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1년에 태어난 배비지 선생님은 젊은 시절부터 천재 수학자로 유명했어요. 선생님은 어느 날 자신의 집 창고에 귀족들을 불러 모았어요. ‘차분 기관’이라는 자동 계산기의 모형을 보여주면서 설명하기 위해서였어요. 나도 어머니를 따라 이곳에 갔고, 증기 엔진으로 움직이는 계산 기계를 보고 큰 흥미를 느꼈어요. 대부분 귀족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구리와 철로 된 기계가 저절로 움직이니까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었어요. 하지만 난 배비지 선생님이 왜 그 기계를 만들었고,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를 정확히 이해했어요. 그리고 새롭게 탐구할 영역을 발견한 것 같아 기뻤지요. 그날 이후 배비지 선생님과 나는 수학과 발명에 대한 서로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며, 토론하는 친구가 되었어요. 마흔두 살인 선생님은 겨우 열일곱 살인 나를 동료 수학자이자 발명가처럼 대해줬어요.
난 곧 윌리엄 킹과 결혼해 러브레이스 백작 부인이 되었지만, 이후로도 배비지 선생님과 교류를 계속 이어갔어요. 귀족 부인으로서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 좋아하는 수학 공부를 그만두거나 하지도 않았어요.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보았기 때문이에요. 나도 엄마처럼 결혼 생활을 이어가기보다는 내 꿈을 이루고 싶어했어요. 사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수학 공부에 몰두할 때였거든요.
--- p.21∼22, 「에이다 러브레이스」중에서
1985년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우연히 NASA에서 우주비행사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순간 어린 시절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했던 일이 떠올랐고, 당장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원 자격은 대학에서 과학, 수학, 공학을 전공한 사람 중 자신만의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리더가 될 자질을 갖춘 사람이어야 했어요. 나는 마지막 후보 15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되었고, 본격적으로 우주 비행 훈련을 받았어요. 훈련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중력 상태에 적응하는 거예요. 우리가 우주공간으로 튀어나가지 않고 지구 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건 지구의 중력 때문이지요. 중력은 지구 위의 모든 것을 중심을 향해 끌어당기고 있어요. 하지만 우주공간으로 나가면 이런 힘이 사라지기 때문에 미리 무중력에 적응해두어야 해요. 나를 포함한 15명 후보생들은 일부러 중력을 없앤 비행기에 타서 둥둥 떠다니며 훈련을 받았어요. 이 훈련을 받으면 모두 멀미를 심하게 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중력을 없앤 훈련용 비행기를 ‘멀미 혜성’이라 불렀어요.
--- p.63∼64, 「메이 제머슨」중에서
파리에 혁명이 일어나 평등과 자유를 외치며 왕을 처형하고 정부를 새로 세웠지만, 어떤 정부도 소녀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지는 않았어요. 여성이 시민으로서 투표할 권리도 주지 않았지요.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게 냉담했고. 조금이라도 지식을 드러내는 여성은 조롱거리가 됐어요. 그런데 나는 그런 조롱을 받기에 딱 좋은 쪽으로 성장하고 있었어요. 내 머릿속엔 하루 종일 수학 생각밖에 없었어요. 수학의 재미를 알게 되면서 온 세상이 수학으로 이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책상은 사각형, 접시는 원형, 냅킨은 삼각형으로 보였어요. 일년은 365일이고, 음악은 12음계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만 머리에서 맴돌았지요. 내가 살고 있는 집도, 여행갈 때 타는 배도, 강을 건널 때 이용하는 다리도 모두 수학 계산을 밑바탕으로 세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어요.
난 모두가 잠들었을 때에도 침대에서 살짝 빠져나와 수학 공부를 했어요. 밤새도록 책을 보고 문제를 풀며 수학에 점점 더 빠져들었지요. 부모님은 딸이 너무 똑똑한 나머지 비웃음거리가 되고 결혼도 하지 못할까봐 크게 걱정하셨어요. 결국 내 방에서 램프도, 두꺼운 옷도 모두 치워버리고, 난방도 해주지 않았어요. 밤이 되면 추운 나머지 침대에 들어가 꼼짝하지 않고 잠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데 어느 날 아침이었어요. 늦잠을 자는 나를 깨우러 온 부모님은 깜작 놀라고 말았어요. 병에 담긴 잉크가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방 안에서 담요를 두른 채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나는 램프 대신 양초를 켜고, 밤새 수학 문제를 풀다 새벽녘에야 잠들었지요.
--- p.75∼76, 「소피 제르맹」중에서
사실 당시엔 여성들이 과학을 전공했다 해도 과학자가 되기는 어려웠어요. 연구소 같은 곳에서도 여성들이 할 일은 서류 정리나 차를 타서 나르는 것이 대부분이었어요.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오면 커피는 무조건 여자가 타서 준비해야 한다고 믿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까마득한 남자 후배 앞에서 커피를 타서 나르던 여자 선배의 모습이 자연스러웠지요. 어떤 직장이든 커피 타기, 설거지, 서류 정리, 단순 계산처럼 따분하고 지루하고 폼이 안 나서 하기 싫은 일을 여성들에게 값싼 임금으로 떠넘기고, 과학 연구처럼 힘들지만 빛이 나는 일을 할 때엔 “여자가 끼어들면 재수가 없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기적인 남성들이 승승장구하는, 그들만의 세상이었지요.
남성 과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길은 첫째도 실력, 둘째도 실력, 셋째도 실력이었어요. 난 연구소에 들어오자마자,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일했어요. 현장 연구가 핵심인 지질학 분야에서, 책상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거나 간단한 지도를 그리는 일은 누구든 꺼려했어요. 하지만 여성인 나는 이런 일을 해야만 연구소에서 살아남았지요. 난 묵묵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고, 결국 윗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바닷속 지도 그리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늘 정말 가슴 뛰게 만들 일, 그리고 과학계에 새로운 생각을 일으킬 일을 찾아 제대로 연구해보고 싶었던 나에겐 정말 소중한 기회였지요,
--- p.111∼112, 「마리 타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