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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삼국지 1~4 세트

: 중국 12 판본 아우른 세계 최고 원본 ㅣ 최종 원색 완성판

[ 전4권 ]
나관중 저 / 예슝 그림 / 모종강 편 / 리동혁 | 금토 | 2019년 12월 0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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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9년 12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080쪽 | 3290g | 153*224*80mm
ISBN13 9791190064071
ISBN10 1190064073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가 함께 읽는 ‘3대 삼국지’ 드디어 등장

‘일생에 세 번은 반드시 삼국지를 읽어야 한다.’

예로부터 내려온 말이다. 청소년 때에 한 번, 성인이 되어 한 번, 나이가 들어서 한 번은 읽어야 삼국지의 참된 교훈을 배워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에는 삼국지를 일생에 열 번 이상 읽은 애독자도 참으로 많다. 삼국지는 재미와 교훈과 감동이 넘쳐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생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는 지금까지 이렇게 여러 번 읽을 만한 충실한 삼국지가 없었다. 50종이 넘는 삼국지가 쏟아져 나왔으나 오래 간직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볼 만큼 제대로 옮겨진 책이 없었다. 1960년대까지 나온 삼국지는 대부분 일본 작가가 원본과 전혀 다르게 쓴 소설을 옮긴 것이었고, 그 이후 나온 책들은 저자가 구조와 내용을 바꾼 평역이거나 멋대로 개조한 개인 창작물이었다.

게다가 원문을 충실하게 옮겼다는 완역본이나 짧게 줄인 축약본, 옮긴 이의 상상력을 동원해 풀어쓴 평역본 등 어느 것 하나 숱한 오류를 범하지 않은 작품이 없었다. 중국 역사와 문화에 어두워 글의 내용을 완전히 바꾸거나, 명사와 동사를 혼동해 이상한 말을 만들어내거나, 번역이 어려워 빼거나 자른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삼국지라는 그릇에 담긴 내용이 워낙 풍부해 중국 역사와 문화, 정치와 전쟁, 생활과 관습 등 수많은 것을 훤히 꿰뚫고 있지 않으면 책을 바로 이해하기조차 어려우니 어찌 제대로 옮길 수 있으랴?

이 책은 중국 고대의 철학과 종교, 민간신앙, 군사 등에 정통하면서 특히 삼국지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중국의 조선족 필자가 중국 국가적 사업으로 정리한 중국인민문학사의 [삼국연의]를 바탕으로 삼아 그 책의 오류를 바로잡으면서, 현재 남아있는 고대 판본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명나라 때의 판본 10종과 청나라 때의 판본 2종을 합쳐 고대 판본 12종을 아울러 완벽하게 재현해낸 세계 최고의 원본이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제1권]

「책을 내면서」 삼국지의 진정한 참모습 되찾아
1. 복사꽃 아래 의리 맺은 세 형제
[桃園結義도원결의]
2. 장비, 거침없이 썩은 관리 매질
3. 환관들이 겁 없이 대장군 베다
4. 조조, 암살 실패하고 보검 바쳐
5. 술이 아직 따뜻할 때 화웅 베다
[酒尙溫時斬華雄주상온시참화웅]
6. 옥새 얻었으나 칼부림만 일어
7. 얻어먹던 손님이 주인 몰아내
8. 초선, 향기로운 혀로 역적 이간
9. 동탁 죽이자 부하들 난 일으켜
10. 조조, 아버지 잃고 복수에 불타
11. 유비는 주겠다는 성 끝내 사양
12. 꾀 많은 조조도 여포에게 속아
13. 방랑하는 황제, 조밥에 목메어
14. 조조, 황제 끌어들여 천하 호령
15. 호통 한 번에 적장 죽인 소패왕
16. 원문의 화극 맞혀 싸움 말리다
[轅門射戟원문사극]
17. 말이 밀 밟았으니 내 목을 쳐라
18. 화살에 맞은 눈알 삼킨 하후돈
19. 천하장사 여포의 비굴한 최후
20. 피로 쓴 비밀조서 충신 부르다
21. 조조 술 데우며 영웅을 논하다
22. 원소 격문에 조조 두통 싹 가셔
23. 재사 예형과 의사 길평의 충성
24. 아이 옴 걸려 천하 놓친 대장군
25. 관우, 떠날 때를 약속받고 항복
26. 부귀 뿌리치고 형님 찾는 관우
27. 다섯 관 지나며 여섯 장수 베다
[五關六斬오관육참]

[제2권]

28. 세 형제 다시 뭉치고 조자룡도
29. 눈알 푸른 청년, 강동 패자로
30. 조조, 원소의 70만 대군 정벌
31. 유비, 매번 패하고 갈 곳 없어
32. 주인 계신 곳을 향해 칼 받다
33. 천하 얻으려면 땅보다 인재를
34. 파도 박차고 용마 날아오르다
35. 숲속 스승과 저잣거리 인재
36. 서서는 말 되돌려 제갈량 추천
37. 유비, 세 번 초가를 찾아가다
[三顧草廬삼고초려]
38. 초당에 앉아 천하 셋으로 나눠
39. 장막에서 백 리 밖 싸움 이기다
40. 하후돈 속이고 조조군 불태워
41. 백만 적진 뚫고 어린 주인 구해
42. 장비 호통에 조조 넋이 날아가
43. 제갈량, 말로 강동 선비들 제압
44. 교씨 두 딸로 적벽대전 불붙여
45. 주유 꾀에 속고도 조조 시치미
46. 풀 실은 배로 적의 화살 빌려
47. 조조 배 묶은 방통의 연환계
48. 까막까치 깃들 가지 하나 없네
49. 제갈량, 칠성단서 동남풍 빌어
50. 도망치는 조조 놓아주는 관우
51. 주유가 싸우고 유비가 성 차지
52. 조운은 미인 사양해 명성 지켜
53. 관우와 황충, 의로움으로 싸워
54. 유비는 손권 누이와 결혼하다
55. 부인 손해 보고 군사도 잃었네
56. 활 솜씨 화려한 동작대 큰 잔치
57. 벼슬 낮아 술만 마시는 방통
58. 마초에 쫓겨 조조 수염 자르고

[제3권]

59. 알몸으로 마초와 싸우는 허저
60. 장송은 유비에게 서천 바치고
61. 조운은 다시 어린 주인 구하다
62. 노장 황충의 시들지 않는 기백
63. 어린 봉황 낙봉 언덕에 떨어져
64. 충신이 어찌 두 주인을 섬기랴
65. 유비, 드디어 익주에 자리 잡다
66. 관우, 칼 한 자루 들고 모임에
[單刀赴會단도부회]
67. 조조 침공에 무너진 오랜 천국
68. 나막신 도사 좌자는 조조 조롱
69. 대보름 밤에 일어선 다섯 충신
70. 장비는 술타령으로 장합 이겨
71. 손님이 도리어 주인 노릇 한다
[反客爲主반객위주]
72. 먹자니 귀찮고 버리자니 아깝고
[鷄肋계륵]
73. 촉의 유비도 한중왕에 오르고
74. 관우는 강물로 우금 사로잡아
75. 화타는 뼈 갉아 관우 팔 치료
76. 옥은 부서져도 빛깔 변치 않아
77. 미염공 죽자 적토마 굶어 죽어
78. 신의(神醫) 죽이고 간웅도 떠나
79.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구나
80. 천하는 덕 있는 자에게 돌아가
81. 장비도 부하 칼에 목숨 잃어
82. 큰 것 버리고 작은 것을 찾다
[棄大就小기대취소]
83. 촉 황제 이긴 오의 젊은 선비
84. 강가에서 살기 뻗치는 팔진도
85. 유비는 제갈량에게 고아 부탁
86. 오의 기름 가마 뛰어든 촉 사자
87. 뒷 근심 없애려 남만 땅 정벌
88. 마음 얻으려고 몸을 살려주다

[제4권]

89. 간절히 빌어 마른 샘에 물 고여
90. 일곱 번 잡아, 일곱 번 놓아주다
[七縱七擒칠종칠금]
91. 만두 빚어 사람 머리 대신하다
92. 칠십 노장 조운의 눈부신 용맹
93. 제갈량, 소년 장수 제자로 삼아
94. 허 찌르는 사마의의 기습 작전
95. 거문고를 뜯어 적이 달아나다
[彈琴走賊탄금주적]
96. 제갈량, 눈물 흘리며 마속 베다
[泣斬馬謖읍참마속]
97. 죽을 때까지 몸 굽혀 정성 바쳐
[麴窮盡膵국궁진췌 死而後已사이후이]
98. 적이 방비하지 않는 곳을 친다
[攻其無備공기무비]
99. 천 명 군사로 40만 대군 막아
100. 군사를 줄이며 부엌을 늘리다
[減兵添?감병첨조]
101. 말을 죽이려다 노루를 잡다
102. 먹지 않고 쉬지도 않는 소와 말
103. 다 잡은 사마의, 소나기로 놓쳐
104. 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 물리쳐
105. 반란 제압한 승상의 비단 주머니
106. 적수 속인 사마의 귀먹은 연기
107. 사마의, 집안 군사로 정권 탈취
108. 오만한 천재, 집안 지키지 못해
109. 역적의 후손도 역적에게 당해
110. 뱀을 다 그리고 발을 덧붙이기
111. 무너지는 나라 떠받치는 충신
112. 강유, 중원 정벌은 그림의 떡
113. 노반 앞에서 도끼 재주 뽐내기
[班門弄斧반문농부]
114. 슬프다, 우물에 구부린 용이여!
115. 환관 두려워 대장군이 밭 갈다
116. 싸움에 이겨도 집에 못 돌아가
117. 제갈량 아들과 손자까지 출전
118. 나라 잃어 우는 자는 아들 하나
119. 계책 하나로 인재 셋을 해치다
120. 나뉘었던 천하는 다시 하나로

저자 소개 (4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동탁은 외출 때 외람되게도 황제 차림을 하는가 하면, 조카 동황을 불러 황제를 모시는 시중으로 세우고 황궁을 호위하는 금군을 총지휘하게 했다. 동 씨 일가는 나이가 많든 어리든 모두 작위를 주었다.
또 백성 25만 명을 끌어내 장안에서 250리 떨어진 곳에 ‘미오’라는 성을 쌓았다. 성곽의 높이와 두께를 장안성과 똑같이 해서 그 안에 궁궐을 짓고, 창고에는 20년 먹을 식량을 쌓았다. 민간에서 젊은 미녀 800명을 뽑아 궁 안에 들게 하고 금과 옥, 채색 비단, 진주를 끝없이 모아들이니 그 숫자를 알 수 없었다.
동탁 가족은 모두 미오에서 살았다. 동탁이 보름이나 한 달에 한 번 장안을 오고 가면 대신들은 모두 장안 북벽 횡문 밖에 나가 맞이하고 배웅했다. 이때 동탁은 길에 장막을 치고 대신들과 술을 마셨다.
어느 날 동탁이 횡문을 나가게 되어 대신들이 모두 모여 배웅하며 술을 마시는데, 마침 양주 북지군의 반란군 수백 명이 항복해 그곳으로 끌려왔다. 동탁은 그 자리에서 부하들을 시켜 그들의 손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으며, 혀를 베거나 큰 솥에 처넣고 삶았다.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을 울리자 백관이 부들부들 떨며 젓가락을 떨어뜨리는데, 동탁은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으며 태연하게 웃고 떠들었다. 대신들이 참을 수 없어 일어나자 동탁이 막았다.
“내가 못된 자들을 벌하는데 어찌하여 무서워하는가?”
또 하루는 동탁이 궁궐 대청에서 대신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었다. 백관이 두 줄로 늘어앉아 술이 몇 순 도는데 여포가 성큼성큼 들어와 동탁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자 동탁이 빙그레 웃었다.
“아, 그런 것이었구나.”
그는 여포에게 명해 3공의 하나로 최고 대신인 사공 장온을 자리에서 붙잡아 섬돌 아래로 끌어내렸다. 대신들은 그만 얼굴빛이 확 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종이 붉은 쟁반에 장온의 머리를 올려 동탁에게 바쳤다. 동탁은 여포를 시켜 대신들에게 술을 권하게 하면서 장온의 머리를 하나하나 돌려 보였다. 백관은 넋이 달아나는데 동탁은 웃었다.
“공들은 놀라지 마시오. 장온이 원술과 결탁해 나를 해치려 하는데, 원술이 그에게 보내는 문서가 잘못되어 내 아들 봉선에게 들어왔소. 그래서 목을 친 것이오. 공들은 관련 없으니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하늘이 돕는 사람이라 나를 해치려는 자는 반드시 망하고 마오.”
사도 왕윤이 집에 돌아와 그 일을 생각하니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백관이 3공을 만나면 큰절을 올리고 황제도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처럼 당당한 사공이 동탁 말 한마디에 목이 날아갔으니 역시 3공의 하나인 사도라 해서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법이 없었다.】
밤이 깊어 달이 휘영청 밝았다. 왕윤은 지팡이를 짚고 후원에 들어가 두건딸기 받침대 곁에 서서 하늘을 우러르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런데 별안간 모란정 앞에서 누군가 후유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다가 짧게 풀풀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윤이 발소리를 죽여 다가가 보니 집안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가기 초선이었다.
【그 시절 대갓집에서는 얼굴이 예쁜 여자아이들을 사다 재주를 가르쳐, 집에서 손님을 대접할 때 기분을 맞추게 했다.】
초선은 어릴 적에 왕윤 집에 들어와 노래와 춤을 배웠는데, 이때 나이 갓 16세로 용모가 빼어나고 재주 또한 남달랐다. 왕윤은 그녀를 친딸처럼 아껴온 터에 이날 밤 가만히 탄식을 엿듣게 되자 호통쳤다.
“어린 년에게 벌써 사사로운 정이 생기려 하느냐?”
깜짝 놀란 초선은 얼른 꿇어앉아 변명했다.
“천한 계집에게 어찌 감히 사사로운 정이 있겠나이까?”
“그렇다면 어찌하여 깊은 밤에 여기서 길게 탄식하느냐?”
“가슴속 말을 하도록 허락해주시옵소서.”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대감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천한 년을 길러주시고 노래와 춤을 배우게 하면서 참으로 잘 대해주시는데, 저는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부서지더라도 만에 하나 보답할 길이 없사옵니다. 요즈음 대감님께서 근심에 잠겨 눈썹을 찌푸리시니 반드시 나라의 대사가 있으리라 여기면서도 감히 여쭙지 못했나이다. 오늘 밤 또 대감님께서 안절부절못하시는 것을 보고 한숨을 길게 쉬었는데, 대감님께서 엿보실 줄은 몰랐사옵니다. 만약 이 천한 년을 쓰실 데가 있으시다면 만 번 죽더라도 마다하지 않겠나이다!”
왕윤은 너무 기뻐 지팡이로 땅을 탁탁 쳤다.
“한나라 천하가 네 손에 달리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느냐? 나를 따라 화각으로 오너라.”
초선은 왕윤을 따라 그림을 그려 호화롭게 장식한 누각으로 들어갔다. 왕윤은 사람들을 내보내고 초선을 자리에 앉히더니 대뜸 머리를 조아려 절을 했다. 초선은 질겁해 땅에 납작 엎드렸다.
“대감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러시옵니까?”
“네가 한나라 백성을 가엾게 여겨다오!”
말을 마치자 왕윤의 눈에서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 초선이 얼른 다짐했다.
“방금 천한 계집이 말씀드렸나이다. 저를 쓰실 데가 있으면 만 번 죽더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요.”
왕윤은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백성은 거꾸로 매달린 듯 위태롭고, 황제와 신하는 쌓아 올린 달걀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듯 아슬아슬하니, 네가 아니면 구할 수 없구나. 역적 동탁이 장차 황제 자리를 빼앗으려 하는데도 조정의 문무 대신들은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 동탁에게 수양아들이 하나 있으니 성은 여이고 이름은 포라, 날쌔고 용맹함이 유달리 뛰어나다. 두 사람 다 여자를 좋아하니 내가 고리에 고리를 이은 듯 계책을 쓰려 한다. 너를 여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먼저 약속한 뒤 동탁에게 바치는 것이다. 너는 마땅한 틈을 타서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지도록 이간시켜, 여포가 동탁을 죽이게 하여 큰 악의 뿌리를 없애도록 해라. 기울어진 사직을 다시 붙들어 세우고 흔들리는 강산을 다시 바로잡게 되면 모두 네 공로다. 네 뜻은 어떠한지 모르겠구나.”
“천한 년은 만 번 죽더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이미 말씀드렸사오니 바로 저를 그에게 바치시옵소서. 저는 온 정성과 궁리를 다 짜내 일을 이루겠나이다.”
“일이 새나가면 우리 집안은 깡그리 망한다.”
“대감님께서는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천한 년이 크신 뜻에 보답하지 못하면 수많은 칼날에 죽겠나이다.”
다음 날 왕윤은 집에 감추어둔 아름다운 구슬 몇 알을 꺼내 솜씨 좋은 장인에게 주어 금관에 박게 하고, 가만히 여포에게 보냈다. 여포는 너무 좋아 직접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왕윤의 집으로 찾아왔다. 미리 맛있는 음식을 갖추고 기다리던 왕윤은 여포가 오자 문밖까지 나가 맞이해 후당으로 모셔 상석에 앉혔다. 여포는 사양했다.
“여포는 승상부의 한낱 장수에 불과하고 사도께서는 조정의 대신이신데 어찌 이처럼 분수에 넘치도록 존대하십니까?”
“지금 천하에 다른 사람은 없고, 유독 장군만이 영웅이오. 이 윤은 장군의 벼슬을 존경하는 게 아니라 장군의 재주를 높이 보는 것이오.”
왕윤 말에 여포는 매우 기뻤다. 왕윤은 정성스레 술을 권하면서 동 태사와 여포의 덕성을 끊임없이 칭송했다. 여포는 기분이 좋아 껄껄 웃으며 마음껏 술을 마셨다. 왕윤은 사람들을 물리치고 첩 몇 사람만 남겨 술을 권하다가 차츰 술기운이 오르자 분부했다.
“딸아이를 불러오너라.”
잠시 후 푸른 옷을 입은 두 시녀가 화려하고 예쁘게 단장한 초선을 데려왔다. 여포가 흠칫 놀라 물었다.
“누구입니까?”
“딸아이 초선이오.”
왕윤이 초선에게 분부해 여포에게 술을 권하게 했다. 초선이 술잔을 받들어 올리는데, 어느새 두 사람 눈길이 마주치기 시작했다. 왕윤은 짐짓 취한 척했다.
“얘야, 장군께서 실컷 드시도록 계속 권해 올려라. 우리 집안은 모두 장군께 의지하는 바이니라.”
그러자 여포가 초선에게 앉기를 청했다. 그러나 초선이 일부러 안방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왕윤이 말렸다.
“장군은 내 가장 친한 벗이니 네가 앉아도 괜찮으니라.”
마지못한 척 초선은 왕윤 곁에 앉았다. 여포가 초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또 몇 잔 마신 후 왕윤이 초선을 가리키며 여포에게 물었다.
“내가 이 아이를 장군께 첩으로 드리려 하는데 받아주시겠소?”
여포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 삿자리 바깥으로 나가 공손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포는 개와 말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보답하겠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윗사람에게 감사를 표할 때는 일어서서 삿자리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예의였고, 자신을 낮추어 개나 말에 비유했다. 그래서 윗사람을 위해 힘써 일하는 것을 ‘견마지로(犬馬之勞)’라 했다.】
“조만간 좋은 시간을 골라 장군 댁으로 보내겠소.”
여포는 한없이 즐거워 자꾸만 초선을 바라보았다. 초선도 추파를 던져 정을 주었다. 잠시 후 술상이 끝나자 왕윤이 말했다.
“오늘 장군을 붙잡아 주무시게 하고 싶어도 태사께서 의심하실까 두렵구려.”
여포는 두 번 세 번 절해 고마움을 나타내고 돌아갔다.

며칠 지나 조당에서 동탁을 만난 왕윤은 여포가 곁에 없는 틈을 타 엎드려 절하며 청했다.
“윤은 태사님 행차를 변변찮은 제집으로 모실까 하는데, 높으신 뜻은 어떠하십니까?”
동탁이 선선히 대답했다.
“사도께서 불러주시니 곧 빠른 걸음으로 가겠소.”
왕윤은 깊이 절해 감사를 표하고 집으로 돌아와, 물에서 나는 좋은 음식과 뭍에서 나는 희한한 요리들을 두루 갖추어 대청 한가운데에 푸짐하게 상을 차렸다. 아름다운 무늬에 빛깔이 산뜻한 비단을 바닥에 펴고 대청 안팎에 휘장을 쳐 한껏 분위기를 돋우었다.
이튿날 점심때 동탁이 이르렀다. 왕윤은 관복을 차려입고 정중한 태도로 마중 나가 두 번 절해 인사를 드렸다. 동탁이 수레에서 내리는데 갑옷 입고 극을 든 무사 100여 명이 에워싸고 대청에 들어와 두 줄로 늘어섰다. 왕윤이 섬돌 아래에서 또 두 번 절했다. 동탁은 왕윤을 부축해 대청으로 올라오게 하여 곁에 앉혔다. 왕윤이 준비한 칭송을 했다.
“태사님 성덕은 높고 높아 이윤과 주공이라도 미치지 못할 바입니다.”
【옛날 상(商)나라 군주 성탕을 보좌한 이윤과 주(周)나라 성왕을 보좌한 주공은 그 시절 가장 현명한 재상으로 숭상받았다.】
동탁은 매우 흐뭇했다. 뒤이어 왕윤의 분부로 아랫사람들이 동탁에게 술을 권하고 풍악을 울리는데, 왕윤은 지극히 공손하게 존경을 나타냈다. 날이 차츰 저물고 술기운도 거나해지자 왕윤은 동탁을 후당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동탁이 무사들을 물리치자 왕윤은 술잔을 받쳐 들고 또 칭송했다.
“이 윤은 어릴 적부터 천문을 제법 배웠는데, 밤에 하늘의 별들을 살펴보니 한나라 운은 이미 바닥이 났습니다. 태사님은 성덕을 천하에 펼치셨으니 순임금께서 요임금 자리를 물려받고, 우임금께서 순임금 자리를 이으셨듯이 하면 하늘의 뜻과 사람의 마음에 어울릴 것입니다.”
“내가 어찌 감히 그것을 바라겠소!”
“천하란 한 사람 천하가 아니라 천하 사람들의 천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도가 있는 이가 도가 없는 자를 정벌하고, 덕이 없는 자가 덕이 있는 이에게 양보한다고 했습니다. 어찌 분에 넘치시겠습니까?”
동탁은 웃음을 터뜨렸다.
“만약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 과연 나에게 돌아온다면 사도는 큰 공신이 되실 것이오.”
왕윤은 절해 감사를 나타냈다. 그림을 그린 고운 촛불을 밝히고 새로 술을 권하고 음식을 날라 오게 하면서 왕윤이 말을 꺼냈다.
“관청의 음악은 태사님을 모실 바가 못 됩니다. 집에 노래를 부르는 아이가 하나 있으니 감히 모시게 해볼까 합니다.”
“아주 좋소.”
동탁이 허락해 왕윤은 창이 있는 발을 내려놓게 했다. 생황 소리가 은은히 울리고 하녀들이 받들어 모시는 가운데 초선이 발 밖에서 춤을 추었다. 어떤 사람이 그 정경을 묘사했다.

원래 소양궁의 조비연이었느냐
놀란 기러기인 듯 손바닥 위에서 몸 놀리네
봄날의 동정호를 날아 지났나
‘양주’ 곡에 맞추어 사뿐사뿐 걷는데
바람 따라 흔들리는 고운 꽃 새롭다
따스한 향기가 그림 있는 방에 차 봄날에 취하누나
【초선을 출신이 비슷한 옛날 미인 조비연에 비유해 그 아름다움을 한껏 칭찬한 것이다. 조비연은 몸놀림이 하도 가벼워 ‘나는 제비[飛燕비연]’로 불리며,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다는 전설까지 남겼다. 원래 양아 공주의 집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가기였는데, 한나라 성제가 공주 집에 놀러 갔다가 홀딱 반해 황궁으로 불러들여, 뒤에 황후까지 되었으니 가기 출신으로서는 최고의 출세였다.】

초선이 춤을 마치자 동탁이 가까이 오라고 분부했다. 초선은 발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깊숙이 숙이며 얌전하게 두 번 절했다. 동탁이 살펴보니 얼굴이 매우 예뻐 왕윤에게 물었다.
“이 여자는 누구요?”
“제 집안의 가기 초선이올시다.”
“그럼 노래도 할 수 있소?”
동탁이 청하고 왕윤이 분부하니, 초선은 장단을 맞추는 박달나무 판을 들고 나지막이 한 곡 뽑았다. 그야말로 황홀한 모습이었다.

