하는 일은 정현 인생에 없다. 그러나 회사 사람들은 정현의 성별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주변에 성소수자는 없다고 믿으니까. --- p.58

젊은 여성의 이미지는 하나의 ‘고객 서비스’로 취급된다. 바이섹슈얼 정체성을 숨긴 채 학원 강사로 일하는 부영은 학원에서 위화감을 느끼곤 한다. 자신만 머리가 짧다. 화장을 하지 않는 사람이 교사와 학생을 통틀어 자신뿐이라 했다. 63~64

일터는 무성의 공간이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으로 분류되고, 읽히며, 성 역할을 요구받는다. 성별화된 꾸밈과 역할이 이윤을 만드는 사회에서 ‘적합한’ 수행을 하지 않는 몸은 쓸모를 입증받지 못한다. 쓸모를 판단하는 감별사의 손에 들려 라인 밖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훈육되지 않은 노동자의 몸은 자본주의 세계관에 없다. 성소수자는 일터에 없는 사람이다. --- p.70~71쪽

우리가 아는 트랜스여성들은 너무 전형적인 ‘여자’다. 긴 머리에 꼼꼼한 화장, 볼륨감 넘치는 몸매. 세상은 이들이 ‘진짜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이라 편리하게 착각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다. 수술하지 않은, 꾸미지 않은 트랜스젠더를 세상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별 이분법에 갇힌 사회는 트랜스젠더에게도 남자와 여자 둘 중 하나를 골라서 살라고 한다. --- p.83

문제는 세상이 모호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남자 혹은 여자로 구분 지을 수 없는 수많은 특성들을 ‘예외적 경우’로 만들며 여(남)성성이라는 퍼즐 맞추기를 한다. 퍼즐이 완성되지 않으면 퍼즐 조각이 사라졌거나 맞추지 못한 개인 탓이라 여긴다. 완성된 퍼즐 그림 같은 건 원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 p.88~89

지금 하늘의 머리가 ‘여자’로 가득한 이유는, 그의 정체성이 ‘여자’와 ‘퀴어’로 양분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정체성들이 ‘세상 살기 편함’을 놓고 우위를 다투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들이 하늘을 오로지 ‘여자’로만 ‘읽어내기’ 때문이다. --- p.123

정체성을 내세운 차별을 금지하는 법적 제도가 우리 사회에 없다. 커밍아웃 이후 발생하는 일터 괴롭힘을 예방할 수 있는 교육이나 내부 규약도 없다. 해고, 괴롭힘, 불이익을 피했다면 그것은 ‘운’의 작용이다. 제도와 안전망이 없을 때 운이 거론된다. --- p.157

성소수자들, 특히 패싱 가능성이 적은 (성소수자임을 숨길 수 없는) 이들은 흙수저라 불리는 경제적 하위 계층의 운명과 유사해 보인다. 자원이 없다는 점에서다. 생계/존재를 유지하는 비용은 이렇다 할 자원 없는 개인에게 오롯이 지워진다.
--- p.159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누구도 가던 걸음을 멈춰 뒤돌아보지 않도록, ‘그들처럼’ 보이는 일

성소수자들은 출생 직후 의료 기관이 내린 성별 판단인 지정성별과 자신이 이끌리는 성적지향 간의 불일치 속에서 살아간다. 사회가 지정한 성별과 스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성별이 다른데, 그 ‘다름’을 사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상정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삶은 가혹하다.

결국 직장을 다니는 성소수자들에게 가장 중대한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것이다. 소위 ‘패싱passing’이라고 하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 여겨질 수 있도록 외양과 행동을 위장하는 일. 이들은 직장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다. 그래서 이들은 각본을 필요로 한다. 그 연기는 ‘그저 연기’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되는 행위다. 애인 유무와 결혼/출산 계획까지 꼬치꼬치 캐묻는 직장에서 성소수자들은 내일 당장 없어질지도 모를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기한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는 ‘이성애 각본’이 너무나도 당연한 직장에서 이들은 자신의 진짜 애인을 이야기하는 대신, 가짜로 꾸며낸 ‘애인 캐릭터’의 정보를 읊는다.

