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속에 숨은 것, 장면 바깥에 있는 것을 바라보기
『내가 왔다』 속 동시들은 “익숙한 것 같은데 낯설고, 흔한 것 같은데 드물고, 오래된 것 같은데 새롭다.”(이안) 평범한 일상 속 한 장면을 소재로 끌어오면서도, 그 장면에서 주목받지 못할 법한 것에 눈길을 두기 때문이다. 짜장면을 먹은 아이의 콧잔등에 생긴 “짜장 점 일곱 개”(「짜장요일」), 세수를 하고 난 아이가 “씻겨 준” 비누(「세수」) 같은 것들. 도끼로 나무를 패는 장면에서도, 시인은 도끼도 나무도 아닌 ‘모탕’(나무를 팰 때 밑에 받쳐 놓는 나무토막)의 목소리를 끄집어내어 들려준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매일을 보내는 방주현 시인의 눈은 작고 작은 것,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 자세히 살피면 그제야 보이는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배경처럼 숨어 있던 존재들이 『내가 왔다』에서는 모두 주인공이다.
장미 다발을 들고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던 팜티마이 아줌마
수학 문제를 설명하던 6학년 2반 이서연 선생님
서류 가방 들고 걸어가던 김유성 아저씨
마을버스를 운전하던 박미양 기사님
모두들 일하다 잠시 멈춰 서서
먼 데 하늘을 보는
11시 무렵
(-「학부모 공개 수업」 전문)
생업에 종사하느라 학부모 공개 수업에 참석하지 못한 보호자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잠시 먼 하늘을 바라본다. 어느 평일의 오전 11시 무렵 풍경이다. 학부모 공개 수업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교실 안이 아닌 교실 바깥에 주목하는 것. 방주현 시인이 지닌 시선의 독특함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잘 보이지 않는 존재를 넘어, 지금 여기에 함께 있지 않은 존재에까지 닿는다. 이 시선은 우리로 하여금 왁자지껄한 교실에서도 전학 간 연우의 빈자리를 바라보게 하고(「전학」) 새로 생긴 치킨집 얘길 들으면서도 문을 닫고 사라져 버린 가게들을 떠올리게 한다(「치킨 치킨」). 우리 눈과 마음에 담기는 세계의 밀도가 한층 높아진다.
공원으로 경로당으로
할아버지 모시고 다니느라 지친
명아주 지팡이
초저녁부터
흙 묻은 발도 안 닦고
현관에 서서 잔다
천장은
할아버지 마중할 때 켠 전등을
얼른 꺼 주고
벽은
미끄러지는 지팡이에게
모서리를 내주고
(-「명아주 지팡이」 전문)
사이사이 살펴 주고 조용히 받쳐 주는,
조금 떨어졌어도 가장 가까운 그 자리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것, 심지어 부재하는 것마저 보는 시인의 유다른 눈은 그가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 자리는 지금 곁에 없는 존재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을 넓게 조망하는 높이를 가지면서도, 구석구석에 있는 존재들을 유심히 살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위치할 것이다. 먼지가 청소기를 피해 안전하게 착지하는 ‘콘센트 위 5밀리미터 난간’(「착지」), 지쳐 미끄러지는 명아주 지팡이에게 살며시 모서리를 내어 주는 ‘벽’(「명아주 지팡이」), 교문 앞으로 몰려나와 곧장 학원 차에 올라탈 아이들을 위해 얼른 빨간불을 켜 주는 ‘신호등’(「교문 거북이 살아남기」)의 자리처럼.
『내가 왔다』는 “한 걸음 떨어진 곳”인 듯하지만 “사이사이 살펴 주고” “조용히 받쳐 주는” 자리, 그러니까 “조금 떨어졌어도/ 가장 가까운/ 거기”에(「엄지 자리」) 있다. 덕분에 기우뚱 흔들리면서도 훈이의 자전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훈이」), 1학년 아이는 어른들 사이를 혼자서도 용감하게 뚫고 갈 수 있다(「혼자 갈 수 있다」).
여러분!
“아, 귀여워!”
소리가 들리면
있는 힘껏 달려야 해요.
안 그러면
다시는 친구들을 못 만나요.
(-「달팽이 안전 교육」 전문
『어쿠스틱 라이프』 난다 작가가 왔다
『내가 왔다』의 웃음과 씩씩함은 난다 작가의 그림으로 한층 돋보인다. 반복되는 일상 속 미묘한 변화의 결을 촘촘하게 그려 내는 『어쿠스틱 라이프』로 마니아층이 무척 두터운 그다. 이번에는 동시의 눈길이 향한 모퉁이마다 경쾌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동시 편편에 보는 재미를 더했다. 치과 의자에 누워 무서워하다가 깜박 졸고 마는 할머니, 눈인사를 나누는 마을버스와 그 기사님들, 안전 교육을 받고 있는 달팽이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난다 작가 특유의 터치로 생기 있게 깨어난 캐릭터들은 책 곳곳을 부산스럽지 않게 노닐며 동시의 화폭을 넓혀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