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폰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만큼 많은 것을 폰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여행을 가도 지도 붙잡고 씨름할 걱정 없고,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도 크게 두렵지 않다.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는 게 제일 무섭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어떻게 하면 빨리, 잘,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넘쳐난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챗봇도 열심히 노력 중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감정과 생각들을 뭉텅이로 구분할 뿐, 개인적으로 접근해주지는 못한다. 마치 구글 스트릿뷰에 사람 얼굴을 블러 처리하라면 모든 얼굴 비슷한 것들에 블러 처리하는 기계처럼.
가장 짧은 길이 가장 빠른 길은 아닐 터였다.
아이를 잃은 슬픔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내비게이션이 놓친 횡단보도 때문이라는 변명을 대는 운전자에 의해, 하필이면 그 빠진 하나의 횡단보도에서 아이와 엄마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더더욱. 그 슬픔을 견디기 위해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길은, 어쩌면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블러 처리를 해가는 과정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소설은 음성파일 하나 남기고 떠난 선배 피디의 검색 내역을 쫓는 혜서와, 아이를 위해 사고 장소에 곰인형을 가져다주는 애영의 이야기다. 그리고 검색 목록의 주최자로 나타나는 진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소설은 참 많이 돌아간다. 제목이 반전이랄까. 소설 초반에는 더군다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돌아 가야 목적지에 같은 마음으로 도달할 수 있었겠다 싶었다. 다른 길 말고, 이 길이어야 각자가 하는 이야기가 좀 더 잘 들렸겠다 싶었다. 가장 짧은 길이 가장 빠른 길은 아니니까.
* 밑줄
개인을 어떤 집단의 일부로 치부하는 것, 그리하여 그를 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차별이란 그 당연한 사실을 어떻게 해야 당연한 걸로 알아먹게 할지 매번 피로했다. 그래서 대개는 그냥 무시했지만, 때때로 컨디션이 좋을 때면 공을 들여 설명해주기도 했다. 이거 인종차별이야. 왜?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네 맘대로 내가 누군지 가정했으니까.
여자도 뭐든 할 수 있다는 그들 사회의 남성들이 동남아시아에 가서 저지르는 일들에 대해 따지고 싶었다. 누워서 침을 뱉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들은 그들이 그렇게 누리고 있는 바로 그것을 자신 또한 탐하고 있단 사실에 번번이 목에 걸렸다.
"부럽네."
"뭐가"
"우리는 여기 몰래 들어온 건데 이 사람들은 당당하잖아. 이런 유인물도 만들고."
"그냥 불법인 거 아냐? 되게 뻔뻔한 사람들이네."
무심히 지나칠 수도, 지나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역시 나를 보고도 내가 나인지 모를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외지인의 어떤 면모만을 발견하고 말지 모른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게, 기계가 정작 기계적인 일은 못하네."
가장 짧은 길이 가장 빠른 길은 아닐 터였다.
"그쵸? 한국 라디오가 유독 토크가 많대요. 저도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 같아요. 말도 많고."
"어쩌면 자기 얘길 들어줄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요."
"맞아요. 전화 연결을 하면 그렇게 별의별 얘길 다 해요. 자기만 아는 얘기 있잖아요. 혼자 말하다 웃고 그러다 갑자기 울기도 하고. 그런데 듣다 보면 내 얘기 같을 때가 많아요. 그러고 보니 유행가 가사에 공감하는 거랑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