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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1976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42쪽 | 525g | 153*225*30mm
ISBN13 9788932008486
ISBN10 893200848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광장이 없는 밀실과 밀실이 없는 광장-남과 북의 분단과 대결을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이념적으로 접근한 현대 한국 문학의 고전, 주인공 이명준의 비극과 갈망은 우리 자신,우리 민족의 바로 그것이다.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어느 모임에서나, 판에 박은 말과 앞뒤가 있을 뿐이었다. 신명이 아니고 신명난 흉내였다.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였다. 흥이 아니고 흥이 나나 흉내였다. 믿음이 아니고 믿음의 소문뿐이었다. 월북한 지 반년이 지난 이듬해 봄, 명준은 호랑이 굴에 스스로 걸어들어온 저를 저주하면서, 이제 나는 무얼해야 하나? 무쇠 티끌이 섞인 것보다 더 숨막히는 공기 속에서, 이마에 진땀을 흘리며, 하숙집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큰 새와 꼬마 새는 바다를 향하여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바다. 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줄은 처음 알아본다. 부채꼴 서북까지 뒷걸음질친 그는 지금 핑그르 뒤로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 p.113
사람의 몸이란, 허무의 마당에 비친 외로움의 그림자일 거다. 그렇게 보면 햇빛에 반짝이는 구름과, 바다와 뫼, 하늘, 항구에 들락날락하는 배들이며, 기차와 궤도, 나라와 빌딩 모조리, 그 어떤 우람한 외로움이 던지는 그림자가 아닐까. 커다란 외로움이 던지는, 이 누리는 그 큰 외로움의 몸일 거야. 그 몸이 늙어서, 더는 그 큰 외로움의 바람을 짊어지지 못할때, 그는 뱄던 외로움의 씨를 낳지 .그래서 삶이 태어난 거야. 삶이란, 잊어버린다는 일을 배우지 못한 외로움의 아들.
--- p.86
비린내 나는 살갗 검은 여자들이, 꼬챙이로 고기를 꿰어 광주리에 옮기면서, 목쉰소리로 셈을 외친다. 한나히요, 두흘이요, 서어히요, 가락을 붙인 셈 소리는 성의 구별을 잊게 한다. 저 여자들도 삶의 뜻을 가끔 생각할까? 아마 결코 않는다. 철학은 한가에서 온다고, 무엇에서 비롯했건 교육받은 숱한 사람들에게, 생각한다는 버릇이 붙어버렸다는 일은 물리지 못한다. 아가미처럼 이루어진, 이 '생각'이라는 가닥을 떼어버리면, 그들은 죽는다. 아가미를 떼지 않고 매듭을 푸는 길만이, 사실에 맞는 처방이다.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p.78-79
관(棺) 속에 누워 있다. 미이라. 관 속은 태(胎)집보다 어둡다. 그리고 춥다. 그는 하릴없이 뻔히 눈을 뜨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몸을 비틀어 돌아 눕는다. 벌써 얼마를 소리 없이 기다려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몇 해가 되는지 혹은 몇 시간인지 벌써 가리지 못한다 혹은 몇 분밖에 안 된것인지도 모른다. 똑똑. 누군가 관 뚜껑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요? 저에요. 누구? 제 목소릴 잊으셨나요. 부드럽고 다뜻한 목소리. 많이 귀에 익은 목소리. 빨리 나오세요. 그 좁은 곳이 그렇게 좋으세요? 그리고 춥지요? 빨리나오세요. 따뜻한 데로 가요. 저하고 같이.
--- p.

