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 시집의 대부분의 시를 이 침대에서 썼다. 침대가 답답하면 방을 잡으러 나갔다. 동료 시인들이 대개 카페에서 오늘의 커피나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흡연실에서 노트북과 씨름하고 있을 때, 나는 눕고 엎드려야 했다. 맑은 날, 모텔에 젊은 남자가 혼자 와서는 방을 빌린다. 시를 쓰겠다고 세 시간, 네 시간짜리 대실로 방을 잡아서 모텔 침대에 배를 대고 눕는 것이다. 이때는 이것 또한 내 책상인 것인데, 누군가 매일 가는 카페에 글이 잘되는 자리가 있듯이 나 또한 종종 가는 모텔에 글이 잘 나오는 침대가 있다. 가져온 노트북에는 작업 중인 시가 있고, 나는 옷을 훌러덩 벗을 준비가 되어 있다. 홀딱 벗고, 내 방처럼 엎드리는 것이다. 벽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엎드려 누워서, 노트북을 침대 끝에 올리고, 두 다리는 벽에 기대고서 골똘하게 나는 시간을 보낸다. 첫 시집, 나는 예순 편이 넘는 시를 다 이런 식으로 썼다. 시를 쓰다 엎어져 자기도 하고, 꿈에서 쓴 시를 깨어나서 옮겨 적기도 하면서 등은 굽고, 허리는 비틀어지고, 팔꿈치에는 굳은살이 박였다. 물론 모텔에서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여러 고충도 있었다. 우리나라 모텔은 대부분의 침대가 딱딱하다. 내가 글을 쓰기에는 좋지 못한 환경이다. 몸이 더 아프고 금세 지친다. 그리고 남자 혼자 와서 방을 잡으면, 엉큼한 모텔 주인이 찾아와서 여자를 불러준다며 방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보통 이런 것을 물어보는 모텔 주인은 남자가 아니라 늙은 여자일 때가 많다. 됐다고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나는 시를 쓰러 왔다고는 말을 못한다. 그것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시를 쓴다는 것을 알려서 말을 주고받기도 귀찮거니와 매번 이런 소모전으로 내가 빌린 공간을 방해 받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곳은 남자 혼자서는 방을 잡아주지 않는 곳도 많다.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어쩌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침대를 책상 삼아 글을 쓰는 버릇, 누나의 다락방, 누나가 자주 쓰러졌던 자개 책상은 모두 내게는 ‘죽음’과 가까운 유사 이미지들이었다. 당장에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시를 쓰고, 자살하는 대신 살겠다고 시를 썼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나를 몰고 온 것이다.”---박성준, 「당신의 침대」 중에서
“그날 밤. 몰래 깨어난 나는, 사실 잠들지 않았으므로 깨어났다기보다는 일어난 것인데, 방문 바깥을 확인하고, 문을 잠근 후에 책상 앞에 앉아서 스탠드를 켠다. 일곱 살 남짓의 사내아이인 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책상의 위를 쓰다듬어보는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가져보는 내 책상이었다. 작은 책장이 딸려 있는 이 책상에는 스탠드도 달려 있고, 어디에 써야 할지는 모르지만 콘센트도 붙어 있다. 그리고 가지런한 책꽂이. 저녁 내내 나는 책상을 꾸몄더랬다. 백과사전의 ‘ㅇ’ 권과 몇 권의 노트와 필기구들. 몇 차례나 넣고 뺀 끝에 나는 그럴 듯한 모양의 책상을 갖게 되었다. 깨지면 다칠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주장으로 책상 유리는 치워져버렸고, 나는 그 점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다시 몇 번씩 책상 위를 어루만진다. 학교에 가면 나는, 그 어렵고 힘들다는 공부를 척척 해낼 것만 같다. 한동안의 고요. 나는 그 속에 홀로 불을 켜고 앉아서, 돌아눕는 동생의 기척 따위는 무시한 채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둔 조각칼을 꺼낸다. 나는 곧 그곳에 나의 이름을 새길 것이다. 요령도 없이, 삐뚤빼뚤하게. 한 자 한 자 새겨 내 이름과 함께 도착할 것일 시간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담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이름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남의 것도 아니어서 어느 공중에서 흐르듯 떠돌아다닐 것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 그때 나의 등과 팔과 그 책상의 주변으로 모여든 까무룩, 한 어둠을 나는 보지 못한다. 그 어둠과 뒷모습은 나중, 나중에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 그 모습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눈물 같은 것이다. 이제, 이름을 모두 새겼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순진한 크기와 위치에 놓은 이름이다. 내일은, 어린 나는 엄마에게 크게 혼날 것이다. 자신의 이름 때문에 후회를 하게 될 그 첫날이 될 것이다. 그래도 좋다. 방금 새겨놓은 그 이름 때문에 이 책상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것이 되었으므로. 책상 위를 따뜻하게 비추던 불빛이 천천히 사라진다. 온기는 남아 있다. 그 어릴 적 다디단 꿈이 그 위에 흥건하다.”---유희경, 「나의 책상들」 중에서
“책상 앞에 앉아 느꼈던 최초의 무력감을 기억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을 때였다. 그때 나는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는 조바심이 많은 아이였고, 어린아이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으니까, 어린아이는 아직 무엇인가가 되지 못한 상태이니까, 아직 너무 어린 자신을 참기 어려웠다. 초등학교 입학을 며칠 앞두고서는 밤마다 하루하루 손꼽아가며 입학식 날을 셈하기도 했다. 한 밤, 두 밤, 세 밤, 네 밤…… 조금만 있으면 나도 어른이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그리고 초등학생이 되어 책상에 앉았을 때, 그때는 이제야 진짜 ‘세계’를 마주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경하던 어른에 가까워진 것만 같아 조금 뿌듯해졌다. 여전히 쌀쌀한 초봄이라 책상에 손을 가만 올리면 전해져오는 그 차가움에 놀라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적당히 따스해지던 것이 마음에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는데, 그 모든 익숙함이 나에게는 새롭고 낯설게만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설렘과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책상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었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 가만히 앞을 바라보는 일, 책상 위에 올라온 것을 또박또박 읽는 일, 선생님이 불러주신 것을 바르게 받아 적는 일 정도만이 나에게 가능한 일이었다. 책상 앞에 앉는 일은 순식간에 지루해졌다. 책상에 앉아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 정도구나. 그리고 극도의 무력감이 엄습해왔다.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처음으로 배운 것은 책상 앞에서의 무력함이었던 셈이다. 이게 진짜 ‘세상’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황인찬, 「겨울 메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