앵두 같은 빨간 입술 살짝 벌리고
옥 같은 흰 이빨 ‘양춘’ 노래 부르누나
향기로운 혀 내미니 순강검이라
나라 어지럽히는 간신 베리라

동탁은 칭찬해 마지않았다. 왕윤이 초선에게 술을 따르게 하자 동탁이 잔을 들고 물었다.
“너는 청춘이 얼마더냐?”
“천한 계집은 이제 겨우 이팔이옵니다.”
【이팔은 2 곱하기 8로 16세를 말한다.】
동탁은 허허 웃었다.
“정말 신선 세상의 선녀로구나.”
왕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은 이 아이를 태사님께 바치려 하는데 받아주시겠습니까?”
“그처럼 큰 은혜를 베풀면 내가 어찌 보답하겠소?”
“이 아이가 태사님을 모신다면 큰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동탁은 두 번 세 번 고맙다고 인사했다. 왕윤은 아랫사람에게 일러 모포로 포장을 두른 호화로운 수레에 초선을 태워 승상부로 보냈다. 뒤이어 동탁도 떠나 왕윤은 직접 승상부까지 배웅하고 돌아왔다.
왕윤이 말을 타고 돌아가는데 붉은 등 두 줄이 길을 비추면서 화극을 든 여포가 말을 타고 왔다. 길에서 왕윤과 부딪친 여포는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세우더니 댓바람에 왕윤의 옷깃을 틀어쥐고 사납게 소리쳤다.
“사도는 초선을 이미 나에게 허락해놓고, 다시 태사에게 보내니 어찌 이렇게 사람을 놀리시오?”
왕윤이 황급히 말했다.
“여기는 말할 곳이 아니니 우리 집으로 갑시다.”
왕윤은 여포를 후당으로 안내하고 능청스레 물었다.
“장군은 무엇 때문에 이 늙은이를 원망하시오?”
“당신이 초선을 수레에 태워 승상부로 보냈다던데 무슨 까닭이오?”
여포가 예절도 차리지 않고 퉁명스레 물었으나 왕윤은 여전히 고상하게 대답했다.
“아, 장군은 아직 모르셨구려! 어제 태사께서 조정에서 이 늙은이에게 다짜고짜 그러시더군요. ‘내가 일이 있으니 내일 사도 집에 가겠소.’ 그래서 간소하게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태사께서 오셔서 말씀하더이다. ‘이 집에 초선이라는 딸이 있어서 내 아들 봉선(여포의 자)에게 허락했다던데, 혹시 별일이 있을까 걱정되어 특별히 와서 청혼하며 만나보기를 청하오.’ 그러니 이 늙은 것이 감히 어기지 못해 초선을 불러 시아버님께 절을 드리게 했소. 그랬더니 태사께서 말씀하셨소. ‘오늘이 좋은 날이니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 봉선에게 짝을 지어주겠소.’ 그러니, 생각해보시오. 태사께서 친히 오셨는데 이 늙은 것이 어찌 감히 막을 수 있겠소?”
그럴듯한 말에 여포는 속아 넘어가 급히 사과했다.
“사도께서는 저를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오늘 깜빡 잘못 알았으니 내일 매를 지고 와서 죄를 빌겠습니다.”
“어린 딸에게 혼수품이 꽤 있으니 그 아이가 장군 댁으로 가기를 기다려 보내드리겠소.”
여포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떠났다.
이튿날 여포가 승상부에 가서 어떻게 되어가나 알아보니 아무 소식이 없어, 후당으로 들어가 동탁의 첩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기막혔다.
“태사님께서는 어젯밤 새로 데려온 사람과 주무셨는데, 지금껏 일어나지 않으셨어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가만히 동탁의 침실 뒤로 돌아가 훔쳐보니, 마침 초선이 일어나 창문 아래에서 머리를 빗고 있었다.
이때 초선이 가만히 훔쳐보니 창문 밖 연못에 갑자기 웬 사람의 그림자가 비치는데, 키가 매우 크고 머리카락을 묶는 관을 썼으니 바로 여포였다. 초선은 일부러 눈썹을 찌푸리고 수심에 잠긴 모습을 지어 보이며 비단 수건으로 자꾸만 눈가를 훔쳤다.
여포는 한참이나 엿보고 밖으로 나왔다가 잠시 후 다시 들어갔다. 이미 동탁이 대청에 나와 앉아 여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밖에 무슨 일이 없느냐?”
“별일 없습니다.”
여포는 대답하고 동탁 곁에 모시고 섰다. 동탁이 식사를 시작하자 여포가 가만히 안쪽을 훔쳐보았다. 수놓은 발 안에서 한 여자가 오고 가면서 바깥을 내다보는데, 얼굴을 반쯤 살짝 내밀고 눈으로 정을 보내기도 했다. 그녀가 초선임을 아는 여포는 넋이 공중에 떴다. 여포가 하는 꼴을 본 동탁은 덜컥 의심이 들었다.
“일이 없으면 봉선은 물러가거라.”
여포는 우울한 심정으로 승상부를 나왔다. 집에 이르자 여포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챈 아내가 물었다.
“오늘 혹시 동 태사께 꾸중 들은 것 아니어요?”
여포가 짜증을 냈다.
“태사가 어떻게 감히 나를 통제한단 말이야?”
아내는 더 묻지 못했다. 이때부터 여포는 초선 생각만 가득해 날마다 승상부를 드나들었으나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초선을 받아들이고 동탁은 단단히 홀려 한 달 남짓 바깥에 나와 일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하찮은 병에 걸렸다. 그랬더니 초선은 옷 띠도 풀지 않고 비위를 잘도 맞춰가면서 정성껏 간호했다. 동탁은 초선이 마음에 쏙 들었다.
어느 날, 여포가 안방에 들어가 문안하는데 동탁이 마침 잠이 들어 있었다. 초선이 침상 뒤에서 몸을 반쯤 내밀고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키고는 다시 동탁을 가리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여포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동탁이 잠이 깨어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여포가 눈에 띄는데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침상 너머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몸을 돌려보니 초선이 침상 뒤에 서 있었다. 동탁은 발끈해 여포를 꾸짖었다.
“네가 감히 내 사랑하는 첩을 희롱하느냐?”
곧바로 좌우의 심복을 불러 여포를 쫓아냈다.
“이후 다시는 후당에 들어오지 못한다!”
화가 치민 여포가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다 마침 길에서 동탁의 사위 이유를 만나 연유를 말하니, 이유가 급히 동탁을 찾아갔다.
“태사님께서는 천하를 손에 넣으려 하시면서 무슨 까닭으로 자그마한 잘못 때문에 봉선을 나무라십니까? 만약 그 마음이 변하면 큰일이 틀어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내일 불러서 금과 비단을 내리시고 좋은 말로 달래시면 무사할 것입니다.”
이튿날 동탁은 여포를 앞채로 불러 위로했다.
“내가 어제 병으로 속이 뒤숭숭하던 차에 말을 잘못해 네 마음을 상하게 했구나. 깊이 새겨두지 마라.”
동탁은 금 열 근과 비단 스무 필을 내렸다.
“어르신께서 나무라셨는데 포가 어찌 마음에 새겨두겠습니까?”
이때부터 여포는 다시 승상부 앞뒤 채를 거리낌 없이 드나들었다. 하지만 몸은 동탁 곁에 있어도 마음은 항상 초선에게 가 있었다.
병이 낫자 동탁은 조정에 들어가 나랏일을 상의했다. 화극을 들고 동탁 곁에 모시고 섰던 여포는 동탁이 헌제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궁전을 나와 곧바로 승상부로 달려갔다. 승상부 대문 앞에 말을 매고 화극을 든 채 후당으로 들어가니 초선이 말했다.
“뒤뜰 봉의정에서 기다려주셔요.”
여포는 곧장 봉의정으로 가서 구불구불한 난간 곁에 서 있었다. 한참 지나 초선이 꽃을 헤치고 버들가지를 쳐들며 다가오는데 과연 달나라 선녀 같았다. 초선은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다.
“왕 사도님은 저를 비록 친딸은 아니어도 친자식처럼 대해주셨어요. 장군님을 처음 뵙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청소라도 할 수 있는 첩으로 허락받으니, 천한 계집은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태사가 못된 마음을 품고 첩을 더럽힐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저는 당장 죽지 못하는 게 한스러우나 다만 장군님과 헤어지는 인사를 하지 못해 모욕을 참으면서 구차하게 살아왔어요. 이제 다행히 장군님을 만나 뵈었으니 제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더러운 몸으로 다시 영웅을 모실 수는 없으니 그리던 임 앞에서 죽어 천한 년의 뜻을 밝히겠어요!”
말을 마치자 초선은 난간을 잡더니 연꽃이 피어난 연못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여포는 다급히 초선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가 네 마음을 안 지 오래다! 다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을 뿐이다!”
초선은 여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천한 년은 이생에 장군님 사람이 되지 못했으니 내생에서나 약속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생에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면 영웅이 아니다!”
“첩은 하루가 한 해 같아요. 장군님께서 가엾게 여기시어 구해주시기만 기다립니다.”
“내가 지금 잠깐 틈을 타서 왔는데 늙은 도적놈이 의심할까 두려우니 빨리 가야 한다.”
초선은 여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장군님께서 이처럼 늙은 도적을 겁내시니 첩은 밝은 해를 볼 날이 없겠네요!”
여포가 멈추어서서 대답했다.
“내가 좋은 계책을 찾아낼 시간을 다오.”
여포가 화극을 들고 돌아서는데 초선이 또 한마디 꼬집었다.
“첩은 깊은 규방에서 우레와 같이 장군님 성함을 들어왔어요. 당대에 하나밖에 없는 영웅으로 알았는데, 이렇게 남의 손아귀에 잡혀계실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초선은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온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가득 떠오른 여포는 화극을 다시 난간에 기대놓고 돌아서서 초선을 끌어안고 좋은 말로 달랬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차마 떨어지기 아쉬워했다.
이때 궁전 윗자리에 앉아 있던 동탁이 돌아보니 여포가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더럭 의심이 들어 급히 헌제에게 인사하고 승상부로 돌아오니 여포의 말이 대문 앞에 매어져 있었다.
“봉선은 후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동탁이 따르는 자들을 물리치고 곧장 후당으로 들어가 찾아보았으나 여포가 보이지 않았다. 초선을 부르니 그녀도 나타나지 않아 급히 첩에게 물었다.
“초선은 뒤뜰에서 꽃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뒤뜰로 들어간 동탁은 곧바로 여포와 초선이 봉의정 아래에서 속살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 곁의 난간에는 화극이 기대어 있었다. 바짝 화가 치민 동탁이 꽥 소리를 지르자 여포가 깜짝 놀라 홱 돌아서서 달아났다. 동탁은 화극을 잡아채 꼬나 들고 쫓아갔다.
몸이 빠른 여포가 잽싸게 뛰어가니 뚱뚱한 동탁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포를 겨누고 화극을 던지니 여포가 팔로 쳐서 떨어뜨렸다. 동탁이 달려가 화극을 집어 들고 다시 쫓아가려 할 때는 여포는 이미 멀리 도망간 뒤였다.
동탁이 씨근덕거리며 대문으로 뛰쳐나가는데 웬 사람이 나는 듯이 달려오다 가슴에 탁 부딪혀 동탁은 그만 땅에 벌렁 나가떨어졌다.
--- 본문 중에서
동탁과 부딪쳐 넘어뜨린 사람은 바로 이유였다. 이유가 재빨리 동탁을 부축해 서원으로 들어가자 동탁이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왔느냐?”
“제가 승상부 앞에 오니 태사님께서 노하시어 여포를 찾아 뒤뜰로 들어가셨다 하더군요. 그래서 급히 오는데 여포가 달아나면서 소리쳤습니다. ‘태사님께서 나를 죽이려 하시오!’ 그래서 황급히 달려가 화해를 권하려다 그만 은혜로운 태사님과 부딪쳤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여포는 괘씸한 역적 놈이다! 내가 귀여워하는 첩을 희롱하다니, 맹세코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동탁이 악에 받쳐 씨근덕거리자 이유가 말렸다.
“은혜로운 태사님께서는 들어보십시오. 옛날 초장왕이 갓끈을 끊은 ‘절영지회’에서 애첩을 희롱한 신하 장웅의 잘못을 따지지 않았더니, 후에 진나라 군사에 에워싸여 곤경에 빠졌을 때, 장웅이 죽기로써 싸워 구출되었습니다. 지금 따져보면 초선은 한낱 여인에 지나지 않으나 여포는 태사님의 심복 맹장입니다. 태사님께서 이 기회에 초선을 여포에게 내려주시면 여포는 크나큰 은혜에 감격해 반드시 죽기로써 보답할 것입니다. 태사님께서는 세 번 생각해보시기를 빕니다.”
【춘추시대 다섯 패자의 하나로 초나라 명군이었던 장왕이 밤에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푸는데 불이 꺼졌다. 그 틈을 타 누군가가 장왕이 사랑하는 첩을 끌어안았다. 첩은 잽싸게 그 사람 갓끈을 잡아당겨 끊어버리고는 왕에게 일렀다. 웬만한 임금이라면 그 신하를 찾아내 목을 쳤으련만 초장왕은 생각이 역시 패자다웠다.
‘아랫사람들에게 술을 내려 취하게 만든 후 여인의 절개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그는 시종들에게 잠시 불을 켜지 말라 이르고 어둠 속에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과인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갓끈이 끊기지 않는다면 마음껏 즐기지 못한 것이니 모두 갓끈을 끊어라!”
모든 신하가 다 갓끈을 끊은 뒤에야 환하게 자리를 밝혔다. 물론 누가 왕의 애첩을 건드렸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동탁은 한참이나 말없이 궁리하다 말했다.
“네 말도 맞다. 내가 생각해보겠다.”
그리고 후당으로 들어가 초선을 불러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여포와 사통했느냐?”
초선은 철철 눈물을 흘렸다.
“첩이 뒤뜰에서 꽃을 보는데 갑자기 여포가 들어왔어요. 첩이 놀라 피하자 여포는 ‘내가 태사의 아들인데 피할 게 무어냐?’고 하면서 화극을 들고 봉의정까지 쫓아왔지요. 첩은 그가 흉측한 마음을 품은 것을 알고 핍박당할까 두려워 연못에 뛰어들어 자결하려 했으나 몸놀림이 늦어 그놈에게 끌어안겼어요. 한참 사느냐 죽느냐 할 때 태사님께서 오셔서 제 목숨을 구해주셨사옵니다.”
“내가 너를 여포에게 주려고 하는데 어떠하냐?”
초선은 소스라쳐 놀라며 소리 내어 울었다.
“첩은 이미 귀인을 섬기는데 별안간 집안 종놈에게 내려주신다니요, 천한 첩은 죽을지언정 그런 욕을 보지 않겠사옵니다!”
초선은 벽에 걸린 보검을 쑥 뽑아 목을 베려고 했다. 동탁은 황급히 검을 빼앗고 초선을 덥석 껴안았다.
“내가 너에게 농담한 것이다!”
동탁 품에 힘없이 몸을 맡긴 초선은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었다.
“이는 틀림없이 이유의 계책이에요! 이유는 여포와 사이가 좋아 이런 계책을 짜냈으나, 태사님 체면과 천한 첩의 목숨은 아랑곳하지도 않는 거지요. 첩은 그의 생살을 씹어야겠어요!”
“내가 어찌 차마 너를 놓아주겠느냐?”
“지금은 태사님 사랑을 받사옵니다만 여기는 오래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 오래 있다가는 반드시 여포에게 해를 당할 것이옵니다.”
“내가 내일 너와 함께 미오로 돌아가 즐거움을 누리겠다. 그러니 걱정하거나 의심하지 마라.”
그제야 초선은 눈물을 거두고 절을 하며 감사했다.
이튿날 이유가 승상부에 들어왔다.
“오늘이 좋은 날이니 초선을 여포 집으로 보내시지요.”
그러나 동탁은 마음이 변한 지 옛날이었다.
“여포는 나하고 아버지와 아들 명분이 있으니 초선을 내려주기가 불편하다. 다만 그 죄를 따지지는 않겠다. 너는 그에게 내 뜻을 전하고 좋은 말로 위로하면 된다.”
“태사님께서 여인에게 홀리셔서는 아니 됩니다.”
이유의 말에 동탁은 비위가 상해 낯빛이 변했다.
“네 아내는 여포에게 내주겠느냐? 초선의 일은 더 말하지 마라. 말하면 목이 달아날 것이다.”
이유는 밖으로 나와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모두 여인의 손에 죽게 되었구나!”

동탁이 그날로 미오로 돌아간다고 영을 내려, 백관이 모두 나와 절을 하며 배웅했다. 초선이 수레에 앉아 바라보니 여포가 멀리 붐비는 사람 속에 서서 수레를 멀거니 바라보는 것이었다. 초선은 얼굴을 가리고 통곡하는 시늉을 했다.
수레는 멀리 갔으나 여포는 여전히 고삐를 늦추고 말이 흙 언덕 위를 느릿느릿 걷게 놓아두었다. 여포가 수레 뒤에서 이는 먼지를 멍하니 바라보다 풀풀 한숨을 쉬는데 뒤에서 누가 물었다.
“장군은 어찌하여 태사를 따라가지 않고 멀리 바라보며 탄식만 하시오?”
돌아보니 사도 왕윤이었다.
“이 늙은이는 요사이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 문을 닫고 바깥에 나오지 못해 오랫동안 장군을 보지 못했소. 오늘 태사께서 미오로 돌아가신다고 해서 병을 무릅쓰고 배웅하러 나왔는데 반갑게도 장군과 만났구려. 여보시오, 장군! 어찌하여 여기서 길게 한숨을 쉬시오?”
“사도의 따님 때문입니다.”
왕윤은 짐짓 놀라는 척했다.
“아니,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아직도 딸아이를 장군께 보내주지 않았단 말이오?”
“늙다리 도적놈이 제가 차지하고 총애한 지 오랩니다!”
왕윤은 또 깜짝 놀라는 척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믿기지 않는구려!”
여포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낱낱이 알려주자 왕윤은 하늘을 우러러 얼굴을 쳐들고 발을 구르며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러다 겨우 말이 나왔다.
“태사가 그런 새나 짐승 같은 짓을 할 줄이야!”
그는 여포의 손을 잡았다.
“변변찮은 내 집에 가서 상의합시다.”
여포가 따라가자 왕윤은 밀실로 안내하고 술상을 차려 대접했다. 여포가 다시 봉의정에서 초선과 만난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니 왕윤이 한탄했다.
“태사가 내 딸을 더럽히고 장군의 여자를 빼앗았으니, 실로 천하의 비웃음을 받을 일이오. 태사를 비웃는 게 아니라 이 윤과 장군을 비웃는 것이오. 이 윤이야 나이 먹고 재주 없는 몸이니 아쉬울 것 없지만, 장군은 세상의 으뜸가는 영웅인데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요!”
여포는 노기가 하늘에 솟구쳐 상을 치며 소리소리 질렀다. 왕윤이 급히 말렸다.
“늙은이가 말을 잘못했으니 장군은 화를 삭이시오.”
“맹세코 늙은 도적놈을 죽여 저의 수치를 씻겠습니다.”
왕윤은 급히 손으로 여포의 입을 막았다.
“장군은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늙은이에게 누가 미칠까 두렵구려.”
“대장부가 하늘땅 사이에 살면서 어찌 답답하게 언제까지나 남의 아래에만 처박혀 있겠습니까?”
“장군의 재주로 보면 실로 태사가 눌러서 다룰 바가 아니오.”
“내가 그 늙은 도적놈을 죽이고 싶으나 아버지와 아들의 정이 있어 후세 사람들이 무어라 떠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왕윤은 빙그레 웃었다.
“장군은 성이 여 씨이고 태사는 동 씨인데, 화극을 던질 적에야 어디 아버지와 아들의 정이 있기나 했소?”
여포가 선뜻 받았다.
“사도 말씀이 아니었으면 여포는 자신을 망칠 뻔했습니다.”
왕윤은 여포의 뜻이 굳어진 것을 보고 한마디 더 보탰다.
“장군이 한나라 황실을 받들면 나라의 충신이니 청사(靑史=역사책)에 이름이 전해지고 만대에 향기를 풍길 것이요, 장군이 만약 동탁을 돕는다면 반역한 신하이니 사관의 붓끝에 적혀 천만년 구린내만 남길 것이오.”
여포는 일어나 삿자리에서 나가 왕윤에게 절을 올렸다.
“이 포의 뜻이 이미 정해졌으니 사도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혹시 일을 이루지 못하면 오히려 큰 화를 부를까 두렵소.”
왕윤이 미심쩍어하자 여포는 검을 뽑아 팔을 찌르고, 피를 흘리며 맹세했다. 왕윤은 꿇어앉아 고마워했다.
“한나라 제사가 끊기지 않는 것은 모두 장군의 덕이오. 절대 비밀을 흘리지 마시오! 때가 되어 계책이 생기면 반드시 알려주겠소.”
여포는 시원스레 대답하고 떠났다.

왕윤은 곧 두 사람을 불러 상의했다. 상서대 부장관인 상서복야 사손서와 다시 벼슬길에 오른 사예교위 황완이었다. 사손서가 제안했다.
“천자께서 병환이 다 나으셨으니 말 잘하는 사람을 미오로 보내 황제 자리를 물려주는 일을 의논하자고 동탁을 불러오게 하시지요. 그리고 여포에게 천자의 비밀조서를 주어 무사들을 조정문 안에 매복시켰다가 동탁이 들어올 때 붙잡아 죽이면 그만입니다.”
황완이 물었다.
“감히 누가 가겠소?”
“여포와 고향이 같은 기도위 이숙은 동탁이 벼슬을 올려주지 않아 원한이 큽니다. 그 사람을 보내면 동탁은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윤이 옳게 여기고 여포를 불러오니 그도 찬성했다.
“옛날 저를 꾀어 양아버지 정건양을 죽이게 한 사람도 이숙입니다. 만일 그가 가지 않으려 하면 제가 그 목을 치겠습니다.”
남들 모르게 이숙을 불러오니 여포가 물었다.
“형은 옛날에 이 포를 꼬드겨 정건양을 죽이고 동탁에게 오게 했소. 지금 동탁이 천자를 속이고 백성을 학대해 죄악이 넘쳐흐르니, 사람과 하늘이 모두 분하게 여기는 바요. 형은 미오로 가서 천자의 조서를 전하고 동탁을 조정으로 불러오시오. 무사를 매복해 그를 죽여서 한나라 황실을 돕고 함께 충신이 되기를 바라는데, 형의 존귀한 뜻은 어떠하오?”
이숙은 대뜸 찬성했다.
“나도 그 도적놈을 없애려 한 지 오래이나 마음이 같은 사람이 없어 한스러웠네. 지금 장군 말을 들으니 하늘이 내려주는 기회인데 내가 어찌 다른 마음을 품겠나!”
이숙은 화살을 꺾어 맹세했다. 왕윤이 장담했다.
“공이 이 일을 해낸다면 어찌 높은 벼슬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겠소?”
이튿날 이숙은 10여 명 기병을 데리고 미오로 갔다.
시종이 천자의 조서가 왔다고 보고하자 동탁이 불러들였다.
“조서는 어떤 내용이냐?”
“병환이 나으신 천자께서 문무백관과 함께 태사께 자리를 선양할 일을 상의하시려고 이 조서를 내리셨습니다.”
“사도 왕윤의 뜻은 어떠하냐?”
“왕 사도는 이미 사람들에게 명해 황제 자리를 넘겨받을 수선대를 짓게 하고 주공께서 오시기만 기다립니다.”
동탁은 대단히 기뻐했다.
“내가 밤에 용 한 마리가 내 몸을 덮는 꿈을 꾸었더니 오늘 과연 이런 좋은 소식을 듣는구나. 시기를 놓쳐서는 아니 되지!”
그는 이각과 곽사를 비롯한 심복 장수들에게 날개 돋친 곰처럼 날쌔고 사납다는 뜻으로 비웅군이라 부르는 3000명 군사를 거느리고 미오를 지키게 하고, 그날로 길에 오르려고 행차를 갖추었다. 동탁은 이숙을 돌아보며 인심을 베풀었다.
“내가 황제가 되면 너를 집금오로 삼겠다.”
【오늘의 수도경비사령관 격인 집금오는 후한을 세운 광무제가 ‘내가 만약 벼슬을 한다면 집금오를 하겠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위풍이 당당했다.】
이숙이 절하며 감사 인사를 하는데 어느새 자신을 ‘신(臣)’이라 불렀다.
동탁은 어머니에게 인사하려고 안채로 들어갔다. 나이 90이 넘은 어머니가 물었다.
“내 아들은 어디로 가려 하느냐?”
“아들은 한나라 황제 자리를 넘겨받으러 갑니다. 어머님은 조만간 태후가 되십니다!”
“내가 요즈음 살이 떨리고 마음이 놀라우니 불길한 징조가 아닐까 걱정이구나!”
“나라의 어머니가 되실 터이니 어찌 놀라운 징조가 없겠습니까?”
동탁은 어머니와 작별하고, 떠나기 전에 초선에게 말했다.
“내가 천자가 되면 너를 귀비로 세우겠다!”
이미 속내를 빤히 아는 초선은 기뻐하는 척 절하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미오를 나온 동탁은 수레에 올라 부하들을 늘여 세우고 장안을 향해 떠났다. 30리도 가지 못해 갑자기 수레바퀴가 부러져 말로 옮겨 탔다. 또 10리도 못 가서 말이 울부짖으며 몸부림쳐 고삐를 끊어버렸다. 동탁이 이숙에게 물었다.
“수레는 바퀴가 부러지고 말은 고삐를 끊으니, 이게 무슨 징조냐?”
이숙이 재치 있게 둘러댔다.
“태사께서 한나라 황제 자리를 넘겨받는 것을 말해줍니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어, 장차 옥으로 만든 연(輦=황제의 수레)에 타시고 금 안장을 얹은 말에 오르실 징조입니다.”
동탁은 흐뭇해 그 말을 믿었다. 이튿날 다시 길을 가는데 세찬 바람이 불며 뿌연 안개가 하늘을 가렸다. 동탁은 또 이숙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징조냐?”
“주공께서 용의 자리에 오르시니 붉은빛과 안개가 나타나 황제의 하늘 같은 위엄을 만드는 것입니다.”
동탁은 또 기분이 좋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장안성 밖에 이르자 백관이 모두 나와 맞이하는데 유독 사위 이유만 병에 걸려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동탁은 백관을 돌려보내면서 다음 날 새벽 조정 밖에서 맞이하라고 분부했다.
여포가 장막에 들어와 축하하자 동탁이 격려했다.
“내가 황제에 오르면 네가 천하의 군사를 모두 거느려라.”
여포는 절해 감사를 표하고 장막 앞에 머물러 잤다. 이날 밤 아이들 10여 명이 교외에서 노래하는데 소리가 바람에 실려 장막까지 들려왔다.

천 리 뻗은 풀 얼마나 푸르더냐
열흘 내다보면 살지 못할걸

노랫소리가 너무 구슬퍼 동탁이 이숙에게 물었다.
“저 노래는 어떤 길흉을 말해주느냐?”
“역시 유 씨가 망하고 동 씨가 흥한다는 뜻입니다.”
【천 리 뻗은 풀밭이라는 천리초(千里草), 세 글자를 합치면 동탁의 성인 동(董)자가 되고, 열흘 앞의 일을 미리 알아맞힌다는 십일복(十日卜), 세 글자를 합치면 동탁의 이름인 탁(卓)자가 된다. 동탁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예언을 노래한 것이다.】
이튿날 새벽 동탁이 의장을 벌려 세우고 조정으로 가는데, 난데없이 푸른 두루마기를 입고 흰 수건을 쓴 도사가 손에 긴 장대를 들고 나타났다. 장대에는 열 자 길이의 천을 매달았는데, 양쪽 끝에 입을 뜻하는 구(口) 자가 하나씩 쓰여 있었다.
【구 자가 둘이면 여포의 성인 여(呂)자가 된다. 또 천은 한자로 포(布)이니 여포를 조심하라는 암시였다.】
동탁은 여전히 멋모르고 이숙에게 물었다.
“이 도사는 누구냐?”
“미친 자입니다.”
이숙은 군사를 불러 도사를 쫓아버렸다.
동탁이 조정에 들어서자 대신들이 관복을 정중히 차려입고 길에서 맞이했다. 이숙은 한 손에 보검을 들고 다른 손으로 수레를 잡고 나아갔다. 일행이 궁전 문에 이르자 의장을 든 자들은 문밖에서 막히고, 수레를 호위하는 20여 명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동탁이 멀리 바라보니 왕윤을 비롯한 대신들이 각기 보검을 들고 서 있는 것이었다. 동탁이 흠칫 놀라 이숙에게 물었다.
“검을 든 것은 무슨 뜻이냐?”
이숙은 대꾸하지 않고 수레를 밀고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왕윤이 높이 외쳤다.
“여기 역적이 왔다! 무사들은 어디 있느냐?”
양쪽에서 무사 100여 명이 나타나 화극과 긴 창을 겨누어 동탁을 찔렀다. 그러나 동탁이 겉에 입은 관복 안에 갑옷을 받쳐 입어서, 창과 극이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갑옷이 가려주지 못하는 팔을 찔린 동탁이 수레에서 굴러떨어지며 소리쳤다.
“내 아들 봉선은 어디 있느냐?”
여포가 수레 뒤에서 돌아 나와 목청을 가다듬고 외쳤다.
“황제의 조서를 받들어 역적을 친다!”
여포가 화극을 콱 찌르니 뾰족한 날이 바로 동탁의 숨통을 꿰었다. 그러자 이숙이 어느덧 동탁의 머리를 잘라 손에 들었다. 여포는 품에서 조서를 꺼내 소리쳤다.
“조서를 받들어 역적 신하 동탁을 토벌했다. 나머지 자들은 잘못을 묻지 않는다!”
무사들은 모두 만세를 높이 외쳤다. 때는 한 헌제 3년(192년), 4월 22일이었다.

동탁이 죽자 여포가 높이 외쳤다.
“동탁을 도와 나쁜 짓을 한 자는 이유다! 누가 그를 잡겠느냐?”
이숙이 응대했다.
“내가 가겠소!”
바로 이때 조정 문밖에서 고함이 일어났다.
“이유의 집 종들이 이미 이유를 묶어 와서 바칩니다.”
왕윤이 분부를 내려 이유를 단단히 결박해 저잣거리로 끌고 가서 목을 치고, 동탁의 주검을 네거리에 내놓아 뭇사람에게 보였다. 동탁이 하도 살이 쪄서 주검을 지키는 군사가 배꼽에 심지를 박아 등불을 켰더니 비계 기름이 땅에 흥건히 흘렀다. 지나가는 백성은 저마다 손으로 동탁의 머리를 때리고, 발로 몸뚱이를 짓밟았다.
왕윤은 여포에게 황보숭, 이숙과 함께 5만 군사를 거느리고 미오로 가서 동탁의 재산을 몰수하고 사람들을 붙잡게 했다. 동탁의 심복인 이각과 곽사, 장제, 번조는 동탁이 이미 죽고 여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비웅군을 거느리고 밤낮없이 양주로 달아났다.
미오에 이른 여포는 먼저 초선부터 차지했다. 황보숭은 성에 감추어둔 양가 자녀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미오성에 쌓은 재물을 점검하니 황금 수십만 냥, 백금과 은 수백만 냥이 있고, 좋은 비단과 진주, 보석, 기물, 식량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여포 일행이 장안으로 돌아와 왕윤에게 보고하니 왕윤은 군사들에게 재물과 술, 음식을 내려 수고를 위로하고, 조정의 일을 보는 도당에서 잔치를 베풀어 대신들을 모아 경축했다.
사람들이 한창 술을 마시는데 누군가가 보고했다.
“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동탁의 주검에 엎드려 통곡합니다.”
왕윤이 화를 냈다.
“동탁이 죽어 선비와 백성이 경축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어떤 자가 감히 홀로 운단 말이냐? 가서 잡아 오너라!”
잠시 후 그 사람이 잡혀 오니 대신들이 모두 놀랐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많은 이에게 존경받는 시중 채옹이었다. 왕윤이 꾸짖었다.
“역적 동탁이 오늘 죽임을 당해 나라의 큰 경사인데, 그대는 한의 신하로서 나라를 위해 경축하지 않고 오히려 역적을 위해 우니 어찌하여 그러는가?”
채옹은 순순히 죄를 시인했다.
“이 옹은 비록 재주 없으나 역시 큰 도리를 아는데, 어찌 나라를 등지고 동탁을 감싸겠습니까? 그저 잠깐 그가 이 옹을 알아주고 써준 은혜를 떠올려 저도 모르게 그만 울음이 나왔습니다. 그 죄가 큼을 스스로 알지만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얼굴에 글자를 새기고, 발목을 자르는 데에 그치고 목숨을 붙여주셔서, 한나라 역사를 이어 써서 완성하도록 하여 죄를 씻게 해주시면 이 옹의 행운이겠습니다.”
대신들은 채옹의 재주를 아껴 모두 그를 구하려고 힘을 보탰다. 태부 마일제도 가만히 왕윤에게 말했다.
“백개(채옹의 자)는 당대에 견줄 사람이 없을 만큼 뛰어난 인재이니 그에게 한나라 역사를 이어 쓰게 하면 참으로 성대한 일이라 하겠소. 그의 효성은 이전부터 잘 알려진 바인데 갑자기 죽이면 사람들 신망을 잃을까 두렵소.”
그러나 품계가 더 높은 마일제의 권고도 왕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옛날 무제께서 사마천을 죽이지 않고 역사를 짓게 하시어, 황제를 비방하는 책이 후세에 퍼지게 되었소. 지금 나라의 운이 쇠약하고 조정 정사가 어지러우니, 간사한 신하가 어린 황제의 좌우에서 붓을 들게 하여 후에 우리가 비난을 듣게 해서는 아니 되오.”
【사마천의 《사기》는 3000년 역사를 담은 불후의 명작이지만 사마천이 무제의 신하로서 황제가 저지른 잘못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주인을 모독한 책이라고 비난하는 견해도 있었다.】
마일제는 말없이 물러나 사석에서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왕윤은 그 후대가 없겠소! 착한 사람은 나라의 보배요, 역사책을 쓰면 나라의 본보기가 되오. 보배를 버리고 본보기를 없애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소?”
왕윤은 마일제의 말을 듣지 않고 채옹을 감옥에 가두어 목매어 죽이게 했다. 선비들은 소식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후세 사람들은 채옹이 동탁을 위해 운 것은 잘못이지만 왕윤이 그를 죽인 것은 너무하다고 평했다.
--- 본문 중에서
유비는 날을 잡아 관우, 장비와 함께 제갈량의 집을 찾아 길을 떠났다. 제갈량은 공명(孔明)이라 불리고, 누운 용을 뜻하는 와룡선생이라고도 했다.
멀리 바라보니 산 아래 밭에서 사람 몇이 호미를 들고 일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푸른 하늘은 둥그런 뚜껑인 듯
넓은 땅은 네모난 바둑판인 듯
흑과 백으로 나뉜 세상 사람
오가며 영광과 모욕 다투네
영광 얻은 자는 편안하고
모욕당한 자는 수그러드는 법
남양에 숨어 사는 이 있으니
베개를 높이 하고 잠을 자누나

노래를 듣고 유비가 말을 세우고 농부에게 물었다.
“이 노래는 누가 지었소?”
“와룡선생이 지은 노래입니다.”
“와룡선생은 어느 곳에 계시오?”
농부가 멀리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산 남쪽에 쭉 뻗어 나간 높은 언덕을 와룡강이라 합니다. 언덕 앞에 성긴 숲이 있는데 그 숲속 초가가 바로 제갈 선생께서 베개를 높이 고이신 곳입니다.”
유비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말을 채찍질해 나아갔다. 얼마 가지 않아 멀리 와룡강이 보이는데 과연 경치가 뛰어났다.
후세 사람이 시 한 편을 지어 특별히 와룡이 살던 곳을 노래했다.