회원리뷰 (39건) 리뷰 총점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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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읽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책*자 | 2014.06.1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광장이라는 단어를 보고 듣는 순간 떠오르게 하는 것은 넓고 자유롭다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접해보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이명준이 말하는 광장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 정치의 광장을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서 광장으로부터 참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잘 비춰주고 있고 한국 경제의 광장에서도 매우 비판적인 생각;
리뷰제목

광장이라는 단어를 보고 듣는 순간 떠오르게 하는 것은 넓고 자유롭다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접해보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이명준이 말하는 광장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 정치의 광장을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서 광장으로부터 참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잘 비춰주고 있고 한국 경제의 광장에서도 매우 비판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또 명준이 생각하는 아버지에 대한 광장의 의미는 다른 동네에 자리 잡고 그 사이에는 기관총이 걸려있는 곳이다. 이렇게 광장의 의미는 현대와는 다르게 이 시대상의 배경으로 짜여진 광장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의 내용을 들여다보자.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 그는 항상 일상에서의 불만이 많아 보였다. 아무 일에도 흥이 안 나는 자신의 현재 삶과 대비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쫓아가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비치는 단단함 속에 젖어가면서 살 수 있는 삶. 명준이 찾는 삶이다.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을 때 명준은 사랑방으로 영미 아버지한테 불려간다. 명준의 아버지가 평양 방송의 대남 방송 시간에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명준은 결국 경찰서에 가서 구타를 받고 조사를 당한다. 이러한 남한의 현실을 인지하고 그 현실에 괴로움을 느낀다. 이러한 괴로움을 최소화 시키고자 강윤애 라는 아이와의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괴로움을 최소화 시킬 수 없어서 결국 월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북한도 자기가 생각하는 광장, 삶을 찾을 수 없어서 실망한다. 명준이 북한에 와서 처음으로 일한 것이 신문사이다. 하지만 신문사 같은 데 있었다는 일이 좋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신문사를 그만두고 야외극장 짓는 일에 의용 봉사원으로 일하던 중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져 오른쪽 허벅뼈에 금이 가고 말았다. 병원침대에 누워 있던 명준의 병실의 문이 열리고 위문으로 여성 동무들이 왔는데 그 중에 국립극장 소속 발레리나인 은혜를 만나게 됐다. 그리고는 남한에서와 같이 현실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은혜에게 집착을 한다. 하지만 은혜는 예술제가 있어 모스크바로 가게 된다고 한다. 하필 모스크바에 가는 날 전쟁이 일어났다. 낙동강에 전투를 배치 받은 명준은 결국 동굴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뜻밖에 간호병으로 지원한 은혜의 목소리를 듣고 은혜를 만났다. 하지만 얘기를 나누던 중 그녀는 갑자기 죽고 말았다. 결국 밀리는 전투에 의해 명준은 포로수용소로 가게 됐다. 장교들의 어떤 질문에도 명준은 중립국 이란 단어만 말하고 결국 중립국으로 가는 배 타고르호에 타게 된다. 하지만 명준에게 마지막으로 두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른 광장 바다였다.

이렇게 내용이 끝나는데 난 이 글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이명준을 계속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삶을 꼭 정직하게 바르게만 살아야 되는가? 왜 꼭 완벽하게 살려고 하는가? 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이 시대에 살아보지 못한 내가 할 생각은 아닌 것 같지만 만약 이명준이 살아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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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읽고..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w*******1 | 2014.06.1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최인훈은 한국의 분단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중에 광장이란 책은 최인훈 소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소설로서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소설이다. 그 당시에는 아직 사상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다가 기존과 다른 사상들도 생겨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서 주인공처럼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인 이명준은 그러한 사람들을 나타내;
리뷰제목

최인훈은 한국의 분단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중에 광장이란 책은 최인훈 소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소설로서 남북한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소설이다. 그 당시에는 아직 사상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다가 기존과 다른 사상들도 생겨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서 주인공처럼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여기서 주인공인 이명준은 그러한 사람들을 나타내고, 그렇기 때문에 책의 내용에서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사상적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려움을 느꼈던 점은 일단 시간순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회상과 현실의 이야기를 반복하여서 헷갈렸고 또 주인공의 생각이 철학적이어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이 간혹 있었다.

