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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L

레이디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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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394g | 140*225*20mm
ISBN13 9788960901605
ISBN10 896090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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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L은 자연이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화가들이 자연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버린 것이다. 터너는 빛을 훔쳤고, 부댕은 대기와 하늘을, 모네는 흙과 물을 앗아갔다. 이탈리아, 파리, 그리스는 벽마다 내걸리더니 이제 진부해지고 말았다.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으면 사진으로 찍혔고, 온 땅덩어리가 너무 많은 손길이 옷을 벗긴 여자들의 손때 묻은 모습을 점점 닮아갔다. 어쩌면 그녀가 너무 오래 산 건지도 몰랐다.---p.9

짙은 눈, 섬세하면서 명확한 윤곽을 그리는 그녀의 코(`그녀의 코를 보고 저마다 “귀족 코”라고들 했다) 그녀의 미소(그 유명한 레이디 L의 미소)는 아직도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모두가 돌아보게 만든다는 걸 그녀도 알지만 부질없었다. 예술에서도 그렇듯이 인생에서도 스타일이란 더는 내놓을 게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의 최후의 은신처일 뿐이라는 것을, 자신의 아름다움이 화가에게는 여전히 영감을 줄 수 있지만 연인에게는 결코 영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았다. 여든 살이라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p.13

레이디 L은 생물의 성적 행동에서 선과 악의 준거는 결코 보지 못했다. 그녀에겐 도덕이 그 수위에 자리한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그녀가 보아온, 벽에 그려진 성기 낙서가 지금까지도 소위 영예로운 전쟁터보다 무한히 덜 외설스러워 보였다. 그녀에게 포르노그래피란 인간이 제 괄약근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피로 물들이는 정치적 극단주의였다. 손님이 매춘부에게 강요하는 요구들은 경찰 체제의 가학성 취미에 견주어보자면 순결함이요 순진함이었다. 감각의 음탕함은 사고의 음탕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요, 성적 변태와 포르노 총서는 강박증을 끝까지 몰고 가는 사상의 편집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요컨대 인류는 엉덩이보다는 머리로 불명예에 도달하기가 더 쉬웠다.---pp.36~37

아르망 드니가 수단을 선택함에 망설임이 없다고 말하는 건 충분한 표현이 아니었다. 두어바흐의 말에 따르면 “극단주의자는 비열한 수단을 이용할 때조차 열광한다. 말하자면 그는 거기서 자기 신념의 정당성을 찾는다. 사람들은 단지 대의가 요구할 때만 피를 흘리지 않는다. 대의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피를 흘린다.---p.59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못한 만큼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뿐이에요.”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를 사랑할 수 있죠? (…) 내가 하려는 말은, 사람들이 자기 안에 있는 더없이 인간적인 것에 늘 진다면 인간은 벌써 오래전에 없어졌을 거라는 얘기요.”---pp.115~116

“진정한 향략주의자는 쾌락 없이 살 수 있고, 고행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타인의 희열이 제공하는 무한히 흡족한 광경을 맛보는 것이 허용된다면 말입니다. 그러면 그는 가장 고귀한 의미에서, 불교적 의미에서 관음자가 되지요. 사실 동양에서 명상을 통한 초탈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니까요. 부처는 자신의 쾌락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던 겁니다. 그래서 숨 쉬는 모든 생물의 기쁨에 둘러싸이고 싶어 했죠. 우리가 죽은 뒤에도 우리의 기쁨은 살아남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순간부터 죽음은 행복 속에 빠져드는 달콤한 익사일 뿐인 거요…….”---p.132

그는 글렌데일을 조금 알았다. 최악의 기행을 할 수 있는 변덕스러운 존재, 왕실에 늘 큰 걱정을 안겨준 인물이었다. 언젠가는 웨일스 공에게 단두대 모양으로 된 황금 시가 커터를 선물하는 짓까지 하지 않았던가.---p.165

“인간이 악행을 저지르는 건 속옷을 벗으면서가 결코 아니오. 그건 그저 부르주아 도덕일 뿐이지. 사람들이 진짜 추잡한 짓을 하는 건 옷을 입고서요. 심지어 제복이나 정장을 입고서 하죠. 이제껏 누구도 엉덩이를 벌거벗은 채 크게 나쁜 짓을 하진 못했소.”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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