“직장에서 이야기할 때 강표는 애인의 성별은 물론이고 나이까지 거짓으로 말한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연하 남성과 연상 여성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성 커플의 경우에는, 화장품을 같이 쓰고 있다거나 여자대학에서 만났다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조금 더 철저하고 싶다면 가상의 남자친구가 나온 군부대 명까지 정해두는 준비성을 보인다.”

완벽한 거짓말을 위해선 훨씬 더 섬세한 지문과 대사가 필요하다. 이 ‘치밀하고 섬세한 각본’은 참을 수 없이 버겁다. “사람들이 의심할 틈 없게 끊임없이 이성애자인 척”해야 하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피곤한 일이다. 집에 돌아와 낮에 동료들에게 한 말을 자꾸 되짚어본다. 혹시라도 실수가 있진 않았는지, 늘 염려한다. 만약 이 각본을 던져버린다면? 대가는 작지 않다. 정식 직업을 포기한 채 단기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고, ‘구직이 일상’인 삶을 이어가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직장을 포기해야만 한다.

세상이 네모인데, 당신도 네모입니까?

세상은 남자와 여자가 맺어지는 일을 ‘정상’이라고 규정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는 일이 ‘당연한’ 사회에서 ‘정상’으로 살아가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 싶지만, 성소수자들에게 그런 연애는 당연하지 않다. 면접관/직장 상사의 무심하지만 노골적인 ‘애인 있느냐는’ 질문이 이들에겐 사회 규범을 재확인하는 고도의 검열이 되는 이유다. “세상이 네모인데, 당신도 네모입니까?”

‘정상’이라는 범주 내에서 살아가는 일도 결코 간단치 않다. 이성애 규범을 따르는 일에는 상대에게 ‘이성으로 보일’ 성 역할을 수행한다는 옵션이 붙어 있다. 즉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외모, 옷차림, 품성, 행동까지 ‘풀장착’해야 한다. 이는 누가 어떤 노동을 도맡느냐와도 직결된다. 결혼해 가정을 이룬 순간부터 여성의 일은 ‘육아’와 ‘살림’이 되고, 집 밖 노동은 남성의 일이 된다.

이 틀 밖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에게 삶은 고통이다. 이들은 그저 ‘자기 자신’으로 받아들여지길 원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가는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알 수 없다. 직장에서는 폭력, 따돌림에 노출될 수 있고, 해고될 수 있다. 아니, 해고되기 전에 취직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제 인생이 ‘트루먼쇼’라고 생각했어요. 순간 의심스럽더라고요. 어떻게 짜 맞춰진 것처럼 삶이 고통의 연속이 될 수 있을까. 누가 조작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웃팅 당하고, 왕따 당하고. 어떤 형태로 사회에서 내가 억압받는지 계속해서 체감해야 하고. 이렇게까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을까.”(마늘, 젠더퀴어-퀘스처너리)

노동시장에서 성소수자가 받는 차별은, “포기해야 할 직장이 너무 많”(규원, 바이섹슈얼)다는 것, 더 정확히는 “거의 모든 직업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 자체다. ‘여자여야’ 뽑히고, ‘여자로’ 일해야 하는 직장으로 가지 않는 것을 선택한 이에게 남겨지는 일은 단기직이나 아르바이트뿐이다.

평생 아르바이트만 한다고 해도 문제는 생긴다. 그런 단기 일자리는 대다수가 서비스업으로, 대부분 ‘여자’를 채용하기를 원한다. 즉 화장을 하지 않거나 치마를 입지 않는 등 ‘여성에 적합한 외모’를 꾸미지 않는 사람은 아르바이트조차 구할 수 없다.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성소수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편의점, 식당 주방, 피시방 정도다. 최저시급과 고단한 육체노동으로 대표되는 일자리.