남한에서 아버지 친구 집에 얹혀살고 있던 이명준은 아버지의 대남 방송 활동인해 빨갱이의 자식이라고 낙인이 찍히고 만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의 의견을 묵살하는 형사들과 이런 남한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 이명준은 월북을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새로운 자유를 원했던 그에게 북한은 강압적인 명령과 복종만을 요구했으며 활기찬 삶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배에 올라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인도)으로 가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사이 그는 윤애와 은혜를 만나게 되었는데 남한에서 윤애는 그를 뿌리쳤고 은혜는 자신의 일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명준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그를 북한에 남겨둔 채 모스크바로 떠나게 된다. 그러나 명준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한 은혜가 자원으로 간호병이 되어 그에게 돌아왔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지만 낙동강 전투에서 그의 아이를 품은 채 전사하게 된다. 중립국으로 가는 배안에서 명준은 감시당하는 느낌에 괴로워했고 곧 그 원인이 갈매기 두 마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 갈매기를 명준은 은혜와 자신의 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후 푸른 광장(바다)을 그리며 자신의 몸을 바다 속으로 던짐으로써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당시 급박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지만 만약 이명준이 빨갱이로 몰리지 않았더라면 그가 과연 자살까지 택했을 것인가에 의문이 든다. 만약 아무것에도 관여 되지 않았어도(변 선생님처럼) 남한에서 억압을 받았을까? 마치 남한의 사상이 잘못된 듯 북한의 사상이 잘못된 듯 비난하는데 내 생각엔 그저 그가 운이 안 좋은 것이라고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탓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것에도 관여되지 않았던 정말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억압받고 있다고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북한제외) 딱히 건들일 일도 없는데 왜 자발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괴롭히겠는 가 그냥 이명준의 운명이 안 좋았던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조금 세게 말해서 이명준이 지나친 피해망상에 빠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또 맘에 안 들었던 점이 있었는데 여자를 한낱 짐승으로 표현하고 함부로 대한 점이다. 이후에 명준이 윤애와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윤애가 태식과 결혼한 상태였고 명준은 그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애를 겁탈했다. 남의 자유를 함부로 빼앗는 사람이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고 사회를 비난하는 건 정말 염치없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명준의 상황을 동감하는 몇몇의 글을 보았는데 나는 반대로 그를 비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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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율, 전율, 전율, 최인훈의 광장,구운몽_뻑보이(ffuckboy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M*****g | 2013.11.11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사기 캐릭이라는 말이 있다. 캐릭터(보통 인물 혹은 게임에서의 유닛)가 주변과 비교하여 너무나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쓰는 말이다. 그 능력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말이 안되는  크기이다 보니 사기캐릭이라는 말이 붙어있는 것이다.   광장을 읽으며, 그리고 읽고나서 이 작가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함께 가장 많이 든 생각이 이것이었다. 사기캐릭.  ;
리뷰제목

사기 캐릭이라는 말이 있다.

캐릭터(보통 인물 혹은 게임에서의 유닛)가 주변과 비교하여 너무나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쓰는 말이다. 그 능력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말이 안되는  크기이다 보니 사기캐릭이라는 말이 붙어있는 것이다.

 

광장을 읽으며, 그리고 읽고나서 이 작가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과 함께 가장 많이 든 생각이 이것이었다. 사기캐릭.

 

역사상 사기캐릭은 많다. 모차르트나, 니체, 피카소 등. 그러나 그들이 살았던 장소와 시간은 나의 그것과 너무나 멀리 있기에 그런 느낌이 덜했다.

그냥 책속, TV속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내 바로 옆의 사람같지 않은 그 아스라한 비현실감.

 

그런데 최인훈은 아니다. 그는 살아있다. 지금 나와함께 공기를 마시고 있으며, 그가 살았고 또 살아내고 있는 곳이 또한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이 땅과 이 시대에 같은 선조를 가지고 비슷한 겪음을 가지고(그것이 직접이든 간접이든) 살아가는 바로 내 옆에 있는 그런 사람말이다.

 

이러한 지극히 현실적인 그가 가진 압도적인 존재감과 그 능력의 비현실감은 나를 흥분에 몸부림치게 했다. 덜덜떨리는 느낌이 가슴이 벅차고 답답한 그 느낌이 나와 함께했고 지금도 내 곁에 있다.

