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라크의 반군이 사담 후세인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벌이는 군사 행동에 도움을 줄 용의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타 국가의 내전에 관여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 이 지역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 달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게 될 뿐만 아니라, 반란군에 ‘미국의 종’이라는 낙인을 찍어 그들의 성공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반란군의 내전에 개입할 의도가 전혀 없다…. 이상 딕 체니가 말한 내용이다. 우리 국무부 장관 말이다. 미국이 개입하게 되면, 그들의 혁명 정신을 저해하게 된다.”
“왜죠?” 롭 후세이니가 물었다. “우리가 도와주는데 그들이 우릴 미워할 이유는 뭐죠?”
“아랍은 서방의 개입에 대해 늘 음모론을 갖고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리는 개입할 거잖아요. 그리고 그건 음모가 아니에요. 도움을 청한 건 그들이라고요.”
“실제로는 도움을 원하지 않는 거야. 도움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건 우리를 비난할 꼬투리를 잡는 거지. 우리가 그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 돼.”
“도와주는 걸 거절하는 방법으로요?”
“그렇지. 자기네 일은 자기네끼리 알아서 처리하도록 내버려 두는 거야.”
--- p.35
“음, 그 용어는 압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제가 왜 잠을 못 자는지 최근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본 건 맞습니다. 제가 한 일 때문인 것 같지는 않고요. 제가 하지 못한 일 때문에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상 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군대에서는 제가 더 뭘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겁니다. 거의 한 일이 없는데도 너무 많은 일을 했다고 하더군요. 복무를 마치고 평가도 좋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제 사고 회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가 봅니다.”
--- p.70
“요즘 생각하는 건데.” 벤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일부를 어떤 상황에 두고 오는 것 같아요. 아주 중요한 일부를 잘라서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거기서 나올 방법이 없으니까요. 미래는 마치 그 조각을 찾아 헤매는 여정 같고요. 내가 뭘 두고 왔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계속 생각하는 거죠. 트라우마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거예요. 일종의 환각지 같은 건데, 절단된 게 팔다리가 아니라 영혼의 일부라는 점에서 다르죠.”
--- p.84
“그 소녀 봤습니까? 알 자지라에 다섯 시간 전에 생방송으로 중계됐고, 그 이후 여기저기 퍼졌어요. 인터넷에 깔렸다고요. BBC, CNN, MSNBC에서도 보도됐고. 방송에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언론에서 물기 딱 좋은 영상이에요. 정말 소녀를 못 본 겁니까? 검색창에 ‘박격포 공격, 쿠르드 자치구, 녹색 드레스, 오늘’ 이렇게 쳐 봐요. 그럼 소녀의 영상이 뜰 겁니다.”
--- p.101
“나는 현지 직원들이 일회용처럼 취급되고, 본인 나라에서 이등 시민 대접을 받는 걸 보는 게 지긋지긋해요. 이등 시민이 뭘 의미하는지는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말도 안 돼요, 허브.”
“말이 돼요, 마르타. 일단 월급을 적게 주잖아요. 고용 안정성도 불안하고요. 우리 같은 보험 적용을 받지도 않죠. 현지 직원들은 우리보다 더 큰 위험에 노출돼요. 왜냐하면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이들이 누구고, 어느 마을 출신인지 알기 때문이에요. 상황이 악화돼서 우리가 철수하고 나면, 남은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식민화가 아니고 공조라고 하면 다 되는 건가요? 그리고, 우리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난 뒤에 미군이 고용한 통역사와 직원이 얼마나 많이 버려진 줄 알아요? 수만 명이에요. 전쟁이 끝난 뒤에는 나몰라라 한 거죠. 비자 발급도 잘 안 해 주고, 그들의 가족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이 신경도 쓰지 않았죠. 우리는 이들을 이용해 먹고, 단물만 빤 후에 버린 겁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너무나 수치스럽고 근시안적인 행태죠.”
--- p.269
“이 작자들, 우리는 이 ISIL과 싸워야 해요. 맞아요. 이들에게 폭탄을 던져야 하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그건 승리를 위한 전략이 아니죠. 지금 우리는 ‘게라 프리아’를 하고 있다고요. 사회의 질서를 재배치해야 승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게 바로 이거죠. 우리의 비밀 병기는 뭘까요? 드론 따위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바로 여성이에요. 우리는 여성을 해방하고, 교육하고,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해야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꿀 겁니다.”
--- p.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