“일을 해보니까 일찍 병이 날 거 같아요. 확실히 육체적으로 어려운 걸 하니까 몸이 축나더라고요. 젠더 수행을 하기 싫은 사람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고. 이런 걸 하면 일찍 죽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용도로 제가 사용된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살고 있어요.”(규원)

‘꾸밈노동’이 말해주는 불편한 진실

그렇다면 지정성별과 일치하도록 외모를 꾸미고 살면 인생이 좀 더 편해지는 걸까? 지정성별이 ‘여성’인 성소수자들은 이와 관련해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외모를 꾸미든 꾸미지 않든 여성들이 직장에서 외모 규정, 외모 지적/품평을 피할 길은 없다는 사실이다.

직장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서는 ‘여성’, ‘여직원’의 용모를 유독 강조한다. 외모를 꾸미는 일에조차 강력한 성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기계발의 한 영역이 된 외모 관리에서 남녀 모두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지만, 그럼에도 ‘더’ 꾸며야 하는 성별이 있는 것이다. SNS상에서 ‘여자는 고기처럼 부위별로 나뉘어 품평당한다’는 말이 떠돌듯, ‘꾸밈’은 유독 여성에게 강조되고 강요된다. “왜 머리 안 기르니?”, “왜 치마 안 입니?”, “살 빼면 남자들이 좋아하겠다”…… 일터에 들어온 이상 이런 식의 외모 공격과 성추행 발언을 피해가기란 어렵다. 다만 꾸미되 치마가 너무 짧아선 안 되고, 화장도 너무 진해선 안 된다. ‘여성에 적합한 꾸밈’을 수행하되, 그게 “여자가 그게 뭐니?” 따위의 소리를 들을 게 뻔한 꾸밈이어선 안 된다.

다시 말해 여성들에게 ‘꾸밈’은 하나의 ‘꾸밈노동’이다. ‘꾸밈’이 ‘노동’이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성소수자들의 경험과 비성소수자들의 경험이 만난다. 그들 역시 ‘여성에 적합한 꾸밈’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차별적 ‘외모 공격’의 대상이 된다. 그들 인생에 ‘여자처럼’ 꾸미고 ‘여자처럼’ 말하는 일은 결코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성별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의심의 여지없이 ‘여성’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들이 ‘여성 꾸밈’ 규정을 피해갈 길은 없다. 이 모든 게, 내 주변에 성소수자는 없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회사에서 ‘여직원’인 정현은 회사 밖에서는 남자로 여겨진다. 셔츠에 면바지, 옷차림은 어디에서나 같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정현을 ‘여직원’으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달라졌을 뿐이다.”

여성 혹은 남성만을 전제하는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 성정체성인 ‘젠더퀴어-퀘스처너리’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한 인터뷰이(마늘)는 콜센터를 직장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콜센터는 ‘용모 단정’ 같은 것을 아예 고용조건에 넣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콜센터는 노동자의 외모를 알 리 없는 외부 고객들의 평가가 중요한 직종으로, “말만 또박또박 하면 되는” 곳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몸이 가려진 곳에서 ‘뜻밖의 공정함’을 발견하게 된다.

실패한 모든 몸들의 이야기

낮은 지위에 있는 노동자일수록, 즉 여성, 낮은 연령, 불안정한 고용(비정규직)일수록 직장에서 더 많은 요구를 받게 된다. 특히 노동자의 성별화된 신체를 서비스 자원으로 활용하라는 요구는 매우 흔하다. 성별은 지위에 늘 관여한다.