 

나는 그의 작품을 이제야 읽은것에 감사한다. 그나마 책이라도 좀 읽고 생각이라도 좀 할 수 있는 지금 2013년, 서른 여섯의 내게 다가온것에 감사하다. 조금만 앞섰어도 나는 지금 느낀 것의 십분의 일도 제대로 느끼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글을 1960년에 썼다. 지금으로부터 53년전.

그의 나이 스물 다섯에.

 

아아!!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보면서 타올랐던 그 미친 존재감에 대한 시샘과 경외를 보면서도 나는 그네로 부터 너무 멀리 살기에 그것이 뭔지 잘 느끼지 못했는데, 1960년에 25세의 최인훈은 군대에서 이 글을 썼다. 이 엄청나게 아름답고 절절하고 깊은 글을... 그당시 우리나라 교육환경은 어땠을까? 그당시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어땠을까? 그당시 먹고사는 문제는 어땠을까? 그당시 군대란 어땠을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그는 이미 초판 서문에 니체를 논한다.

제대로 된 번역이나 있었을까?

내가 얼마전 읽은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는 고작 2000년대 이후에 나온 제대로 된 번역판이 아니던가? 니체 뿐이랴? 그가 글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그 생각의 깊이, 공부의 깊이, 바라봄의 깊이. 그것이 과연 스물다섯의 내가, 아니면 21세기, 지금을 사는 누구라도 감히 흉내나 내고 이해나 할 수 있는 수준이던가?

 

아아, 이 작품은 그정도로 압도적이고 압도적이고 압도적이다.

이 작품은 그정도로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이 작품은 그래서 더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프다.

 

내가 한국어를 읽을 수 있어 이 작품을 원어로 본것에 감사하다. '광장'으로 인해 아직 살아계신 '최인훈'으로 인해 정말 미치도록 행복하다.

 

이 작품집은 그가 60년에 쓴 광장과 62년에 쓴 구운몽이 함께 들어있다.

이 책의 출판사와 같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내가 지금 읽은 '최인훈 전집'판이 아닌, 소설 명작선 본도 팔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살펴보니 내용은 1989년 개정된 전집본과 같으나, 본 판에 실린 머리말이나 해설이 없이 1976년 판까지의 서문만 있으므로, 사서 읽으려거든 이 전집판을 읽기 바란다. 

 

저자는 이 '광장'을 1960년 발표한 이후, 새로 출간될 때마다(계기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작품을 고쳐썼다. 문체를 일부 바꾸고, 불명확 했던것들을 고치고, 한자어를 우리말로 고치는등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에따라 서문도 굉장히 많은데, 작품을 읽기전에 보았던 서문은 읽고 난 후 완전히 다른 무게와 감동으로 다가왔다. 53년전에 나온 이 위대한 작품을 나같은 젊은이가 보기 쉽도록 더욱 쉽고 완벽하게 다듬어낸 작가에게 감사하다.

 

광장이 나같은 일반인과 소통할 수 있는 그의 천재성의 발현이라면, 구운몽은 그 천재의 자기확인 작품이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을 듯 하다. 즉 구운몽은 우리같은 놈들은 잘 이해하고 아주 깊이 속속이 느끼기에는 좀 힘든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정말 꿈꾼것 같은 모든것이 뒤죽박죽인...

그래서 일단 구운몽은 이정도로 하고, 광장을 읽으면서 아름답거나 인상적인 구절을 몇가지 발췌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평을 가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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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몸을 따른다. 몸이 없었던들, 무얼 가지고, 사람은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보고지라는 소원이, 우상을 만들었다면,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몸이란, 허무의 마당에 비친 외로움의 그림자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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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든, 다른 사람에게 만지우고 잡히는 걸 싫어하지만, 애인한테만은 다르다고 보아야 했다. 그런데 윤애는 곧잘 그를 밀어내는 것이었다. 그럴 때 그는 창피스러웠다. 그녀가 고분고분하면 좋아라 하고, 마다하면 비로소, 그녀도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 아니고, '사람'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람'과 부딪친 것을 창피를 당했다고 여겼다니, 남 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었을까. 살을 섞는 데서 그녀가 어느 만큼한 즐거움을 가지는지, 그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명준은 그 일을 실존 연습이라 불렀으나 그가 보건데 그녀의 답안은 썩 뛰어난 편은 아닌 것 같았다. 또는 그의 출제 방법이 나빴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없으면 몸은 빈집인 모양이지. 지금에 와서는 두 사람의 잘못을 가릴래야 가릴 수 없다. 다만, 어떤 두 남녀가 서로의 몸을 알았달 뿐 아니라, 서로가 좋아서 그렇게 했다면, 모든 허물은 덮어지고도 남는 것이 아니냐고 달래보는 길밖에 없다.

