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3년 04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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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0쪽 | 355g | 200*200*15mm |
ISBN13 | 9788958286707 |
ISBN10 | 8958286709 |
KC인증 | ![]() 인증번호 : - |
출간일 | 2013년 04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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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0쪽 | 355g | 200*200*15mm |
ISBN13 | 9788958286707 |
ISBN10 | 8958286709 |
KC인증 | ![]() 인증번호 : - |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올바른 인성과 가치관을 옛이야기를 통해 만나는 「옛이야기 그림책」 제10권 『허허 할아버지』. 늘 한숨만 쉬는 '한숨 임금님'이 항상 웃는 '허허 할아버지'를 통해 그 비결을 알기 위해 시험을 해보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허허 할아버지의 긍정적인 마음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임금님은 할아버지를 시험해 보기 위하여 가락지 하나를 맡깁니다. 그리고 신하를 뱃사공으로 변장시켜 할아버지가 가락지를 잃어버리도록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할아버지는 뱃사공을 나무라지 않고, 아픈 할머니를 위해 잉어까지 구워 내옵니다. 놀랍게도 그 잉어 뱃속에는 임금님의 가락지가 있었고, 나중에 임금님은 할아버지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습니다. |
<허허 할아버지>는 ‘무수옹 이야기’라는 민담을 글감으로 삼은 옛이야기 그림책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구전되어 온 옛이야기답게 이 책의 문체는 마치 입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구수하고 간결하다. 문장이 소박하고 리듬감 있어 할머니가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정겨울 뿐만 아니라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표지를 언뜻 보면 우는 모습인지 웃는 모습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주름이 깊게 팬 할아버지가 꽃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궁금증도 잠시, 허리를 한껏 숙여서라도 가까이서 들꽃을 보고 싶은 할아버지의 여유로운 마음이 곧 성격을 말해 준다. 부드러운 곡선의 스케치로 작게 표현된 할아버지의 여러 가지 재미난 모습은 제목과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한다.
늘 한숨만 쉬는 ‘한숨 임금님’과 매사에 웃음을 잃지 않는 ‘허허 할아버지’는 성격적인 면에서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할아버지는 언제 어디서나 웃는 반면, 남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 임금은 항상 걱정을 안고 산다.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는 평범한 할아버지가 임금의 시험을 잘 이겨 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야기에 쉽게 빠진다. 특히 임금의 캐릭터에는 욕심과 집착이 심한 현대인의 특징이 투영되어 있어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강을 건너다 가락지를 강물에 빠뜨리고 그것을 나중에 잉어의 배 속에서 다시 찾는 과정은 전래동화 ‘개와 고양이 이야기’에서 익히 접해 온 설정이자 옛이야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마법과도 같은 우연의 일치를 보여 준다.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런 장면을 통해 심리적 해방감을 맛볼 수 있다.
주인공들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의성어 ‘허허’와 ‘후우’를 반복적으로 사용했으며 이들 어휘를 포함해 허허허, 껄껄껄 등의 의성어를 본문 서체와 다르게 편집함으로써 옛이야기의 특징을 부각시킨 점이 돋보인다. 글과 그림을 한 사람이 작업했기에 글에 따른 그림의 구성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며, 각 인물의 표정을 클로즈업해서 묘사한 점은 주제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특히 임금과 허허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과 가락지가 강물에 빠진 후의 장면에는 과감한 화면 분할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려 한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녹아 있다.
옛이야기의 가치는 아이들로 하여금 편안한 이야기 속에서 삶의 지혜와 올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하는 것에 있으며 이것이 곧 옛이야기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전래되는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허허 할아버지처럼 잘 웃고 긍정적으로 살다 보면 걱정도 근심도 알아서 피해 간다는 삶의 지혜를 많은 아이들이 배울 수 있길 바란다.