양양성 서쪽 20리 떨어진 곳
뻗어 나간 언덕은 흐르는 물을 베고 누워
높은 언덕 구불구불 구름 밑동 누르고
돌고드름 아래로 물 졸졸 날아내리네
형세는 고단한 용 돌 위에 서린 듯
모양은 외로운 봉황 솔 그늘에 내린 듯
나무문 절반 닫혀 초가집 가리니
그 안에 고명한 이 누워 일어나지 않누나
긴 참대 엇갈리어 푸른 병풍 늘어서고
사계절 울타리엔 들꽃이 향기롭네
침상 머리에 쌓은 것은 모두 누런 책이요
자리에서 오가는 이 무식한 자 없더라
푸른 원숭이 문 두드려 과일 바치고
늙은 학 집 지키며 밤에 경을 듣는다
주머니에 든 거문고 옛 비단에 싸이고
벽에 걸린 보검에는 별 일곱 개 돋쳤다
초가집 안 선생은 유독 우아하거니
한가할 때 손수 농사를 짓누나
봄날의 우레가 꿈 깨우기만 기다린다
한 소리 길게 질러 천하 안정시키려고

유비가 장원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직접 사립문을 두드리니 아이가 나와 누구냐고 물었다.
“한나라 좌장군, 의성정후 겸 예주 목으로 신야에 주둔하는 황숙 유비가 특별히 선생을 찾아뵈러 왔다.”
아이가 쫑알거렸다.
“나는 그렇게 긴 이름은 외우지 못하는데요.”
유비는 전하기 쉽게 다시 말했다.
“그냥 유비가 찾아왔다고 하면 된다.”
“선생님은 오늘 아침에 나가셨어요.”
유비가 은근히 맥이 풀려 물었다.
“어디로 가셨느냐?”
“자취가 정해지지 않으셔서 어디로 가셨는지 몰라요.”
“언제 돌아오시느냐?”
“돌아오시는 때도 정해지지 않았어요. 사나흘 만에 오실 때도 있고 10여 일 지나서 오실 때도 있거든요.”
뜻밖의 대답을 들은 유비는 속이 허전해지면서 몹시 실망했다. 성급한 장비가 재촉했다.
“거, 만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돌아가면 그만이오.”
“잠깐 기다려보세.”
유비가 말하는데 관우도 장비와 생각이 같았다.
“일단 돌아가고, 다시 사람을 보내 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유비는 그 말에 좇아 아이에게 당부했다.
“선생께서 돌아오시면 유비가 뵈러 왔다고 전해라.”
그리고 말에 올라 조금 가다가 말을 세우고 융중의 경치를 돌아보았다. 과연 산은 높지 않아도 아름답고, 물은 깊지 않아도 맑으며, 땅은 넓지 않아도 평탄하고, 숲은 크지 않아도 무성했다. 원숭이와 학이 사이좋게 지낼 만하고, 소나무와 참대가 어울려 푸르른 빛을 돋우었다.
유비가 탐스럽게 구경하는데 별안간 한 사람이 나타났다. 풍채가 늠름하고 용모가 시원스러운데, 머리에는 소요건을 쓰고 몸에는 검정 무명 두루마기를 걸쳤다. 그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산의 후미진 오솔길을 걸어왔다.
“이분이 틀림없이 와룡 선생이시다!”
유비는 한마디 짧게 외치고 급히 말에서 내려 인사했다.
“선생은 와룡이 아닙니까?”
그 사람이 되물었다.
“장군은 뉘시오?”
“유비올시다.”
“나는 공명이 아니라 그의 벗인 박릉의 최주평입니다.”
제갈량은 아니었으나 유비는 역시 반가웠다.
“오랫동안 높은 성함을 받들어오다 오늘 다행히 만나 뵙습니다. 잠깐 여기 앉으시지요. 한마디 가르침을 받을까 합니다.”
두 사람은 숲속 바위 위에 마주 앉고, 관우와 장비는 곁에 모시고 섰는데 최주평이 물었다.
“장군은 무엇 때문에 공명을 만나려 하십니까?”
“지금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고 사방이 들끓으니, 공명을 만나 나라를 안정시킬 방책을 구할까 해서입니다.”
최주평이 웃음 지었다.
“공은 난리를 평정하려는 뜻을 품으셨는데, 그 마음은 비록 어집니다만 한스럽게도 다스림과 어지러움의 이치를 모르십니다.”
“다스림과 어지러움의 이치란 어떤 것입니까?”
유비가 묻자 최주평이 길게 말을 시작했다.
“장군이 버리지 않으신다면 한마디 들어보십시오. 예로부터 다스림이 끝에 이르면 어지러움이 생기고, 어지러움이 극에 이르면 다스림이 이루어졌으니, 음과 양이 줄어들었다 늘어나는 도리나 추위와 더위가 왔다 갔다 하는 이치와 비슷합니다. 다스림에는 어지러움이 있게 마련이고, 어지러움이 더없이 심해지면 다스림이 일어납니다. 마치 추위가 끝나면 따스해지고 따스함이 끝나면 추워지면서 사계절이 서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예로부터 다스림과 어지러움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늘 변했습니다. 한나라 고조께서 흰 뱀을 베고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무도한 진나라를 뒤엎으시니, 어지러운 세상이 끝나고 평안히 다스려지는 세상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애제, 평제 시대까지 200년간 오래 태평스럽더니 왕망이 황제 자리를 빼앗아, 평화로운 다스림으로부터 어지러운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광무제께서 중흥하여 조상의 사업을 다시 일으키시니 또 어지러움으로부터 잘 다스려지는 세상으로 바뀌었는데, 지금까지 200년이 지나자 백성이 오래 평안하다가 다시 사방에서 창칼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바로 잘 다스려지던 세상에서 어지러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때이므로 급하게 안정시킬 수 없습니다. 장군은 공명에게 비틀어진 하늘땅을 돌려놓고 찢어진 세상을 깁도록 하려 하시는데, 일이 쉽사리 되지 않고 공연히 정신과 힘만 낭비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하늘에 따르는 자는 편하고 하늘을 거스르는 자는 힘들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또 ‘운수가 정해지면 이치로 빼앗을 수 없고, 인간이 억지로 해서는 아니 되느니라’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최주평의 말은 그러나 유비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선생 말씀은 참으로 고명하신 견해입니다. 하지만 이 비는 한나라 황실 후예로서 기필코 한의 조정을 보좌해야 하므로 어찌 감히 운수와 운명에만 맡기겠습니까?”
최주평은 말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산과 들에 사는 이 사내와는 천하의 일을 논할 바가 못 됩니다. 장군이 물어보시기에 제가 함부로 지껄였습니다.”
유비는 알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다.
“가르침을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공명께서는 어디로 가셨는지 아십니까?”
“나도 그를 찾아보려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선생께서 저희와 함께 변변찮은 저희 현으로 가시면 어떻겠습니까?”
유비의 초청을 최주평은 사절했다.
“어리석은 이 사람은 한가하고 편안히 보내기를 좋아해, 공을 세우고 이름을 알리는 데는 뜻을 잃은 지 오랩니다. 뒷날 다시 뵙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최주평은 두 손을 맞잡아 인사하고는 제 갈 길을 갔다.
유비가 아우들과 함께 말에 오르니 장비가 투덜거렸다.
“공명도 만나지 못했는데 도리어 이따위 썩은 선비를 만나 쓸데없는 한담을 오래도 했소!”
관우가 물었다.
“주평의 말이 어떠합니까?”
“이것도 숨어 사는 이의 말일세. 나도 번연히 아는 바이지. 지금은 어지러움이 극에 이른 때인데 성인께서 하신 말씀이 있네.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살지 않는다. 천하에 도(道)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숨는다.’ 이 말이야 물론 맞는 말이지. 하지만 한나라 황실이 위태롭고 사직이 무너지며 백성이 거꾸로 매달린 듯 위급한데, 나는 황실 종친이고 게다가 여러분이 힘을 다해 보좌하니 어찌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위험을 구하지 않겠는가? 차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단 말일세.”
관우가 찬성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회왕이 밝지 못함을 알면서도 굴원이 힘을 내어 충고를 드린 것은 굴원이 왕실과 같은 씨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운장이 내 마음을 아는군.”
【전국시대 위대한 시인 굴원은 초나라 회왕이 진나라와 교섭에서 늘 속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어리석은 행위를 여러 번 말렸으나 벼슬을 잃고 유배되고 말았다. 회왕이 진나라 왕을 만나러 갔다가 납치되어 끌려가자 굴원은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세 사람은 신야로 돌아왔다. 며칠 지나 유비가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니 제갈량이 돌아왔다고 해서 떠날 채비를 갖추자 장비가 말렸다.
“한낱 시골뜨기인데 형님이 몸소 가실 게 뭐요? 사람을 보내 불러오면 그만이오.”
유비가 꾸짖었다.
“자네는 맹자의 말을 듣지 못했는가? ‘현명한 이를 만나려 하면서 도에 따르지 않으면 마치 그가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문을 닫는 것과 같으니라’라고 하셨네. 공명은 당대의 큰 현인이신데 어찌 다른 사람을 보내 불러오는가?”
유비가 다시 융중으로 떠나니 관우와 장비도 따랐다.
건안 12년(207년) 12월, 때는 한겨울이라 날씨가 무섭게 추운데 검붉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몇 리도 가지 못해 북풍이 윙윙 불어대며 눈송이가 흩날렸다. 눈이 뒤덮인 산은 옥돌을 모은 듯하고, 눈송이를 덮어쓴 숲은 은으로 단장한 듯했다. 가뜩이나 시큰둥하던 장비가 또 물러서려 했다.
“하늘은 차고 땅은 얼어붙어 아직 군사도 움직이지 않는데, 먼 길을 가서 쓸모없는 사람을 보는 게 무엇이 바람직하오? 차라리 신야로 돌아가 눈보라나 피합시다.”
유비는 단호했다.
“나는 공명에게 성의를 알리고 싶네. 아우는 추위가 겁나면 먼저 돌아가게.”
장비는 계면쩍은 듯 말을 고쳤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추위 따위가 겁나겠소? 그저 형님이 헛고생하고 공연히 속이나 썩으실까 걱정일 뿐이오.”
“더 말하지 말게. 나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네.”
제갈량의 초가에 거의 이르는데 느닷없이 길가 술집에서 누가 노래를 불러 유비가 들어보니 이런 노래였다.

장사의 공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오호라, 오랫동안 봄날 만나지 못했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동해의 늙은이 가시덤불 떠나서
후에는 문왕과 같은 수레 탔더라
800 제후 기약 없이 한자리에 모여
흰 물고기 배에 오를 때 맹진을 건넜지
목야의 한판 싸움 피 흘러 공이가 떴는데
매처럼 날아올라 무관 중 으뜸 되었네
그리고 또 보지 못했는가
고양 땅 술꾼이 수풀 속에서 일어나
망탕의 코 큰 어른에게 길게 읍했던 일
왕자 패자 일 이야기해 어른 놀라게 하니
발 씻던 일 그치고 자리에 앉게 해 흠모했네
동으로 제나라 성 일흔두 개 앗으니
천하에 그 자취 따를 사람 없구나
두 사람 공적 이러하거늘
지금까지 그 누가 영웅을 논하려 하더냐?
【처음에는 장한 사내가 품은 뜻을 펴지 못했는데, 밝은 정치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다음으로 동해에서 살던 강태공이 갖은 고생 끝에 주문왕이 그를 청해, 뒷날 그 아들 무왕을 도와 상나라를 뒤엎어 큰 공로를 세운 일을 노래했다. 맹진 나루에서 800명 제후와 만나 강을 건너는데 흰 물고기가 배에 뛰어들어 희한한 징조를 만들었고, 목야 땅 싸움에서 상나라가 참패해 흐르는 피 위에 공이가 둥둥 떴다지 않은가? 바로 그 싸움으로 강태공은 주나라의 으뜸 공신이 되었다.
또 진나라 말년 고양에서 낮은 벼슬아치로 늙어온 역이기가 코가 커서 ‘융준공(隆準公)’으로 불린 유방에게 찾아가 쓰인 일을 이야기했다. 유생을 싫어하던 유방은 역이기가 유생 차림으로 찾아왔다고 하자 하녀에게 계속 발을 씻게 하면서 만나주지 않았다. 그러자 역이기는 유방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다시 전하라고 했다.
“유생이 아니라 고양의 술꾼이 왔다고 해라.”
술꾼이라면 유방의 비위에 맞아서 바로 역이기를 만나 중용했다. 뒷날 유방이 항우와 천하를 다툴 때, 역이기는 제나라로 가서 왕을 설득해 유방에게 항복하도록 했는데, 그때 제나라에는 성이 72개나 되었다.
노래에서는 젊은 시절에는 어렵게 보내다 나이 들어 현명한 임금을 만나 큰 뜻을 이룬 강태공과 역이기를 찬미했다. 그런데 결론은 이상했다. 두 사람이 그처럼 대단하니 후세 사람들은 그들에게 비유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노래가 끝나자 곧 다른 목소리가 새 노래를 부르는데, 이번에는 상까지 두드렸다.

우리 황제 검을 들어 세상 깨끗이 하셔서
창업하신 뒤로 400년이 이어졌네
환제, 영제 말세에 화덕 쇠퇴해져
간신과 역적이 권력을 잡았더라
푸른 뱀이 어좌 곁에 날아내리고
요사스러운 무지개도 옥당궁에 내려왔지
무리 도적 사방에서 개미처럼 모이고
간웅들이 저마다 매같이 날아올라
우리 무리 휘파람 불며 손뼉이나 치거늘
갑갑하면 술집 와서 시골 술 퍼마시자
제 몸만 잘 거두면 종일 편안한데
천고에 썩지 않을 이름 탐내 무엇하리
【한나라 역사를 이야기하며 말세의 어지러움을 탄식한 이 사람은 먼저 사람보다 더 분명하게 세상을 벗어나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노래를 마치고 손뼉을 치며 껄껄 웃었다.
“와룡이 여기 계시나?”
유비가 술집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데, 윗자리에 앉은 사람은 얼굴이 희고 수염이 길며, 아랫자리에 앉은 사람은 준수하고 비범하게 생겨 그림에 나오는 옛날 사람 비슷했다. 유비가 두 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물었다.
“두 분 가운데 어느 분이 와룡 선생이십니까?”
수염 긴 사람이 되물었다.
“공은 누구신데 어찌하여 와룡을 찾으시오?”
“저는 유비입니다. 선생을 찾아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얻으려 합니다.”
수염 긴 사람이 말했다.
“우리는 와룡이 아니라 그의 친구올시다. 나는 영천의 석광원이고, 이 사람은 여남의 맹공위지요. 둘 다 여기 숨어 삽니다.”
유비는 매우 좋아했다.
“이 비는 두 분의 크신 성함을 들어 모신 지 오랜데 다행히 기약 없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희를 따라온 말들이 여기 있으니 감히 두 분을 모시고 함께 와룡의 장원으로 가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석광원이 사절했다.
“우리는 모두 산과 들의 게으른 무리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을 모르니, 물음을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공은 말에 올라 와룡을 찾아보십시오.”
유비는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와룡강으로 갔다. 초가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리자 아이가 나왔다.
“선생께서는 오늘 장원에 계시느냐?”
유비가 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지금 대청 위에서 책을 보세요.”
유비는 대단히 기뻐 동자를 따라 들어갔다. 대문을 지나 중문에 이르니 문 위에 글 두 줄이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담백하게 욕망 줄여 뜻이 밝아지게 하고
차분하게 가라앉혀 멀리 헤아리려 하노라
淡泊以明志(담백이명지)
寧靜而致遠(녕정이치원)

유비가 글을 읽어보는데 노래를 읊조리는 소리가 들려, 문 옆에 서서 가만히 안을 엿보았다. 대청 위 화로 곁에서 한 소년이 무릎을 끌어안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봉황은 천 길 허공 날아 예거니
오동이 아니고는 깃들이지 않고
선비는 한 고장에 숨어 있거니
주인이 아니면 의지하지 않노라
즐거이 농사짓나니 내 초가 사랑하고
그럭저럭 거문고와 책에 정력을 쏟으니
하늘이 도와줄 때를 기다리노라

유비는 노래가 그치기를 기다려 대청 위로 올라가 예절을 차려 인사했다.
“이 비는 선생을 흠모한 지 오래인데 만나 뵐 인연이 없었습니다. 저번에 서원직이 선생을 추천해 저희가 삼가 신선의 장원에 왔으나 뵙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특별히 바람과 눈을 무릅쓰고 왔는데 높으신 모습을 뵙게 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소년은 황급히 답례하며 말했다.
“장군은 혹시 저희 형을 만나시려는 유 예주 아닙니까?”
유비는 흠칫 놀랐다.
“선생은 역시 와룡이 아닙니까?”
소년이 대답했다.
“저는 와룡의 아우 제갈균입니다. 저희는 형제가 셋인데 큰형님 제갈근은 지금 강동 손중모의 막료로 계시고, 공명은 둘째 형님입니다.”
“와룡은 지금 집에 계십니까?”
“어제 최주평이 와서 바깥으로 한가히 놀이 나갔습니다.”
“어디에 가셔서 한가히 노니십니까?”
제갈균의 대답은 지난번 아이의 말보다 더 기막혔다.
“가끔은 쪽배를 저어 강물과 호수에서 노닐기도 하고, 가끔은 스님과 도사를 만나려고 산과 고개에 오르기도 하며, 가끔은 친구를 찾아 마을로 가는가 하면, 또 가끔은 거문고와 바둑을 즐기느라 동굴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 오고 감을 미리 짐작할 수 없으니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유비는 이처럼 인연이 얇아서 두 번이나 현명한 이를 만나지 못하는구려!”
유비가 한탄 조로 말하자 제갈균이 위로했다.
“잠깐 앉으시지요. 차를 올리겠습니다.”
장비는 또 짜증이 났다.
“선생이 없다니 형님, 말에 오르시오!”
유비가 장비를 말렸다.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어찌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돌아가겠나?”
그리고 제갈균에게 물었다.
“형님인 와룡 선생은 군사를 부리는 육도삼략에 익숙하시고 날마다 병서를 보신다고 하던데,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제갈균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저는 모릅니다.”
장비는 갑갑증이 났다.
“그에게 물어 무얼 하오! 바람이 왱왱 불고 눈이 펑펑 쏟아지니 빨리 돌아가는 게 낫지.”
유비가 장비를 꾸짖는데 제갈균이 말했다.
“형님이 계시지 않으니 감히 행차를 오래 머무르시게 하지 못하겠습니다. 다음에 답례할까 합니다.”
“어찌 감히 선생께서 오시기를 바랍니까? 며칠 지나 이 비가 다시 오겠으니 종이와 붓을 빌려주시면 형님께 글을 남겨 유비의 성의를 알리겠습니다.”
유비 말에 제갈균이 문방사보를 내놓자 유비는 얼어붙은 붓에 입김을 불어, 구름 모양 꽃무늬 종이를 펴고 글을 썼다.
‘이 비가 오랫동안 높으신 이름을 우러러 두 번 뵈러 왔으나 헛일이 되어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허전한 마음을 어디에 비유하겠습니까! 이 비는 한나라 황실 후예로 그럭저럭 명예와 작위를 얻었는데, 엎드려 살펴보매 조정의 힘이 약해 위아래 순서가 뒤바뀌고 기강이 풀렸으며, 여러 영웅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악당들이 임금을 속이니 심장과 쓸개가 다 갈라집니다. 비록 나라를 바로잡고 세상을 건질 성의는 있으나 실로 천하를 다듬을 방책이 모자랍니다. 우러러 바라건대 선생께서 어질고 자애로운 마음을 움직이시어 기꺼이 여망의 큰 재주를 펼치시고, 자방의 웅대한 슬기를 쓰신다면 천하가 참으로 행운이고 사직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먼저 이 글로 뜻을 알리고 이후에 다시 목욕재계하고 찾아와, 존귀한 얼굴을 뵈옵고 저의 하찮지만 지극한 정성을 털어놓을까 합니다. 이렇게 적으니 너그럽게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건안 12년 12월 길일, 비가 두 번 절하고 씁니다.’
유비는 제갈균이 글을 받아 간직하는 것을 보고 문을 나섰다. 제갈균이 문밖에 나와 배웅해, 유비는 두 번 세 번 정성을 다해 인사하고 헤어졌다. 말에 올라 막 떠나려 하는데 아이가 울타리 밖을 바라보고 손짓하며 소리쳤다.
“늙은 선생께서 오세요.”
유비가 보니 작은 다리 저쪽에서 두툼한 모자로 머리를 가리고 여우 털 갖옷으로 몸을 감싼 사람이 나귀를 타고 왔다. 뒤에는 푸른 옷을 입은 아이가 따르는데 술이 담겼음 직한 조롱박을 들고 눈을 밟으며 왔다.
다리를 건너자 그 사람이 시 한 수를 읊었다.

하룻밤 차가운 하늬바람 불더니
만 리 하늘 검붉은 구름 두껍게 끼었네
가없는 공중에는 눈송이 마구 날려
강산의 옛 모습 죄다 바꾸었구나
우러러 허공을 살펴보니
옥룡들이 어울려 싸우는 듯하네
비늘갑옷 분분히 흩날려
잠깐 사이 우주에 가득 차누나
나귀 타고 작은 다리 지나며
매화가 여위었다고 홀로 한숨짓는다

유비는 노래를 듣고 좋아했다.
“이번에는 진짜 와룡이시다!”
굴러떨어지듯 말에서 내려 예절을 차리고 인사했다.
“선생께서 추위를 무릅쓰시니 참으로 쉽지 않으시겠습니다! 유비가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랩니다!”
그 사람이 황급히 나귀에서 내려 답례하는데 등 뒤에서 제갈균이 말했다.
“이분은 형님이 아니십니다. 형님의 장인 되시는 황승언 선생이십니다.”
유비는 은근히 실망했으나 드러내지 않았다.
“방금 읊으신 구절이 지극히 고상하고 기묘하십니다.”
황승언이 대꾸했다.
“이 늙은이는 사위 집에서 《양부음》 책을 보다 이 한 편을 기억했소이다. 방금 다리를 지나다 우연히 울타리 사이의 매화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 읊었는데, 귀한 손님께서 들으실 줄은 몰랐소이다.”
“사위님을 만나셨습니까?”
유비가 묻자 황승언이 대답했다.
“이 늙은이도 그를 보러 오는 길이외다.”
그 말에 유비는 더 할 말이 없어 신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눈보라가 더욱 기승을 부려 와룡강을 돌아보니 걱정스러워 속이 답답해졌다.
--- 본문 중에서
유비가 신야로 돌아온 뒤 시간이 지나 어느덧 초봄이 되었다. 유비는 점쟁이에게 물어 길한 날을 잡아서 사흘 동안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향을 태워 향기를 쏘이고, 목욕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제갈량을 만나러 떠나려고 했다.
관우와 장비는 그 말을 듣고 탐탁지 않아 가지 말라고 말렸다.
“형님께서 친히 두 번이나 가셨으니 예의가 이미 지나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갈량은 헛된 이름이나 났을 뿐 실제로는 배운 게 없어 감히 만나지 못하고 피하는지도 모릅니다. 형님께서는 어찌하여 그 사람에게 이처럼 홀리셨습니까?”
관우의 말에 유비가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그렇지 않네. 옛날 제환공은 한낱 동곽의 야인을 만나려고 다섯 번이나 찾아가 겨우 한 번 얼굴을 보았네. 하물며 나는 큰 현인을 만나 뵈려 하지 않는가?”
【춘추시대 첫 패자였던 제환공은 급이 낮은 신하를 만나려고 하루에 세 번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남들은 다시 가지 말라고 권했으나 계속 찾아가 다섯 번 만에야 만났다. 그 신하가 제환공의 패업에 얼마나 공을 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환공의 인재를 아끼는 마음은 높이 평가받았다.】
관우는 곧 마음을 돌렸다.
“형님께서 현명한 이를 존경하심은 마치 문왕이 강태공을 만나 뵙는 듯합니다!”
그러나 장비는 뿌루퉁해 소리쳤다.
“형님은 틀렸소! 우리 세 형제가 천하를 가로세로 누벼오면서 무예를 따져보면 누구보다 못하겠소? 어찌하여 그따위 시골뜨기를 큰 현인이라 부르며 모셔 오려 하오? 그 모습이 너무 심하오! 그까짓 시골뜨기가 무슨 큰 현인 말을 들을 나위나 있겠소? 이번에는 형님이 갈 것 없소. 그가 오지 않으면 내가 삼 밧줄로 꽁꽁 묶어 끌고 오겠소!”
유비가 화를 내며 꾸짖었다.
“자네는 주나라 문왕이 자아 강태공을 만나 뵌 일을 모르는가? 문왕은 그때 천하의 세 몫 중 두 몫을 차지했는데도 위수로 자아를 뵈러 갔더니 자아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네. 문왕이 뒤에서 모시고 서서 해가 기울도록 물러서지 않자, 그제야 자아는 문왕과 말을 나누었네. 그래서 800년 주나라 천하가 시작되었네. 문왕께서도 이처럼 현명한 이를 존경하셨거늘 자네가 어찌하여 무례하게 구는가! 이번에 자네는 가지 말게. 나는 운장과 같이 가겠네.”
“두 형님이 가시는데 이 아우가 어찌 혼자 남아 있겠소?”
장비가 굽히고 들어오니 유비가 다짐했다.
“자네가 같이 가서 혹시라도 실례해서는 아니 되네.”
“알았소.”
세 사람은 따르는 자들을 데리고 융중으로 떠났다. 아직 초가에서 반 리나 떨어졌는데 유비는 벌써 말에서 내려 걸었다. 마침 제갈균이 마주 오자 유비가 급히 인사하고 물었다.
“형님은 댁에 계십니까?”
“어제저녁에 돌아왔습니다. 장군께서는 오늘 형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 제갈균은 제 갈 길을 갔다.
“이번에는 요행히 선생을 뵙게 되는구나!”
유비는 기뻤으나 심기가 뒤틀린 장비는 모든 게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저 사람 무례하구먼! 우리를 초가로 안내하고 가도 될 텐데 왜 혼자 가버리는 거야?”
“그야 자기 일이 있으니 어찌 억지로 강요하겠나?”
유비가 장비를 다독거렸다.
세 사람이 장원 앞에 이르러 유비가 손수 문을 두드리자 아이가 나왔다. 이제는 구면인 유비가 말했다.
“신선 동자에게 폐를 끼치게 되었구나. 유비가 특별히 선생을 찾아뵈러 왔다고 전해다오.”
“오늘은 선생님께서 집에 계시지만 지금 초당 위에서 낮잠을 주무세요.”
“그렇다면 잠시 알리지 마라.”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하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은 초당 삿자리 위에 반듯이 누워, 유비가 두 손을 모아 쥐고 섬돌 아래에 서서 오래 기다렸으나 깨어나지 않았다. 바깥에서 한참을 서서 기다려도 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관우와 장비가 들어가 보니 유비는 아직도 마당에 공손히 서 있었다. 장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 사람이 어찌 이처럼 오만하오? 우리 형님을 섬돌 아래에 세워놓고 저는 번듯이 누워 자는 척하고 있지 않소? 내가 집 뒤로 돌아가서 불을 콱 싸지르겠소. 그래도 일어나지 않나 봅시다!”
서두르는 장비를 관우가 거듭거듭 말렸다. 유비 역시 두 사람을 문밖으로 내보내 기다리게 했다. 다시 초당 위를 바라보니 선생이 몸을 뒤집으며 일어날 듯이 하더니 다시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아이가 손님이 왔다고 알리려 하자 유비가 말렸다.
“놀라시게 하지 마라.”
유비는 또 두 시간이나 서 있었다. 온몸이 욱신욱신 쑤셔왔으나 억지로 버티면서 떠나지 않았다. 그제야 제갈량이 잠에서 깨어나 시를 읊었다.

큰 꿈에서 누가 먼저 깨어났더냐
평생에 나 스스로 자신을 아노라
초당에서 봄 잠 실컷 자고 나니
창문 밖에 해가 뉘엿뉘엿 하구나

제갈량이 시를 읊고 몸을 뒤집더니 아이에게 물었다.
“바깥손님이 와 계시지 않느냐?”
아이가 대답했다.
“유황숙께서 여기 서서 기다리신 지 오랩니다.”
제갈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찌 일찍 알리지 않았느냐! 내가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제갈량은 뒤채로 들어가 다시 한참이 지나서야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나와 유비를 맞이했다. 유비가 보니 키가 여덟 자에 얼굴은 머리에 쓰는 관에 다는 옥처럼 아름다웠다. 머리에는 푸른 비단 띠로 만든 윤건을 쓰고 몸에는 새털로 짠 학창의를 걸쳤으니, 이 세상을 떠난 신선 같은 기풍이 있었다.
유비가 절을 하며 입을 열었다.
“한나라 황실의 끄트머리 후예이고 탁군의 어리석은 사내인 유비는 우레를 듣듯이 선생의 크신 성함을 들어 모신 지 오랩니다. 전에 두 번 찾아왔으나 한 번도 뵙지 못해, 천한 이름을 글에 적어 상 위에 남겼는데 보셨는지요?”
제갈량은 담담히 대꾸했다.
“남양의 시골 사람은 게으름에 몸이 젖었는데 장군께서 여러 번 잘못 왕림하시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두 사람은 인사를 마치고 손님과 주인 자리에 나뉘어 앉았다. 아이가 올린 차를 마시고 제갈량이 말했다.
“전날 글을 보고 장군께서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시는 마음을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한스럽게도 이 양은 나이가 어리고 재주가 서툴러, 내리시는 물음에 드리는 답이 그릇될까 두렵습니다.”
유비는 이미 제갈량에게 반했다.
“사마덕조의 가르침과 서원직의 말이 어찌 빈 소리이겠습니까? 선생께서 이 비를 비천하다고 버리지 마시고 가르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덕조와 원직은 세상의 고명한 선비들입니다. 이 양은 한낱 농부인데 어찌 감히 천하의 일을 이야기하겠습니까? 두 분은 잘못 추천하셨습니다. 장군께서는 어찌 아름다운 옥을 버리고 거친 돌멩이를 얻으려 하십니까?”
“대장부가 세상을 경영할 기이한 재주를 지녔으면서 어찌 수풀과 샘을 더불어 헛되이 늙어가십니까. 선생께서 천하 백성을 생각하시어 이 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가르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유비가 끈질기게 청하자 제갈량은 빙그레 웃었다.
“장군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유비는 곁의 사람들을 물리치고 삿자리 위에서 무릎걸음으로 바싹 다가가 자신의 포부를 털어놓았다.
“한의 황실이 기울고 간신들이 권력을 훔쳤으니, 이 비는 모자란 힘을 아랑곳하지 않고 천하에 대의를 펴려 합니다. 그런데 슬기가 모자라고 방책이 부족해서 할 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선생께서 어리석은 이 사람을 깨우쳐 어려움을 풀어주시면 실로 행운이겠습니다!”
제갈량은 드디어 마음을 털어놓고 유비를 위해 세상 돌아가는 형세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동탁이 역적 짓을 시작한 뒤로 천하에 호걸들이 너도나도 일어났습니다. 주를 가로 타고 군을 아울러 차지한 자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조조가 세력이 미치지 못하면서도 원소를 이긴 것은 하늘이 도와주는 때를 잘 만났을 뿐 아니라 사람의 꾀도 역시 빛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조조는 100만의 무리를 거느리며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니 실로 그와 다툴 수 없습니다. 강동을 차지한 손권은 이미 3대를 거쳤는데, 나라는 험하고 백성은 깊이 따르며, 현명하고 유능한 이들이 크게 힘을 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을 돕는 힘으로 삼아야지 적으로 대해서는 아니 됩니다. 형주는 북으로는 한수와 면수를 막고 남으로는 남해에 닿았으며, 동으로는 오군과 회계에 이어지고 서로는 파·촉 땅과 통하니, 이는 싸움을 할 땅이라 참된 주인이 아니면 지켜낼 수 없습니다. 이야말로 하늘이 형주를 장군께 주는 격인데, 장군께서는 받으실 뜻이 있으십니까? 익주는 험하고 꽉 막혔는데 기름진 들판이 1000리나 펼쳐졌으니, 이는 하늘이 만들어준 곳간이라 고조께서는 그 고장에 의지해 황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지금 익주는 백성이 넉넉하고 나라가 부유한데 주인인 유장은 사리에 어둡고 나약해 사람을 아낄 줄 몰라서, 슬기롭고 재능 있는 이들이 영명한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황실의 후예이신데 거기에 더해 신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셨고, 영웅들을 품에 끌어안으시며 현명한 이를 그리워하기를 목마른 자가 물을 바라듯 하십니다. 그러니 형주와 익주를 가로 타고 앉아 험악한 곳을 지키시고, 서쪽으로는 융인의 여러 무리와 화해하시며, 남쪽으로는 이(彛)와 월(越)의 종족을 어루만지시면 됩니다. 바깥으로 손권과 손잡고 안으로 힘을 기르시다 천하에 변화가 생기기를 기다려, 상장 하나를 보내 형주 군사를 이끌고 완성과 낙양으로 나가게 하시고, 친히 익주 무리를 거느리고 진천으로 나아가시면 백성이 누군들 광주리에 음식을 담고 항아리에 술을 채워 맞이하지 않겠습니까? 실로 이렇게 되면 대업을 이룰 수 있고, 한의 황실이 흥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 양이 장군을 위해 생각한 바이니 장군께서 시행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수와 면수는 지금부터 자주 나오는데, 원래 강이 둘이지만 하나를 가리키기도 한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강은 면수라 부르고 서쪽에서 흘러오는 강은 한수라 불렀다. 두 강이 합쳐진 큰 강은 면수 또는 한수라고 하며 하구에서 장강으로 흘러든다. 앞으로 유비 일생은 이 강들과 떼어놓을 수 없게 된다.】
말을 마치자 제갈량은 아이를 시켜 둘둘 만 그림을 꺼내 걸게 하더니 그림을 가리키며 유비에게 말했다.
“이것은 서천 54개 고을 그림입니다. 장군께서 패업을 이루시려면 북쪽으로는 조조가 천시(天時)를 차지하게 하고, 남쪽으로는 손권이 지리(地利)를 차지하게 하면서 스스로는 인화(人和)를 차지하시면 됩니다. 먼저 형주를 손에 넣어 집으로 삼고, 서천을 쳐서 사업을 벌여 솥의 발처럼 셋으로 갈라진 형세를 이루면, 그다음 중원을 노릴 수 있습니다.”
【천시는 하늘이 돕는 때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황제를 끼었다는 뜻이다. 지리는 유리한 땅을 가리키고, 인화는 집단의 화목한 인간관계를 말한다.】
제갈량의 말을 듣자 유비는 일어서서 삿자리 바깥으로 나가 손을 맞잡고 고마워했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길을 꽉 가로막은 수풀이 모두 걷힌 듯 눈앞이 환해집니다. 이 비는 구름 안개를 걷어내고 푸른 하늘을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형주의 유표와 익주의 유장은 모두 한나라 황실 종친인데, 이 비가 어찌 차마 그 땅을 빼앗겠습니까?”
제갈량이 대답했다.
“양이 밤에 천상을 살펴보니 유표는 인간 세상에 오래 남아 있지 못합니다. 또 유장은 업적을 세울 주인이 아니니 익주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장군께 들어옵니다.”
유비는 그 말을 듣고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후세에 ‘융중대’라 불리는 이 한 편의 말은 제갈량이 초가를 나서기 전에 벌써 천하가 셋으로 나뉠 것을 알았음을 보여주니, 참으로 만고의 사람들이 미치지 못할 바라고 하겠다.
유비가 절하면서 청했다.
“이 비는 비록 이름이 보잘것없고 덕이 부족하나, 선생께서는 비를 비천하다 버리지 마시고 숲에서 나와 도와주시기 빕니다. 이 비는 두 손 맞잡고 밝은 가르침을 듣겠습니다.”
제갈량은 사절했다.
“양은 농사를 즐긴 지 오래고 세상일에 응수하는 데 게을러서 그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유비는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청했다.
“선생께서 나오시지 않으면 천하 백성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눈물이 두루마기 소매를 적시고 옷자락까지 다 젖으니 제갈량은 그 마음을 보고 드디어 대답했다.
“장군께서 버리지 않으시니 개와 말의 수고를 다 바치겠습니다.”
유비는 대단히 기뻐 곧 관우, 장비를 불러 제갈량에게 절하면서 금과 비단 따위 예물을 바치게 했다. 제갈량이 사양하며 받지 않자 유비가 권했다.
“이것은 큰 현인을 맞이하는 예물이 아닙니다. 그저 이 비의 자그마한 마음을 나타낼 뿐입니다.”
제갈량은 그제야 예물을 받았다.
유비와 관우, 장비 일행은 장원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 제갈균이 돌아오자 제갈량이 부탁했다.
“내가 유황숙께서 세 번 찾아주신 은혜를 입어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너는 여기서 농사를 지어라. 밭을 묵혀서는 아니 되느니라. 내가 공을 이룬 다음 돌아와 숨어 살겠다.”
제갈량이 초가를 나올 때 나이 27세였다.