더구나 이미 더 이어질 길이 막혀버린 지난 일이고 보면, 피고가 유리한 쪽으로 풀이하는 것이 어느 편을 위해서나 좋을 일이다. 그녀와 만나고 헤어지면 으레껏 사로잡히게 되던, 죄지었다는 느낌. 어찌 보면 그것은 커다란 오만이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했다는 생각은, 이긴 사람의 느낌이다. 과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얼마만큼이나 해칠 수 있을까. 남의 앞길을 끝판으로 망쳐놓았다는 생각이 죄악감이라면, 그는 하느님의 자리를 도둑질하는 것이 된다. 사람은 사람의 팔자를 망치지 못한다. 다만 자기의 앞길을 망칠 뿐이다. 어떤 뜻에서건 나와의 사귐은, 윤애에게 한 가지 겪음이었을 거다. 그 겪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녀를 얕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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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일본놈들 밑에서 벼슬을 지내고 아버지 같은 애국자를 잡아죽이던 놈이 무슨 국장, 무슨 처장, 무슨 청장 자리에 앉아서 인민들을 호령하고 있습니다. 남조선 사회는 백귀 야행하는 도시 알 수 없는 난장판이었습니다. 청년들은, 섹스와 재즈와 그림 속의 미국 여배우의 젖가슴에서 허덕이지 않으면, 재빨리 외국인을 친지로 삼아서 외국으로 내빼고 있었습니다. 유학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그 험한 사회의 혼탁에서 잠시 몸을 빼고, 아른다운 아내와 쪼들리지 않을 만큼 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간판과 기술을 얻기 위해서, 외국으로 간 것입니다. 부르주아 사회의 가장 실팍한 뼈대를 이루는, 약삭빠른 수재들 말입니다. 이도저도 못 하는 우리 같은 것은, 철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19세기 구라파의 찬란한 옛날 얘기책을 뒤적이면서, 자기 자신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 사람이 남조선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심장의 소유자들입니다. 젊은 사람치고, 이상주의적인 사회 개량의 정열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그들은, 남조선이라는 이상한, 참으로 이상한 풍토 속에서는 움직일 자리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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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껏해야 '일찍이 위대한 레닌 동무는 말하기를.....' '일찍이 위대한 스탈린 동무는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위대한 동무들에 의하여, 일찍이 말해져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인제 아무도 위대해질 수 없습니다. 아 이 무슨 짓입니까? 도대체 어쩌다 이 꼴이 된 겁니까?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적 현실의 모든 경우에 한결같이 적용되는 단 한 가지의 처방을 내린 것으로 해석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이란, 정확하게는, 그가 자기 시대를 분석한 그의 저술 속에서 쓴, 방법론을 가리켜야 합니다. 이론 속에 엉켜 있는 방법과 정책이 분리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이론이든 마찬가집니다. 정책에 대해서는 방법론의 창시자조차도 반드시는 정확하달 수 없습니다. 하물며 계승자인 경우에는, 어느 누구도 해석권을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위대한 동무들도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었을 리가 없고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어떤 결정된 진리만을 믿은 게 아니고 진리는 더 고치는 것이 용서 안 될 만큼까지 최종적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는 태도까지 믿은 것입니다. 수많은 고결한 심장의 소유자들이, 이런 공화국을 만들려고, 중세기의 순교자들보다 더 거룩한 죽음을 한 건 아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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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욕망'이 터부로 되어 있는 고장. 북조선 사회에 무겁게 덮인 공기는 바로 이 터부의 구름이 시키는 노릇이었다. 인민이 주인이라고 멍에를 씌우고, 주인이 제 일하는 데 몸을 아끼느냐고 채찍질하면, 팔자가 기박하다 못해 주인까지 돼버린 소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걸음을 떼어놓는다. '일등을 해도 상품은 없다'는 데야 누가 뛰려고 할까? 당이 뛰라고 하니까 뛰긴 해도 그저 그만하게 뛰는 체하는 것뿐이었다. 사람이 살다가 으뜸 그럴듯하게 그려낸 꿈이, 어쩌다 이런 도깨비놀음이 됐는지 아직도, 아무도 갈피를 잡지 못해서, 행여 내일 아침이면 이 멍에가 도깨비 방망이로 둔갑할까 기다리면서. 광장에는 꼭두각시뿐 사람은 없었다. 사람인 줄 알고 말을 건네려고 가까이 가면, 깎아놓은 장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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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준은, 대들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숨을 죽였다. 그를 향하고 있는 네 개의 얼굴. 그것은 네 개의 증오였다. 잘잘못간에 한번 윗사람이 말을 냈으면, 무릎 꿇고 머리 숙이기를 윽박지르고 있는 사람들의, 짜증끝에 성낸, 미움에 일그러진 사디스트의 얼굴이었다. 명준은 문득 제가 가져야 할 몸가짐을 알았다. 빌자, 덮어놓고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자. 그의 생각은 옳았다. 모임은 거기서 10분 만에 끝났다. 명준은 사무친 낯빛을 하고, 장황한 인용을 해가며, 허물을 씻고 당과 정부가 바라는 일꾼이 될 것을 다짐했다. 지친 안도감과 승리의 빛으로 바뀌어가는 네 사람 선배 당원의 낯빛이 나타내는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명준은, 어떤 그럴 수 없이 값진 '요령'을 깨달은 것을 알았다. 슬픈 깨달음이었다. 알고 싶지 않았던 슬기였다. 그는 가슴에서 울리는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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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네."

