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12월 02일 |
---|---|
쪽수, 무게, 크기 | 576쪽 | 729g | 145*210*28mm |
ISBN13 | 9788936464707 |
ISBN10 | 8936464701 |
발행일 | 2019년 12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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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76쪽 | 729g | 145*210*28mm |
ISBN13 | 9788936464707 |
ISBN10 | 8936464701 |
MD 한마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 대표작] 페미니즘 문학의 경전이자 20세기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 '여성들은 얼마나 더 자유로워졌는가'라는, 지금-여기 한국에서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다룬 명작으로, '성 대결'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하는 모두가 읽어야 할 필독서로 평가 받는 작품이다. - 소설MD 김도훈
저자 서문 1993년 저자 서문 1971년 자유로운 여자들 1 공책들 자유로운 여자들 2 공책들 발간사 |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간까지는 흥미로웠습니다. 거의 100년 전의 일인데도 너무나 현재 같이 느껴져서 술술 읽혔어요. 그런데 중간부터... 역사적 배경이 필요하더라구요. 역사적 배경이 없이 읽다보면 아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당시 시대상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었어요. 영국인 주인공 입장에서 그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는 여성으로서 흥미진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읽었다가는 점점 오리무중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으니 함께 역사 공부도 하심을 추천합니다.
*
도리스 레싱
명성에 기대어 호기롭게 구매했는데
일단 책의 두께에 한번 절망하고
인생의 굴곡에 한번 더 슬픔을 만끽하고 나니
읽을 시간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
도입부는 재밌었던 것 같은데
이야기가 좀 어수선했던 기억이 있다
*
여자가 여자를 지켜주는 여자들만의 기사도가 있는 법이고, 이것은 다른 어떤 충성심보다 강력하다.
*
그중 외로운 여자 다섯명은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데도, 혹은 그들 탓에 조용하게 혼자서 미쳐가고 있었다. 모두 스스로에게 의혹을 품고 있었다. 자신이 행복하다는 이유에서 죄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예외 없이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선거운동 본부로 돌아와 나는 그날 오후의 책임자인 여자에게 이 여자들 얘기를 꺼냈다. 그녀는 말했다. “그래요. 선거운동 나갈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는 심정이 되죠. 이 나라엔 자기 혼자 미쳐가는 여자들이 정말 많아요.”
공책이라고 하니 학창 시절 새 학기가 되면 문구점으로 달려가 새 공책을 샀던 기억이 떠오른다. 색색의 공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공책들을 골라 표지에 이름을 쓰고 과목명도 적었다. 첫 장을 쓸 때는 글씨도 또박또박 예쁘게 쓰고 줄도 자를 대고 단정하게 긋다가 뒷장으로 갈수록 글씨는 삐뚤빼뚤, 줄은 대충대충, 어지러운 모양새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마구 쓰다가 끝까지 다 못 쓰고 버린 공책이 몇 권인지. 소중한 살을 내어준 나무들에게 죄스러울 따름이다.
도리스 레싱의 장편 소설 <금색 공책>에도 주인공 '애나'가 새 공책을 사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공책 네 권은 모두 18인치쯤 되는 너비에, 겉장은 싸구려 물결무늬 비단처럼 광택이 났다. 색으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각각 검정, 빨강, 노랑, 파랑이었다." (1권, 118-9쪽) 애나는 네 권의 공책에 각각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검은색 공책에는 애나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노란색 공책에는 경험한 이야기로부터 상상한 이야기를, 빨간색 공책에는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를, 파란색 공책에는 그날 그날의 일기를 적는다.
한 사람인 애나가 네 권의 공책으로 상징되는 네 개의 분신을 가진 것처럼 애나의 삶 자체가 분열되어 있고 모순 투성이다. 애나는 젊은 시절 담배 농장주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영국의 식민지로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그 남자와 결혼해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곳에서 공산주의자 청년들과 어울리며 지냈다. 그때의 경험을 소설로 썼는데 그 소설이 히트를 쳐서 지금까지도 인세를 받고 있다. 애나는 공산주의자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공산당에 가입한 적도 있지만 공산주의 이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다고 믿는 페미니스트이지만 남성 없이는 아무런 욕구도 만족도 느끼지 못한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지만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그의 아이를 낳고 싶은 욕망을 못 버린다. 언제 수입이 끊길지 모르니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발벗고 나서서 일자리를 찾아보지는 않는다.
애나가 첫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오랫동안 다음 작품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모순 때문인지 모른다. 젊은 시절 애나에게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명확했다. 전쟁 중이었으므로 전쟁에 반대하는 공산주의자들과 어울리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강렬한 경험을 했고 이걸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소설을 썼으니 발표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지면 쉽게 몸을 허락했고, 그것이 '자유로운' 여자라면 마땅히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공산당이 몰락하는 모습을 볼수록, 자신의 소설이 평론가와 독자들로부터 혹평을 받거나 아예 잊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수록, 자신을 '신식 여자'라고 불렀던 남자들이 각자의 가정에 있는 '구식 여자'의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수록, 애나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걷는 법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걷지 못하게 되듯이, 사는 법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애나는 결코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된다.
"'개인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 하지만 유칼립투스 아래 그 무리를 회고하면서, 내 기억 속에 다시 그들을 되살리면서, 그 말이 헛소리에 불과함을 불현듯 깨닫는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메리로즈를 만난대도 그녀는 어떤 몸짓을 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눈길을 돌릴 테고, 바로 그 때문에 파괴될 수 없는 메리로즈로 남는 것이다." (1권, 196쪽)
그렇다면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하나의 사상이 한 사회를 휩쓸 때 누구는 경도되고 누구는 경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는 이래야 하고 여자는 저래야 한다는 폭력적인 구분을 누구는 받아들이고 누구는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나는 한때 그것이 사회 경제적인 계급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가, 교육 수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가, 종국에는 그 어떤 압력이나 제도로도 변경하거나 제거할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자신이 머리로는 공산주의나 페미니즘 같은 사상에 동의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한 사상에 합치되는 삶을 살지 못하는지 알고 싶은 나머지 심리 상담을 받고 꿈 해석을 청한다. 결국 애나는 꿈속에서 자신에게는 무수한 가능성이 있고 그중 하나를 선택한 결과가 현재의 자신이라는 답을 얻는다.
"백가지 인생을 사는 것 같았고, 내가 아직 인생에서 경험하지 못했거나 경험하기를 거부한, 혹은 내게 맡겨지지 않았던 여성으로서의 역할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심지어 꿈속에서조차, 나는 삶에서 그것들을 거부했기 때문에 지금 그 역할을 연기하는 비운에 처했음을 알고 있었다." (2권, 351쪽)
"내가 가장 싫어하는 영화들이었지만 감독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2권, 371쪽)
예쁘다고 산 공책을 끝까지 쓰지도 않고 버린 어린 날의 기억처럼, 인생은 과거의 나를 현재의 내가 배신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한때 옳다고 믿었던 것을 끝까지 옳다고 믿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모순이나 분열과 갈등하는 과정 없이 순탄하고 온전하게 믿음을 고수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강한 신념이라기보다는 아집이나 미성숙이 아닐까. 인간을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부자와 빈자 등으로 구분하고 차별하는 분열의 속성이 사회에 있다고 탓하기는 쉬우나, 그러한 속성이 인간 - 그중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고백하고 반성하기는 어렵다. 나는 이 작품에서 그러한 고백과 반성의 목소리를 읽었고, 그것이 이 작품을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의 반열에 올렸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