유비 3형제는 제갈량과 함께 신야로 돌아왔다. 유비는 제갈량을 스승 모시듯 하면서, 같은 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침상에서 잠을 자며 종일 천하의 일을 의논했다.
제갈량이 말했다.
“조조가 기주에 현무지를 만들어 수군을 조련하고 있으니 반드시 강남을 침범할 뜻이 있습니다. 강 너머로 가만히 사람을 보내 형편을 알아보도록 하십시오.”
유비는 사람을 보내 강동에 가서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게 했다.
--- 본문 중에서
신야에서 유비가 강동 소식을 알아보고 앞일을 의논하는데, 자가 경승인 유표가 형주로 청하자 제갈량이 말했다.
“얼마 전 강동에서 형주의 부하 황조를 깨뜨렸으니, 틀림없이 주공과 함께 원수 갚을 일을 상의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같이 가서 기회를 보아 움직이면 마땅히 좋은 계책이 생깁니다.”
유비가 관우에게 신야를 지키게 하고 장비에게 500명 군사를 이끌고 따르게 하면서 말 위에서 제갈량에게 물었다.
“유경승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소?”
“주공을 보내 강동을 정벌하려 하면 절대 대답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그저 신야로 돌아가 군사를 가다듬을 여유를 달라고만 하십시오.”
형주에 이르러 장비는 군사를 성 밖에 주둔시키고, 유비와 제갈량이 성안으로 들어가자 유표가 청한 뜻을 내비쳤다.
“지금 강하가 함락되고 황조가 목숨을 잃었으니, 아우님을 청해 복수할 계책을 상의하려는 걸세.”
유비는 제갈량이 일러준 대로 복수라는 말을 피했다.
“황조가 난폭해서 사람을 쓰지 못해 이런 화를 불렀습니다. 지금 군사를 일으켜 남쪽을 정벌하다 만약 북쪽에서 조조가 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유표가 말을 돌렸다.
“나는 이제 나이 들고 병이 많아 일을 볼 수 없네. 아우님이 여기 와서 나를 도와주게. 그러다 내가 죽으면 형주의 주인이 되게.”
유비는 급히 사양했다.
“형님은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유비가 어찌 감히 그처럼 무거운 소임을 맡겠습니까?”
제갈량이 눈짓을 하는데 유비는 아는 듯 모르는 듯 말을 계속했다.
“형주를 보존할 좋은 계책을 천천히 생각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역관으로 가자 제갈량이 물었다.
“경승이 형주를 주공께 부탁하는데 어이하여 사절하셨습니까?”
“경승은 나에게 은혜를 베풀고 예절을 차려 대했소. 그가 위태로운 틈을 타서 내가 어찌 그의 땅을 빼앗겠소?”
제갈량은 감탄했다.
“참으로 인자한 주인이십니다!”

이즈음 조조는 3공의 자리를 없애고 스스로 그 일을 도맡았다. 이때부터 휘하에 문관과 무장이 많이 갖추어져 조조가 남쪽 정벌을 상의하니 하후돈이 나섰다.
“요즈음 유비가 신야에서 날마다 군사를 훈련하며 싸움 준비를 한답니다. 뒷날 반드시 걱정거리가 될 것이니 일찍 꺾어버려야 합니다.”
조조가 하후돈을 도독으로 임명하고, 우금과 이전, 하후란, 한호를 부장으로 삼아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박망성으로 가서 신야를 엿보게 하니 순욱이 충고했다.
“유비는 영웅인데 제갈량까지 군사로 삼았으니 얕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하후돈이 큰소리쳤다.
“유비는 쥐 같은 자일뿐이오. 내가 반드시 사로잡겠소.”
이에 서서가 말했다.
“장군은 유현덕을 깔보지 마십시오. 현덕이 제갈량의 보좌를 받게 되었으니 호랑이에게 날개가 돋친 격입니다.”
그 말에 조조가 물었다.
“제갈량은 어떤 사람이오?”
“그의 자는 공명이고 도호는 와룡입니다. 하늘땅을 주름잡을 재주를 지녔고, 신선과 귀신을 울릴 계책을 가졌습니다. 참으로 당대의 기재이니 우습게 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공과 비교하면 어떠하오?”
“이 서가 어찌 감히 공명에 비유하겠습니까? 이 서를 반딧불이 빛에 비유한다면 제갈량은 환한 달빛입니다.”
서서가 제갈량을 칭찬할수록 하후돈은 싫었다.
“원직의 말은 틀렸소. 나는 제갈량을 지푸라기쯤으로 아는데 무서워할 나위나 있겠소? 내가 만약 한 번 싸움에 유비를 사로잡고, 제갈량을 산 채로 끌어오지 못하면 머리를 승상께 바치겠소.”
“자네는 빨리 승리의 소식을 전해 내 마음을 위로하게.”
조조가 말해 하후돈은 분노의 빛을 띤 채 군사를 이끌고 길에 올랐다.

이즈음 유비가 제갈량을 얻고 스승을 모시는 예절로 극진히 대하니 관우와 장비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공명은 어린 나이에 무슨 대단한 재주와 학문이 있겠습니까? 형님은 그를 너무 과분한 예절로 대하십니다. 그의 재주로 아직 이렇다 할 성과도 보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관우의 말에 장비도 뜻이 다르지 않아 유비가 설명했다.
“내가 공명을 얻으니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격일세. 두 아우는 더 말하지 말게.”
이즈음 누가 털소의 꼬리를 보내와서 유비가 그것으로 손수 모자를 짜자 제갈량이 보고 정색하며 말했다.
“명공께서는 더는 큰 뜻이 없으시어 그저 이런 일이나 하십니까?”
그러자 유비는 모자를 땅에 던지고 잘못을 빌었다.
“심심풀이로 이 짓을 해서 근심을 잊으려 했을 뿐이오.”
제갈량이 날카롭게 물었다.
“명공께서는 스스로 헤아려 조조와 비교하면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못하오.”
“명공의 무리는 몇천에 지나지 않는데, 조조의 군사가 이르면 어떻게 맞이하시겠습니까?”
“내가 바로 이 일을 걱정하는데, 좋은 계책을 얻지 못했소.”
“어서 민병을 모으십시오. 이 양이 가르치면 적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유비가 곧 신야의 백성을 모아 3000명을 얻었다. 제갈량이 아침저녁으로 진법을 가르치며 훈련하는데 갑자기 하후돈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달려온다고 하자 장비가 관우에게 말했다.
“공명을 시켜 나아가 적을 맞이하게 하면 그만이오.”
이때 유비가 두 사람을 불러 물었다.
“하후돈이 군사를 이끌고 오는데 어떻게 맞서 싸워야 하겠나?”
장비가 심사 뒤틀린 소리를 했다.
“형님은 어찌하여 그 물을 내보내지 않소?”
【유비가 제갈량을 물에 비유한 것을 비꼬는 말이었다.】
“슬기는 공명에게 의지하고 용맹은 두 아우를 믿어야 하는데 사절해서야 되겠는가?”
관우와 장비가 나가고 유비가 제갈량을 청하자 그가 말했다.
“다만 운장과 익덕이 내 지휘를 듣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주공께서 저에게 군사를 움직이게 하시려면 검과 도장을 빌려주시기 바랍니다.”
유비가 검과 도장을 주자 제갈량은 장수들을 모아 명령을 듣게 했다. 장비가 관우에게 쑥덕거렸다.
“먼저 명령을 들어보고 어떻게 군사를 움직이나 봅시다.”
제갈량이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박망은 여기서 90리 거리인데 그 왼쪽에 산이 하나 있으니 예산이라 하고, 오른쪽에 숲이 하나 있으니 안림이라 하오. 산과 숲에 모두 군사를 매복할 수 있소. 운장은 1000명 군사를 이끌고 예산으로 가서 매복하시오. 적군이 오면 놓아 보내야지 싸워서는 아니 되오. 그들의 군수품과 군량, 말먹이 풀은 반드시 뒤에 있으니 남쪽에서 불이 일어나면 바로 나아가 불태우시오. 익덕은 1000명 군사를 이끌고 안림 뒤 골짜기에 매복해 남쪽에서 불이 일어나면 바로 나아가 박망성에 쌓아둔 군량과 말먹이 풀을 불태우시오. 관평과 유봉은 500명 군사를 이끌고 장작을 갖추어 박망파 뒤에서 기다리다 밤이 되어 그쪽 군사가 오면 불을 지르면 되오.”
제갈량은 또 번성에 있는 조운을 불러 선봉으로 삼는데, 이기지 말고 져야 하며 군사를 구불구불 움직여 뒤로 물러서야 한다고 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유비에게 말했다.
“주공께서는 몸소 군사 한 대를 이끌고 후원군이 되어주십시오. 각자는 반드시 계책에 따라 움직여야 하니 잘못이 있어서는 아니 되오.”
관우가 물었다.
“우리는 모두 현에서 100리 떨어진 곳에 나가 적을 맞아 싸우는데, 군사는 무슨 일을 하시오?”
“나는 앉아서 현을 지키겠소.”
제갈량의 배짱 좋은 대답에 장비가 어이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
“우리는 모두 나가 싸우는데 당신은 집에 앉아 있겠다니 참 편하구먼!”
제갈량이 날카롭게 말했다.
“검과 도장이 여기 있으니 명령을 어긴 자는 참하겠노라!”
말이 거칠어지자 유비가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우는 ‘장막 안에 앉아 계책을 짜서 1000리 밖 싸움에서 이긴다’라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두 아우는 명령을 어겨서는 아니 되네.”
장비는 픽픽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관우도 제갈량이 미덥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선 그의 계책이 맞아떨어지는지 보세. 그때 따져도 늦지 않네.”
두 사람이 떠나는데, 다른 장수들도 아직 제갈량의 능력을 몰라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제갈량이 유비에게 말했다.
“주공께서는 곧 군사를 이끌고 박망산 아래에 가서 주둔하십시오. 내일 황혼에 적군이 올 테니 반드시 영채를 버리고 달아나다 불이 일어나는 것이 보이면 바로 군사를 되돌려 몰아치십시오. 저는 미축, 미방과 함께 500명 군사를 이끌고 현을 지키겠습니다.”
제갈량은 손건과 간옹에게 승전을 축하하는 잔치를 준비하게 하고, 공로장을 만들어 공로를 기록할 준비도 하라고 일렀다. 이렇게 해서 장졸들을 나누어 보내는데 유비조차 영문을 알 수 없어 의심이 가득했다.

하후돈이 군사를 이끌고 박망성에 이르러, 정예를 반으로 나누어 선두로 삼고 반은 군량 수레를 지키며 나아가게 했다. 때는 가을이라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군사가 길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앞에서 먼지가 일어, 하후돈은 군사를 벌려 세우고 길잡이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디냐?”
“저 앞이 바로 박망파이고 뒤쪽은 나천구입니다.”
하후돈은 우금과 이전에게 진을 지키게 하고 앞으로 말을 몰아 나갔다. 멀리서 군사가 마주 오는 모습이 보이자 하후돈이 갑자기 껄껄 웃어 장수들이 물었다.
“장군은 어찌하여 웃으십니까?”
“서원직이 승상 앞에서 제갈량을 하늘 위의 신선처럼 높여 세우던 것이 우스워서 그러네. 지금 그가 군사를 부리는 꼴을 보았는데, 이따위 군사로 선봉을 세우니 그야말로 개와 양을 내몰아 호랑이와 표범과 싸우게 하는 꼴이 아닌가? 내가 승상 앞에서 유비와 제갈량을 사로잡겠다고 장담했는데 내 말이 맞아떨어지게 되었네.”
그는 곧 말을 달려 나아갔다. 신야의 군사가 진을 치더니 조운이 말을 타고 나와서 하후돈이 먼저 욕했다.
“너희가 유비를 따라다니니 외로운 넋이 귀신을 따르는 꼴이로구나!”
조운이 크게 성을 내고 말을 달려 싸우러 왔으나 몇 번도 어울리지 못하고 달아나니 하후돈이 쫓아갔다. 조운은 10여 리 가다가 말을 돌려 몇 합 싸우고 또 달아났다. 한호가 말을 다그쳐 하후돈에게 충고했다.
“조운이 유인하는 것을 보니 매복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후돈은 한창 신이 나는 판이었다.
“적군이 저 꼴이니 매복이 열 군데에 있다 해도 무서울 게 무언가?”
그는 한호의 말을 듣지 않고 박망파까지 쫓아갔다. 포 소리가 ‘탕!’ 나더니 유비가 몸소 군사를 이끌고 달려 나오자 하후돈이 웃으며 한호에게 말했다.
“이게 바로 매복 군사라네! 내가 오늘 밤 신야에 이르지 않고는 맹세코 군사를 물리지 않겠네!”
그가 군사를 재촉해 달려가자 유비와 조운은 싸우자마자 돌아서서 달아났다. 날이 이미 저물어 짙은 구름이 하늘에 가득하고 달빛도 없는데, 낮부터 바람이 일더니 밤이 되면서 점점 거세졌다. 하후돈은 한사코 군사를 재촉해 유비와 조운을 쫓아갔다. 우금과 이전이 어느 좁은 곳에 이르자 양쪽이 모두 갈대여서 이전이 말했다.
“적을 깔보면 반드시 패하게 마련이오. 남쪽 길은 좁고 산과 개울이 붙어 있는데 나무가 마구 우거졌으니 적이 불로 공격하면 어떻게 하겠소?”
우금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 말이 옳소. 내가 나아가 도독에게 알리겠소. 그대는 후군을 멈춰 세우시오.”
이전이 고삐를 당겨 말을 돌리고 높이 외쳤다.
“후군은 천천히 가라!”
그러나 한창 달려가던 사람과 말이 쉽사리 멈추어 설 수 없었다. 우금은 말을 급히 몰며 목청을 돋우어 소리쳤다.
“전군의 도독은 잠시 멈추십시오!”
신이 나서 달려가는 하후돈을 우금이 따라잡았다.
“남쪽 길이 좁고 나무가 우거져 불로 공격하는 것을 방비해야 합니다.”
하후돈은 그제야 문득 깨달아 곧바로 말을 돌리고 군사들에게 명했다.
“전진하지 마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등 뒤에서 고함이 하늘땅을 울리며 불길이 솟구쳐 길게 뻗었다. 뒤이어 양쪽 갈대에도 불이 붙어 순식간에 사방이 벌겋게 불길에 휩싸였다. 바람이 세차 불길이 점점 기승을 부리니, 조조 군사는 서로 밀고 당기며 짓밟혀 죽은 자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 없었다.
이때 조운이 군사를 되돌려 공격하자 하후돈은 연기와 불을 무릅쓰고 정신없이 달아났다. 형세가 불리한 것을 보고 이전이 급히 돌아서서 박망성으로 달려가는데 불빛 속에서 한 떼의 군사가 가로막으니 앞장선 대장은 관우였다. 이전은 어지러이 싸워 길을 빼앗아 달아났다. 우금은 식량과 말먹이 풀이 모두 불타버린 것을 보고 오솔길을 찾아 도망쳤다.
하후란과 한호가 군량과 말먹이 풀을 구하러 오다 장비와 맞닥뜨려, 몇 합 싸우지 않아 장비가 한 창에 하후란을 찔러 죽이니 한호는 간신히 몸을 뺐다. 날이 훤하게 밝을 무렵까지 싸우고 유비의 장수들이 군사를 거두자 조조 군사의 시체가 들판에 가득했다. 하후돈은 패잔병을 이끌고 허도로 돌아갔다.
제갈량이 군사를 거두니 관우가 장비에게 감탄했다.
“공명은 참으로 영걸이로구나!”
장비도 맞장구를 쳤다.
“맞소, 공명은 진짜 영걸이오!”
몇 리를 가지 못해 미축과 미방이 군사를 이끌어 자그마한 수레 한 대를 에워싸고 나오니, 수레 속에 단정히 앉은 사람은 제갈량이었다. 관우와 장비는 말에서 내려 수레 앞에 엎드렸다. 잠시 후 유비와 조운, 유봉, 관평이 모두 이르러 군사들을 모으고, 이번에 얻은 군량과 말먹이 풀, 군수품을 장졸들에게 상으로 나누어 주었다. 신야로 개선하니 백성들이 멀리서 일어나는 먼지를 바라보고 모두 길을 막고 엎드려 절했다.
“우리가 목숨을 부지하게 된 것은 모두 사군께서 크게 현명한 이를 얻으신 덕분입니다!”
제갈량은 현으로 돌아와 유비에게 말했다.
“하후돈은 비록 지고 돌아갔으나 조조가 반드시 직접 대군을 이끌고 올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유비가 묻자 제갈량이 말했다.
“저에게 조조의 군사와 맞설 계책이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알고 보면 더 재미있어]

조조의 무덤이자 제갈량의 천적이 된 사마의


조조가 승상이 되어 3공의 자리를 없애고 스스로 그 일을 겸한 것은 후한의 정치 판도를 바꾼 중요한 변혁이었다. 전한 초기에는 상국(승상)이 정사를 도맡았는데, 이후의 황제들은 그 권력이 너무 커지는 것이 두려워 3공을 두어 힘을 나누었다. 조조는 실권을 잡자 그 벼슬을 없애 권력을 한 손에 거머쥐고, 승상부를 만들어 조정의 정사를 자신의 거처에서 다루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위세가 유례없이 강해지자마자 벌써 그의 무덤을 팔 사람이 나타났으니, 바로 사마의(179~251년)다. 사마의는 뒷날 제갈량의 최대 적수로도 활약하는데, 원작에는 소개가 너무 간단하다.
사마의의 혈통은 조조보다 훨씬 고귀해 대대로 벼슬을 한 가문으로, 그 일가는 여러모로 조조와 인연이 깊었다. 젊은 시절 조조가 낙양북부위를 했는데, 이 벼슬을 하도록 추천한 사람이 바로 사마의의 아버지 사마방이었다. 그때 조조는 낙양 현령을 하고 싶었으나 상서우승이던 사마방이 현령 아래의 북부위로 추천하고, 상서 양곡이 그대로 임명했다. 그래서 몇십 년이 지나서도 조조는 사마방과 양곡에게 불만이 있었다.
위왕이 된 뒤 조조가 특별히 사마방을 업성으로 불러 즐겁게 술을 마시다가 농담 삼아 말했다.
“오늘 내가 다시 위(尉) 노릇을 할 만하겠소?”
그동안 장안을 다스리는 경조윤 같은 벼슬을 한 사마방이 재치 있게 대답했다.
“옛날에 대왕을 추천할 때는 위 노릇을 할 만했습니다.”
조조는 껄껄 웃었다. 재치로 조조를 웃겼으나 사마방은 평소 대단히 엄숙해 아들 여덟 형제가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가 부르지 않으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고, 앉으라는 말이 떨어지기 전에는 앉지 못했으며, 아버지가 손가락질하면서 묻지 않으면 절대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덟 형제 가운데 사마의는 둘째고 맏이는 사마랑이다. 사마랑은 아홉 살 때 누가 자기 아버지의 자를 부르자 날카롭게 되받았다.
“남의 어버이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제 어버이를 존경하지 않는 자입니다.”
사마랑은 22세 때 조조의 부름을 받아 그 아래에 들어가 여러 현의 현령을 하면서 너그러운 정치로 백성의 존경을 받고, 다시 승상부의 주부가 되었다. 사마랑이 그처럼 대단한 인재였으나 그와 가까운 사이이자 사람 보는 안목으로 소문난 최염은 오히려 사마의를 더 칭찬했다.
“그대 동생은 총명하고 공정하며, 강직하고 결단력이 있어 그대가 미칠 바가 아니오.”
《진서》의 〈사마의전〉에 의하면 사마의는 똑똑하고 박식해 젊은 시절 한나라의 운이 기울어졌음을 알았으나 조조를 섬기기 싫어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풍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척했는데, 조조가 밤에 사람을 보내 습격했으나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조조가 승상이 된 후 문학연으로 쓰려고 그를 부르면서 사자에게 일렀다.
“또 핑계를 대면 묶어서 잡아 오너라.”
이렇게 해서 30세의 늦은 나이로 조조 밑에 들어가 그 집단의 가장 이름난 인물이 되었다.
--- 본문 중에서
밤이 되어 동오(東吳)의 주공 손권을 보좌하는 노숙(자 子敬자경)이 제갈량을 데리고 왔다. 동오 대도독 주유(자 公瑾공근)가 맞아들여 인사를 마치자 노숙이 물었다.
“지금 조조가 남쪽을 침범하는데 주공께서는 화해하느냐 싸우느냐를 정하실 수 없어 장군 말에 따르기로 하셨소. 장군 뜻은 어떠하오?”
주유가 선뜻 대답했다.
“조조가 천자의 이름을 내세우고 왔으니 항거해서는 아니 되오. 게다가 세력이 커서 업신여겨서는 더욱 아니 되오. 싸우면 반드시 지고, 항복하면 편안하기가 쉽소. 내 뜻은 굳어졌으니 내일 주공을 뵙고 바로 항복하시게 하겠소.”
노숙은 깜짝 놀랐다.
“장군 말은 틀렸소! 강동의 사업은 이미 삼대를 이었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에게 내주겠소? 돌아가신 주공 손백부는 밖의 일은 장군에게 맡긴다는 유언을 남겼소. 주공께서는 지금 나라를 고스란히 보존하려 하시면서, 장군을 태산같이 믿으시는데 어찌하여 겁쟁이들의 주장에 따르시오?”
“강동의 여섯 군에는 수많은 백성이 있소. 만약 싸움이 벌어져 화를 입으면 모두 나를 원망할 것이니 항복을 청하려고 결정했소.”
“그렇지 않소! 장군은 이와 같은 영웅이고 동오는 이처럼 험하고 튼튼하니 조조가 제 뜻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오.”
두 사람이 의견을 다투는데 제갈량은 소매에 손을 넣고 싸늘한 미소만 흘려 주유가 물었다.
“선생은 무엇 때문에 비꼬는 웃음을 지으시오?”
“이 양은 다른 사람을 웃는 게 아니고 자경이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몰라 웃소이다.”
노숙이 물었다.
“선생은 어찌하여 내가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모른다 하시오?”
“공근이 조조에게 항복하려는 주장은 매우 이치에 맞습니다.”
제갈량이 편을 들자 주유가 말했다.
“공명은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아는 선비이니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오.”
노숙은 불쾌했다.
“공명, 그대까지 어찌 이런 말을 하는가?”
제갈량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유에게 계속했다.
“조조는 군사를 지극히 잘 부려서 천하 사람들이 감히 막아 싸우지 못합니다. 전에는 여포와 원소, 원술, 유표만 그와 맞서 싸웠는데, 모두 조조에게 패하고 이제는 세상에 적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유독 우리 유 예주(유비)만이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모르고 억지로 다투시다 지금 홀몸으로 강하에 오시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형편입니다. 장군이 조조에게 항복하려고 결정했으니 식솔을 보존할 수 있고, 부귀도 이전과 같이 누릴 수 있지요. 나라의 운이 변하는 것이야 하늘에 맡길 일이니 아쉬울 게 무엇입니까?”
노숙은 크게 노했다.
“자네는 우리 주공께서 나라의 역적 앞에 무릎을 꿇고 모욕을 당하시게 하라는 말인가!”
그러자 제갈량이 꾀를 하나 냈다.
“어리석은 저에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양을 끌고 술을 지며, 땅을 바치고 도장을 드리는 수고가 필요 없습니다. 또 친히 강을 건널 일마저 없습니다. 그저 쪽배로 두 사람을 장강에 띄우기만 하면 되니, 조조가 두 사람을 얻기만 하면 100만의 무리가 갑옷을 벗고, 깃발을 감아쥐고, 물러갈 것입니다.”
【양과 술, 도장은 항복할 때 반드시 내놓는 물건이고, 항복하면 당연히 땅을 바쳐야 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니 주유와 노숙의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권이 강을 건널 필요도 없다니 더욱 희한한 말이었다.】
주유가 궁금한 듯 물었다.
“어떤 사람 둘로 조조의 군사를 물리칠 수 있소?”
“강동에서 이 두 사람을 보내는 것은 아름드리나무에서 잎사귀 하나가 떨어지고 큰 창고에서 쌀알 하나가 줄어드는 격이지만, 조조가 두 사람을 얻으면 반드시 크게 기뻐하면서 가버릴 것입니다.”
“과연 그 두 사람은 누구요?”
제갈량은 그제야 답을 알려주었다.
“이 양은 융중에 있을 때 벌써 조조가 장하에 대를 하나 짓고 동작대라 이름 지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극히 웅장하고 아름다운데 천하 곳곳에서 미녀들을 뽑아 그 속에 채운답니다. 조조는 원래 여색을 좋아하는 자라 강동에 있는 교(喬) 공의 두 딸에 대한 소문을 들은 지 오랩니다. 교 공의 큰딸은 대교라 하고 작은딸은 소교라 하는데, 기러기가 놀라 떨어지고, 물고기가 부끄러워 물속에 숨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과 달이 무색해 구름 뒤로 들어가고, 꽃이 부끄러워 꽃송이를 오므릴 만큼 수려한 모습이 있다 합니다. 조조는 이런 맹세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내 소원이 둘이니 하나는 천하를 깨끗이 쓸어 황제의 사업을 이루는 것이고, 하나는 강동의 이교(二喬)를 얻어 동작대에 넣고 만년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죽더라도 한이 없다.’ 지금 조조는 100만의 무리를 이끌고 호랑이처럼 강남을 노려보는데, 사실은 이 두 여자 때문입니다. 장군은 어찌하여 교 공을 찾아가 천금으로 그들을 사서 조조에게 보내지 않습니까? 조조가 두 여자를 얻으면 마음이 흡족하고 기분이 좋아 틀림없이 군사를 돌려 돌아갑니다. 이는 춘추시대 월나라 범려가 오나라 왕에게 서시를 바친 계책인데 어찌 빨리 쓰시지 않습니까?”
【‘물고기가 부끄러워 물속에 숨고……’는 빼어나게 아름다움을 형용하는 말이다. 중국 고전 《장자》에 ‘사람은 미녀를 곱게 보지만 물고기는 흥미가 없어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변해 중국의 4대 미녀를 칭찬하는 최고의 찬사가 되었다. 미인 서시가 물가에서 옷을 빠니 물고기가 물속으로 깊이 숨었고, 전한의 왕소군이 흉노에게 시집가는 길에 비파를 뜯었더니 기러기가 감동해 떨어지고 말았으며, 후한의 초선이 밤에 밖에 나갔더니 달이 무색해 구름으로 들어가 버렸고, 당나라의 양귀비가 정원에 나갔더니 꽃이 스스로 부끄러워 꽃송이를 오므렸다고 한다.
약소국 월이 강대국 오와 싸우다 참패한 후, 월왕 구천은 ‘땔나무 위에서 자고 쓸개를 핥으면서[臥薪嘗膽와신상담]’ 복수를 다짐했다. 힘으로는 도저히 맞설 수 없어서 오의 힘을 뺄 다른 수단을 찾았으니, 바로 절세미인 서시를 오왕 부차에게 바쳐 여색에 빠지게 한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오는 점점 약해져 월의 공격을 받아 망하고 말았다.】
주유가 미심쩍은 듯 물었다.
“조조가 이교를 얻으려 한다는 증거가 있소?”
제갈량이 증거를 내놓았다.
“조조의 어린 아들 조식은 붓을 들면 어느덧 글을 짓습니다. 조조가 그에게 ‘동작대부’를 짓게 했으니 그 뜻을 보면, 오로지 조씨가 황제가 되어야 하며 맹세코 이교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은 그 글을 기억하시오?”
제갈량의 대답은 주유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내가 그 글의 아름다움을 사랑해 가만히 기억한 바 있습니다.”
제갈량은 즉시 ‘동작대부’를 낭랑하게 외우기 시작했다.