고즈넉이 네 하는 이 짐승이 사랑스러웠다. 나는, 밖에서 졌기 때문에, 은혜에게 이처럼 매달리는 걸까. 이긴 시간에도 남자가 이토록 사무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아마 없을 테지. 졌을 때만 돌아와서 기대는 곳. 기대서 우는 곳. 철학을 믿었을 때, 그녀들에게 등한했었다. 사회 개조의 역사 속에 새로운 삶의 보람을 걸어보려던 월북 직후의 나날, 윤애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나한테 무엇이 남았나? 나에게 남은 진리는 은혜의 몸뚱어리뿐. 길은 가까운 데 있다?

명준은 거칠게 그녀를 껴안았다. 그의 품속에서 그녀는 눈을감았다.

늘 그랬다. 이 여자가, 인민을 위한 '예술 일꾼'이며, 인류의 역사를 뜯어고치는 거창한 대열에 발맞춰나가는 '여성 투사'라? 좋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은혜다. 내 거다. 그 밖에 그녀가 되고 싶어하는 여러 것일 수 있다. 그는 그녀의 뺨에 자기의 그것을 비볐다. 도톰한 입술을 깨물어 열고 부드러운 혀를 씹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방안은 어두웠다. 그는 한 팔로 그녀를 받쳐안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턱을 만져본다. 목을 더듬었다. 가슴과 허리를 짚어 내려갔다. 벅찬 깨달음을 준 다리를 쓸었다. 몸의 마디마디 그 자리를 틀림없이 알고 싶었다. 움직일 수 없이 자기에게 기대는 따뜻한 벽을 손으로 어루만져, 벽돌 하나 하나를 다짐해보고 싶었다. 손이 떨어지면 그것들은 자기한테서 떠날 것만 같았다. 순례자가 일생에 몇 번이고 성지를 찾아 의심을 죽이고 믿음을 다짐하듯이, 손에 닿고 만져지는 참에만 진리는 미더웠다. 남자가 정말 믿을 수 있는 진리는, 한 여자의 몸뚱어리가 차지하는 부피쯤에 있는 것인가. 모든 우상은 보이지 않는 걸 믿지 못하는 사람의 약함때문에 태어난 것. 보이지 않는 것은 나도 믿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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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들려오는 사람들을 고문하는 데도 지쳐버린 때였다. 처음에는 사람의 몸을 짓밟는 악한 기쁨이 있었다. 자기 팔다리의 힘찬 움직임이, 다른 한 사람 위에 불러일으키는 움직임은, 이명준에게 몸의 길을 믿게 해주었다. 그의 팔에 감긴 띠가 그들의 등에 떨어질 때, 희생자들은 에누리없이 곧이곧은 외마디 소리를 울려주었다. 그는 팔을 놀리면서 희생자들이 그들의 한창때에 어떠했을까를 그려보았다. 흰 칼라가 말쑥한 양복에 윤나는 구두를 신고 돌아다녔을 거다. 그 치사한 악덕으로 번 그들의 돈으로, 만화보다 더 초라한 조국에서, 자기들만은 서양 사람들의 자리에서 사는 듯한 꿈속에서 살아온 그들일 것이었다. 백 사람이 나무 뿌리를 먹는 갚음으로만 한 사람이 파리제 화장수를 쓸 수 있는 슬픈 틀 속에서, 아무 뉘우침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란 걸 떠올리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제학의 추상적인 법칙을, 이명준 자신의 주체적 증오로 옮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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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기까지 끝내 배우지 못한 무엇인가를 S서 건물 지하실에서 배우려 했다. 