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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 원종우 SF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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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2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196쪽 | 264g | 128*188*16mm
ISBN13 9791185585819
ISBN10 118558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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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심지어 문과 출신이고 예체능 분야를 공부했다. 그런 내가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된 연유에는 기나긴 배경과 우연, 도움 등이 있었지만 여기서 그런 말들을 일일이 주워섬기진 말자. 그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거나 불편해하는 과학을 내가 듣고 싶었던 방식으로 모두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게 성공적이었다고 요약하면 될 것 같다.
--- p.5

이 상황을 처음 눈치챈 사람은 연구소에 갓 들어온 젊은 박사 후 연구원이었다. 컴퓨터 시스템을 교체하고 동물들의 데이터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평균 수명이 2년밖에 되지 않는 흰쥐 한 마리가 5년이 지나서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여전히 면역 질환으로 고통받으면서도 그 쥐는 조금도 노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곧 다양한 동물들에 대한 실험이 진행됐고, 이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마저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렇게, 순전한 우연으로 불로불사의 약 ‘이터너티Eternity’가 세상에 등장했다.
--- p.22

고양이인 처지에 굳이 이렇게 글을 쓴다고 나선 것은 이제 살날이 길지 않은 만큼, 오래전에 직접 겪은 기이한 체험을 기록으로 남겨 두기 위해서다. 인간들이 목숨이 아홉 개 있다고 말하는 나 미야옹의 입장에서도 평생의 의문으로 남을 그 경험. 그래서 주변 고양이들에게조차 발설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머리 좋은 인간들은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 p.66

나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나를 관찰할 수 없던 그 시간 동안 혹시 나는 닐스의 말처럼 정말로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자신이 그 시간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으니 그런 이상한 상태가 결코 아니었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게다가 그들은 다른 실험에서는 비슷한 상황들이 얼마든지 벌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더 혼란스러운 점은 나 미야옹이 실은 그때 죽어 없어진 세상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몇 년 후 어느 집 창문을 통해 본 TV에서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경우 세상이 둘로 갈라질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
--- p.73~74

마이사가 잠시 뜸을 들이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세 번째 전쟁은 정말 참혹했지요. 인류의 4분의 3이 죽었으니까요. 사회, 경제, 정치 시스템이 모두 붕괴되었고 자연도 끔찍하게 훼손되어 이전으로 돌아가기조차 어려울 만큼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판단을 해야 했죠. 인류가 과연 이 문명을 계속 이어 나가고 발전시킬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인류 문명을 억지로 부활시키는 대신 인류와 망가진 생태계를 포함한 모든 것을 지우고 리셋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미 거의 모든 영역에 우리의 손길이 닿아 있었기에 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한 세기 전의 일이죠.”
--- p.117

일종의 비밀결사라고 할 바로 이 조직, 산타 신디케이트가 만들어진 바탕에는 산타클로스라는 존재의 역할과 그것이 어린아이들에게 주는 신비감과 경외감의 중요성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산타클로스의 전설이 시작된 이래로 수 세기에 걸쳐 인류는 산타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가졌고, 이후 나이가 들면서 그것을 상실하는 경험을 범지구적 차원에서 공유해 왔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실망감은 크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산타클로스의 전설을 믿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을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 결과로 어른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자발적으로 암묵적인 결사체를 결성하고 산타클로스 개인이 해야 할 역할을 자신들의 아이들을 상대로 대신하게 되었다. 강력한 밈meme이 형성된 것이다.
--- p.18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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