현명한 군주를 따라 노니니
높은 대에 올라 마음을 즐겁게 하네
황실의 곳간이 널리 열림을 보나니
성덕으로 경영함을 아네
문을 세워 높디높으니
두 대궐 하늘에 솟구치네
중천에 아름다운 누각 세워지니
공중의 복도 서쪽 성과 이어지네
흘러가는 강물에 다가가니
과일이 무성한 과원을 바라보네
쌍쌍이 선 대는 좌우에 갈라졌으니
옥룡과 금봉황이 있음이요
동남에서 이교(二喬)를 안았으니
아침저녁으로 함께 즐기리
황제의 수도 굽어보니 멋지기도 하여라
구름과 노을이 뜨는 것을 내려다보네
인재들이 모여와 즐거우니
곰이 날아오는 좋은 꿈에 어울리네
봄바람 솔솔 부니
갖가지 새가 슬피 우네
구름이 성처럼 에워싸 지키니
쌍쌍이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네
어진 정치 우주에 펼치니
엄숙하고 공손함을 수도에 퍼뜨리노라
제환공, 진문공의 성대함이여
어찌 성스러운 밝음에 비기랴
멋지도다! 아름다워라!
그 은혜 널리 퍼지누나
우리 황실 보좌하니
사방을 안정시키네
하늘땅과 같이 법을 지키고
해와 달의 빛과 나란히 하네
영원히 존귀하여 끝이 없나니
목숨이 동황(東皇=신의 이름)과 같네
용의 깃발 세우고 노니니
어가를 돌려 천천히 감도네
은혜는 온 세상에 닿았으니
재물은 많고 백성들 잘사네
이 대가 영원히 튼튼하길 바라나니
그 즐거움 끝날 줄 모르리라
【‘동남에서 이교를 안았으니’가 요점이었다. 원래 이 말은 동남쪽에 두 다리가 있다는 뜻인데, 제갈량은 다리 교(橋)와 성씨 교(喬)가 음이 같고 그 시대에는 두 글자가 혼용되었음을 이용해, 동남쪽의 두 여인을 끌어안는다는 뜻으로 바꾼 것이다.】

주유는 말없이 끝까지 듣더니 불같이 노해서 삿자리 밖으로 나가 북쪽을 가리키며 욕했다.
“늙은 도적놈이 나를 너무 모욕하는구나!”
제갈량도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옛날 흉노의 선우가 한나라 경계를 거듭 침범하자 한의 천자께서는 공주까지 시집보내 화친하셨는데 어찌 민간의 두 여자를 아끼십니까?”
“공은 모르오. 대교는 손백부 장군의 부인이시고, 소교는 이 유의 아내요.”
제갈량은 짐짓 황송한 모양을 지었다.
“아, 이 양은 실로 그런 줄도 모르고 말을 잘못해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주유가 다짐했다.
“내가 이 늙은 도적놈과 절대로 같은 세상에 서 있을 수 없소!”
제갈량이 일부러 충고했다.
“일은 반드시 세 번 생각해보아야 뒷날 뉘우치지 않습니다.”
“내가 손백부의 부탁을 받았는데 어찌 몸을 굽히고 조조에게 항복할 수 있겠소? 아까 한 말은 일부러 공을 시험해보았을 뿐이오. 내가 파양호를 떠날 때부터 벌써 북쪽을 정벌할 마음이 있었으니 비록 칼과 도끼가 목에 닿더라도 그 뜻을 바꾸지 않겠소. 공명이 팔 하나의 작은 힘이라도 나를 도와 함께 역적을 깨뜨리기를 바라오.”
주유가 속내를 완전히 털어놓자 제갈량도 다짐했다.
“장군이 버리지 않으신다면 개와 말의 힘을 다해 아침저녁으로 채찍 아래에서 내달릴까 합니다.”
“내일 장군부에 들어가 주공을 뵈면 곧 군사를 일으킬 일을 의논하겠소.”

이튿날 주유가 손권을 만나고 숙소로 돌아와 제갈량을 청했다.
“오늘 장군부에서 여러 사람이 상의해 조조와 싸우려고 결정했소. 조조를 깨뜨릴 좋은 계책을 얻고 싶소.”
그러나 제갈량은 계책을 내놓지 않았다.
“손 장군 마음이 아직 굳어지지 않았으니 미리 계책을 정할 수 없습니다.”
“어찌하여 마음이 굳어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소?”
“마음속으로는 조조 군사가 많은 것이 두려워 적은 무리로 이길 수 있을지 의심하시지요. 장군이 군사 숫자로 손 장군 마음을 풀어드려 머리가 환하고 뚜렷해져서 더는 의심이 없어야 대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선생 말이 참으로 옳소.”
주유가 다시 장군부에 들어가자 손권이 물었다.
“공근이 밤에 다시 왔으니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오.”
“내일 군사를 움직이는데 주공께서는 속으로 의심하는 일이 없으십니까?”
손권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조조의 무리가 많아 우리의 적은 군사로 이기지 못할까 근심할 뿐이지 다른 것은 의심할 게 없소.”
“이 유는 그 때문에 특별히 주공의 마음을 풀어드리러 왔습니다. 주공께서는 조조의 격문에 육군과 수군을 합쳐 100만 대군이라 하니 의심을 품어 두려워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허실은 헤아려보지 않으셨으니 실제로 숫자를 따져보겠습니다. 그가 거느린 중원 군사는 15만을 넘지 못하는데 지친 지 오랩니다. 후에 얻은 원 씨 무리도 7만 여에 그칠 뿐이고 그나마 의심하며 순종하지 않는 자가 많습니다. 피로한 군사로 의심하는 무리를 통제하니 머릿수는 많지만 두려워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 유는 5만 군사를 얻으면 넉넉히 그들을 깨뜨릴 수 있으니 주공께서는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손권은 주유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공근이 내 의심을 시원히 풀어주었소. 경과 자경만이 나와 마음이 같구려. 이미 3만 군사를 고르고 배와 뗏목과 병장기도 모두 갖추었으니 내일 당장 군사를 일으켜 나아가시오. 내가 뒤를 이어 사람과 말을 보내며 물자와 식량을 뒷받침하겠소. 경의 선두가 싸우다 만약 일이 시원치 않으면 곧 돌아와 나에게 의지하시오. 내가 직접 조조 그 도적놈과 결전을 벌일 것이니 다시는 다른 의심이 없소.”
주유는 장군부에서 물러 나와 생각했다.
‘제갈량은 벌써 주공의 마음을 헤아렸구나. 그의 계책은 나보다 위이니 반드시 강동의 걱정거리가 된다. 아예 없애는 게 좋겠다.’
주유가 그날 밤으로 노숙을 청해 제갈량을 죽이려는 생각을 말하자 그는 반대했다.
“아니 되오. 지금 조조 도적놈을 깨뜨리려 하는데 먼저 현명한 이를 죽이면 스스로 도움을 없애는 노릇이오.”
“이 사람이 유비를 돕고 있으니 장차 반드시 강동의 걱정거리가 될 것이오.”
--- 본문 중에서
이튿날 주유가 장졸들을 점검하고 장군부에 들어가 떠나는 인사를 하니 손권이 말했다.
“경은 먼저 가시오. 내가 곧 군사를 일으켜 뒤따르겠소.”
주유가 노숙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떠나면서 같이 가자고 청해, 제갈량도 기꺼이 배에 올랐다. 수많은 배가 돛을 올리고 하구를 향해 구불구불 나아가, 세 갈래 강물이 합치는 삼강구에서 50여 리 떨어진 곳에 멈추었다. 물과 언덕에 영채를 세워 길이가 50여 리에 이어졌는데, 제갈량은 다만 쪽배 하나에 몸을 붙였다. 주유가 제갈량을 청했다.
“옛날 조조의 군사는 적고 원소의 군사는 많은데, 오히려 조조가 원소를 이긴 것은 허유의 꾀를 써서 먼저 오소에 쌓아둔 군량을 못 쓰게 만든 때문이오. 지금 조조 군사는 83만이고 우리 군사는 겨우 5만이니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소? 역시 조조처럼 먼저 적의 군량을 못 쓰게 만들어야 그다음에 깨뜨릴 수 있을 것이오. 내가 조조의 군량과 말먹이 풀이 모두 취철산에 쌓여 있음을 알아냈소. 선생은 그곳에 오래 살아 지리를 잘 알 것이니 감히 선생과 관운장, 장익덕, 조자룡에게 폐를 끼치려 하오. 나도 군사 1000명을 내어 돕겠으니 선생은 밤을 이용해 취철산으로 가서 조조의 군량 길을 끊어주시오. 서로 주인을 위해 하는 일이니 사양하지 않으시면 고맙겠소.”
제갈량은 주유의 속셈을 단번에 알아챘다.
‘나를 설득하지 못하니 계책을 써서 해치려는 것이다. 내가 사양하면 반드시 그의 웃음거리가 되니 먼저 대답하고 따로 대책을 만들어보자.’
제갈량이 선선히 응하자 주유는 대단히 기뻐했다. 제갈량이 떠나고 노숙이 가만히 주유에게 물었다.
“공이 공명을 보내 군량을 빼앗게 하는 것은 무슨 뜻이오?”
주유가 꿍꿍이를 말해주었다.
“내가 공명을 죽이고 싶은데 남의 비웃음을 자아낼까 두려워, 조조 손을 빌려 뒷날의 걱정거리를 없애려는 것이오.”
그 말을 듣고 노숙이 제갈량을 찾아가 주유의 생각을 아는지 살피는데, 그는 조금도 난처한 기색 없이 군사를 점검해 떠나려 했다. 노숙은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말로 건드려보았다.
“선생의 이번 걸음이 성공할 수 있겠소?”
제갈량은 빙그레 웃었다.
“나는 물에서 싸우는 수전, 뭍에서 걸으며 싸우는 보전, 말 타고 싸우는 마전, 수레 몰고 싸우는 차전, 이런 모든 싸움의 묘한 이치를 다 꿰뚫고 있는데 어찌 이기지 못할까 걱정하겠소? 강동의 공과 주랑 같이 한 가지에만 능한 이들과는 비할 바가 아니오.”
“나와 공근이 한 가지에만 능하다는 것은 무슨 말이오?”
“강남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았소. ‘길에서 매복하고 관을 지키는 데는 자경보다 센 이 없고, 강물에서 싸우는 데는 주랑보다 센 이 없다네.’ 공은 뭍에서 길에 매복하고 관을 지킬 따름이요, 공근은 물에서나 싸울 줄 알지 뭍의 싸움은 못 한다는 말이오.”
노숙이 돌아가 말을 전하자 주유는 발끈했다.
“내가 어찌 뭍에서 싸움을 못 한다고 업신여기는가? 그가 갈 것 없소! 내가 직접 1만 기병을 이끌고 취철산으로 가서 조조의 군량 길을 끊겠소!”
노숙이 다시 주유의 말을 전하니 제갈량은 웃었다.
“공근이 나에게 조조의 군량 길을 끊으라고 한 것은 실은 조조의 손을 빌려 나를 죽이려는 꾀였는데, 내가 말 한마디 던져 장난쳤더니 공근은 벌써 받아들이지 못했소. 지금은 사람을 쓸 때이니 오후와 유 사군께서 마음을 합치시기만 바라야 하오. 그렇게 해야 일이 성공할 수 있소. 만약 서로 꾀를 부려 해치려 들면 대사를 그르치게 되오. 조조 도적놈은 지모가 많아 평생 적의 군량 길을 끊는 데에 이골이 났으니 어찌 강한 군사로 습격에 대비하지 않겠소? 만약 공근이 가면 반드시 조조에게 잡히고 마오. 그러니 먼저 물에서 싸워 북쪽 군사의 기세를 꺾고, 그다음 따로 계책을 찾아 조조를 깨뜨리면 되오. 자경이 좋은 말로 공근에게 알려주면 고맙겠소.”
노숙이 그날 밤 제갈량의 말을 전하니 주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발까지 탁탁 굴렀다.
“이 사람의 재주와 식견이 나보다 열 배는 높으니 지금 없애지 않으면 뒷날 반드시 우리의 화가 될 것이오!”
노숙이 권했다.
“지금은 사람을 쓸 때이니 나라를 무겁게 알기 바라오. 조조를 깨뜨린 다음 생각해도 늦지 않소.”

이때 유비는 유기에게 강하를 지키게 하고 장수들을 거느리고 하구로 갔다. 멀리 장강 남쪽 기슭에 깃발들이 어슴푸레 보이고 과(戈)와 극(戟)이 가득했다. 동오에서 이미 군사를 움직인 것을 알고 유비는 강하의 군사를 모두 번구 땅으로 옮겨 주둔하고 부하들에게 물었다.
“공명이 동오로 간 다음 소식이 없어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소. 누가 가서 허실을 알아보고 돌아와 보고하려오?”
미축이 가겠다고 나서서, 양과 술 따위 선물을 갖추어 동오로 보냈다. 미축이 쪽배를 타고 물길을 내려가 곧장 주유의 큰 영채에 이르러, 유비가 주유를 존경하는 뜻을 전하며 술과 예물을 올리니 주유는 잔치를 베풀어 대접했다.
“공명이 여기 온 지 오래라 함께 돌아가려 합니다.”
미축이 청하자 주유는 구실을 댔다.
“공명은 지금 나와 함께 계책을 내어 조조를 깨뜨리려 하는데 어찌 곧 떠날 수 있겠소? 나도 유 예주를 만나 함께 좋은 계책을 의논하고 싶은데 대군을 거느린 몸이라 잠시도 떠날 수 없으니 예주께서 이곳으로 와주시면 더없이 좋겠소. 따로 일이 있어 얼굴을 맞대고 상의해야 하오.”
미축이 응낙하고 돌아가니 노숙이 주유에게 물었다.
“공은 현덕을 만나 어떤 일을 의논하려 하오?”
주유가 노숙에게는 속셈을 숨기지 않았다.
“현덕은 이 세상의 사나운 영웅이라 없애지 않을 수 없소. 내가 지금 기회를 빌려 이곳으로 유인해 죽일 것이니, 나 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실로 나라를 위해 뒷날의 걱정거리를 없애려는 것이오.”
노숙이 두 번 세 번 말렸으나 주유는 듣지 않고 비밀 명령을 내렸다.
“현덕이 오면 칼잡이 50명을 벽의 휘장 뒤에 매복시켜 내가 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나와서 손을 써라.”
이런 줄도 모르고 미축이 번구로 돌아가 주유의 뜻을 전하니, 유비가 쾌속선을 한 척 마련해 곧 떠나려 하자 관우가 말렸다.
“주유는 꾀가 많습니다. 게다가 제갈 군사의 편지도 없으니 이 초청에는 거짓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섣불리 가셔서는 아니 됩니다.”
“내가 지금 동오와 손잡고 함께 조조를 깨뜨리려 하는 터에 주랑이 나를 만나려고 하는데도 가지 않으면 동맹이 제대로 맺어지지 못하네. 서로 의심하고 꺼리면 어찌 일이 이루어지겠나.”
“형님께서 기어이 가시겠다면 이 아우가 함께 가겠습니다.”
장비도 빠지기 싫은 모양이었다.
“나도 따라가겠소.”
“운장만 나를 따라가세. 익덕과 자룡은 영채를 단단히 지키게. 내가 얼른 갔다 돌아오겠네.”
유비가 관우와 함께 쪽배에 오르니 가까운 부하 20여 명이 따랐다. 나는 듯이 노를 저어 강동으로 가는데 유비가 살펴보니 강동의 몽충과 싸움배, 깃발, 갑옷, 무기들이 좌우로 벌려진 품이 사뭇 정연해 속으로 매우 기뻤다. 유비가 오는 걸 알고 동오 군사가 부리나케 보고하자 주유가 물었다.
“배 몇 척을 가지고 오느냐?”
“배는 한 척뿐이고 따르는 사람은 20여 명입니다.”
주유는 씩 웃었다.
‘이 사람 목숨이 끊기게 되었구나!’
칼잡이들을 매복시키고 유비를 맞아들이자 관우와 20여 명 부하가 따라왔다. 예절을 차려 인사를 마치고 주유가 상석을 권하니 유비는 사양했다.
“장군은 명성이 천하에 널리 떨치셨는데, 이 비는 재주 없는 사람이니 어찌 장군께 무거운 예절을 차리게 하겠소?”
각기 주인과 손님 자리에 나누어 앉자 주유가 잔치를 베풀어 대접했다.
이때 제갈량이 우연히 강변에 갔다가 유비가 그곳에 와서 주유와 만난다는 말을 듣고 흠칫 놀라 급히 중군으로 들어가 살펴보았다. 주유 얼굴에 살기가 흐르는데, 양쪽 바닥까지 휘장이 드리웠으니 그 안에 칼잡이들이 빼곡하게 들어섰음이 분명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나?’
깜짝 놀라 돌아보니 유비는 말하고 웃는 모습이 태연한데, 그 뒤에 한 사람이 허리에 찬 검을 틀어쥐고 섰으니 다름 아닌 관우였다.
‘운장이 있으니 주공께서 위험하지는 않겠구나.’
제갈량은 안심하고 강변으로 돌아가 유비를 기다렸다.
이때 유비는 주유와 술을 마시다가 물었다.
“지금 장군이 조조를 막는 데 군사를 얼마나 얻으셨소?”
“3만입니다.”
유비에게는 뜻밖이었다.
“그것으로 조조의 83만 군사를 막아내겠소?”
“군사가 많고 장수들이 우글거린다 해서 두려워할 나위가 있습니까? 이 유는 3만이면 넉넉합니다. 예주께서는 이 유가 조조를 깨뜨리는 것을 구경이나 하십시오. 썩은 나무를 부러뜨리는 격입니다!”
유비는 부끄러워하며 사과했다. 또 술이 몇 순 돌고 주유가 일어나 잔을 잡아 술을 권하는데, 별안간 유비 등 뒤에 선 관우가 눈에 들어왔다.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얹은 그의 모습을 보고 주유가 급히 유비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시오?”
“내 아우 관운장이오.”
“옛날 안량과 문추를 벤 사람이 아닙니까?”
“그렇소.”
소스라쳐 놀란 주유는 식은땀이 등을 적셔 곧 술을 따라 관우에게 권했다. 이윽고 노숙이 장막에 들어오자 유비가 말했다.
“공명은 어디 계시오? 수고스럽지만 자경이 그를 불러와 만나게 해주시오.”
주유가 말렸다.
“조조를 깨뜨린 다음 만나셔도 늦지 않습니다.”
유비는 감히 더 말하지 못하고, 관우가 눈짓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비는 잠시 도독과 헤어지겠소. 적을 깨뜨려 공을 이룬 다음 달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축하를 드리겠소.”
유비가 주유와 헤어져 강가에 오니 제갈량이 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크게 기뻐하자 제갈량이 물었다.
“주공께서는 오늘의 위험을 아십니까?”
유비는 깜짝 놀랐다.
“만약 운장이 아니었으면 주공께서는 그 자리에서 주랑에게 해를 입을 뻔했습니다.”
제갈량의 설명을 듣고 유비는 칼끝에서 목숨이 살아났음을 깨닫고 함께 번구로 돌아가자고 청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따로 생각이 있었다.
“이 양은 비록 호랑이 입속에 있으나 태산처럼 끄떡없습니다. 주공께서는 그저 배와 군사를 마련해 제가 쓰기만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11월 20일, 갑자일에 자룡에게 쪽배를 저어 남쪽 기슭에 와서 기다리게 해주십시오. 절대 어기셔서는 아니 됩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유비가 궁금해 묻자 제갈량은 대답을 미루었다.
“동남풍이 불면 양은 반드시 돌아갑니다.”
유비가 다시 물으려 하는데 제갈량은 군사를 재촉해 배를 띄우더니 돌아가 버렸다.

이튿날 주유는 조조의 수상 영채를 살펴보려고 누각이 있는 큰 배에 북과 악기를 싣고, 수행하는 장수들에게 강한 활과 센 쇠뇌를 들게 해서 구불구불 나아갔다. 조조 영채 부근에 이르자 주유의 명령으로 닻이 내리고 북소리, 음악 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가만히 조조의 수군 영채를 훔쳐본 주유는 깜짝 놀랐다.
“수군의 묘한 이치를 깊이 터득해 만든 영채다. 수군 도독이 누구냐?”
“채모와 장윤이라 합니다.”
주유는 속으로 궁리했다.
‘두 사람은 강동에 오래 살면서 물싸움법을 깊이 익혔다. 내가 반드시 계책을 써서 먼저 두 사람을 없앤 후에야 조조를 깨뜨릴 수 있다.’
주유가 배 위에서 술을 마시며 경치를 감상하듯 한참 영채를 엿보니 조조가 뒤늦게 알고 배를 풀어 주유를 사로잡으라고 명했다. 수군 영채 안에서 깃발이 움직이자 주유가 급히 닻을 거두게 하니 양쪽에서 일제히 노를 저어 누선이 새가 날아가듯 재빨리 움직였다. 조조의 배들이 나왔을 때는 이미 십몇 리 밖으로 떠나 따라잡을 수 없었다. 조조 장수들이 허탕을 치고 돌아가자 조조가 물었다.
“오늘 주유가 우리 영채를 실컷 훔쳐보았으니 어떤 계책으로 깨뜨려야 하겠소?”
장막 아래에서 한 사람이 나섰다.
“저는 어릴 적부터 주유와 함께 공부하며 사이가 두터웠습니다. 이제 썩을 줄 모르는 세 치 혀를 믿고 강동으로 가서 그를 구슬려, 이곳에 와서 항복을 드리게 하겠습니다.”
조조가 보니 양주 구강군 사람 장간인데 자는 자익으로 군의 막료로 있었다.
“무엇을 가지고 가려 하는가?”
“아이 하나가 따라가고 배를 저을 사람 둘만 있으면 됩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조조가 매우 기뻐 술상을 차려 전송하니, 갈포 두건을 쓰고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장간은 쪽배를 타고 곧장 주유의 영채에 가서 일렀다.
“옛 친구 장간이 찾아왔다고 주 도독에게 알려라.”
장수들과 일을 상의하던 주유는 장간이 왔다는 말을 듣고 웃었다.
“나를 설득하러 세객이 왔구려!”
장수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일러 모두 명을 받고 나갔다.
주유는 옷매무시를 바로잡고 관도 똑바로 써서 훌륭한 차림을 하고, 따르는 사람을 수백이나 이끌고 나가 앞뒤로 둘러서게 하는데 모두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꽃무늬를 수놓은 모자를 쓰게 했다.
푸른 옷을 입은 아이 하나만 달랑 데리고 온 장간이 고개를 번쩍 쳐들고 버젓이 걸어왔다. 주유가 머리를 숙여 맞이하자 장간이 인사했다.
“공근은 헤어진 다음 별 탈 없는가?”
주유가 물었다.
“자익이 수고하네. 강을 건너고 호수를 지나 먼 길을 왔으니 조 씨를 위해 세객 노릇을 하려는가?”
장간은 깜짝 놀랐다.
“내가 그대와 헤어진 지 오래라 특히 찾아와 옛정을 이야기하려 하는데 어찌하여 세객 노릇을 한다고 의심하는가?”
“내가 비록 사광(師曠)처럼 귀가 밝지는 못해도 줄을 뜯으며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그 고상한 뜻을 알기는 하네.”
【사광은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악사로 눈이 멀었으나 귀가 특별히 밝아서, 어느 곡이 망국의 음이라고 지적했다는 이야기가 아주 유명하다. 주유 또한 음률에 밝아, 술을 많이 마시고도 누가 거문고를 잘못 뜯으면 돌아보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잘생긴 주유가 돌아보기를 바라 일부러 줄을 잘못 뜯었다는 일화까지 있었다.】
장간이 난처해 뻗대보았다.
“그대가 옛 친구를 이렇게 대한다면 물러가겠네.”
주유가 웃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
“나는 다만 형이 조 씨를 위해 세객 노릇을 할까 두려웠는데 그런 마음이 없다면 어찌 빨리 가시나?”
주유는 장간과 함께 장막에 들어가 명령을 내렸다.
“강동의 영웅호걸들을 모두 불러 자익과 만나게 하라.”
잠시 후 앞에 금 그릇, 은그릇이 차려지는데 누런빛, 흰빛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문관과 무장들은 각기 비단옷을 차려입고, 장막 아래의 편장과 비장들은 죄다 은 갑옷을 걸치고 두 줄로 나뉘어 들어왔다. 주유는 모두 장간에게 인사하게 하고 양쪽에 나누어 앉혔다. 굉장한 잔치가 벌어져 승전을 알리는 음악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번갈아 잔을 잡고 술을 권했다. 주유가 모두에게 말했다.
“이분은 내 어릴 적 동창에다 단짝 친구요. 비록 강북에서 왔지만 조 씨의 세객은 아니니 공들은 의심하지 마시오.”
그리고 허리에 찬 검을 풀어 태사자에게 넘겨주었다.
“공은 내 검을 차고 술상을 감독하시오. 오늘 잔치에서는 술 마시며 다만 친구의 정만 이야기는 것이니 만약 조조와 동오의 군사를 말하는 자가 있으면 당장 목을 치시오!”
태사자가 검을 받아 허리에 차고 자루를 틀어쥐고 자리에 앉으니 장간은 너무 놀라 감히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주유가 또 말했다.
“내가 군사를 거느린 다음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았소. 오늘 옛 친구를 만났는데 의심하거나 거리끼는 일이 없으니 모처럼 취하도록 마셔야겠소.”
말을 마치자 주유는 껄껄 웃으며 술을 입에 쏟아부었다. 자리에서는 술이 마구 오가고, 일어나 잔을 잡고 술을 권하는 사람은 반드시 재주를 하나씩 자랑해야 했다. 주유는 허허 웃으면서 즐겁게 술을 마셨다.
차츰 술기운이 오르자 주유가 장간의 손을 잡고 장막 밖으로 나가니 좌우의 군사들이 투구 쓰고 갑옷 입고 과와 극을 들고 정연히 서 있었다.
“내 군사가 제법 강하고 씩씩하지?”
“참으로 곰 같고 호랑이 같은 장사들일세.”
장간이 건성으로 대꾸하는데 주유가 장막 뒤로 데려가니 군량과 말먹이 풀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내 군량과 말먹이 풀이 꽤 넉넉하지?”
“군사가 정예하고 군량이 넉넉하다더니 과연 소문이 헛되지 않았네.”
주유는 짐짓 취한 척 허허 웃어댔다.
“이 주유가 자익과 공부할 때는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 몰랐네.”
“형의 높은 재주로 보면 실로 과분하지 않네.”
장간이 말 나가는 대로 대꾸하자 주유가 장간의 손을 잡았다.
“대장부가 세상을 살면서 자기를 알아주는 주인을 만났으니 밖으로는 주인과 신하의 의리를 지키고, 안으로는 혈육의 정을 맺었으며, 말씀을 올리면 꼭 들어주시고, 계책을 드리면 반드시 따라주시면서, 화를 당하거나 복을 누리거나 다 함께 해주시네. 가령 소진, 장의, 육가, 역이기가 다시 살아나 폭포처럼 거침없이 입을 놀리고 날카로운 칼처럼 혀를 굴리더라도 어찌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나? 하물며 책에서 글귀나 따다 외우는 썩은 선비들이 일방적인 말로 나를 쉽게 설득할 수 있겠나?”
주유가 또 껄껄 웃으니 장간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가슴이 칼에 찔리는 듯했다. 주유는 다시 장간의 손을 잡고 장막으로 들어가 술을 마셨다.
“이분들은 모두 강동의 영웅호걸들이니, 오늘 이 모임은 군영회(群英會=영웅들의 모임)라 부를 만하리!”
날이 저물도록 술을 마시다 장막에 불을 밝혔다. 주유가 일어나 검을 춤추며 노래를 지어 부르니 사람들이 손뼉 치면서 분위기를 돋우었다.