역사를 따라잡기 위해, 잡혀온 인간들이 밉상스런 인민의 적이라는 느낌을 자기 속에 키우기 위해서, 이명준은 가죽띠를 휘둘렀다. 희생자들이 나타내는 되받음도 가지가지였다. 의젓하려 애쓰는 사람도 있었다.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는 사람도 있었다. 비굴한 사설을 늘어놓으며, 매 한 번마다 부서지는 소리를 내는 자. 고문을 하는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불러일으크기 위해서 아리송한 눈의 연기를 하는 지능족. 아픔을 받아들이는 나름의 모양을 치르면서, 그는 점점 시들해갔다. 태식을 고문했을 때 느꼈던 그런 싱싱한 죄악의 기쁨은 아주 짧은 동안에 사라져갔다. 덮개를 씌운 전등에서 비치는 동그란 불빛 아래, 그가 내리치는 가죽띠에 몸부림치는 몸은, 인민의 적이니, 증오할 자본주의자니, 민족반역자니, 간첩이니, 그런 버젓한 것이 아니었다. 옷을 걸치고, 말을 하는, 젖먹이 짐승의 하나일 뿐이었다. 처음에 그들이 보여주는 괴로움의 흉내는 곧이곧은 걸로 비쳤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바랄 수 있는, 가장 알짜 반응인 것 같더니.

그는 끝내, 윤애의 몸에서 똑똑한 응답을 받아보지 못했었다. 깡그리 그녀를 차지했다고 믿기가 무섭게 그녀가 보이곤 하던, 알 수 없는 버팀은, 유리를 사이에 두고 물건을 만지려고 할 때처럼, 밑창 없는 안타까운 허망 깊이 그를 차넣었었다. 사람의 사귐이 몸의 그것조차도 얼마나 믿지 못할 길인가를 말해주었다.

고문은 그렇지 않다고 처음에 생각한 것이다. 그가 준 팔의 힘에 꼭 맞먹는 외마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믿은 것은, 그러나 잘못이었다. 엄살을 부리는 사람이 있었고, 참아내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는 쪽과 받는 쪽의 셈을 헛갈리게 했다. 다섯을 줬는데 여섯을 받는 사람과, 넷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그 어긋남을 줄이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매를 더하는 것, 꾀죄죄한 체면을 차릴 수 없도록 녹초를 만들어버리는 길이었으나, 그 길은 길이자, 벼랑 끝이었다. 저쪽을 없애버리고는 내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분별이 없어져버린 몸은 어울릴 값어치가 없었다. 지칠 대로 지쳐서 함부로 지르는 허소리를 참다운 항복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의식을 되찾고 숨을 돌리자마자, 그들은 또다시 점잔을 부리려 했고, 또 녹초를 만들면 의식을 잃은 살덩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명준은, 고문에서도 졌다. 그리고 그 무렵, '역사'를 앞지르는가 싶던 '어른'들의 '밖'의 움직임도 '역사'의 느린 걸음걸이에 져가고 있었다.

