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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

: 4·3을 뚫고 나온 여성들, 그들이 날것으로 고백하는 최초의 생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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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1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153*210*20mm
ISBN13 9791188339501
ISBN10 118833950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4·3의 참혹함을 경험한 그날 이후, 그들의 일상은 다르다. 살았기에, 살아내야 했고, 견뎌내야 했다. 자신들의 삶을 ‘시국 탓’으로 돌리며 아프다 할 겨를도 없이. 하여, 우리는 그날을 견뎌온 그들을 다시 만나기로 했다.”
-허영선(제주4·3연구소장) ‘책을 펴내며’ 중에서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은 4·3이라는 비극의 역사 속에서도 약육강식의 먹이사슬 맨 아래에서 신음했던 여성들의 신산한 삶을 담아냈다. 4·3 당시 여성은 아이들과 함께 가장 연약한 존재였다. 피비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이후의 삶 속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참혹한 삶을 살아내야 했다.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에서도 여성에게 가해진 참혹한 사례들은 남성들에 의해 자주 언급됐다. 이 구술채록집은 4·3을 경험한 여성들의 일상을 조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 제주여성들의 삶이야말로 제주의 근현대사의 피와 눈물의 시간대가 오롯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또다시 구술채록집이냐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기존의 증언들은 여성의 입을 통한다 하더라도 대부분 그 여성의 아버지 남편 아들 등 남성들의 활동이나 희생에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4·3의 1차적인 희생자들이 대부분이 남성들이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여성들은 70년 동안 4·3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삶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구술채록집은 없었다. 이 책은 비로소 여성으로서 자기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남다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은 하나의 역사다. 그렇게 수많은 개인의 역사가 쌓여 이루어진 것임에도 현실에서는 너무 쉽게 언표되는 소위 ‘4·3사건’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그 ‘4·3사건’이 너무 쉬운 언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4·3 체험 세대 삶의 이야기가 꼼꼼하게 채록되고 기록되어야 한다.

이제 4·3체험자들은 8, 90대의 최고령자들이다. 때문에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이 겪은 일을 기억해내고 구술채록하여 이렇게 묶어내야만 하는 이유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을 펴내며
제주4·3과 여성의 기억

강숙자 · 물질로 집 세 개 산 사람이야
김연심 · 양푼밥에 걸쳐놓은 숟가락 세 개
박승자 · 아픈 기억 뒤로 하고 일본으로 떠났지
안봉순 · 참혹했던 시대, 유복했던 소녀의 기억
이문자 · 선인동 살이 90년
이승례 · 물질이 먹여 살렸다
채계추 · 아이 낳고 스무날 만에 끓여 먹은 자리국
홍춘호 · 좁쌀물이라도 한번 입에 넣어줬으면

저자 소개 (6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난 유족으론 안 돼 있어. 4·3사건 이야기 복지관에서 나올 땐 아무 말도 안 해. 아는 사람들이 유족한테 나오는 돈 나느냐고 하면 “예” 해. 챙피하니까. 돈 안 탄다고 하면 바보라 할 거고. 다 덮어버리지, 그런 생각으로. 아들도 모르는데. 자식들은 외할아버지가 형무소에서 죽은 거 몰라. 묻지도 안 하고 말하지도 안 하고.
--- p.53

이리저리 울면서 돌아다니다 시체를 찾았어. 어머니는 석방증 손에 쥔 채 어디 총 맞은 곳도 없고 보기 싫게 안 죽었는데, 큰언니 생각은 하면 정말로, 철창으로 몸을 이리저리 짖어 버렸더라고. 업은 아기도 같이 죽고. 그 아기 조카가 막 (얼굴이) 잘 났는데. 이제 살았으면 칠십 셋이로구나. 동네에서 여자들까지 나와 시체 마주 잡고, 남의 밭에 밋밋(줄줄이) 공동묘지 하듯 묻었어.
--- p.77

아이구. 고향에 와서. 어쩌면 일본에서 안 온 사람들은 살았지. 한국에 와 가지고. 야, 우리 좋은 세상 본다고 해서 일본에서들 해방돼서 왔는데, 4·3이란 것이 한꺼번에 날린 거지.
--- p.128