장부가 세상을 사는 데는 공명을 세워야 하고
공명을 세우고 나면 평생 위로가 되리
평생 위로가 되니 내 장차 취하리라
내 장차 취하려 하니 미친 듯 노래 부른다

노래를 마치자 사람들이 모두 즐겁게 웃는데 장간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밤이 깊어 장간이 더 마시지 못하겠다고 사양하자 사람들은 모두 물러갔다. 주유가 말했다.
“자익과 한 침상에서 잔 지 오래되었네. 오늘 밤에는 발바닥을 맞대고 자보세.”
주유는 잔뜩 취한 모습으로 장간을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다. 옷도 벗지 않고 침상에 쓰러진 주유가 왈칵왈칵 토하니 마치 이리가 자고 난 자리의 풀을 헤집어놓은 듯 어지러웠다.
장간은 잠이 올 리 없었다. 베개에 엎드려 있다 시간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일어나 보니 가물거리는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 주유는 드르렁드르렁 우레 울리듯 코를 골았다. 장막 안을 둘러보니 상 위에 둘둘 말린 문서가 한 묶음 있었다. 슬그머니 다가가 훔쳐보니 주유가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통에 ‘채모와 장윤이 삼가 봉합니다’라고 쓰여 있어서 깜짝 놀라 가만히 읽어보았다.
‘저희는 벼슬이나 녹봉을 바라 조조에게 항복한 게 아니라 형세가 그렇게 만들었을 따름입니다. 이제 북군을 속여 수군 영채 안에 가두었는데, 그럴 만한 틈이 생기면 곧 조조 도적놈의 머리를 잘라 도독께 바치겠습니다. 조만간 사람이 도착하면 글로 소식을 알릴 것이니 의심하지 않으시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먼저 이 글로 답을 드립니다.’
‘채모와 장윤이 동오와 결탁했구나.’
장간은 가만히 글을 옷 속에 감추었다. 다른 편지들을 뒤적여보려는데 침상 위에서 주유가 몸을 뒤채자 급히 등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주유가 웅얼거렸다.
“자익! 며칠 안으로 자네에게 조조 도적놈의 머리를 보여주겠네!”
장간이 되는 대로 응대하자 주유가 또 중얼거렸다.
“자익! 가만…… 내가 자네에게 조조 도적놈의 머리를 보여주겠다니까…….”
장간이 속을 캐내려고 물어보니 주유는 다시 잠들어버렸다. 장간이 침상 위에 엎드려 뜬눈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새벽이 가까워지자 웬 사람이 장막에 들어와 불렀다.
“도독께서는 깨어나셨습니까?”
주유는 꿈에서 갑자기 깨어난 듯 그에게 물었다.
“내 침상 위에서 자는 사람은 누구냐?”
“도독께서는 자익을 청해 함께 주무셨는데 잊으셨습니까?”
“내가 평소에 취한 적이 없는데 어제 취한 끝에 실수했구나. 무슨 말이나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강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소리를 낮추어라!”
주유가 나지막하게 호통쳐 말허리를 자르더니 장간을 불렀다.
“자익!”
장간이 자는 척하자 주유는 살금살금 장막에서 나갔다. 장간이 귀를 돋우어 훔쳐 듣는데 밖에서 말했다.
“장 도독과 채 도독께서 급히 손을 쓰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그 뒤의 말은 너무 낮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주유가 장막에 들어와 다시 불렀으나 장간이 대답 없이 이불로 머리를 감싼 채 자는 척하자 더 부르지 않고 제대로 옷을 벗더니 자리에 누웠다.
장간은 생각했다.
‘주유는 꼼꼼한 사람이라 날이 밝아 글이 보이지 않으면 나를 해친다.’
새벽까지 누워 있던 장간이 일어나 주유를 부르자 이번에는 그가 잠이 들었다. 장간이 두건을 쓰고 살금살금 장막에서 나와 아이를 불러내 곧장 영채 문을 나서자 지키는 군사가 물었다.
“선생은 어디로 가십니까?”
“내가 여기 있으면 도독의 일을 그르칠까 두려워 일찍 작별하네.”
군사는 막지 않았다. 장간이 배에 올라 부리나케 노를 저어 돌아가 뵈니 조조가 물었다.
“자익이 한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주유는 도량이 넓고 정취가 고상해 말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조조가 화를 냈다.
“일은 이루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쪽의 비웃음만 받았군.”
“비록 주유를 설득하지는 못했으나 승상을 위해 한 가지 일을 알아냈으니 좌우를 물리쳐주시기 바랍니다.”
장간이 편지를 꺼내 보이고 밤에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자 조조는 크게 노했다.
“두 도적놈이 이처럼 무례하단 말인가!”
곧 채모와 장윤을 장막 아래로 불렀다.
“내가 너희 두 사람에게 빨리 나아가게 하려 한다.”
채모가 곤란해했다.
“군사가 아직 익숙하게 훈련되지 못해, 섣불리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조조는 화를 냈다.
“군사가 익숙하게 훈련되면 내 머리를 주유에게 바치겠지?”
채모와 장윤이 조조의 말뜻을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해서 급히 대답을 못 하니, 조조가 호령해 두 사람을 끌어내 목을 치게 했다. 잠시 후 무사들이 머리 둘을 장막 아래에 바치니 조조는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계책에 걸렸구나!’
채모와 장윤이 죽자 장수들이 들어와 까닭을 물었다. 조조는 계책에 걸렸음을 뻔히 알면서도 시인하기 싫었다.
“두 사람이 군법을 우습게 알고 날짜를 질질 끌어서 죽였네.”
장수들은 모두 탄식하며 놀라 마지않았다. 조조는 그들 가운데 모개와 우금을 골라 수군 도독을 맡게 했다.
소식이 강동에 전해지자 주유는 크게 기뻐했다.
“내가 걱정한 것은 두 사람뿐이었는데 이제 내 걱정이 사라졌소!”
노숙이 감탄했다.
“도독이 이처럼 군사를 부리는데 조조 도적놈을 깨뜨리지 못할까 걱정할 게 무엇이겠소?”
그러나 주유는 꺼림칙한 점이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헤아려보면 장수들은 이 계책을 모르는데 제갈량만은 속일 수 없을 것이오. 자경이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아보고 바로 알려주시오.”
--- 본문 중에서
노숙은 제갈량의 쪽배로 가서 인사했다.
“며칠간 군무를 보느라 가르침을 받지 못했소.”
제갈량이 맞이했다.
“양도 도독께 기쁜 일을 축하드리지 못했네요.”
“기쁜 일이 무엇이오?”
제갈량이 바로 찍어 말했다.
“공근이 선생을 보내 이 양이 아는지 모르는지 알아보게 한 일이니 참으로 축하드릴 만하지요.”
노숙은 기겁해 낯빛이 변했다.
“선생이 어떻게 아시오?”
“그 계책은 장간이나 속일 수 있지요. 조조는 잠시 속았으나 곧 깨달았을 텐데 잘못을 시인하지 않을 뿐이오. 채모와 장윤이 죽어 강동의 걱정거리가 사라졌는데 어찌 축하드리지 않겠소? 듣자니 조조가 모개와 우금을 수군 도독으로 삼았다는데, 두 사람 손에서 수군들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오.”
노숙이 할 말을 잃어 잠시 얼버무리다 일어서니 제갈량이 당부했다.
“공근에게는 이 양이 알고 있더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라오. 시기하는 마음을 먹고 해칠까 두렵소.”
그러나 노숙은 장막으로 돌아가 주유를 만나자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유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은 절대로 그냥 놓아둘 수 없소! 그대로 두었다가는 내가 계책을 제대로 쓸 수가 없소. 기필코 그의 목을 잘라야 하오!”
“만약 공명을 죽이면 조조의 비웃음을 살 것이오.”
“내가 공정한 도리로 목을 칠 것이니 그가 죽어도 원망이 없게 하겠소.”
이튿날 주유는 장수들을 모으고 제갈량을 청했다.
“곧 조조와 싸우게 되는데 물에서 싸우려면 어떤 무기가 제일이오?”
“넓은 강 위에서는 활과 화살이 으뜸이지요.”
“선생 말씀이 이 어리석은 사람 뜻과 똑같소. 그런데 지금 군중에 화살이 모자라니 감히 선생께 폐를 끼쳐, 화살 10만 대를 친히 감독해 만들어 적을 무찌르는 무기로 삼게 해주시기 바라오. 이는 군사의 일이니 선생께서 사절하지 않으시면 다행이겠소.”
제갈량은 선뜻 대답했다.
“도독께서 일을 맡기신다면 마땅히 힘을 다해야지요. 그런데 한 가지 감히 물어보자면, 10만 대 화살을 언제 쓰실 겁니까?”
“열흘 안으로 다 갖출 수 있겠소?”
제갈량은 늘 그렇듯이 정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조조 군사가 금방 올 텐데 열흘까지 기다리면 큰일을 그르칠까 걱정입니다.”
“선생이 헤아려보면 며칠이면 다 갖출 수 있겠소?”
“그저 사흘만 주시면 10만 대 화살을 엎드려 바칠 수 있겠습니다.”
너무 황당한 소리여서 주유는 다짐을 받았다.
“군사의 일에는 허튼 말이 없는 법이오.”
“어찌 감히 허튼 말이겠습니까? 군령장을 바치고 사흘 안에 갖추지 못하면 달갑게 무거운 벌을 받겠습니다.”
【군령장은 명령을 받은 뒤에 쓰는 서약서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엄한 처벌을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군중에서 엄한 처벌이란 바로 죽임을 가리킨다.】
주유가 대단히 기뻐 군령장을 받고 술상을 차려 대접하자 제갈량이 말했다.
“오늘은 이미 늦어서 일할 수 없고 내일부터 만들 테니, 사흘째 되는 날 500명 군사를 강변에 보내 화살을 나르게 하십시오.”
제갈량이 술을 몇 잔 마시고 돌아가자 노숙이 물었다.
“이 사람이 혹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오?”
주유가 대답했다.
“그가 스스로 죽을 짓을 하는 것이지, 내가 핍박한 것은 아니오. 오늘 분명히 여러 사람 앞에서 문서를 받았으니 그는 두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더라도 날아갈 수 없게 되었소. 내가 화살 만드는 장인들에게 지시해서 일을 지체시키고 그가 쓸 물건들을 갖추어주지 말게 하면 그만이오. 그러면 틀림없이 날짜를 어기게 되니 그때 벌을 정하면 무슨 말이 있겠소? 공은 가서 그의 허실을 알아보고 돌아와 이야기해 주오.”
노숙이 명을 받들고 찾아가니 제갈량이 원망했다.
“내가 자경에게 부탁하지 않았소? 공근이 내 헤아림을 알면 반드시 나를 해칠 테니 이야기하지 말라고 말이오. 그런데 뜻밖에도 자경이 나를 위해 숨겨주지 않아 과연 오늘 또 일이 생기고 말았소. 사흘 안으로 어떻게 10만 대 화살을 만들어낸단 말이오? 자경은 나를 구해주셔야 하겠소!”
노숙은 조금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공이 스스로 화를 불러왔는데 내가 어떻게 구하겠소?”
“자경이 나에게 배 20척만 빌려주시오. 배마다 군사를 30명씩 두고 배 위에는 푸른 천으로 장막을 치며, 각기 풀 단을 1000여 개씩 묶어 양쪽에 갈라놓게 하시오. 내가 묘하게 쓸 데가 있으니 사흘째 되는 날이면 장담하고 10만 대 화살을 모으겠소. 하지만 다시 공근이 알게 해서는 아니 되오. 그가 알면 내 계책이 틀어지고 자경에게도 반드시 피해가 미칠 것이오.”
노숙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뜻을 알 수 없었다. 돌아가 주유에게 그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다른 말만 했다.
“공명은 화살대로 쓸 대나무나 화살촉, 깃털, 아교와 풀 따위를 쓰지 않고도 마땅히 화살을 만들 도리가 있다 하오.”
주유는 덜컥 의심이 들었다.
“그래요? 그렇다면 그가 사흘 후 어떻게 하는지 봅시다!”
노숙은 슬그머니 가볍고 빨리 움직이는 배 20척을 내어 각기 30여 명씩 배치하고, 장막과 풀 단 따위도 갖추어 제갈량이 쓰도록 했다. 그런데 제갈량은 첫날과 두 번째 날은 움직이지 않고, 사흘째 되는 날 한밤중에야 가만히 노숙을 배로 청했다.
“특히 자경과 함께 가서 화살을 가져오려 하오.”
제갈량은 확실한 설명을 미룬 채 20척 배를 긴 밧줄로 잇게 하고 북쪽 기슭을 향해 나아갔다.
이날 밤 장강에는 안개가 한층 심해 얼굴을 맞대고도 서로 보이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자욱한 안개였다. 그래서 옛사람이 ‘두꺼운 안개가 강에 드리우다’라는 부(賦)를 지었는가.

크도다, 장강이여! 서쪽으로는 민산과 아미산에 닿았고 남쪽으로는 삼오(장강 하류)의 땅을 통제하며 북쪽으로는 구하(황하 아홉 지류)를 아울렀구나. 백 갈래 강물을 모아 바다로 들어가고, 만고의 세월을 거쳐 파도를 일으키네. 그리하여 용백(전설 속 거인)과 해약(바다의 신), 강비(여신), 수모(물의 여신) 따위가 있는가 하면 긴 고래는 1000길에 이르고 천오(강물의 신)는 머리가 아홉 개나 되니, 귀신이며 괴물이며 이상한 것들이 모두 여기에 모였더라. 대체로 여기는 귀신들이 의지하는 곳이요, 영웅들이 싸우고 지키는 곳이더라. 때는 음양이 어지러워졌고 어둠과 밝음이 갈라지지 않았다. 넓은 하늘이 한 빛깔이 되어 놀라는데 불시에 안개가 사방에서 모여든다. 비록 장작에 불을 지피더라도 앞을 볼 수 없고 다만 징 소리 북소리만 들리누나. 처음에는 하늘땅이 막 이루어질 때처럼 어슴푸레하여 겨우 남산의 표범을 감추더니 차차 꽉 차면서 북해의 곤(전설 속 대어)을 홀리려 하는구나. 위로는 높은 하늘에 닿고 아래로는 두꺼운 땅에 드리우니 머나멀고 넓고 넓어 끝이 없더라. 수고래, 암고래는 물에서 나와 파도를 일으키고 교룡은 깊은 물에 잠기어 숨을 내쉰다. 또 장마철에는 축축해지고 봄날에는 음산해 추위를 자아내나니 어둡고 흐리고 아득하구나. 동쪽으로는 시상의 기슭이 사라지고 남쪽으로는 하구의 산이 없어진다. 싸움배 1000척은 모두 바위틈 사이에 빠지고 고깃배 하나가 놀랍게도 파도 위를 넘나든다. 심지어 푸른 하늘에 빛이 없어 아침 해가 빛깔을 잃고 대낮이 누르스름하게 흐려지는가 하면 붉은 산이 푸른 물빛으로 변한다. 홍수를 다스린 대우(전설 속 사람)의 슬기로도 그 깊고 얕음을 잴 수 없고, 눈이 밝은 이루(전설 속 사람)의 시야도 어찌 지척을 가려보랴? 이리하여 풍이(물의 신)는 파도를 그치고, 병예(바람의 신)는 일을 마친다. 물고기와 자라는 자취를 감추고, 새와 짐승들도 종적을 숨긴다. 신선이 사는 봉래의 섬이 사이가 끊어지고, 창합(전설 속 하늘 문)의 궁전을 가만히 감싼다. 갑작스레 내달리니 소나기가 올 듯하고, 분분히 잡다하게 떨어지니 찬 구름이 어울리는 듯하다. 그 속에는 독사가 숨겨졌으니 안개 때문에 병을 일으키는 기운으로 변하고, 안에는 요귀가 감추어져 안개를 믿고 화가 되더라. 질병과 재앙을 인간 세상에 내리고 바람과 먼지를 장성 밖에 일으키더라. 작은 백성이 만나면 젊은 나이에 일찍 죽거나 다치고, 높은 어른이 만나면 감개무량하더라. 대체로 원기를 되돌려 태초 시대로 돌아가게 하고 천지를 아울러 대자연으로 만드누나.

이날 밤 새벽이 가까울 무렵 조조 수군 영채에 다가가자 제갈량이 배를 돌렸다. 뱃머리는 서쪽으로 하고 고물은 동쪽으로 하여 한 줄로 늘여놓더니 배 위에서 북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게 했다. 노숙은 깜짝 놀랐다.
“조조 군사가 일제히 나오면 어떻게 하오?”
제갈량은 빙긋이 웃었다.
“내가 헤아려보건대 조조는 반드시 겹겹의 안개 안에서 감히 나오지 못하오. 우리는 그저 술이나 따르면서 즐겁게 노닐다 안개가 걷히면 돌아갑시다.”
북소리와 고함이 들리자 모개와 우금은 부리나케 조조에게 보고했다. 조조는 수군이 정연하지 못해 몸소 강변에 와서 지휘하고 군사를 배치하다가 명령을 전했다.
“두꺼운 안개가 강을 덮었는데 적이 갑자기 왔으니 반드시 매복이 있다. 절대 가볍게 움직이지 마라. 수군에 활과 쇠뇌를 많이 배치해 어지러이 화살을 날리도록 하라.”
또 뭍의 영채에서 장료와 서황을 불러 활과 쇠뇌를 쓰는 군사를 3000명씩 이끌고 급히 와서 수군을 도와 화살을 날리게 했다. 모개와 우금이 벌써 활과 쇠뇌 군사를 앞으로 보내 살을 날리고 있는데, 뭍의 장졸들도 이르러 1만여 군사가 강을 향해 살을 날렸다.
새벽녘이 되자 제갈량은 배를 돌리게 했다. 이번에는 배를 반대로 두게 하여 더욱 바짝 다가들어 화살을 받으며 북을 두드리고 고함치게 했다. 한참이 지나 해가 높이 떠올라 안개가 흩어지자 제갈량이 배를 되돌려 세우니 20척 배의 양쪽 풀 단들에는 화살이 빼곡하게 박혔다. 제갈량은 여러 배의 군사들에게 똑같이 소리치게 했다.
“승상! 화살을 고맙게 받았소이다!”
조조가 알았을 때는 이미 동오의 배들은 빠른 물살을 따라 20여 리를 돌아간 뒤였다. 쫓아보았자 따라잡을 수 없어서 조조는 뉘우쳐 마지않고, 북군의 장수들은 한숨을 풀풀 쉬었다.
제갈량이 노숙에게 말했다.
“배마다 화살 5000여 대는 있소. 강동의 힘은 조금도 쓰지 않고 화살을 10만 대 넘게 얻었소. 이 화살들로 조조의 군사를 쏘면 아주 편하지 않겠소?”
“선생은 참으로 신선이시오! 오늘 이처럼 두꺼운 안개가 낄 것을 어떻게 알았소?”
“장수가 된 사람이 천문에 통하지 않고 지리를 모르며, 기문(奇門)을 알지 못하고 음양에 밝지 못하며, 진 치는 그림을 볼 줄 모르고 군사의 형세에 어둡다면 그저 하찮은 사람이오. 이 양은 사흘 전에 벌써 오늘 큰 안개가 낄 것을 미리 내다보았기에 감히 사흘 기한을 잡았소. 공근이 나에게 열흘 안으로 화살을 모두 갖추라고 하면서도 일할 장인과 쓰일 물품들을 마련해주지 않으니, 이 시시한 죄명을 빌려 나를 죽이려 한 것이 분명하오. 그러나 내 목숨은 하늘에 달렸으니 공근이 어찌 나를 해칠 수 있겠소?”
노숙은 절을 하며 탄복했다.
배가 기슭에 닿자 주유가 화살을 나르라고 보낸 500명 군사가 벌써 강변에 와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량은 그들에게 배에서 화살을 뽑게 해서 10여만 대를 모두 중군 장막에 날라 바치게 했다.
노숙이 안에 들어가 제갈량이 화살 얻은 이야기를 해주자 주유는 깜짝 놀라 후유 한숨을 쉬었다.
“공명의 신과 같은 계책과 기묘한 헤아림은 내가 도저히 따르지 못하겠소!”
이윽고 제갈량이 영채로 들어오자 주유는 장막 아랫자리로 내려가 맞이하면서 부러운 듯 칭찬했다.
“선생의 신묘한 헤아림은 모든 사람에게 존경과 탄복을 자아내게 하오.”
제갈량은 겸손했다.
“자그마한 속임수가 무엇이 희한할 게 있겠습니까?”
주유는 제갈량을 청해 함께 술을 마시다가 말했다.
“어제 우리 주공께서 사자를 보내 나아가라고 재촉하셨는데, 이 유는 아직 기이한 계책이 없으니 선생이 가르쳐주시기 바라오.”
제갈량은 여전히 겸손을 보였다.
“이 양은 녹록하고 평범할 뿐인데 어찌 묘한 계책이 있겠습니까?”
“전날 조조의 수군 영채를 살펴보니 지극히 정연하고 법도가 있어 쉽사리 공격할 수 없었소. 오늘 선생도 그 움직임을 살펴보셨소. 이 유가 계책을 하나 궁리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으니 선생이 결정해주시면 고맙겠소.”
“도독께서는 잠깐 말씀을 멈추시지요. 각기 손에 글을 써서 같은가 봅시다.”
주유가 먼저 손바닥에 가만히 글자를 쓰고 붓을 넘겨주자 제갈량도 가만히 글을 썼다.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앉아 손을 내밀어 서로 글자를 들여다보고는 모두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주유의 손바닥에 불 화(火)자가 있는데, 제갈량의 손에도 똑같은 글자가 있었다. 그리하여 모두 호탕하게 웃으며 글자를 지웠다.
“우리 두 사람 소견이 똑같으니 더 의심할 게 없소. 말을 흘리지 않으면 고맙겠소.”
주유가 당부하자 제갈량이 대답했다.
“양쪽 집의 큰일을 흘릴 리 있겠습니까. 이 양이 헤아려보니 조조는 비록 두 번이나 나의 이 계책에 걸렸으나 틀림없이 대비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또 이 계책을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도독께서 마음껏 쓰시면 됩니다.”
술을 다 마시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장수들은 아무도 그 일을 몰랐다.
--- 본문 중에서
어느 날 조조는 의심이 깊어 모사들과 상의했다.
“강동의 감녕이 주유에게 모욕을 받아 안에서 호응하겠노라 하고, 황개는 주유에게 벌을 받고 감택을 보내 이곳에 와서 항복하겠다고 했소. 그러나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으니 누가 감히 주유의 영채로 들어가 확실한 소식을 알아보겠소?”
장간이 다시 나섰다.
“제가 전날 동오에 다녀왔으나 헛걸음만 하고 성공하지 못해 못내 부끄럽습니다. 몸을 바쳐 다시 가서 기어이 확실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와 승상께 보고하겠습니다.”
조조가 즉시 배에 오르게 하니 장간은 쪽배를 타고 강남에 이르러 주유에게 소식을 전했다. 장간이 다시 왔다는 말에 주유는 매우 기뻐했다.
“내가 성공하려면 오로지 이 사람에게 달렸다.”
그는 곧 노숙에게 부탁했다.
“방사원을 청해 나를 위해 이러저러하게 해주시오.”
양양 사람 방통은 자가 사원(士元)으로, 이때 난리를 피해 고향을 떠나 강동에 몸을 붙이고 있었다. 노숙이 주유에게 추천했는데 미처 찾아가 만나지 못했으나 주유가 이미 노숙을 보내 계책을 물은 바 있었다.
“조조를 깨뜨리려면 어떤 계책을 써야 하오?”
“반드시 불로 공격해야 하는데, 큰 강의 넓은 수면 위에서는 배 하나에 불이 붙으면 다른 배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니, 배들을 고리로 잇는 연환계를 써서 조조가 배들을 하나로 묶게 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깊이 탄복한 주유가 노숙에게 말했다.
“나를 위해 이 계책을 쓸 사람은 방사원밖에 없소.”
“그러나 조조가 간사하고 교활해서 사원이 어떻게 강북으로 가겠소?”
주유가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기회를 찾고 있는 터에 갑자기 장간이 다시 왔다고 하자, 대단히 기뻐 들여보내게 했다. 장간은 주유가 바로 나와 맞이하지 않으니 의심이 들어 후미진 기슭에 배를 매어놓게 하고 영채로 들어갔다. 주유는 엄한 표정이었다.
“자익은 어찌하여 이토록 심하게 나를 속이는가!”
장간이 웃음 지었다.
“내가 옛 시절 형제임을 떠올려 특별히 마음속 말을 하려고 찾아왔는데, 자네를 속이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가 나를 항복하라고 꾀러 왔다면 바다가 마르고 돌이 썩은 다음에나 가능할 걸세! 지난번 내가 옛날 정을 생각해 자네와 흠씬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한 침상에서 잤는데, 자네는 내 사사로운 글을 훔쳐 말도 없이 떠났지 않았나? 돌아가 조조에게 일러바쳐 채모와 장윤을 죽게 해서 내 일을 그르치고 오늘 또 왔으니 반드시 좋은 뜻을 품지 않았을 걸세! 내가 옛정을 보지 않는다면 당장 자네를 두 토막 내고 말겠네! 원래 자네를 되돌려보내려 했지만 내가 하루 이틀 사이에 조조 도적놈을 깨뜨리려 하니 돌려보내지 못하겠네. 그러나 자네를 군중에 남겨두면 또 무슨 일을 밖에 흘릴지 모르겠네.”
주유는 장간이 변명할 틈을 주지 않고 한바탕 나무라더니 분부했다.
“자익을 서산의 암자에 보내 쉬시도록 하라.”
그리고 장간에게 말했다.
“내가 조조를 깨뜨린 다음 자네를 강 너머로 보내도 늦지 않을 걸세.”
장간이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주유는 벌써 장막 뒤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이 장간을 말에 태우고 서산 뒤쪽 작은 암자로 데려가 쉬게 했다. 군졸 둘이 명령을 받들어 시중드는데, 암자에 도착한 장간은 근심스럽고 답답해 잠이 오지 않았다. 이날 밤 별들이 반짝거려 장간이 홀로 암자를 나가 뒤로 돌아가자 어디선가 글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어슬렁어슬렁 가보니 바위 곁에 초가 몇 칸이 있는데 안에서 불빛이 흘러나왔다. 장간이 다가가 훔쳐보니 한 사람이 등불 앞에 앉아 벽에 검을 걸고 손자와 오기의 병서를 읽고 있었다.
‘누군가 반드시 기이한 사람이다.’
장간이 문을 두드려 만나기를 청하자 그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오는데 모습이 속되지 않았다.
“성함을 어떻게 쓰십니까?”
“성은 방이고 이름은 통, 자는 사원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봉추 선생 아니시오?”
장간은 매우 반가워했다.
“크신 성함을 들은 지 오랜데 지금 어찌하여 이런 후미진 곳에 계십니까?”
“주유가 스스로 재주가 높다고 믿어 저를 받아들이지 못해 여기 숨어 삽니다. 공은 어떤 분이시오?”
“장간이올시다.”
방통이 안으로 청하니 장간이 구슬렸다.
“공의 재주로야 어디에 가신들 편안하지 못하시겠습니까? 만약 조 승상께 가시려면 이 간이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방통은 선선히 응했다.
“저도 강동을 떠나려 한 지 오랩니다. 공이 안내할 마음이 있다니 지금 당장 떠나야 하겠습니다. 만약 미루다가 주유가 알면 틀림없이 해칠 것입니다.”
장간은 방통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배를 찾아 부리나케 노를 저어 강북으로 갔다. 조조의 영채에 이르니 봉추 선생이 왔다는 말을 듣고 조조가 친히 장막에서 나와 맞아들였다.
“주유는 나이가 어려 제 재주만 믿고 사람을 깔보면서 좋은 계책을 쓰지 않소. 이 조는 선생의 큰 이름을 들은 지 오랜데 오늘 와주셨으니 아낌없이 가르쳐주시기 바라오.”
하지만 방통은 재주를 자랑하는 데에 급급하지 않았다.
“저는 예전부터 승상께서 군사를 부리심에 법도가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 군사의 모습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조조가 먼저 뭍의 영채를 보러 가니 방통은 조조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높은 곳에 올라 영채를 바라보았다.
“산에 의지하고 숲 가에 자리 잡으며, 앞과 뒤가 서로 돌보는군요. 나가고 들어오는 데에 문이 있는데 전진하고 후퇴할 때는 굽어 도니, 비록 손자와 오기가 되살아나고 양저가 다시 나오더라도 이보다 낫지는 못할 것입니다.”
【양저는 춘추시대 제나라 명장이자 병법가인 사마양저(司馬穰?)다.】
칭찬이 싫을 리 없으나 조조는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았다.
“선생은 과찬하지 마시고 가르침을 주시기 바라오.”
조조는 또 방통과 함께 물에 만든 영채를 살펴보았다. 영채는 남쪽을 향해 문이 24개 났는데 모두 커다란 몽충으로 성을 이루었고, 그 속에는 작은 배들이 숨어 있었다. 오가는 데는 길이 있고 일어났다가 숨는 데는 순서가 있어서 방통이 웃으며 말했다.
“승상께서 군사를 부리심이 이러하니 명성이 헛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강남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주랑아! 주랑아! 날짜를 정해놓고 네가 반드시 망하리라!”
조조는 대단히 기뻐 영채로 돌아와 방통을 청해 술을 마시며 군사 쓰는 비결을 이야기했다. 방통이 고명한 말을 하고 뛰어난 말솜씨를 펴는데, 어떤 것을 묻든지 물 흐르듯 거침없이 대답해 조조는 못내 탄복하고 존경하며 정성껏 대했다.
방통이 취한 척 물었다.
“외람되이 여쭙습니다만 군중에 훌륭한 의원이 있습니까?”
“의원은 있어서 무엇하오?”
“수군은 병이 많아 좋은 의원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이때 조조의 군사는 풍토와 기후, 물이 몸에 맞지 않아 다리가 붓고 토하는 병에 걸려 죽는 자가 많았다. 이 일을 걱정하던 조조는 그 말을 듣자 좋은 방법을 캐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방통은 계속 조조를 꾀었다.
“승상께서 수군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법이 아주 묘합니다만 아쉽게도 완벽하지는 못합니다.”
방통에게 완전히 반해버린 조조가 두 번 세 번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청하자 방통이 말했다.
“저에게 계책이 하나 있으니 수군의 높은 장수와 낮은 군졸이 병에 걸리지 않고 편안히 성공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묘한 계책이오?”
방통은 드디어 그동안 생각하던 계책을 털어놓았다.
“큰 강에는 조수가 오르내리고 바람과 파도가 그치지 않습니다. 북방의 군사는 배를 타는 데 익숙하지 않아 배가 출렁거리면 병이 납니다. 만약 크고 작은 배들을 서로 맞추어 혹은 30척을 한 줄로 엮고, 혹은 50척을 한 줄로 만들어 뱃머리와 고물을 쇠사슬로 이어놓고 그 위에 넓은 판자를 깔면, 사람이 지나다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까지 내달릴 수 있습니다. 그런 배를 타면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며 조수가 오르내리더라도 무서울 게 무엇입니까?”
조조는 너무 기뻐 삿자리 밖으로 나와 감사를 드렸다.
“선생의 좋은 계책이 아니면 어찌 동오를 깨뜨릴 수 있겠소!”
방통은 겸손을 보였다.
“어리석고 얄팍한 견해이니 승상께서 살펴 정하시기 바랍니다.”
조조가 즉시 명해 군중의 대장장이들을 불러 밤낮없이 쇠고리를 이어 사슬을 만들고, 큼직한 못을 쳐 배들을 잇게 하니 장졸들은 모두 좋아했다.
방통이 또 말했다.
“제가 살펴보니 강동의 호걸들 가운데는 주유를 원망하는 자가 많습니다. 저는 썩을 줄 모르는 세 치 혀를 믿고 승상을 위해 그들을 달래어 모두 와서 항복을 드리게 하겠습니다. 주유가 외로워지고 도움받을 데가 없어지면 반드시 승상께 사로잡힙니다. 주유가 잡히면 유비는 더 어떻게 해볼 수 없게 됩니다.”
조조가 싫다 할 리 없었다.
“선생이 과연 큰 공을 이루면 이 조가 천자께 아뢰어 삼공 반열에 오르시게 하겠소.”
“저는 부귀를 바라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만백성을 구하려 할 뿐이니 승상께서 강을 건너시면 백성을 건드리지 말아 주십시오.”
“내가 하늘을 대신해 도를 펴는데 어찌 차마 백성을 죽이겠소!”
조조가 말에 모두 따르자 방통이 절하면서 글을 얻어 종족을 보존하겠다고 청했다. 조조가 물었다.
“선생의 일가가 지금 어디 계시오?”
“바로 강변에 있습니다. 만약 승상의 글을 얻으면 그들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습니다.”
조조는 수하에게 글을 쓰게 하고 손수 이름을 적어 방통에게 주었다. 방통은 절을 해 인사하면서 귀띔했다.
“제가 떠난 다음 어서 진군하십시오. 주랑이 알아챌 때까지 미루셔서는 아니 됩니다.”

마음이 좀 놓인 조조는 말에 올라 강을 따라 세운 뭍의 영채와 수군 영채를 돌아보았다. 수(帥)자 깃발을 세운 큰 배 한 척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영채들이 줄을 지었는데, 배 위에는 활과 쇠뇌 1000벌씩을 매복해놓았다. 조조는 큰 배 위에 들었다.
때는 건안 13년(208년) 11월 보름이었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일지 않아 물결도 잔잔해서 조조가 명령을 내렸다.
“큰 배 위에 술상을 차리고 풍악을 울려라. 내가 오늘 밤 장수들과 잔치를 베풀겠다.”
날이 차츰 저물었다. 동산에 달이 떠올라 대낮처럼 훤하게 비추자 장강 일대는 흰 비단을 펼쳐놓은 듯했다. 조조는 큰 배 위에 앉고, 시중들고 호위하는 자들이 수백 명 늘어섰으니 모두 비단옷과 수놓은 저고리를 입고 과를 메고 극을 들었다. 문관과 무장들이 각기 높고 낮음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조조가 바라보니 남병산이 그림처럼 아름다운데 동쪽으로는 시상의 경계를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하구의 강을 둘러보며, 남쪽으로는 번산을 넘겨다보고, 북쪽으로는 오림을 눈여겨보니 사방이 모두 널찍해 매우 즐거웠다.
“내가 의로운 군사를 일으킬 때부터 나라를 위해 흉악한 자들을 없애고 해로운 놈들을 제거하면서 세상을 깨끗이 쓸고 천하를 평정하겠다고 맹세했으나 여태껏 얻지 못한 것은 강남이었소. 풍족한 강남땅을 얻으면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사를 강하게 만들 수 있소. 내가 지금 100만의 강한 군사를 거느렸고, 더욱이 여러분이 힘을 다해 도와주니 어찌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하겠소? 강남을 수복한 다음에는 천하에 일이 없어지니 여러분과 함께 부귀를 누리며 태평세월을 즐길까 하오.”
문관과 무장들이 모두 일어나 감사했다.
“하루빨리 개선가를 울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승상의 큰 복으로 평생 덕을 입을까 합니다.”
조조는 기분이 대단히 좋아 술을 돌렸다. 한밤중까지 술을 마셔 술기운이 거나해지자 조조는 저 멀리 남쪽 기슭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유와 노숙은 하늘의 때를 모르오! 이제 다행히 항복하는 사람이 있어 그의 가슴과 뱃속의 걱정거리가 되었으니 이는 하늘이 나를 돕는 것이오.”
순유가 귀띔했다.
“승상께서는 많이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새나갈까 두렵습니다.”
조조는 껄껄 웃었다.
“자리에 앉은 여러분과 가까이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이 다 내 심복인데, 말한들 누가 방해하겠소!”
조조는 하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유비야, 제갈량아! 너희가 개미 같은 힘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태산을 흔들려 하니 얼마나 어리석으냐!”
말을 많이 하고서도 성에 차지 않은 듯 조조는 장수들을 돌아보았다.
“내가 올해 쉰네 살이오. 강남을 얻게 되면 은근히 기쁜 일이 있소. 옛날 교 공이 나와 지극히 잘 어울렸는데, 그의 두 딸이 나라에서 으뜸가는 미인임을 내가 아오. 그런데 손책과 주유가 아내로 맞지 않았소? 내가 새로 장수 위에 동작대를 세웠으니 강남을 얻게 되면 두 교 씨 미녀에게 장가들어 대 위에 두고 만년을 즐기겠소. 그러면 내 소원이 다 풀어지오!”
말을 마치자 조조는 으하하하 웃어댔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 803~852년)이 이 일을 다루어 지은 시가 있다.