“여자(성별)를 강조한다. ‘여자 말’을 하게 한다. (한때 논란이 된 114 안내 서비스 노동자들의 매뉴얼 멘트 “사랑합니다, 고객님”이 대표적이겠다. ‘여자 꾸밈’을 하게 한다. 여성다운 차림은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바를 고객과 직원 모두에게 각인시킨다. 여자 옷을 입은 노동자는 어디까지가 업무인지, 감정노동인지, 여성의 덕목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 노동을 한다. 그 혼란이 이윤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꾸밈노동’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또 하나의 진실이다. 비성소수자들과 성소수자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말이다. 남자 혹은 여자의 꾸밈이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는 세상에서 괴로운 이는 성소수자뿐만이 아니다. 꾸미지 않는 여자, 왜소한 남자, 선머슴 같은 여자, 깔끔한 남자도 괴롭다. 우리의 존재는 성소수자들과 무관하지 않다.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성소수자들이 사회의 다른 소수자들과도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공유한다고. ‘다른 몸’을 지닌 이들은 언제나 배제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신체 사이즈가 아닌 몸”은 손쉽게 ‘장애’로 판명된다. 모두가 건강과 정상을 꿈꾸는 사회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장애’의 영역은 더 넓어진다.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신체 범주가 점점 더 좁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몸이 우리를 배신할까봐, 살이 찌거나, 주름이 지거나, 너무 빨리 노화되거나,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심해지게 될까봐”(실비아 페데리치), 다시 말해 우리의 몸이 ‘정상’이 아닐까봐 전전긍긍한다. 장애 여성, 나이 든 여성, ‘정상 체중’에서 벗어난 여성의 몸이 어떤 취급을 받으며 ‘여성’의 범주에서 배제되는지 떠올려보라.

퀴어는 일터에 있어야 한다, 퀴어인 그대로.

성소수자들은 스스로가 일반적인 길에서 벗어나 “제 길”을 간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의 벗어난 길이란 이런 류의 대화와 일상이다. 여자 이야기가 나오면 외모 품평부터 하는 대화 패턴, 아파트 평수와 자녀 성적과 남편 건강으로 채워지는, ‘이성애 정상 가족’의 ‘소소한’ 일상. “이 소소함과 평범함 속에 성별을 포함한 모든 권력 위계를 내면화하는 잔인함이 숨어 있다. 우리의 일상은 잔인한 상식을 이어 붙인 징검 다리와 같다.”

그 징검 다리를 밟지 않고 물가를 걷는다는 건 어떤 일일까. 어떤 이는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밝히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또 어떤 이는 오히려 더 ‘주류’에 편입되고자 했다. 경계의 밖으로 가는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주류에 머물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저는 퀴어이지만 퀴어이고 싶지 않아요. 내가 ‘나’인 걸 받아줄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니까요.”(강표, 게이) 그럼에도, 가능한 한 커밍아웃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것을 빼놓고는 나를 설명할 수가 없거든요.”(혜민, 바이섹슈얼)

경계에 서면 그간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이 낯설어진다. 일터의 성소수자들은 생산과 효율을 위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정상’으로 재생산해내야 하는 노동을 낯설게 바라보는 이들이다. 그들의 그 경계성이 경계의 안과 밖을 뒤흔든다. 경계에 선 성소수자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계속” 살아갈 수 없는 또 다른 삶들과 만나게 된다. ‘정상’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규범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사라짐을 강요받는 수많은 존재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존재 자체를 이유로 사라짐을 강요받는다. 뚱뚱한 여자,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자, 장애인, 질환자, 비대졸자…… 정상성에 부합하는 몸을 갖춰 환대받는 이들의 삶도 행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노오력’하고 ‘자기관리’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손쉽게 퇴출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성소수자들에게 응답해야 하는 이유다. 성소수자들의 ‘곁’인 우리가 더 이상 이들의 존재를 감추거나 예외화하지 않고 ‘드러냄’에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경계에 선 이들의 경험과 목소리에 응답한다는 것은 곧 지금까지 세상이 작동해온 방식에 의문을 갖는 일이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사는 대신 다른 삶을 꿈꾸는 일. 그러므로 퀴어는 일터에 있어야 한다. 퀴어인 그대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드디어 노동과 ‘경계 밖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책이 나왔다! 그것도 국내에서, 당사자들의 경험을 담은 언어로. 어떻게 이런 목소리를 모을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좇아 수면 위로 끌어올려온 저자의 힘일 것이다. 노동, 차별, 소외 같은 오래된 주제와 최근에야 이름 붙여지고 있는 낯선 섹슈얼리티 개념을 녹여낸 이 책을 보며 기록노동자로서 저자의 혜안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조이여울 (미디어 ‘일다’ 대표)
성소수자이기에 선명하게 인식하는 세상의 규범이 있습니다. 누군가 공들여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이 경험은 이들만의 문제로 남겨졌을 것입니다. 이 책은 소수자의 경험을 보편적 공감의 영역으로 끌어들입니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노동하는 것’ 혹은 ‘내 모습 그대로 노동하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가치인지 묻습니다. 성별·젠더규범이 성소수자 노동을 밖으로 밀어내고, 누구든 정해진 틀에 맞춰 자신을 깎아내야 하며, 치르지 않아도 되는 비용까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위계질서 저 아래의 차별, 그것이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라는 본질과 맞닿아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이지만, 포기하지는 말자고,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노동자를 응원하게 됩니다.
- 곽이경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국장)