그 굴, 벤벵듸굴에서 우리 이모부를 군인들이 총으로 쏘아 죽여버릴 때 일이라. 그때 이모가 군인들한티 막 매달리며 사정을 했어. “우리 아기아방 이대로 놔두민 까마귀들이 와서 눈알을 다 빼가버립네다. 내가 윗옷을 벗엉 아방 얼굴에 덮젠 헴시난 그거 하나만 허락해줍서!” 그건 들어줬어.
--- p.182~183

보초 서러 나오라고 하면 앉을 때 덮을 웃옷을 둘러매고 가서 밤을 새고 돌아와. 그때는 추울 때니까. 나뭇가지를 두세 개 갖고 가서 보초막 가운데 만들어 놓은 화덕에 불을 사르고 앉아서 불을 쬐었지. 검질(김)이 없으면 조 베어나면 밑에 남아 있는 조 크루(조 밑등)를 매다가 불을 지피기도 했어.
--- p.205

나는 첫 아기를 그 사태에 낳았어. 음력 6월 초닷새에 아기를 낳았는데 비만 오고. 시어머니네도 아무 것도 가진게 없고 우리도 가난하고. 그렇게 없이 살 때 아기를 낳으니까 오죽 힘들거라? 옛날은 아기 낳고 머리를 감아서 사흘이 되면 꼭 바닷고기 국을 끓여 먹어야 피가 삭는다고 했거든. 바닷고기는 비늘 있는 고기라야 해. 고등어나 갈치 말고, 비늘이 있는 진짜 고기. 생선이나 우럭 같은 고기를 끓여 먹어야 몸이 풀어지고 피가 빨리 삭는다고 했어. 그런데 그걸 어떻게 먹을 수 있었겠어? 고기가 어디 있어? 보름 동안 그걸 못 먹은 거 아니? 거의 스무날 되어갈 때 쯤 우리 작은아버지 딸이 함덕 가서 살면서 자리를 팔러 왔어. 자리도 비늘이 있주게. 그래서 자리 한 사발 사서 그걸 잘라서 국 끓여 먹었어. 그 자리국 끓여 먹은 거는 잊혀지지가 않아.
--- p.244

“우리도 아무 때건 죽어도 죽을 거니까 죽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죽어 갈 때 좁쌀물이라도 한번 입에 놩 죽어져시민...” 어머니는 자식들이 좁쌀물 한 모금도 입에 넣어보지 못하고 굶어죽은 걸 늘 원통해 했어. 그것이 어머니 한이 됐지. 어린 자식들이 굶어 죽은 게. 어머니는 이녁 아기들 다 죽은 다음에는 다른 집 아이들 눈을 바라보지 않았어. 4·3사건이 끝나고 화순에 살 때에도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지 않았지. 혹시나 다른 집 아이들을 봐질까 봐 물 길러 가는 것도 밤에만 가고, 낮에는 일부러 밖에 나다니지를 않았어. 어린 아들 셋을 그렇게 보낸 게 얼마나 한이 됐으면 그랬겠어.
--- p.269~270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4·3은 제주공동체를 뿌리째 뒤집어 놓았다. 4·3의 비극성은 엄청난 비극 앞에서도 변변한 항의조차 못한 채 오히려 숨죽여 살아야 했다는 점에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항의 자체가 빨갱이가 되는 일이었으며, 빨갱이로 낙인찍히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오랫동안 4·3희생자 유족들은 침묵해야 했고, 그러한 비극이 일어난 원인과 피해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개인적인 한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4·3은 제주도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며, 사건 이후 그들의 삶의 궤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도 말이다. 1990년대 들어 본격적인 4·3진상규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유족들의 침묵을 깨우는 일이 시작되었다. 바로 희생자 유족들과 체험생존자들의 구술채록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4·3진상규명 과정에서 4·3 경험세대에 대한 구술채록은 중요했다. 당시 학살과 관련한 기록이나 제주도의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태부족했기 때문이다. 구술채록은 기록문서의 한계와 공백을 메워주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본격적으로 4·3진상규명운동의 막이 오른 것은 1989년 제주4·3연구소가 문을 열면서였다. 그리고 제주4·3연구소가 창립과 동시에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의 하나가 바로 살아 있는 4·3체험자와 유족들의 생생한 구술을 채록하는 일이었다. 구술채록이 역사적 진실을 꿰는 중요한 일임을 창립 전부터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채록 초기에는 4·3체험자나 유족들은 결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지난 40여 년간의 공포가 하루아침에 걷힐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소의 조사자들은 끈질기게 설득하고 여러 번 발걸음을 하면서 차차 유족들의 마음을 열어, 더디지만 하나하나 4·3체험자와 유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여러 권의 구술채록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채록은 대부분 4·3의 역사적 진실규명을 목표로 이루어졌기에 4·3 당시의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항쟁에 대한 참여, 학살현장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것대로 4·3의 역사적 진상을 밝히는 데 있어 중요한 기초자료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지난 30년 동안 지속된 일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빠진 것이 있었다. 4·3진상규명운동 과정에서 채록된 개인의 증언들은 4·3역사찾기의 작업으로 이루어진 것들이기에 한 개인의 삶에 주목한 증언채록은 올곧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정작 4·3으로 인한 천형 같은 질곡의 삶을 살아내야 했던 한 개인의 생애는 도리어 빠져 있었던 것이다.

