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0년 02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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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2쪽 | 446g | 145*210*30mm |
ISBN13 | 9788953136984 |
ISBN10 | 8953136989 |
출간일 | 2020년 02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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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2쪽 | 446g | 145*210*30mm |
ISBN13 | 9788953136984 |
ISBN10 | 8953136989 |
이 책은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 성경적 세계관을 통해 크리스천들에게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갖게 한다. 세상의 양극단에 서 있는 크리스천과 교회들의 정치, 낙태, 성 역할, 믿음과 이성을 비롯한 다양한 쟁점을 둘러싼 오랜 분열을 다루면서, 이러한 불필요한 분열과 갈등을 뚫고 나갈 진리와 아름다운 예수의 길을 새롭게 보여 준다. |
이 책을 향한 찬사들 추천의 글 프롤로그 PART 1. 첫 번째 선_ 교회 안에 그어진 선 우리 편이십니까, 저들의 편이십니까 1. 정치적 성향, 진보냐 보수냐 정치만큼 우리들을 고집과 독선으로 몰아가는 주제도 없다 2. 태아냐 가난한 사람이냐 ‘지극히 작은 자’, 누구의 손을 먼저 잡아야 하나 3. 나홀로 신앙이냐 공동체이냐 교회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예수를 기억하라 4. 돈이 죄냐 탐욕이 죄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느냐가 문제다 5. 주류냐 비주류냐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아닌 상의 한 자리를 주어야 한다 6. 남자냐 여자냐 평등주의와 상호보완의 논쟁보다 남녀의 신비를 발견하라 PART 2. 두 번째 선_ 교회 안과 밖을 가르는 선 세상에서 기독교는 왜 환대받지 못하는가 7. “크리스천들은 완고하다" 오해와 거부를 기꺼이 감수하며 우정을 쌓으라 8. “심판과 지옥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천국과 지옥은 실재한다 9. "그리스도는 좋지만 크리스천들은 싫다" 위선자가 아니라 미완성 작품임을 인정하라 10. “기독교의 성 관념은 고루하다" 모든 충동과 본성과 욕구를 그분 아래에 내려놓으라 11. “왜 이 땅에 고통이 있는가" 예수, 우리의 상황 속으로 들어오시다 12. “크리스천들은 너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한다" 하나님 눈에는 하찮은 이가 없다 에필로그 생각하고 토론하기 주 |
교회 안과 밖을 구분하는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지난 총선과 같이 정치적 성향 (진보냐 보수냐), 주류냐 비주류냐, 남자냐 여자냐, 나홀로 신앙이냐 공동체냐 등등 여러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읽다 보면 그렇게 세상을 둘로 나누어서 보는 것이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양분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두 하나로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
'그래 나도 이거 궁금했었어' 하는 문제에 대한 다른 시각을 보고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
하나님 나라는 진실 왜곡이나 정치 술수, 권력 남용, 신념을 위해 ‘들고 일어나기’(성경에 예수님 혹은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이 사회나 정부에 맞서 들고 있어났다는 기록이 있는가)를 통해 넓져지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보수적인 가치와 진보적인 가치 모두에서 비롯하는 전복적인 사랑의 행위를 통해 넓혀진다. 이것이 기독교 운동의 아름다움이다.
기독교는 두 시각의 모든 장점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두 시각 모두에 내재한 흠과 단점과 불의를 거부한다.
[선에갇힌 인간 선 밖의 예수 p.46 / 스캇솔즈]
사람들은 꽤나 많은 것들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본다. 내편이 아닌 이상 적이 되는 것이다. ‘다름’으로서 인정하기보다 ‘악’이 되어버린다. 나와 반하는 것들은 자신에게 어떤 이익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이념들 또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그저 유행에 따라 휩쓸려가며 그 유행에 따라가지 못하거나 큰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촌스러운 누군가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어떠한 분명한 기준도 제시되지 않으며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최악은 그러한 일들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각자의 이념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라 말하는 모습이 꽤나 우스울 뿐이다. 내 편이 아닌 다른편을 ‘악’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낸 예수님은 이땅에서의 삶에 어떠한 이념에도 휩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떠한 정치적 이념에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이야기 또한 없다. 예수님은 율법이 없어지지 않을 것을 강조하셨고, 하나님 나라의 가기위한 방법을 강조하시며 얼마나 보수적인지 보이셨다.