회원리뷰 (2건) 리뷰 총점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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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시화 되는 존재 혹은 노동에 대한 에세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e*****i | 2021.11.1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비가시화 되는 존재 혹은 노동에 대한 에세이   이상한 꿈을 꿨다. 나는 패션을 주제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스탭이었는데 몸매와 이력이 화려한 모델들과 디자이너 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디자이너가 나를 붙잡고 자기 옷을 입고 프로그램에 나가줄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모델들이 자기가 만든 옷을 입지 않으려고 한다며 내게 그 옷을 보여줬는데 아랫도리가;
리뷰제목

비가시화 되는 존재 혹은 노동에 대한 에세이

 

이상한 꿈을 꿨다. 나는 패션을 주제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스탭이었는데 몸매와 이력이 화려한 모델들과 디자이너 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디자이너가 나를 붙잡고 자기 옷을 입고 프로그램에 나가줄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모델들이 자기가 만든 옷을 입지 않으려고 한다며 내게 그 옷을 보여줬는데 아랫도리가 투명한 옷이었다. 문제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나는 방송에 모자이크로 나간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이토록 수용적인 인간이다. 직장에서 그 어떤 것을 요구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우선 든다. 왜 이런 꿈을 꾼 걸까. 나는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인가. 아니면 나보다 권력이 높은 사람의 말은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나?

나는 지정성별 여성, 30대, 비수도권 거주, 20대 후반 아이를 출산하고 8년 동안 돌봄노동을 수행했다. 그전에는 수도권에서 사무직에 종사했으며 공무원 시험을 보라는 부모의 잔소리를 피해 비수도권으로 이사했다. 지난해부터 내가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하고 프리랜서 강의노동자로 살고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 강의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들다. 같이 사는 30대 후반 남성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가 다 벌지 못하는 생활비를 메꾼다. 사람들은 내가 밖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아이는 누가 보냐?”는 질문을 한다.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돌봄교실에서는 떨어졌다. 서류상 우리 가정은 맞벌이가 아니고 외동이기 때문이다. 4시까지 봐주던 어린이집과 달리 오후 1~2시에 끝나는 학교는 더더욱 일상을 바쁘게 만들었다. 두 사람 모두 아이 하교 시간에 일이 있으면 한 사람은 일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더 포기가 쉬운 쪽은 남성보다는 여성이다. 나는 그게 싫어서 아이에게 핸드폰을 쥐어 주며 혼자 하교를 하고 집에 와서 어른이 귀가하는 시간까지 유튜브를 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요즘 부쩍 유튜브에서 배운 욕설을 내뱉는데, 그게 자꾸 내 잘못인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비가시화 되는 노동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돌봄이다. 돌봄노동은 결국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같이 사는 세 사람의 관계, 같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혈연관계로 묶인 관계, 일적으로 묶이는 관계들이다. 나는 이 중 같이 살고 있지 않지만 혈연관계로 묶인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명절에 만나지 않고, 안부 전화를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편하겠다는 소리를 하지만, 안 하는 대로 또 부담이 있다.