4·3은 어느 한 시기의 사건이지만 한 개인의 삶을 관통하면서 통째로 뒤틀어버렸다. 4·3 전과 후의 어린아이의 삶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아내야 할 정도로 낮선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원하지 않았던 삶을 견디면서 살아내야만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한 개인의 삶을 관통한 4·3, 그 사건으로 인하여 뒤틀려 버린 개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분절된 채 오로지 잔상규명을 위한 구술자료로서만 남았던 것이다.

구술사가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만드는 거라면, 여성의 구술은 ‘가장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만드는 과정이다. 4·3 시기는 물론 일제강점기 제주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록은 매우 드물다. 처절한 역사의 현장을 경험한 이들의 고통과 기억을 공감하지 않고는, 4·3체험자 그리고 4·3역사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4·3을 겪었던 여성들의 일상을 들여다봄으로써 4·3 전체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4·3연구소 창립 30주년에 시작하는 [4·3생활사총서]는 이러한 그동안의 구술채록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히 4·3의 진상규명을 위한 기초자료가 아닌 4·3을 겪은 세대의 한 생애를 올곧게 기록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늦은 공감이 이루어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온전하게 한 생을 드러내는 기록을 남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지만, 여전히 다하지 못한 4·3체험자의 생애사를 담는 작업, 4·3 당시 생존담과 이후 삶의 이야기를 정리해 온전하게 4·3이 관통한 삶을 살아낸 제주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내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 대장정의 첫 책으로 묶어 낸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은 4·3이라는 비극의 역사 속에서도 약육강식의 먹이사슬 맨 아래에서 신음했던 여성들의 신산한 삶을 담아냈다. 4·3 당시 여성은 아이들과 함께 가장 연약한 존재였다. 피비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이후의 삶 속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참혹한 삶을 살아내야 했다.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에서도 여성에게 가해진 참혹한 사례들은 남성들에 의해 자주 언급됐다. 이 구술채록집은 4·3을 경험한 여성들의 일상을 조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 제주여성들의 삶이야말로 제주의 근현대사의 피와 눈물의 시간대가 오롯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또다시 구술채록집이냐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기존의 증언들은 여성의 입을 통한다 하더라도 대부분 그 여성의 아버지 남편 아들 등 남성들의 활동이나 희생에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4·3의 1차적인 희생자들이 대부분이 남성들이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여성들은 70년 동안 4·3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삶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구술채록집은 없었다. 이 책은 비로소 여성으로서 자기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남다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은 하나의 역사다. 그렇게 수많은 개인의 역사가 쌓여 이루어진 것임에도 현실에서는 너무 쉽게 언표되는 소위 ‘4·3사건’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그 ‘4·3사건’이 너무 쉬운 언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4·3 체험 세대 삶의 이야기가 꼼꼼하게 채록되고 기록되어야 한다.

이제 4·3체험자들은 8, 90대의 최고령자들이다. 때문에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이 겪은 일을 기억해내고 구술채록하여 이렇게 묶어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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