갑자기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할아버지란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건? ’
인자함, 온화함, 포근함, 자상함, 포용력 등등. 뭔지 모른 아늑한 기운이 나를 감싼다. 나에게 할아버지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존재다. 손자손녀가 무슨 장난을 쳐도 그냥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놈’ 한 마디로 끝내실 것 같은 분. 할아버지의 구레나룻을 심술궂게 잡아당겨도 오히려 그 수염으로 내 얼굴을 부비며 장난을 치시던 분. 구부정한 허약한 등으로도 어리광부리는 손녀를 업어서 달래시던 분. 추운 겨울 아랫목을 데우는 아궁이의 남은 불씨에 고구마를 묻어두고 손자손녀들을 부르시던 분. 장날 시장에서 엿을 사와 몰래 방에 감춰두곤 야금야금 내어주시던 분. 아련하지만 할아버진 그런 솜털 같은 포근한 존재로 내 기억의 방에 새겨져 있다. 할아버지란 단어만 들어도 괜히 훈훈한 온기가 내 가슴에 서서히 스며드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선지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책들은 늘 내 시선을 끈다. ‘할아버지의 방’, ‘할아버지의 뒤주’, ‘할아버지의 안경’, ‘할아버지 손은 약손’, ‘우리 할아버지’ 등등. 책의 내용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책들은 꼭 타임머신 같다. 이런 책들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 타임머신을 타고 할아버지 곁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존 버닝햄의 ‘우리 할아버지’가 그렇다. 벌써 수년 전 이 세상을 떠나신 내 할아버지를 연상하며 먼 훗날 또 다시 내 아이에게도 지금 살아계신 저의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들리란 생각으로 자주 읽어주었었다. ‘허허 할아버지’를 선택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이젠 내 아이가 아니라 내가 보육하고 있는 수많은 내 아들딸들에게 할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나 또한 거기에 편승하여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이 책이 더욱 강하게 나를 이끈 건 할아버지란 단어보다도 앞에 붙은 ‘허허’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이 단어가 유독 우리 할아버지를 더욱 강하게 연상시켰다. 기억의 편린들 속에서 세월의 마모를 이겨내고 번뜩 튀어나온 단어-‘허허’. 이는 우리 할아버지의 너털웃음이다. 이 한 단어로 인해 이내 잊힐 것 같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봄비에 새싹이 돋아나듯 새록새록 다시 피어난다. 잔뜩 이끼 낀 오래된 비석을 부드러운 비단 걸레로 닦아내어 세월의 때 밑에 꼭꼭 숨어버린 그 옛날 추억의 단어들을 다시 복원해내는 것 같다. 그래도 너무나 먼 아련한 기억이라서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하진 않다. 늘 점잖 빼며 뒷짐을 지고 다니셨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게으른 동네 젊은 농사꾼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치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분명한 건 조선시대 사극에나 등장할 것 같은 엄한 할아버지도 유독 약자들 앞에선 늘 나긋해지셨다는 점이다. 단지 귀여운 손자손녀들에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동네의 가난한 농군들에겐 늘 ‘허허’하시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내일처럼 도와주려 하셨던 것 같다.
여유로움이 모든 할아버지의 징표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이 세상 대부분의 할아버지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보단 훨씬 여유로운 것 같다. 이는 감각이 무뎌진 세월의 나이 탓이 아니라 이미 세상풍파를 다 겪고 난 이후 얻어진 하해(河海)와 같은 마음의 포용력 덕분이리라. 굴곡진 근현대사의 온갖 시련을 몸소 경험한 나의 할아버지 세대에게 그 어떤 세상사도 견뎌내지 못할 일은 없었으리라. 그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를 타고나 부모의 부(富)를 바탕으로 양질의 교육을 받은 젊은 사람들이 결코 얻을 수 없는 세월이 주는 교훈들이다. 그러니 자연 젊은 사람들이 안달복달 하는 일들도 그분들에겐 별로 큰일도 아닌 사소한 일처럼 느껴진 것이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니’ 라는 솔로몬의 말을 이미 체험으로 알고 있는 인생 달관의 경지이리라. 지금 당장은 슬프고 괴롭더라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지금 당장 기쁘고 즐겁더라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을 알기에 지금 당장의 상황에 결코 흔들리지 않고 꼿꼿한 것이리라. 세월이란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는가? ‘허허’라는 단어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란 부처님의 말씀을 이미 경험으로 체득한 할아버지 세대의 여유로움을 상징하는 단어란 생각이 든다.