20대에 수행했던 사무직 노동은 눈에 보였고 급여도 꼬박꼬박 들어왔다. 30대에 수행하는 돌봄노동과 프리랜서 노동은 사람들 눈에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무엇을 해도 나는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고 급여도 들쭉날쭉 들어온다. 30대의 가운데를 보내고 있는 지금, 나는 무척 불안하다. 40대는 더더욱 지워진 노동을 하지 않을까, 내 존재 자체가 지워져버리지 않을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불안했던 것 같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 내가 부족해서, 내 몸이 이 모양 이 꼴이라서 등의 핑계를 대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의 책도 읽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하고, 심지어 강의도 한다. 그러면 불안감이 덜하다.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의 나라면, 20대에 눈에 잘 보이는 노동을 했던 나라면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하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에는 몸을 바쳐서 일을 했다. 고3 때는 화장실을 한 번만 갔다. 10분밖에 안 되는 쉬는 시간을 친구들과 잡담으로 흘려보내기 싫었다. 그 때부터 몸이 붓기 시작한 것 같다. 20대 때 회사에서도 돈을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을 했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밤을 꼬박 새는 마감을 했고 그래서 그런지 아이를 낳고도 밤에 깨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30대에 들어서자 밤을 새는 게 힘들어졌다. 몸도 점점 무거워지고 천식이란 지병도 생겼다. 급성 천식으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응급실에 실려가던 순간 너무 허무해졌다.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나는 그 이후로 내 몸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1년에 한 번씩 혼자 여행을 가고, 올해에는 그룹PT도 등록했다. 그런데 요즘 직장에 다니는 친구의 연락이 부쩍 잦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반복적인 업무와 동료들과의 잦은 마찰로 회사를 관두고 싶지만 앞으로의 삶이 불안해 관둘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건강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고, 나는 건강이 최우선이라며 무급휴직이나 아예 퇴사를 하는 건 어떤지 권했다. 하지만 친구의 불안함은 어쩔 수가 없다. 스스로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그 친구에게 나와 같은 삶의 형태를 권할 수도 없다. 각자의 삶은 너무나 힘들다. 하지만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시스템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잘 보이게 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자꾸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이런 책이 많이 팔리게 하고 저자 강연이나 인터뷰를 많이 하는 것도 모자라다. 당장 정치인들은 눈에 잘 보이는 ‘정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겠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리는 ‘비정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을 놓치면 이 사회 전체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인 ‘누구도 만날 필요가 없기를 바란다’는 문장은 그런 의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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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 희정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문* | 2020.06.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제목과 표지를 보고, 그리고 해당 저서의 북토크(?)를 가게 되어서 냅다 구입해 읽었다.퀴어와 노동을 엮어 인터뷰(혹은 르뽀?)의 형식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다만 청년/세대의 문제가 훨씬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아서,중요한 지점이긴 하지만 기대했던 바와는 조금 달랐다.퀴어의 시민권/성원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이론상의 문제와 현실에서의 한계가 괴리를 보일 때마다나는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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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를 보고, 그리고 해당 저서의 북토크(?)를 가게 되어서 냅다 구입해 읽었다.

퀴어와 노동을 엮어 인터뷰(혹은 르뽀?)의 형식을 통해 담아내고 있다.

다만 청년/세대의 문제가 훨씬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아서,

중요한 지점이긴 하지만 기대했던 바와는 조금 달랐다.


퀴어의 시민권/성원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

이론상의 문제와 현실에서의 한계가 괴리를 보일 때마다

나는 어찌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쉬운 점들도 많았지만, 

비퀴어적인 공간(퀴어프렌들리하지 않은 공간)에서 

노동자로서 일상을 보내야 하는 퀴어의 고민이나 분노에 대해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처해 있는 환경에 대해서 생각해볼 지점도 있었고

스스로의 삶에 대해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해준 건 분명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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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2건) 한줄평 총점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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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4점
이성애자인 내가 할 수 있는건 끝까지 연대하는 길 뿐. 내가 누리는 것을 그들도 누릴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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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꽁*우 | 2022.01.29
구매 평점4점
아쉬운 점도 더러 있었으나 퀴어 노동 세대를 묶어낸 솔직한 시선이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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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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