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사는 동안 내 머릿속에선 혁명이 일어났다.”
어떤 빛깔을 지닌 사람이든 파리에서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30만 독자가 열광한 《스페인, 너는 자유다》의 작가 손미나, 그녀가 파리에서 배운 ‘내 삶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법!
‘파리에 살고 싶다’는 것은 내 오랜 소망이었다. 그러나 서른 살이 넘어서도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내 인생에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커다란 파도가 밀려 왔다. 세상과 격리되어 시체처럼 지내던 날들... 악몽 같은 시간을 온몸으로 버티고 나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이제야말로 파리로 가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많이 버릴수록 삶은 가벼워지고 자유는 커지는 법.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유와 행복을 준 파리. 시들한 내 삶에 선사하는 찬란하고 짜릿한 축제, 파리.
꿈의 도시 파리에선 누구나 꽃으로 피어난다. 파리에선 그대야말로 가장 눈부신 꽃이다.
스페인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스물두 살, 부모와 고국을 처음 떠나본 한국 여학생은 낯선 유럽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다가 우연히 선배로부터 파리 행 비행기 표 한 장을 얻게 되었고, 비행기 안에서 세네갈 출신의 갑부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는다. “꿈을 가진 젊은이는 무조건적인 호의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등을 두드려주던 아프리카 노신사의 도움으로, 무일푼의 가난한 유학생은 일류 호텔에 머물며 3일간 황홀한 파리 여행을 했다.
그 후로 십 년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문득문득 파리를 그리워하며 ‘파리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해 왔다. 이십대 초반의 여대생은 삼십대 중반을 넘긴 사회인이 되었다.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했으며, 이름 석 자가 박힌 책들이 서점에 쌓였고, 지구별 오대륙에 발자국을 남겼다. 이름난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잘 다니던 직장을 박차고 나와 여행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으며 결혼생활의 실패라는 악몽도 겪었다. 그런 즈음 십여 년 전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를 구해준 마술의 도시 '파리'로 가야 할 때가 기어이 왔다는 직감이 들었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팜므 파탈처럼 천의 얼굴을 간직한 '세계인의 수도' 파리, 그것도 에펠탑이 코앞에 보이는 곳에다 짐을 풀었지만, 첫날부터 날씨도 사람들도 웨이터까지 냉랭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가슴속에서 계속 열망하던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글은 한 글자도 써지지 않는다. 이웃집 여자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두꺼비집 화재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텔 신세를 지고, 갑작스런 탈진으로 911에 실려 가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나 점차 집앞 레스토랑의 무슈 피르맹 부부와 친구가 되고, 이웃집 마르틴과도 우정을 쌓고, 자전거를 타고 또는 뚜벅이로 파리 시내 곳곳을 누비면서 파리라는 도시와 점점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뿐인가, 밤잠을 못 자도록 괴롭히던 소설에의 열망은 죽고 싶을 만큼 바닥을 치더니 황석영, 김영하, 신경숙, 김탁환 작가의 격려와 조언대로 드디어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많이 버릴수록 삶은 가벼워지고 자유는 커진다.”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는 파리에서 3년 넘게 살면서 파리지앵의 삶과 철학과 스타일에 서서히 빠져드는 손미나 작가의 일상을 여러 감동적이면서도 눈물이 질끔 날 정도로 웃긴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언어와 습관, 교육, 사랑법 등 우리보다 한층 앞서나간 정신적 선진국으로부터 하나하나 삶의 방법을 배워가는 학습자로서의 모습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파리에 국한되지 않고 프로방스, 코트다쥐르 같은 프랑스의 아름다운 관광지와 봄레미모자, 이갈리에르, 아를 등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곳들, 세잔과 고흐의 삶과 고민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수준 높은 여행서의 느낌이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여행 작가에서 소설가로 탈바꿈하는 지난한 과정이 이 모든 여행과 꽉 맞물려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모습과 끝까지 자신의 희망을 관철해 나가는 인내심을 엿볼 수 있어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은 커다란 감동이 물결친다.
프롤로그 중에서
‘결혼생활의 실패’라는 파도와의 사투. 그 공포의 터널을 지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외출을 거부한 채 스스로 세상과 격리되었다. 커튼을 꼭꼭 닫아 암흑이 깔린 방에 시체처럼 누워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이 며칠 밤낮이었는지 모른다. 겨우 일어나 생활을 시작하긴 했지만 샤워를 하다, 수프를 끓이다, 혹은 텔레비전 퀴즈쇼를 보다가도 난데없이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요가를 시작하고 펀치 볼과 권투 글러브를 사들였다. 요가는 내 영혼에 평화를 되찾아주었고, 권투는 남은 울분을 털어내는 데 효과적이었다. 운동하는 것 이외의 모든 에너지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데 쏟아 부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발코니에 나가 햇살을 즐기며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수년 전부터 미뤄왔던 번역 일까지 실행에 옮길 용기를 냈다.
악몽 같은 시간을 그렇게 온몸으로 버텼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힘이 빠져버리기는커녕 그 어느 때보다 삶의 의욕과 자신감이 넘쳤다. 서핑을 하다 깊은 물에 빠졌던 소년이 보드 위에 올라 중심을 잡고 고래처럼 큰 파도를 즐기게 되었을 때의 기분이 그럴까. 300페이지가 넘는 장편 번역을 끝내고 아르헨티나 여행을 마친 2009년 봄, 그때가 바로 내가 파도 위로 올라선 순간이었다.
힘겨운 고비를 이겨내자 그제야 두려움이 사라졌다. 삶에 대한 공포는 정말로 위험에 처한 사람이 아니라, 정면대결을 피하는 자들의 몫임을 깨달았다. 다시 한 번 근사하게 파도를 타기 위해 새로운 바다로 옮겨가고픈 욕망이 꿈틀거렸다. 더 거칠고 높은 물결이 일겠지만 지금껏 보지 못한 풍경과 바다 속 세상 역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던 어느 날 베란다 청소를 하다가,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꽃나무의 바짝 마른 가지에 여리디여린 녹색의 새순이 돋아나 있는 것을 보았다. 죽어가던 생명이 살아나는 모습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십여 년 전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던 나를 구해준 마술의 도시 '파리'로 가야 할 때가 기어이 왔다는 직감이 들었다.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무인도에 가서도 살 수 있는 자유를 얻었는데, 내가 왜 망설이고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