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부모가 되고 생각합니다 : 이론과 현실 사이
부모 8년 차, 여전히 아이에게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달라진 것은 미안한 감정에서 무조건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무력감과 수치심 등 다른 감정들과 구분한 뒤 진짜 죄책감은 책임감으로 전환합니다.
---「죄책감, 왜 부모는 매일 아이에게 미안할까」중에서
수시로 깨는 아이 덕분에(?) 밤을 꼴딱 새운 날, 남편과 앞으로 하루 계획을 세우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우리의 일과에 아이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의 일과를 온전하게 비운 뒤 우리와 아이의 일과를 같이 채워보기로 했습니다. ‘할 일 리스트’가 아닌 ‘아이의 일과표’를 적기 시작했고, 틈이 나면 그날그날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최우선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서두르지 않고 했습니다 .
비로소 숨통이 트이더군요. 그제야 펠처의 말이 부모로서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려고만 하지 말고 아이가 부모의 인생에 끼치는 영향력을 받아들이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변화, 부모가 된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중에서
남편과도 종종 우리는 아이를 건강하게 떠나보내기 위해 키운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가 독립할 때 시원섭섭하겠지만 ‘섭섭’보다 ‘시원’이 더 크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을 씩씩하게 헤쳐나갈 성인으로 이끌며 부모인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부모기의 마지막 단계인 ‘새로운 출발 단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려고 합니다. 아이가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간 만큼 저의 삶에 한 걸음 더 집중하면서요.
주말에 친정 나들이를 가면 아버지는 “너희들이 와서 반갑다” 하십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 “다음에 또 올게요” 인사드리면 “잘 놀다 가는 뒷모습은 더 반갑다. 어서 가라”고 하십니다. 아이들이 떠나갈 때 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너희들이 우리 인생에 들어와 줘서 반가웠어. 그리고 건강하게 떠나가니 더 반가워.”
---「변화, 부모가 된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중에서
부모가 된 초기에는 내가 괜찮은 부모인지에 대한 자신이 없기에 주변의 이야기가 더 신경 쓰였습니다.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 건지, 내가 잘하는 건지 가늠하기 어렵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부모 자존감’이 어떤 말을 들었느냐에 따라 파도를 타더군요.
귀를 닫았습니다. “저 잘하고 있어요?” 주변에 묻지 않고 “나 잘하고 있지?” 나에게 묻습니다. 내 아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내가 내린 결정을 지지합니다. 그래도 의심이 들면 아이를 한 번 더 보려고 합니다. 나의 반응이 아이 자존감을 형성하는 기초가 된 것처럼 아이의 웃음을 내 부모 자존감의 씨앗으로 여깁니다.
생각해보면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바람 앞에는 ‘내 아이에게’라는 말이 빠져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좋은 부모가 아닌, ‘내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된다면 그것이 부모로서의 진정한 성공 아닐까요.
---「정답, 사회적인 통념에서 벗어나기」중에서
엄마의 할 일은 아이와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닌,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건강한 관계를 맺으려면 건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건강한 거리에는 ‘자아 상실 증상’에 시달리지 않을 건강한 바운더리가 필요합니다.
---「균형, 아이와 나 사이의 ‘건강한 거리’ 찾기」중에서
Chapter 2. 부모가 되고 배웠습니다: 현실 가능한 육아의 기술
아이들과 협력하기 위해 침대를 활용했습니다. ‘침대 회의’입니다.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누군가 “침대에 모여”라고 말합니다. 우리 가족에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입니다. 침대에 모이면 모두 바짝 붙어 눕고 허공에 문제가 떠 있는 상상을 합니다. 다 같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족회의, 가족 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 팀」중에서
가트맨은 축소전환형과 억압형 부모를 둔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옳지 않고 부적절하며 타당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고 말합니다. 감정을 지속해서 부정당하며 ‘나만 이런 건가?’, ‘내가 잘못된 건가?’ 생각하게 되며 감정을 숨기게 됩니다. 억압형 아버지와 축소전환형 엄마 밑에서 자란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이게 울 만한 일인가?’ 괜히 눈치를 보고 서둘러 이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주의를 돌립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오히려 내 아이만은 슬플 때 마음껏 울고, 화날 때화낼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모든 감정을 받아주려고 노력합니다. 아이가 울면 ‘속상하구나’, ‘슬프구나’ 마음을 읽으며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게 감정코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트맨은 저 같은 부모를 방임형이라고 합니다. 감정을 조절하도록 돕는 게 아니라 감정을 ‘분출’하게 두기 때문입니다. 감정코칭형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존중합니다. 아이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겁에 질려 있을 때 감정 그대로를 인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감정을 올바로 표현하도록 가르칩니다.
---「감정코칭, 자신을 지지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중에서
공감은 상대가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필요로 하고, 부탁하고 있는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돕기 전에 상대가 자신을 충분히 표현할 때까지 공감에 머뭅니다. 내 입장에서 벗어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간단합니다. 무엇을 해주려 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같이 있으면 됩니다.
---「공감 경청, 아이와 평생 이어지고 싶다면」중에서
걸음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힘을 다해 일어서고, 일어서자마자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다시 일어나 또 엉덩방아를 찧고, 또 일어나 한 걸음을 떼는 과정을 2,000번 정도 반복한 뒤 비로소 걷게 됩니다. 이 과정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놀라운 것을 넘어 감탄하게 됩니다. 아이가 결국 해내는 순간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치는 건 오버액션이 아니었습니다.
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아이만큼 노력을 했나 생각해봤습니다. 부끄럽게도 가물가물했습니다. 끝까지 노력한 기억보다는 ‘될 때까지 해보자!’ 마음을 먹었다가도 한두 번 해보고 ‘결국 안 되면 괜한 힘만 빼는 거 아닌가, 어차피 그만둘 거 빨리 그만두는 게 낫지 않나’ 슬쩍 발을 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적어도 이 모습만큼은 제가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아이에게서 제가 배우고 싶었습니다.
---「성장형 사고, 끝까지 노력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