또한 얼마나 진보적셨는지 본다면 오랜 전통을 뒤엎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셨다.(마5-7)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모습, 부정하다 여겨지는 이들을 만지며 치료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교제를 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보수적인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제자중 세리 마태는 ‘정부’를 위하는 직업을 갖고있었으며 시몬은 정부에 ‘반대’하는 열성당원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예수님은 다른 이념을 갖고 있는 이들을 ‘악’으로 여기기를 거부하고 계신다. 그저 그들과 함께 하시며 공동체를 이루셨다.
어쩌면 기독교라는 종교가 환대받지 못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당연하다 싶다. 그저 착함을 말하는 종교가 아닌 세상의 것에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신을 향하라 말하지만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세상을 향하라고 말한다. 자신을 향하기에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그 이기적인 감정으로 인해 내가 더 이득을 봐야하지만 기독교에서는 함께 잘 살기를 바라고 있다. 여기서 갈라서기 시작한다.
물론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그건 잘못됐어 그렇게 하면 안돼"라고 말하는 기독교인이 있겠지만 기독교인들 또한 이런 기독교인을 피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믿는자들에게 가르치신 방법은 죄를 정죄하는 것이 아닌 그들을 사랑하는것. 여전히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말하는 삶을 살아냈을 때,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했을 때 변하는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가운데 변하는 패러다임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이기심에 불타오르는 시대에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있는지 고민해보자. 선과 악으로만 구분되는 이분법적인 판단은 정죄를 낳고 그들을 배척해버리게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그런 결과는 여전히 자신들은 선택된 민족이다 다시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유대교와 다른게 없다.
우리는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 역시 세상이 말하는 나, 그리고 그와 다른 너 로 인한 이분법적이 아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선택하신 모습을 마주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과, 악이 아닌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코 선이라고 여겨질 수 없는 '악'이 아닌 우리가'죄인'인 이유는 언제든지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삶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스캇 솔즈’의 ‘선에 갇힌인간 선 밖의예수’ 실제로 기독교인이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고민해야 하지만 그저 바리새인으로서 그들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만 하고 내가 아닌 남을 악이라 말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저 이분법 적인 사고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닌, 이 땅에서 삶을 살아내신 예수님의 모습, 그 삶의 모습이 이 시대를 회복할 수 있다 도전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교회 안이건 밖이건 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기준으로 서로를 판단하며 삶아갑니다. 중도는 없습니다. 진보 아니면 보수 둘 중에 하나입니다.
서로가 그어놓은 선을 기준으로 넘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불행한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역시 이러한 세대를 살고 있다 보니 진리를 떠나 있을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편 나누기에 밀려오는 피로감에 이 책을 기술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교회 안에서 그어진 선과 교회 안과 밖을 나누어 가르는 선을 이야기하면 우리의 실제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틀은 깨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진리를 고수하시면서도 다른 이들을 포용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진보와 보수의 힘겨루기 속에서도 예수님은 진리 안에서 모두를 포용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이것을 위해 모두를 포용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어 놓은 선을 기준으로 대립하며 편을 나누기에 급급합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쓸모 있다. 없다를 판단합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선을 그어 놓고 맞다 틀린다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대립 속에 있는 고린도 교회를 버리기보다 사랑으로 세워가 길을 원한 것처럼 선을 긋고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변화시킬 혁명가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기 매우 힘들어합니다. 때로는 다름이 틀림으로 오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천국이 지옥이 존재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길 원한다면 우리가 세워 놓은 선의 기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되지 않은 고난 가운데 있을 때도 참된 소망이 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눈에는 그 어떤 사람도 하찮은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세상 가치관이 그어놓은 선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진영의 논리보다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정죄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본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현시대 속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민낯에 얼굴이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이분법 논리가 가득한 이 시대에 크리스천으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제시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에게 청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