부러진 극 모래에 묻혀 쇠가 삭지 않았는데
갈고 씻어 살펴보니 옛 왕조 물건일세
동풍이 주랑을 편하게 해주지 않았다면
깊은 봄날 동작대에 교 씨 자매 갇혔으리
-‘적벽(赤壁)’

조조가 한창 웃고 떠드는데 별안간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까마귀가 울면서 남쪽으로 날아갔다.
“저 까마귀는 어찌하여 밤에 우는가?”
곁의 사람이 대답했다.
“까마귀는 달이 밝아 날이 샌 줄로 잘못 알고 나무를 떠나 웁니다.”
조조는 또 껄껄 웃었다. 이때 이미 취한 조조는 삭이라 부르는 긴 창을 가로로 들고 뱃머리에 서서 술을 부어 강에 제사를 지내고 석 잔을 가득히 따라 마셨다. 그리고 장수들에게 말했다.
“내가 이 삭을 들고 황건을 깨뜨리고, 여포를 사로잡고, 원술을 멸망시키고, 원소를 굴복시켰네. 장성 북쪽으로 깊이 들어가고, 요동까지 가서 천하를 가로세로 누볐으니 대장부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네. 지금 이 경치를 마주해 의기가 북받치니 내가 노래를 지어야겠네. 그대들이 화답하게.”
조조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술 마시고 노래 듣고
사람 일생 얼마더냐
아침 이슬 비슷하니
흘러간 날 너무 많네
격한 감정 북받치니
근심 잊기 어렵구나
무엇으로 걱정 풀까
술밖에 없으렷다

푸르른 그대 옷깃
유유한 이 내 마음
오직 그대 때문에
지금까지 읊조리네
사슴이 울어대며
들판의 쑥 먹는데  
좋은 손님 날 찾아와
슬을 뜯고 생황 부네

밤하늘의 하얀 달님
언제 가서 멈추려나
그 속에서 시름 생겨
그칠 수가 없나 보다
밭둑 넘고 길을 걸어
몸을 낮춰 날 찾는 이
얘기하고 잔치하며
옛정 살려 되새기네

달 환하고 별 드문데
까막까치 남쪽 날며
나무 세 번 돌아봐도  
깃들 가지 하나 없네
산은 높아 싫다 않고
물은 깊어 만족 몰라
주공께서 밥 뱉으니
천하 마음 쏠렸더라
-조조 ‘단가행(短歌行)’

조조가 노래를 마치자 사람들이 따라 화답하면서 모두 즐겁게 웃는데, 별안간 자리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말했다.
“대군이 서로 맞서고 장졸들이 모두 힘을 내는 때에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불길한 노래를 부르십니까?”
조조가 보니 양주 자사 유복이었다. 패국 상현 사람인데 건안 4년(199년) 손책의 공격으로 양주가 파괴된 후, 구강군 합비성에서 몸을 일으켜 주의 관청을 만들었다. 도망가고 흩어진 사람을 모으고 학교를 세우며 둔전을 널리 보급해 백성을 잘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데도 성공했다. 오랫동안 조조를 섬기면서 공로가 많은 유복이 이런 말을 하니 조조는 삭을 가로로 들고 물었다.
“내 노래의 어디가 불길하단 말인가?”
유복이 대답했다.
“노래 가운데 ‘달 환하고 별 드문데 까막까치 남쪽 날며 나무 세 번 돌아봐도 깃들 가지 하나 없네’라는 대목이 상서롭지 못합니다.”
조조는 벌컥 화를 냈다.
“네가 어찌 감히 내 흥을 깨뜨리느냐!”
조조의 손이 번쩍 올라가자 삭이 유복의 몸에 푹 꽂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 잔치를 끝냈다.
이튿날 술이 깬 조조는 뉘우쳐 마지않았다. 유복의 아들 유희가 아버지의 주검을 고향으로 옮겨 묻게 해달라고 청을 올리자 조조는 눈물을 흘리며 허락했다.
“내가 어제 취한 김에 네 아버지를 잘못 죽여 뉘우쳐 마지않는다. 삼공의 예절로 후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하라.”

이튿날 수군 도독 모개와 우금이 조조 장막에 와서 청을 올렸다.
“크고 작은 배들을 사슬로 다 이어놓았습니다. 깃발과 싸움하는 도구들도 모두 갖추었습니다. 승상께서 명령해 움직이시고 날짜를 정해 진군하시기를 청합니다.”
명령이 떨어지자 수군 영채 안에서 ‘둥둥둥!’ 북을 세 통 울리니 여러 대오의 싸움배들이 일제히 영채 문을 열고 나아갔다. 이날 마침 서북풍이 급작스레 불어 배들이 저마다 돛을 올리고 파도를 가르는데, 평지 위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이 흔들리지 않고 든든하게 움직였다.
북군은 배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용맹스럽게 창을 찌르고 칼을 휘둘렀다. 전후좌우 여러 대의 군사가 각기 대열을 유지하니 갖가지 빛깔의 깃발들이 전혀 섞이지 않았다. 또 쪽배 50여 척이 오가면서 순찰을 돌고 훈련을 감독하며 재촉했다. 싸움을 지휘하는 장대 위에 올라선 조조는 군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대단히 기뻐 이것이야말로 틀림없이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돛을 거두고 각기 순서대로 영채로 돌아오라.”
명령에 따라 군사가 다 돌아온 다음, 조조는 장막의 윗자리에 앉아 모사들에게 말했다.
“만약 하늘이 나를 돕지 않는다면 어찌 봉추의 묘한 계책을 얻었겠소? 쇠사슬로 배를 이으니 과연 강을 건너는 게 평지를 밟듯 평탄하구려.”
이에 정욱이 걱정했다.
“배를 모두 사슬로 이으니 평온하기는 합니다만, 만약 적이 불로 공격하면 피하기 어려우니 방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조는 껄껄 웃으며 대꾸했다.
“정중덕은 비록 멀리 걱정했지만 살펴보지 못한 구석이 있소.”
순유가 이상한 듯 물었다.
“중덕의 말이 매우 옳은데 승상께서는 무엇 때문에 웃으십니까?”
“무릇 불로 공격하려면 반드시 바람의 힘을 빌려야 하오. 지금은 한창 겨울이라 서풍과 북풍이 있을 뿐이니 어찌 동풍, 남풍이 있겠소? 내가 서북쪽에 있고 저쪽 군사는 모두 남동쪽에 있으니 그들이 만약 불을 쓴다면 자기네 군사나 태우게 될 것이오. 그러니 내가 무엇이 두렵겠소? 만약 봄처럼 따스한 시월이라면 내가 벌써 방비했을 것이오.”
장수들은 모두 엎드려 탄복했다.
“승상의 높으신 식견은 사람들이 미치지 못할 바입니다.”
“청주, 서주와 연나라, 대나라 무리는 배를 타는 데 익숙하지 않소. 이 계책이 아니었으면 어찌 험하고 넓은 강을 건널 수 있겠소?”
그러자 반열에서 두 장수가 훌쩍 일어나 나섰다.
“저희는 비록 유와 연나라 땅 사람이지만 배를 탈 수 있습니다. 순라선 20척을 빌려주시면 곧바로 강어귀까지 나아가 깃발과 북을 빼앗아 북군도 배를 탈 수 있음을 보여주겠습니다.”
이전에 원소의 장수였던 초촉과 장남이었다. 조조가 말렸다.
“자네들은 북방에서 나고 자라 배를 타기가 쉽지 않을까 걱정일세. 강남의 군사는 강 위를 오가는 연습을 잘해 물싸움에 익숙하니 자네들은 가볍게 목숨을 걸고 어린아이 장난을 하지 말게.”
초촉과 장남은 목청을 돋우어 외쳤다.
“만약 이기지 못하면 군법을 달게 받겠습니다!”
조조가 말했다.
“싸움배는 모두 사슬로 이어놓아 쪽배만 있는데, 한 척에 20명을 태울 수 있으니 그 배로 저쪽 군사들과 맞서 싸우기는 어려울 걸세.”
초촉이 큰소리를 쳤다.
“큰 배를 쓴다면 무엇이 희한할 게 있겠습니까? 쪽배 20척만 주시면 저는 장남과 절반씩 나누어 바로 오늘 곧장 강남의 수군 영채로 쳐들어가 반드시 장수를 베고 깃발을 빼앗아 오겠습니다.”
조조는 드디어 허락했다.
“내가 배 20척을 주고 긴 창과 강한 쇠뇌를 지닌 정예 군사 500명을 주겠네. 내일 날이 밝으면 큰 영채의 배를 내보내 멀리서 응원하는 기세를 갖추어주고 문빙에게 순라선 30척을 거느리고 자네들을 맞이해 오도록 하겠네.”
초촉과 장남은 기뻐 날뛰며 물러갔다.
이튿날 동트기 전에 밥을 짓고, 동이 트자 갑옷 입고 무기를 지녀 채비를 마치니, 어느덧 수군 영채 안에서 북을 두드리고 징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배들이 모두 영채에서 나와 수면 위에 늘어서니 장강 일대에는 푸른 깃발과 붉은 깃발이 엇갈렸다. 초촉과 장남은 순찰 도는 쪽배 20척을 이끌고 영채를 뚫고 나와 강남을 향해 나아갔다.
남쪽 기슭의 사람들이 전날 요란스레 울리는 북소리를 듣고 멀리 바라보니 조조가 수군을 훈련하고 있어서 주유에게 보고했다. 주유가 산에 올라 살펴볼 때는 조조의 군사는 이미 돌아간 뒤였다.
그런데 이튿날 또 북소리가 하늘을 울려 장졸들이 급히 높은 곳에 올라 살펴보니 쪽배들이 파도를 가르며 다가와 주유가 장수들에게 물었다.
“누가 감히 먼저 나아가겠는가?”
한당과 주태가 나섰다.
“제가 임시 선봉이 되어 적을 깨뜨리겠습니다.”
주유는 여러 영채에 명령을 돌려 엄하게 방어하면서 가볍게 움직이지 않게 하고, 한당과 주태는 각기 정찰하는 배 다섯 척을 이끌고 좌우로 나아갔다.
초촉과 장남이 용기 하나만 믿고 나는 듯이 쪽배를 몰아오니 가슴을 막아주는 엄심갑만 입은 한당은 긴 창을 들고 뱃머리에 서 있었다. 초촉의 배가 먼저 이르러 어지러이 화살을 날리자 한당은 방패를 들고 막았다. 초촉이 긴 창을 틀어잡고 달려드니 한당이 손을 번쩍 들어 한 창에 찔러 죽였다.
장남이 뒤따라오며 아우성치자 비스듬히 주태의 배가 곁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장남이 창을 꼬나 들고 뱃머리에 서고, 군사들이 어지러이 화살을 날렸다. 배들이 가까워지자 팔에 방패를 끼고 한 손에 칼을 든 주태가 몸을 훌쩍 솟구치더니 장남의 배 위에 사뿐히 내려서면서 칼을 휙 휘둘러 장남을 찍어 물에 떨어뜨렸다.
주태가 배 젓는 군사를 마구 찍어 죽이니 다른 배들은 급히 노를 저어 되돌아갔다. 한당과 주태가 쫓아가다 강 한가운데서 문빙의 배와 마주쳐 양쪽에서 배들을 벌려 세우고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주유가 장수들을 이끌고 산꼭대기에서 멀리 강북을 바라보니 몽충이 강 위에 늘어섰는데 깃발과 신호 띠에 모두 순서가 있었다. 강 가운데로 눈길을 돌려보니 한당, 주태와 한바탕 싸우던 문빙이 견디지 못하고 배를 돌려 달아나고 오군의 배들이 급히 쫓아갔다. 그들이 북군 속으로 깊이 들어갈까 걱정해 주유가 흰 깃발을 휘두르고 징을 울리게 해 불러들였다.
북쪽으로 돌아간 문빙이 결과를 보고하자 조조는 군사를 거두어 영채로 돌아갔다. 주유는 산꼭대기에서 건너편의 싸움배들이 영채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장수들에게 말했다.
“강북의 싸움배가 갈대처럼 빼곡한데 조조 또한 꾀가 많으니 어떤 계책으로 깨뜨려야 하겠는가?”
장수들이 미처 대답하기 전에 별안간 조조의 영채에서 중앙의 누런 깃발이 바람에 부러져 펄럭이며 강에 떨어져 주유는 껄껄 웃어댔다.
“저것은 상서롭지 못한 징조다.”
이때 조조의 장졸들은 중앙의 누런 깃발이 부러지자 저마다 놀라고 두려워했다. 조조도 기분이 상했으나 겉으로는 태연하게 명령을 내렸다.
“사람들을 홀리는 자는 목을 자른다!”
그리하여 장졸들 마음이 겨우 안정되었다.
주유가 북쪽을 한참 바라보는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몰아치며 강에서 파도가 일어 기슭을 철썩철썩 때렸다. 그러자 바람이 휙 지나가면서 주유 옆에 세워져 있던 깃발이 귀퉁이를 말아 올리며 주유의 얼굴을 스쳤다. 주유는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어 ‘으악!’ 소리치며 뒤로 넘어져 피를 토했다. 장수들이 급히 구해보니 어느새 정신을 잃었다.
--- 본문 중에서
[알고 보면 더 재미있어]

조조는 정치가이자 무장이며, 병법가이자 훌륭한 시인


조조는 기나긴 중국 역사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종합적인 인물이다. 후한 말기에 20여 년 동안 실질적으로 나라를 다스린 정치가이자 수십 년 동안 군사를 거느리고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은 무장이며, 《손자병법》에 제일 먼저 주해를 단 전략가다. 그런가 하면 또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문학가로서 훌륭한 작품을 여럿 남겼다.
전한과 후한 시대 문학 작품들을 보면 거의 황제의 생활을 그리고 그 공적을 칭송하는 것이었고, 어쩌다 황제의 잘못을 글의 맨 끝에 완곡하게 지적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문학사에서 ‘건안문학’으로 불리는 건안 시대(196~220년) 작품들은 지은이의 감정이 깃들어 있고 개성이 강하다. 그리고 작가의 눈길도 황궁으로부터 민간으로 돌려졌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사람들이 바로 조조와 그 아들인 조비, 조식이니 후세에 ‘삼조(三曹)’로 불리는 세 사람은 건안 연간에 문단의 수령들이었다.

갑옷에는 서캐가 끼고
사람들이 죽어가네
백골은 들판에 드러나고
천 리 길 닭 울음소리 사라졌다
백성이 백에 하나나 남으니
생각하면 애간장이 끊어지누나

조조가 지은 ‘쑥대밭을 가면서[蒿里行호리행]’의 한 대목이다. 읽으면 군벌 혼전이 낳은 무서운 결과가 눈앞에 선하고 지은이의 심정에도 공감이 간다.
조조는 높은 곳에 오르면 반드시 부를 짓고, 긴 삭을 가로로 들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그 시들이 아름다워, 대체로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소설이나 야사의 영향을 적게 받아 조조를 좋아한다.
지금 찾아볼 수 있는 조조의 시는 20여 수다. 그 가운데 소설에 나오는 ‘단가행’이 삼국지의 덕을 보아 가장 널리 알려졌는데, 잘못된 풀이가 많다. 조조의 이 시는 원작의 맛을 살리기 위해 4·4조로 옮겼는데, 예로부터 오해가 심하고 오역도 많았다.
첫 마디 ‘대주당가(對酒當歌)’는 ‘술을 앞에 두고 노래를 듣는다’는 뜻이다. ‘당가’를 ‘노래를 해야 한다’고 풀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후한 시대 문학작품의 일반적인 예를 보면 ‘당(當)’은 ‘대(對)’와 같은 뜻으로 ‘노래를 대한다’, 즉 ‘노래를 듣는다’는 뜻이 더 어울린다. 후한 시대에는 서로 다른 글자로 같은 뜻을 중복하는 수사법이 상당히 유행했다. 여기서는 ‘술 마시고’로 옮겼다.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의 슬픔과 걱정을 술의 힘을 빌려 풀어야 한다고 잠깐 주장한 것이다.
다음 네 번째 마디인 ‘거일고다(去日苦多)’는 아침 이슬처럼 가뜩이나 짧은 인생에서 이미 지나간 나날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는 뜻으로, 이 경우 ‘고(苦)’는 심정을 그려내는 형용사이지 고생이라는 명사가 아니다. ‘지난날은 괴로움도 많았어라'나 ‘지난 세월 고생도 많았지’로 옮긴 이들이 있는데, 원작의 글자를 잘못 이해한 탓이다.
여기서 ‘밭둑 넘고 길을 걸어’로 옮긴 ‘월맥도천(越陌度阡)’에서 ‘맥(陌)’은 밭 속의 동서 방향으로 난 길을 가리키고 ‘천(阡)’은 밭 속의 남북 방향으로 난 길을 가리킨다. 대체로 먼 길을 걷는 것을 그린 것이다.
‘푸르른 그대 옷깃……’의 두 마디는 《시경》 〈정풍 자금〉의 구절을 따온 것이다. 주(周)나라 때 글을 배우는 사람들은 옷깃이 푸른 옷을 입어서, ‘푸른 옷깃’은 공부하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조조는 근심을 풀어줄 수 있는 인재를 그리는 마음을 노래에 담아 불렀다. ‘사슴이 울어대며……’의 네 마디는 《시경》 〈소아 녹명〉의 구절을 따왔다. 녹명, 즉 ‘사슴의 울음소리’는 원래 손님을 접대하는 노래라 조조는 현명한 인재를 접대하려는 열정과 방식까지 말한 셈이다. 빈(?)은 쑥이지 마름이나 부평초가 아니다.
‘밤하늘의 하얀 달님……’은 쉴 줄 모르고 움직이는 달과 같이 걱정도 끝이 없는데, 인재가 먼 길을 걸어 자기에게 찾아오니 반갑게 맞이해 정을 나눈다는 뜻이다. ‘달 환하고 별 드문데……’의 네 구절에서 까마귀를 빌려 세상의 백성들이 의지할 데 없는 상황을 그린 조조는 또 고전에 박식한 실력을 드러내, 《관자(管子)》 〈형세해〉의 ‘산은 높아짐을 마다하지 않고 물은 깊어짐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을 적당한 곳에 재치 있게 써먹었다.
마지막에는 옛날 주나라가 상나라를 정복한 후 정사를 담당한 주공이 인재를 놓칠까 두려워 일단 손님이 왔다고 하면 입에 문 밥도 뱉고 나가 맞이해,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인용했다. 조조는 인재들을 모아 천하를 안정시키겠다는 뜻을 남김없이 드러낸 것이다.
소설에서 유복이 불길하다고 지적한 ‘달 환하고 별 드문데 까막까치 남쪽 날며 나무 세 번 돌아봐도 깃들 가지 하나 없네’는 많은 학자가 세상의 백성들이 의지할 데 없는 상황을 까마귀에 비유해 그렸다고 해석한다.
--- 본문 중에서
바람의 방향을 보고 주유가 까무러쳐서, 사람들이 급히 구해 장막으로 돌아가니 장수들이 찾아와 놀라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강북에 100만 무리가 호랑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먹이를 삼키려고 하는데 도독께서 이렇게 정신을 잃으시면 어떻게 하오?”
장수들은 황급히 사람을 보내 오후에게 알리고 의원을 청해 치료했다. 주유가 쓰러지자 노숙은 울적하고 답답해 제갈량을 찾아갔다.
“공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제갈량이 물었다.
“이건 조조의 복이고 강동의 화요.”
노숙이 대답하니 제갈량은 웃었다.
“공근의 병은 이 양이 치료할 수 있소.”
“정말 그렇게 되면 나라가 참으로 다행이겠소!”
노숙은 바로 제갈량과 함께 주유를 보러 갔다. 노숙이 먼저 장막에 들어가 보니 주유는 이불을 감싸고 누워 있었다.
“도독의 병세는 어떠하시오?”
“가슴과 배가 안에서 무엇이 휘젓듯이 아프고 자꾸만 까무러치오.”
“무슨 약을 드셨소?”
“속이 메슥거려 약이 내려가지 않소.”
“방금 공명에게 가보았더니 그가 도독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소. 지금 장막 밖에 와 있으니 불러들여 치료하면 어떻겠소?”
주유가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아 제갈량을 모셔 들이게 하니 그가 들어와 말했다.
“며칠간 도독의 얼굴을 뵙지 못했는데, 귀하신 몸이 불편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예로부터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화와 복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으니 어찌 스스로 장담하겠소?”
제갈량이 웃었다.
“또한 ‘하늘의 풍운조화는 헤아릴 수 없다’는 말도 있지요. 사람이 역시 어찌 헤아리겠소이까?”
그 말을 듣자 주유는 낯빛이 변해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제갈량이 물었다.
“도독께서는 가슴속에 번뇌가 쌓인 듯한 느낌이 드십니까?”
“그렇소.”
“반드시 시원한 약으로 풀어야 합니다.”
“이미 시원한 약을 먹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소.”
“반드시 먼저 그 기(氣)를 다스려야지요. 기가 순하게 되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에 자연히 낫습니다.”
【제갈량이 ‘하늘의 풍운조화’니 ‘시원한 약’이니 ‘기’를 들먹이자 주유는 생각되는 바가 있었다.】
“기를 순하게 하려면 어떤 약을 먹어야 하오?”
“이 양에게 처방이 있으니 곧 도독의 기가 순해지도록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의 가르침을 바라오.”
주유가 청하자 제갈량은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하더니 사람들을 물리치고 가만히 글을 썼다.
‘조조를 깨뜨리려면 불로 공격해야 하는데 만사는 모두 갖추었으나 다만 동남풍이 모자라는구나.’
제갈량이 글을 건네며 말했다.
“이것이 도독께서 앓고 있는 병의 뿌리입니다.”
주유는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명은 참으로 신선이다! 벌써 내 걱정거리를 알았구나! 그러니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웃으며 청했다.
“선생이 이미 내 병의 뿌리를 알았으니 어떤 약으로 고쳐야 하오? 일이 위급하니 곧 가르쳐주기를 바라오.”
“이 양은 비록 재주 없으나 일찍이 기이한 사람을 만나 기문둔갑의 천서(天書)를 전해 받았습니다. 그래서 위로는 바람을 부르고 비를 불러올 수 있고, 귀신을 부리고 신을 내몰 수 있습니다. 중간으로는 진을 치고 군사를 늘여 세워 백성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며, 아래로는 길함을 찾아가고 흉함을 피해 자기 몸을 온전하게 보존하여 해를 끼치는 일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도독께서 동남풍을 쓰시겠다면 남병산에 단을 하나 쌓으십시오. 그 단의 이름은 칠성단이라 하니 높이는 9자이고 3층으로 짓되, 120명이 깃발을 들고 에워싸게 해야 합니다. 이 양이 단 위에서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부는 세찬 동남풍을 빌어 도독이 군사를 부리는 데 도움을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주유는 미심쩍었으나 밑져야 본전이었다.
“사흘 낮 사흘 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하룻밤만 세찬 바람이 불면 대사가 이루어지오. 그런데 일이 눈앞에 닥쳤으니 늦추어서는 아니 되오.”
“동짓달 20일 갑자 날에 바람을 빌려 22일 병인 날에 멎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제갈량의 말에 주유는 크게 기뻐 후닥닥 일어났다. 곧 명령을 내려 건장한 군사 500명을 내어 남병산에 단을 쌓게 하고, 120명 군사에게 깃발을 들고 단을 지키면서 명령을 듣게 했다.
제갈량은 주유와 헤어져 노숙과 함께 남병산으로 갔다. 지세를 살펴보더니 동남쪽의 붉은 흙을 가져다 단을 쌓게 하니 단의 둘레는 240자에 층마다 높이가 3자이니 모두 9자였다.
제갈량은 동짓달 20일 갑자 날의 좋은 시간을 골라 목욕재계하고 도복을 입고 맨발 바람에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단 앞에 와서 노숙에게 일렀다.
“자경은 공근을 도와 군사를 움직이시오. 만약 이 양이 바람을 빌었는데 효험이 없더라도 나무라지 마시고, 일단 동남풍이 일어나면 할 일을 하시오.”
노숙이 돌아가고 제갈량은 단을 지키는 장졸들에게 당부했다.
“함부로 자기 방위를 떠나서는 아니 된다. 머리를 맞대거나 귀에 입을 대고 수군거려서도 아니 된다. 실수해 소리를 질러서도 아니 된다. 놀라거나 이상하다고 떠들어서도 아니 된다. 명령을 어기는 자는 목을 치겠다!”
제갈량은 천천히 단에 올라 방위를 살펴보고 자리를 정하더니, 향로에 향을 꽂아 불을 붙이고 물그릇에 물을 붓고는 하늘을 우러러 가만히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단에서 내려와 장막에 들어가 잠깐 쉬더니 군사들에게 서로 차례를 바꾸어 밥을 먹게 했다. 제갈량이 하루에 세 번 단에 오르고 세 번 내려오는데 동남풍은 보이지 않았다.
주유는 정보와 노숙을 비롯한 사람들을 장막에 청해 동남풍을 기다리게 했다. 일단 바람이 불기만 하면 곧 군사를 움직여 진군할 채비를 하면서, 오후 손권에게 사람을 보내 뒤를 받쳐달라고 요청했다.
주유가 장막 안에 앉아 일을 의논하는데 오후의 사자가 와서 보고했다.
“오후께서는 배를 영채에서 85리 떨어진 곳에 정박하시고 도독의 좋은 소식만 기다리십니다.”
주유는 노숙에게 말해 여러 대의 장수와 군사들에게 두루 알리게 했다.
“배와 병장기, 돛과 노 따위를 점검하고 명령이 떨어지면 한 시도 늦추지 말고 움직여야 한다. 명령을 그르치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다스린다.”
명령을 받은 장졸들은 저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는 손바닥을 썩썩 비비면서 싸울 채비를 했다. 그러나 22일이 차츰 저무는데도 날씨는 여전히 맑고 미풍마저 불지 않았다. 주유가 노숙에게 말했다.
“공명의 말이 황당하오. 한겨울에 어떻게 동남풍을 부르겠소?”
그러나 노숙은 여전히 제갈량을 믿었다.
“내가 헤아려보면 공명은 반드시 거짓말을 하지 않소.”
한밤중이 지나자 별안간 바람 소리가 윙윙 일어나며 깃발이 움직였다. 주유가 장막에서 나가 보니 깃발 끝이 서북쪽으로 날리면서 눈 깜빡할 사이에 동남풍이 세차게 불어 주유는 질겁했다.
“이 사람은 하늘의 조화를 빼앗는 방법과 귀신이 짐작하지 못할 술법이 있으니 그대로 두었다가는 동오의 화근이 되고, 주유의 큰 걱정거리가 된다. 일찌감치 죽여 뒷날 걱정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주유는 급히 장막 앞의 두 장수 정봉과 서성을 불렀다.
“각기 100명을 데리고 가되, 서성은 강으로 가고 정봉은 땅으로 가서 모두 남병산 칠성단 앞에 이르러 아무 말도 묻지 말고 제갈량을 잡아서 목을 쳐라. 그리고 그 머리를 들고 와서 상을 청하라.”
두 장수는 명령을 받들고 떠났다. 서성이 배에 타니 칼잡이 100명이 노를 젓고, 정봉이 말에 오르니 활잡이 100명이 각기 군마를 다그쳤다. 남병산은 큰 영채에서 겨우 10여 리여서 두 패의 군사는 길에서 마침 맞받아 일어나는 동남풍을 만났다. 정봉의 기병이 먼저 남병산에 이르니 희미하게 새벽이 밝아오는데 깃발을 든 군졸들이 바람을 받으며 단에 서 있었다.
“제갈량은 방금 단을 내려갔습니다.”
정봉이 부랴부랴 내려가 찾아보는데 서성의 배가 이르니 강변의 군사가 보고했다.
“어젯밤에 쾌속선 한 척이 저 앞의 여울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금 제갈량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배에 타자 물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정봉과 서성은 물과 뭍으로 나뉘어 쫓아갔다. 서성의 명으로 배의 돛이 한껏 올라가서 바람을 받아 배가 재빨리 움직였다. 저 앞에 배가 보이는데 그다지 멀지 않아 서성이 뱃머리에 서서 높이 외쳤다.
“제갈 군사는 가지 마시오! 도독께서 청하시오!”
제갈량은 고물에 서서 껄껄 웃었다.
“도독께 군사나 잘 부리라 전하시오. 이 양은 하구로 잠시 돌아갈 터이니 뒷날 다시 만나 뵐까 하오.”
서성은 거짓말을 서슴지 않았다.
“잠깐만 멈추어 서십시오. 요긴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속을 제갈량이 아니었다.
“내가 이미 도독이 나를 용납하지 못해 반드시 사람을 보내 해칠 줄을 헤아렸소. 그래서 미리 조자룡에게 와서 맞이하게 했으니 장군은 쫓아올 필요가 없소.”
서성은 앞의 배에 돛이 없어 속도가 느린 것을 넘보고 한사코 쫓아갔다. 배가 바짝 다가드는데 활을 든 조운이 시위에 살을 먹이고 고물에 서서 높이 외쳤다.
“나는 상산의 조자룡이다! 명령을 받들고 특별히 군사를 맞이하러 왔는데 네가 어찌하여 쫓아오느냐? 원래 화살 한 대에 너를 쏘아 죽이려 했으나 그러면 양쪽의 좋은 사이가 틀어질 테니 너에게 내 재주만 보여주겠다!”
조운이 시위를 놓으니 윙 날아온 화살은 바로 서성이 탄 배의 돛 줄을 끊어버렸다. 그러자 돛이 주르르 떨어져 배는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물살에 밀려 옆으로 돌아섰다. 그것을 본 조운이 배의 돛을 모두 올리게 해 바람을 타고 가버리니 그 배는 새가 나는 듯이 움직여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언덕 위에서 정봉이 서성을 불러 말했다.
“제갈량의 신묘한 지략과 기이한 계책은 다른 사람이 따를 수 없네. 게다가 만 사람이 당하지 못할 용맹을 지닌 조운이 그를 보호하고 있네. 자네는 그가 당양 장판파에서 싸운 일을 아는가? 우리는 그냥 돌아가 보고를 올리면 그만일세.”
두 사람이 돌아가 제갈량이 미리 조운과 약속해 가버렸다고 하자 주유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이처럼 슬기와 꾀가 뛰어나니 내가 아침저녁으로 편안히 보내지 못하겠다!”
노숙이 옆에서 말했다.
“먼저 조조를 깨뜨린 다음 생각합시다.”
--- 본문 중에서
유비가 하구에서 제갈량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한 대의 배가 이르러, 제갈량과 조운이 기슭에 올랐다. 유비가 크게 기뻐 인사를 마치자 제갈량이 말했다.
“다른 일을 말씀드릴 틈이 없습니다. 전에 약속드린 군사와 싸움배들은 다 갖추셨습니까?”
“마련해둔 지 오래요. 다만 제갈 군사가 움직여 쓰기만을 기다리오.”
제갈량은 곧 유비, 유기와 함께 장막 윗자리에 올라가 조운에게 분부했다.
“자룡은 3000명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 곧장 오림의 오솔길로 가서, 소나무가 우거지고 숲이 무성한 곳을 골라 매복하시오. 오늘 밤이 거의 지나면 틀림없이 조조가 그 길로 달아나는데, 그의 군사가 지나기를 기다려 중간에 불을 지르시오. 모두 죽이지는 못해도 절반쯤은 없애시오.”
조운이 의문을 내놓았다.
“오림에는 길이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남군으로 통하고, 하나는 형주로 가는데 어느 길로 올까요?”
제갈량이 알려주었다.
“남군은 형세가 압박을 받으니 감히 가지 못할 것이오. 조조는 반드시 형주로 가서 대군을 거느리고 허도로 돌아갈 것이오.”
조운이 계책을 받고 떠나자 장비를 불렀다.
“익덕은 3000명 군사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 이릉으로 가는 길을 막아 호로곡 어귀에 매복하시오. 조조는 감히 남이릉으로 가지 못하고 틀림없이 북이릉으로 갈 것이오. 내일 비가 멎으면 그들이 솥을 걸고 밥을 지을 것이니, 그곳에서 연기가 일어나는 것이 보이면 산 옆에 불을 지르시오. 비록 조조를 잡지 못하더라도 익덕의 공로는 작지 않을 것이오.”
장비도 계책을 받고 떠나니 또 미축, 미방, 유봉을 불러 각기 배를 몰고 강을 돌아다니며 패잔병을 사로잡고 싸움 도구들을 빼앗게 했다. 세 사람도 계책을 받고 떠나자 제갈량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자 유기에게 말했다.
“무창은 여기서 바라보이는 곳인데 가장 중요하니 공자는 돌아가 군사를 이끌고 기슭에 진을 치시오. 조조가 패하면 반드시 도망쳐 오는 자가 있을 테니 그 자리에서 사로잡되 섣불리 성을 떠나서는 아니 되오.”
유기도 작별하고 떠나자 제갈량은 유비에게 말했다.
“주공께서는 번구에 주둔하시고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십시오. 자리에 앉으시어 오늘 밤 주랑이 큰 공로를 이루는 것을 구경만 하시면 됩니다.”
이때 관우는 자기가 바로 곁에 있는데도 제갈량이 아예 보지도 못한 척하니 참다못해 목청을 돋우었다.
“관 아무개는 여러 해 형님을 따라 싸우면서 한 번도 남의 뒤에 떨어져 본 적이 없소. 오늘 큰 적군을 만났는데 제갈 군사가 나를 쓰지 않으니 무슨 뜻이오?”
제갈량이 웃었다.
“운장은 저를 나무라지 마시오! 저는 원래 운장께 폐를 끼쳐 가장 요긴한 길목을 막게 하려 했으나 편하지 못한 일이 있어 감히 보내지 못하겠소.”
“무엇이 편하지 못한지 당장 알려주시오.”
“옛날 조조가 공을 아주 후하게 대했으니 공은 꼭 보답하려 할 것이오. 오늘 조조가 패하면 반드시 화용도로 달아나는데, 공을 그곳으로 보내면 틀림없이 그를 놓아 보낼 것이니 그래서 감히 보내지 못하겠소.”
“군사는 공연한 걱정이 너무 많소. 조조가 그때 과연 관 아무개를 무겁게 대한 것은 틀림없지만, 이미 안량의 목을 자르고 문추를 베며 백마의 에움을 풀어 보답했소. 오늘 맞닥뜨리면 어찌 놓아 보내겠소?”
“만약 조조를 놓아 보내면 어떻게 하겠소?”
“군법에 따르겠소.”
관우가 다짐하자 제갈량은 얼른 못을 박았다.
“그러면 문서를 쓰시오.”
관우는 당장 군령장을 내놓았다. 그리고 미심쩍은지 제갈량에게 물었다.
“만약 조조가 그 길로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소?”
“나도 운장에게 군령장을 내놓겠소.”
관우가 크게 기뻐하자 제갈량이 말했다.
“운장은 화용도 오솔길에서 높은 산에 땔나무와 풀을 쌓고 불을 붙여, 불길과 연기로 조조를 유인하시오.”
“조조가 연기를 보면 매복이 있는 것을 알 텐데 어찌 그쪽으로 오겠소?”
“병법에 ‘허허실실’이라는 말이 있지 않소? 조조는 군사를 곧잘 부리지만 이런 방법으로 그를 속일 수 있소. 그는 연기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일부러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여겨, 반드시 그 길로 올 것이오. 운장은 사정을 봐주지 마시오.”
【허허실실은 허와 실의 변화를 이용하는 계책이라는 뜻이다.】
관우가 명령을 받들고 500명 칼잡이를 데리고 화용도로 가니 유비가 걱정했다.
“내 아우는 의리를 무겁게 아는 사람이라 조조가 화용도로 오면 그가 정말 놓아줄까 두렵소.”
“이 양이 밤에 천상을 살펴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 되었습니다. 그래서 운장에게 인정을 베풀게 하는 것인데, 이 역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선생의 신묘한 헤아림은 세상에 미칠 사람이 없구려!”
유비가 감탄하니 제갈량은 함께 번구로 가서 주유가 군사를 부리는 것을 구경하고 손건과 간옹을 남겨 하구성을 지키게 했다.