허허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달관의 경지를 살펴보자. 할아버지는 ‘길가다 똥을 밟아도 거름에 보태면 되겠다고 허허’하고, ‘누가 시비를 걸어도 도리어 자기가 미안하다고 허허’한다. 심지어 ‘도둑이 들어도 살림이 넉넉해 보인 모양이라고 허허’한다. 언뜻 보기에 이래도 흥 저래도 흥 꼭 줏대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마치 온전한 정신을 놓아버린 바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씀과 행동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여유롭게 사는 할아버지의 달관의 경지를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초대해 놓고도 도통 나타나질 않은 임금의 불쾌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덕분에 궁궐 구경 실컷 하는 구나.’라고 웃어넘기는 할아버지의 여유로움. 임금이 시험 삼아 떠넘긴 금가락지가 가짜 사공의 손에서 강물로 떨어져도 도리어 ‘너무 미안해 말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니.’라고 오히려 사공을 위로하는 이 여유로움. 이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일에 얽매이지 않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달관의 경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동화 속에서 허허 할아버지의 삶의 태도가 도드라지는 건 이와 대조되는 후우 임금님의 모습 때문이다. 사소한 일에도 입에 한숨을 달고 다니는 임금님. 그는 ‘낙엽이라도 하나 떨어지면 지저분하다고 후우-’하고, ‘신하들이 바른 말이라도 할라치면 잔소리한다고 후우-’한다. 심지어는 ‘곡식이 잘 되어도 쌓아 둘 데가 없다고 후우-’한다. 이 정도면 세상만사가 모두 걱정거리다. 국사를 담당하는 임금이라서 아무리 근심걱정이 많다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그런데 실은 우리네 인생사가 생각하기에 따라 걱정거리가 아닌 게 없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데로, 공부를 못하면 공부를 못하는 데로 걱정이고, 돈이 많으면 돈이 많아 걱정, 적으면 또 적은 데로 걱정이다. 또 지위가 높으면 높은 데로, 지위가 낮으면 낮은 데로 모두 크고 작은 걱정거리를 안고 산다. 다만 그것을 부풀려 그러지 말아야할 데까지 모두 걱정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 문제다.
흔히들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이 있다 한다. 진부한 얘기지만 컵에 반쯤 담긴 물을 보고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네.’라고 말하는 것과,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표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고방식이다. 전자가 부정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입장이라면 후자는 동일한 상황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다. 이 책의 허허 할아버지는 당연히 후자의 입장을 취할 것이다. 할아버지는 어떤 곤란한 상황도 ‘허허’하고 유연하게 넘길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반면 후우 임금님은 전자의 입장이다. 그는 사소한 일에도 늘 근심과 걱정을 토로하며 ‘후우’하는 한숨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렇다면 어느 편이 더 편안하게 사는 현명한 방법일까? 이건 물으나 마나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평안한 태도로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사람이 당연히 더 좋아 보인다. 그런 태도로 살아가는 본인도 그렇지만 그 곁에 있는 사람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그것이 행복 바이러스의 특성이다. 그것은 전염성이 있어 그런 사람 곁에만 있어도 덩달아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선지 이 책은 겉표지부터 독자를 즐겁게 만든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된 허허 할아버지의 신체와 얼굴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절로 마음이 누그러진다. 앙증맞은 작은 들꽃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한동안 독자의 시선을 표지에 머무르게 만든다. 안에 펼쳐진 할아버지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시종일관 웃음꽃이 핀 할아버지의 얼굴은 글을 읽지 않고 바라만 보아도 즐거워진다. 반면 극명하게 대조되는 후우 임금님의 얼굴은 근심 바이러스를 전파한다. 책 속에 모든 신하들도 그렇지만 정작 글을 읽는 어린 독자들의 얼굴에도 그늘을 드리운다.
당연한 바람이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허허 할아버지의 이런 미소를 잃지 않길 바란다. 그들의 내면에는 이미 그런 미소가 잠재되어 있는데 우리네 어른들이 쓸데없는 간섭으로 그런 미소를 앗아선 안 되리라. 우리 사회가 그들을 경쟁으로 내몰아 오히려 그 미소가 사라지게 해선 안 되리라. 온갖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이렇게 해야 한다.’ 혹은 ‘저렇게 해야 한다.’하며 어른들의 잣대로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재단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는 날 미래의 희망도 점점 엷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 속 허허 할아버지의 모습이 우리 내 부모의 보편적인 얼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 부모들이 할아버지의 여유로움을 세상 물정 모르는 뒷방 늙은이의 어리석음쯤으로 치부하는 학부모가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자녀를 대관령 양떼목장의 양들처럼 이리저리 내모는 부모 아닌 학부모가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기에 드리는 말씀이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본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에 한번 찾아뵙기도 힘든 할아버지는 적당한 때에 적당하게 그냥 의례적으로 인사차 방문해야할 그런 존재가 아닐는지? 어느 광고에서처럼 할아버지의 집에는 컴퓨터가 없으니 심심해서 빨리 떠나고 싶은 공간이나 되지는 않을는지? 그리하여 그저 허접한 정보 나부랭이를 아무 생각 없이 실어 나르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매몰되어 정작 할아버지의 인생이 담긴 소중한 지혜는 매몰차게 팽개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를 찾아주고 싶다. 할아버지의 존재를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얘기를 나누고 싶다. 단지 ‘허허’하고 어물쩡 넘기지 않고 ‘내 할아버지’를 주제로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 할아버지 그리기 수업도 좋을 성 싶다. 아이들이 자기 할아버지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