 

현대 무기라는 매개물은, 싸움터에서조차 몸과 몸의 만남을 가로막는다. 더구나 소총이 미치지 못하는 사이를 두고 포격만 해대는 전쟁은 나쁜 장난 같았다. 지지는 햇볕 아래 멀리 울리는 포소리를 들으며 참호에 서 있으면, 이 거창한 죽임의 마당이, 문득 자기와는 동떨어진 먼 이야기인 것만 같은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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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해주세요."

S서 이층에서 윤애도 그더러 용서해달라고 했다. 은혜도 지금 용서를 빈다. 윤애와 은혜의 똑같은 말은, 뜻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다. 윤애의 말은 악마에게 빌붙는 천사의 그것이었다. 은혜의 말은 애인 앞에 뉘우치는 죄지은 여자의 그것이다. 하지만 난 윤애에게 끝내, 악마로 대하지는 못했지. 놓아보낸 건 잘했어. 태식을 도망시킨 것도 잘했어. 은인의 아들을 놓아보낸 것이라 생각지 말자. 윤애의 남편을 살려준 것이다. 윤애는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으리라. 설령 나타난다 하더라도 다시는 윤애일 수 없다. 그녀 말대로 사정을 알았으니까. 이렇게 은혜가 다시 내앞에 있잖아? 게다가 용서까지 빌잖아? 하구말구. 용서하구말구. 무얼 용서하라는지. 용서고 뭐고 할 만한 일인지는 몰라도 은혜, 네가 용서하라니 용서하구말구. 난 이제 다른 일에는 아무 자신이 없어도 용서하는 재주만은 자신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아마 전생에 퍽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일 거다. 그러니 그토록 용서하라고 외쳤지. 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 있거든 이 여자를 돌로 치라 했을 때, 분명히 저도 넣어서 한 말이야. 예수처럼 훌륭하진 못해도 너 하나는 용서하겠어. 그는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추슬러올리며, 그녀의 귀에 입을 댔다.

"사랑해."

"모스크바에서도 아무 재미 없었어요. 잘못했어요. 전쟁으로 귀국한 후 모집이 있었을 때, 전 간호병으로 제일 먼저 지원했어요. 꼭 뵙고 용설 빌고 싶었어요. 이젠 죽어도 좋아요. 잘못했어요. 제가 미우시더라도 용서해 주세요."

"사랑해."

"용서한다고 말씀해주세요."

"사랑한다는 말은, 용서한다는 말을 열 번 거듭한 거나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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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멎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명준은 깊은 구렁에 빠졌다. 북으로 돌아갈 생각은 아예 없었다. 아버지가 전쟁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알 수는 없었으나, 설령 살아 있다 하더라도 그 한 가지만으로 북을 택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살 테지. 효도같은 걸 하기엔, 현실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리고 북녘 같은 데서 살붙이란 무엇이던가. 그러고 보면, 이제 그가 북으로 가야 할 아무 까닭도 없었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은혜도 없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회에 들어 있다는 것은 풀어서 말하면, 그 사회 속의 어떤 사람과 맺어져 있다는 말이라면, 맺어질 아무도 없는 사회의, 어디다 뿌리를 박을 것인가. 더구나 그 사회 자체에 대한 믿음조차 잃어버린 지금에. 믿음 없이 절하는 것이 괴롭듯이, 믿음 없이 정치의 광장에 서는 것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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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년의 뜰 필사가 끝나면, 광장을 필사할 생각이다.

나에게 이렇게나 큰 감동을 준 작가와 이 작품에 다시한번 머리숙여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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