이때 조조는 영채 안에서 장수들과 이야기하며 항복하러 오겠다는 황개 소식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동남풍이 일더니 몹시 세차게 불어 참모 정욱이 급히 들어와 말했다.
“지금 동남풍이 일어나니 미리 예방해야 합니다.”
조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동지는 음기의 극치이니 양기가 조금 생겨나 음과 양이 변할 때인데, 어찌 동남풍이 없겠소? 이상할 게 무어요!”
【음양 철학에 따르면 음이 극치에 이르면 양이 생기고, 양이 극치에 이르면 음이 생긴다고 한다. 동짓날부터 해가 차츰 길어지니 양기가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별안간 군사가 보고했다.
“지금 강동에서 쪽배가 한 척 왔는데 황개의 밀서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조조가 급히 불러들여 밀서를 펼쳤다.
‘주유의 방비가 단단해서 몸을 뺄 수 없었는데, 지금 파양호에서 새로 실어온 군량을 이 개에게 순찰하게 해서 겨우 틈이 생겼습니다. 어떻게든 강동의 명장을 죽여 그 머리를 들고 항복하겠습니다. 오늘 밤 2경에 청룡기를 꽂은 배가 보이면 바로 군량 실은 배입니다.’
조조는 장수들과 함께 수군 영채의 큰 배에 올라 황개의 배가 이르기를 기다렸다. 강 너머를 멀리 바라보는데 달이 차츰 떠올라 강을 비추니 마치 만 마리 금뱀이 파도를 뒤집으며 노니는 듯했다. 조조는 바람을 맞받아 허허 웃어대면서 곧 반드시 뜻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군사가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강남에서 어슴푸레한 돛들이 바람을 타고 옵니다.”
조조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데 보고가 들어왔다.
“모두 청룡기를 꽂았는데, 그 가운데 큰 깃발에는 ‘선봉 황개’라고 쓰여 있습니다.”
조조는 웃었다.
“황개가 항복하러 오니 하늘이 나를 돕는 것이다!”
배들이 점점 가까워지자 자세히 살피던 정욱이 소리쳤다.
“저 배들에는 속임수가 있습니다. 잠시 영채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걸 어떻게 아오?”
“배에 군량이 실렸으면 반드시 무거워 가라앉습니다. 지금 오는 배들은 가볍고 둥둥 떴습니다. 지금 동남풍까지 아주 세찬데 만약 그들이 속임수를 부려 계책을 쓰면 어떻게 막겠습니까?”
조조가 불현듯 깨닫고 장수들에게 물었다.
“누가 나아가 저들을 막겠는가?”
문빙이 나섰다.
“제가 물에 익숙하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가 쪽배에 뛰어내려 앞을 가리키자 10여 척 순찰선이 따라 나아갔다. 문빙이 뱃머리에 서서 높이 외쳤다.
“승상의 명령이시다. 남쪽 배들은 영채에 가까이 오지 말고 잠시 강 가운데에 닻을 내려라.”
군사들이 일제히 호통쳤다.
“어서 돛을 내려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위소리가 나면서 문빙의 왼팔에 화살이 꽂혔다. 문빙이 배 안에 쓰러지니 군사들이 크게 어지러워 배들은 부랴부랴 되돌아갔다.
물 위를 미끄러져 오는 남쪽 배들은 조조 영채에서 겨우 2리쯤 떨어졌을 뿐이었다. 황개가 칼을 휘둘러 앞을 가리키자 앞선 배들이 일제히 불을 질렀다. 불은 바람의 위풍을 빌리고 바람은 불길의 기세를 돋우어, 배들은 화살이 날아가듯 나아갔다. 온통 불덩이로 변한 배 20척이 조조의 수군 영채로 밀려들자 영채 안의 배들에 불이 붙었다. 황개의 배가 조조 배들과 부딪치면 앞에 박은 못이 들이박혀 한 덩이가 되었다.
강 너머에서 포 소리가 울리자 사방에서 불을 붙이는 배들이 일제히 이르렀다. 삼강의 수면에서 불길이 바람 따라 너울거려 하늘땅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조조가 언덕 위의 영채들을 바라보니 거기에도 몇 군데 불이 붙어 연기가 솟았다.
이때 황개가 배 뒤에 단 쪽배로 뛰어내리니 몇 사람이 노를 저어 연기를 무릅쓰고 불길 속을 뚫으며 조조를 찾았다. 형세가 위급해진 것을 알고 조조가 막 기슭에 뛰어오르려 하는데 장료가 쪽배를 한 척 몰고 왔다. 장료가 조조를 부축해 쪽배로 내려오자 조조가 탔던 큰 배에 불이 붙었다. 장료와 10여 명 부하는 조조를 보호해 나는 듯이 기슭으로 올라갔다.

이날 장강에는 온통 불덩이가 굴러다니고 고함이 하늘땅을 뒤흔들었다. 불은 군사에 맞추어 호응하고 군사는 불의 위엄을 빌려 움직이니, 이는 바로 ‘삼강의 수전’이요 ‘적벽의 격전’이었다. 조조 군사 가운데 창에 찔리거나 화살에 맞고, 불에 타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가 얼마인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조조와 장료가 100여 명 기병을 거느리고 불바다 속을 달려가는데 불이 붙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참 가는데 모개가 문빙을 구해 10여 명 기병을 이끌고 왔다. 조조가 길을 찾으라고 명하니 장료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림 땅이 널찍해서 갈 수 있습니다.”
조조는 곧장 오림으로 달려갔다. 한참 길을 다그치는데 등 뒤에서 한 떼의 군사가 쫓아와 높이 외쳤다.
“역적 조조는 달아나지 마라!”
불빛 속에서 여몽의 깃발이 드러나, 조조는 군사를 재촉하면서 장료를 남겨 뒤를 막게 했다. 그런데 앞에서 또 횃불들이 일어나며 산골짜기에서 한 대의 군사가 몰려나와 높이 외쳤다.
“능통이 여기 있다!”
조조는 간이 깨지고 쓸개가 부서지는 듯했다. 바로 이때 한 떼의 군사가 비스듬히 달려와 높이 외쳤다.
“승상께서는 당황하지 마십시오! 서황이 여기 있습니다!”
조조의 군사가 한바탕 싸우고 길을 빼앗아 북쪽으로 달려가자 한 대의 군사가 산비탈 앞에 주둔해 있었다. 원소에게서 항복한 장수 마연과 장의가 3000명 북방 군사를 거느리고 감히 움직이지 못하다 조조를 맞이한 것이다.
조조는 두 장수에게 1000명 군사를 이끌고 길을 뚫게 하고 나머지 군사는 자신을 보호하게 했다. 힘이 빠지지 않은 군사를 얻으니 조조는 좀 든든해졌다. 닫는 말을 채찍질해 밤새껏 달리다 돌아보니 불빛이 차츰 멀어져 조조는 그제야 마음이 진정되어 물었다.
“여기는 어디냐?”
형주에서 항복한 장수들이 대답했다.
“여기는 오림 서쪽이고 의도 북쪽입니다.”
조조가 살펴보니 나무가 우거지고 산천이 험한 곳이었다. 조조가 말 위에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우러러 껄껄 웃어대니, 그 웃음이 그칠 줄 몰라 장수들이 물었다.
“승상께서는 무엇 때문에 크게 웃으십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웃는 게 아니라 다만 주유는 꾀가 부족하고 제갈량은 슬기가 적다고 웃는 것이오. 만약 내가 군사를 부린다면 미리 여기에 한 떼의 군사를 매복시키겠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양쪽에서 북소리가 둥둥 울리면서 불빛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조조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한 떼의 군사가 곁에서 달려 나오면서 높이 외쳤다.
“조자룡이 제갈 군사의 명을 받들고 여기서 기다린 지 오래다!”
조조는 서황과 장합에게 조운을 맞아 싸우게 하고 연기와 불을 무릅쓰고 달아났다. 병법에 ‘돌아가는 군사는 치지 말고 궁지에 빠진 도적은 쫓지 마라’고 이른 것에 따라, 조운이 쫓지 않고 깃발만 빼앗아 조조는 몸을 뺄 수 있었다.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자 검은 구름이 땅을 덮었다. 동남풍은 아직도 그치지 않는데 별안간 소나기가 억수로 퍼부어 갑옷이 푹 젖었다. 일행이 비를 무릅쓰고 나아가니 모두 비에 젖어 마른 곳이 한 치도 없었다. 아침이 되자 비가 그치고 바람이 멎었다.
장졸들이 모두 굶주려 조조의 명령으로 군사들이 마을에서 식량을 빼앗아 와 막 밥을 짓는데 뒤에서 한 무리 군사가 달려오니 조조는 몹시 당황했다. 그런데 다행히 이전과 허저가 모사들을 보호하고 와서 조조는 대단히 기뻐 군사들에게 길을 가라고 이르고 물었다.
“저 앞은 어디 땅이냐?”
“한쪽은 남이릉으로 가는 큰길이고 한쪽은 북이릉으로 가는 산길입니다.”
“어느 길로 가면 남군, 강릉과 가까우냐?”
“북이릉으로 해서 호로구를 지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조조가 북이릉으로 가게 해서 호로구에 이르니 장졸들이 모두 굶주리고 맥이 풀려 걸음을 걷지 못했다. 말도 지칠 대로 지쳐 쓰러져 죽는 놈이 많았다.
조조가 잠시 쉬라고 이르자 장졸들은 말에 솥을 달고 온 사람도 있고 마을에서 빼앗은 쌀도 있어서, 산 옆의 마른 곳을 골라 밥을 짓고 말고기를 베어 구워 먹었다. 사람들은 모두 젖은 옷을 벗어 바람에 말리고 말들은 죄다 안장을 벗기고 들판에 내몰아 풀뿌리를 뜯게 하는데, 나무가 듬성듬성한 숲에 앉은 조조가 또 하늘을 우러르며 허허 웃어댔다.
“방금 승상께서 주유와 제갈량을 웃으시다 조자룡을 끌어내고 숱한 군사를 잃으셨는데, 지금 어찌하여 다시 웃으십니까?”
“나는 제갈량과 주유가 아무래도 슬기와 꾀가 부족하다고 웃소. 만약 내가 군사를 부린다면 여기에도 한 떼의 군사를 매복해 편안히 앉아 지친 적을 기다리게 했을 것이오. 그러면 우리가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심하게 다치고 말 것이오. 그들이 이것을 내다보지 못했으니 내가 웃는 것이오.”
이때 전군과 후군이 일제히 소리를 질러, 조조는 깜짝 놀라 갑옷을 버리고 말에 오르고 군사들은 말을 거두지 못한 자가 많았다. 어느새 사방에서 불길과 연기가 솟아 한데 합치는데 두 산 사이의 길목에서 한 무리 군사가 늘어서고, 장비가 긴 창을 가로 들고 말 위에서 높이 외쳤다.
“조조 도적놈은 어디로 가느냐!”
조조의 장수들은 장비를 보고 모두 간담이 서늘해졌다. 허저가 안장 없는 말을 타고 장비와 싸우러 달려가니 장료와 서황도 말을 달려 협공했다. 양쪽 군사들이 어지러이 싸워 한 덩이로 엉키는데 조조가 먼저 말을 몰아 몸을 빼자 장수들도 제각기 몸을 빼 달아났다. 장비가 뒤에서 쫓아왔으나 조조가 죽기 살기로 구불구불 내달려 차츰 멀어졌다. 장수들을 돌아보니 거의 다 상처를 입었다.
한참 길을 가는데 군사가 아뢰었다.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으니 어느 길로 갈지 승상께서 정해주십시오.”
“어느 길이 가까우냐?”
“큰길은 좀 평평한데 50여 리 더 멀고, 오솔길은 화용도로 가는데 가깝기는 하지만 땅이 좁고 길이 험하며 구덩이가 울퉁불퉁해 가기 힘듭니다.”
조조가 군사를 보내 산에 올라가 살펴보게 하자 돌아와 보고했다.
“오솔길 산 옆에는 몇 군데 연기가 일어나고, 큰길 쪽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조조가 곧 화용도로 가는 오솔길로 가게 하니 장수들이 물었다.
“연기가 일어나는 곳에는 반드시 군사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도리어 이 길로 가십니까?”
조조가 설명했다.
“병서에 ‘허하면 실하게 하고, 실하면 허하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소? 제갈량은 꾀가 많아서 일부러 산속 후미진 곳에 연기를 일으켜 내 군사가 감히 산길로 가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큰길에 군사를 매복하고 우리를 기다릴 것이오. 내가 이미 다 헤아렸으니 어찌 그 계책에 걸릴 수 있겠소?”
장수들이 입을 모아 칭송했다.
“승상의 신묘하신 헤아림은 사람들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조조가 장졸들을 이끌고 화용도로 가니 사람들은 배가 고파 쓰러지기 직전이고 말은 한없이 지쳐 곧 넘어지려 했다. 머리가 그을리고 이마가 덴 자들은 겨우 지팡이를 짚고, 화살에 맞고 창에 찔린 자들은 간신히 발을 움직였다. 이릉 길에서 급히 쫓기다 보니 태반이 맨 말을 타면서 안장이며 고삐며 옷들을 죄다 내버린 것이다. 한겨울의 무서운 추위 속에 고생이 말할 수 없었다.
화용도를 향해 10리도 가지 못해 앞에서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앞에는 산이 후미지고 길이 좁은데 아침에 비가 내려 구덩이에 물이 고였습니다. 진흙탕에 말발굽이 빠져 나아갈 수 없습니다.”
조조는 크게 노해 꾸짖었다.
“군사는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 어찌 진흙탕 때문에 가지 못하겠느냐!”
명령을 내려 늙고 약하거나 상처를 입은 자들은 뒤에서 천천히 걷게 하고, 건장한 자들은 흙을 나르고 나무를 묶으며 풀을 옮기고 갈대를 날라 구덩이들을 메우게 했다.
“즉시 움직여라! 명령을 어기는 자는 목을 치겠다!”
엄한 명령이 떨어지자 군사는 모두 말에서 내려 나무를 찍고 참대를 쓰러뜨려 산길을 메웠다. 조조는 뒤에서 쫓아올까 두려워 장료와 허저, 서황에게 100명 기병을 이끌고 감독하게 하며, 꾸물거리는 자들은 당장 목을 베게 했다. 군졸들이 배가 고프고 지쳐 땅에 쓰러지는데, 조조의 호령으로 사람과 말이 쓰러진 자들을 짓밟으며 나아가니 죽은 자가 얼마인지 셀 수 없었다. 울부짖는 소리가 그치지 않자 조조가 화를 냈다.
“살고 죽는 것은 운명에 달렸거늘 울긴 왜 우느냐! 다시 우는 자가 있으면 당장 목을 친다!”
군사들은 세 몫으로 나뉘어 한 몫은 뒤에 떨어지고, 한 몫은 구덩이를 메우며, 한 몫은 조조를 따랐다. 험준한 곳을 지나자 길이 좀 평탄해졌다. 조조가 돌아보니 겨우 300여 명 기병이 따라오는데 옷이나 갑옷을 제대로 차려입은 자는 하나도 없었다. 조조가 빨리 가자고 재촉하자 장수들이 애원했다.
“말이 모두 지쳤으니 잠깐 숨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형주로 달려가 쉬어도 늦지 않소.”
또 몇 리를 가지 못해 조조가 말 위에서 채찍을 휘두르며 허허 웃었다.
“사람들은 모두 주유와 제갈량이 슬기가 넉넉하고 꾀가 많다고 하던데,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능한 무리일 뿐이오. 이번에 진 것은 내가 적을 깔보았기 때문이오. 만약 이곳에 군사를 약간만 매복시켰으면 우리가 모두 꼼짝하지 못하고 밧줄에 묶이지 않겠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포 소리가 ‘탕!’ 울리더니 칼잡이 500명이 나타나 벌려 섰다. 앞장선 대장이 청룡도를 들고 적토마에 올라 가로막으니 다름 아닌 관우였다. 조조 군사는 그만 넋이 허공에 달아나고 간이 떨어져 서로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조조가 사람들 속에서 말했다.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죽기를 무릅쓰고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자 장수들이 어려워했다.
“사람은 겁을 먹지 않더라도 말이 힘이 다했으니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그런 가운데에서도 정욱이 꾀를 냈다.
“이 욱은 평소에 운장이 윗사람에게는 거만하게 대하나 아랫사람은 깔보지 않고, 강한 자는 업신여기지만 약한 자는 못살게 굴지 않으며, 은혜와 원망이 분명하고 신용과 의리를 중히 여기는 것을 잘 압니다. 승상께서는 옛날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으니 지금 친히 나서시어 부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난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에 조조가 나아가 인사의 뜻으로 몸을 약간 굽히며 말을 걸었다.
“장군은 헤어진 다음 별 탈 없으시오?”
관우도 말 위에서 몸을 약간 굽히더니 대답했다.
“관 아무개가 제갈 군사의 명령을 받들고 여기서 승상을 기다린 지 오랩니다.”
“조조가 싸움에 지고 형세가 위급해 여기로 왔는데 갈 길이 없어졌소. 장군은 옛날 정을 무겁게 여기기 바라오.”
“옛날 관 아무개는 비록 승상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나 이미 안량의 목을 자르고 문추를 베며, 백마의 에움을 풀어 보답했습니다. 오늘 일이야 어찌 감히 사사로운 정 때문에 공무를 폐하겠습니까?”
조조가 또 말했다.
“다섯 관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베던 때를 아직 기억하시오? 대장부는 신의를 무겁게 여기는 법이오. 장군은 《춘추》를 깊이 꿰뚫었는데, 유공지사가 자탁유자를 쫓은 일을 모르시오?”
【옛글에 밝은 조조답게 관우가 좋아하는 춘추시대 이야기를 들먹였다. 활 솜씨로 소문난 자탁유자가 정나라 군사를 이끌고 위(衛)나라를 치자 위나라에서는 유공지사를 장수로 삼아 맞서 싸우게 했다. 정나라 군사가 크게 패해 유공지사가 쫓아가는데 자탁유자를 따르는 사람이 재촉했다.
“위나라 군사가 가까이 다가옵니다. 대부께서는 어서 활을 쏘십시오.”
“오늘 내가 팔이 아파 활을 들지 못하겠다. 추격하는 군사가 따라오면 나는 틀림없이 죽겠구나!”
수레에 앉아 달아나는 자탁유자를 위나라 군사가 거의 따라잡았다. 이에 자탁유자가 물었다.
“나를 쫓는 자는 누구냐?”
“위나라 장수 유공지사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나겠구나!”
자탁유자가 안도의 숨을 내쉬자 사람들이 이상해했다.
“유공지사는 위나라의 으뜸가는 명궁이고, 대부와 이전에 교분이 없는데 어찌 살아난다고 하십니까?”
“나와 직접 교분은 없으나 그는 윤공지타에게 활을 배웠다. 윤공지타는 바로 내 제자로 매우 정직한 사람이니 그 제자도 반드시 바른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유공지사가 쫓아와 소리쳤다.
“어르신께서는 어이하여 활과 화살을 드시지 않습니까?”
“오늘 내가 팔이 아파 활을 잡지 못하겠네.”
그러자 유공지사가 말했다.
“제가 옛날에 윤공지타에게 활 쏘는 법을 배웠는데, 그는 어르신께 재주를 배웠습니다. 저는 차마 어르신에게서 나온 재주로 도리어 어르신을 해치지는 못하겠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오늘 일은 임금의 일이니 감히 완전히 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유공지사가 살촉을 뽑고 화살을 네 대 쏘고 돌아가니 자탁유자는 목숨을 부지하고 정나라로 돌아갔다. 《맹자》 〈이루하〉 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의리를 산처럼 무겁게 여기는 관우는 옛날 조조가 베푼 은혜가 떠오르고 정이 되살아나는데, 다섯 관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벤 일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도 조조가 놓아주지 않았던가! 그런 데다 가만히 살펴보니 조조의 군졸들이 모두 당황하고 두려워 눈물을 흘렸다. 더욱이 차마 그들을 죽일 수 없어 관우는 고삐를 당겨 말머리를 돌리고 군사들에게 명했다.
“사방으로 벌려 서라.”
이는 분명 놓아주겠다는 뜻이니 조조는 장수들과 함께 일제히 말을 달려 그의 곁을 지나가 버렸다. 관우가 되돌아서자 조조는 이미 지나간 다음이고, 아직 지나가지 못한 군사들이 모두 말에서 내려 울면서 땅에 엎드려 절했다. 관우는 한층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차마 죽일 수 없어 머뭇거리는데 장료가 말을 달려 이르렀다. 관우는 장료를 보자 또 옛정이 솟아나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는 모두 놓아 보냈다.
화용도를 벗어난 조조가 골짜기 어귀에 이르러 따라오는 장졸들을 돌아보니 겨우 기병 27명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지금까지 이 책 『본삼국지』처럼 여러 판본을 종합해 원본의 통일을 기한 작품은 어느 나라에도 없었다. 삼국지 역사상 처음으로 모종강 본에서 잘린 나관중 본의 주요 대목을 되살리고 정사와 함께 다른 판본들을 연구해 오류를 바로잡으면서, 여러 판본이 지닌 특성을 집대성하여 역사상 최고의 삼국지를 완성했다. 또 한자어가 낯설고 부담스러운 한글세대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 삼국시대를 살아간 영웅들의 생각과 행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그 상황을 최대한 정확히 파악해 실감 나는 우리말로 옮기는 데에 주력했다.

이 책은 옮기는 데 3년, 글 바로잡는 데 2년이 걸려 초판이 나왔고, 그 후에도 애독자들의 조언을 반영해 책을 계속 다듬어 2판, 3판이 나왔으며, 15년이나 걸려 4판인 최종 원색판이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은 웅혼한 기개와 깊은 교훈, 폭넓은 감동과 재미를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어느 세대에서든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어휘와 간결한 문장으로 옮기고 글을 다듬었다. 이 책 하나로 손자와 아버지, 할아버지가 동시에 삼국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중국에서 고전 삽화로 유명한 국가화가 예슝[葉雄엽웅] 화백이 화실 문을 닫아걸고 이 일에만 매달려 심혈을 기울인 독특한 감각의 예술성 높은 삽화가 실렸다. 한 번쯤 『삼국지』를 읽은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큰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전신) 권장도서
*디시인사이드 삼국지 갤러리 최고 도서
*네이버 북스 추천도서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삼국지 중의 삼국지……
그런데 어떤 『삼국지』를 읽어야 하나? 행여 오래전 읽다 만 『삼국지』에서 유비가 황하에서 차를 사 오다 황건적에게 잡히는 장면이 기억난다면 십중팔구 일본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길천영치]의 각색 본을 베낀 책이었을 것이다. 유명 작가의 이름이 돋보이는 국내 번역본이라고 해서 반드시 충실한 번역일 수는 없다. 120회로 이루어진 원 체제를 따르지 않고 군데군데 살을 붙이거나(박종화 역본), 시작 500장가량을 마음대로 지어내고 제갈량 사후에는 3분의 1로 축소하는(이문열 역본) 베스트셀러들은 그 나름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본(本)’이라는 글자를 달고 나온 이 새 번역본은 우선 역자부터 당혹스럽다. 리동혁. 옌벤 출신 조선족 작가이니 솔직히 독자의 믿음이 가기가 쉽지 않다. 꽤 수준 높은 삽화와 지도, 자세한 해설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지만 지나친 친절이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까 부담스럽다. 하지만 일단 본문을 읽기 시작하면…, 그렇다. 이제 감동할 차례다. 사실 국내에도 『삼국지』의 완역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구용(솔), 황병국(범우사), 정소문(원경) 등의 번역본이 그것. 하지만 그 어느 번역본도 모종강 본을 기초로 12가지 고대 원본을 비교해가면서 옛 나관중 본에서 삭제된 부분까지 되살린 책은 없었다. 그것을 해낸(정말 그 혼자서 다 했다면 놀라운 일이다) ‘완역본’인 이 책은 인명이 지명으로 바뀌는 등 기존 번역의 숱한 오류까지 바로잡았다. 2년에 걸친 윤문과 교열 덕인지 문장도 간결하고 쉽게 읽힌다. 분명히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만약 단 한 종류의 『삼국지』만 읽어야 한다면, 지금으로서는 바로 이 책이라는 것이다.
- 유석재 ([조선일보] 기자)

현대 독자를 위해 쉽고 정확하게 옮긴 삼국지……
우리 동포인 중국 고전 연구가가 현대 한국 독자를 위해 쉽고 정확하게 옮겨주었다. 한 예로 34세에 세상을 떠난 후한의 영제를 ‘늙은 황제’라고 서술하는 따위의 기존 국내 삼국지에서 범한 수많은 잘못을 일일이 바로잡았다.
- [중앙일보]

본래의 교훈 깐깐하게 밝혀낸 삼국지……
국내 평역 삼국지에서 잡아낸 오류 900곳을 깐깐하게 분석해 바로잡은 책 『삼국지가 울고 있네』를 펴내 삼국지의 본래 모습을 소개한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밝혀낸 삼국지의 크고 깊은 교훈을 만난다.
- [한겨레신문]

한줄평 (3건) 한줄평 총점 8.6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4권으로 압축을 했지만, 내용도 부드럽게 정말 잘 집필이 된거같아요.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플래티넘 하**르 | 2020.03.24
구매 평점4점
잘받았습니다 4권에 압축해서 볼수있네요 삽화도있고 괜찮은거같아요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고* | 2020.03.03
구매 평점4점
적으나마 평이 좋아서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플래티넘 누**과 |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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