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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

리뷰 총점9.4 리뷰 5건 | 판매지수 4,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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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2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372g | 140*220*30mm
ISBN13 9791186372722
ISBN10 118637272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

이 책에서 우리는 견디기 어려운 것을 견디고, 계속 살고, 계속 살리는 일에 관해 말하고자 했다. 거리 위의 고통을 고발하는 일과 몸의 고통을 살아가는 일을 함께 말하고자 했다. 질병, 나이 듦, 돌봄이라는 의제에서 사회적 맥락과 구성을 인지하면서도 지금 마주한 나날을 충만하게 산다는 것에 관해 말하고자 했다.

아플 때를 비롯해 고통의 시기에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압도적으로 중요한지, 그런 시기를 지나보거나 지켜본 적이 있는 이들은 모두 안다. 그런 땐 말과 살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말은 거의 살이며, 말은 살리고 죽이는 자신의 잠재력을 전부 현시한다.

지금 아픈 이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이들, 나이 들어가며 혹은 나이 들어가는 가까운 이를 보며 불안하고 겁나는 이들, 자신이 지나온 악몽 같은 시간을 삶의 일부로 끌어안으려 애쓰는 이들에게 이 책이 약상자였으면 한다. 이 책의 단 한마디라도 가닿는다면, 그래서 그 한마디가 덜 아픈 살로 돋아난다면 그보다 더 기쁘고 놀라운 일은 없겠다. 또한 이 책이 공구상자였으면 한다.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아프고 늙을 수 있는 사회, 정의로우며 심지어 기쁜 돌봄이 있는 사회라는 이상을 현실로 당겨오는 데 쓰일 도구를 담고 있었으면 한다. 우리를 낫게 할 말, 동시에 사회를 부수고 다시 지을 말을 만들고 싶다는 터무니없이 큰 욕심에서 조금이라도 선한 것이 탄생했기를 간절히 바란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엮은이의 말 메이
여는 글 김영옥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 전희경
‘보호자’라는 자리 전희경
‘병자 클럽’의 독서 메이
젊고 아픈 사람의 시간 전희경
치매,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이지은
시간과 노니는 몸들의 인생 이야기 김영옥

저자 소개 (5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프고 나이 들어가는 몸은 우리를 다른 장소로 데려간다. 때로 대단히 무서운 곳이기도 한 그 낯선 장소에 황망히 떨궈진 우리는 어떻게든, 산다. 살아 있으려는 발버둥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 p.5

이 책이 공구상자였으면 한다.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아프고 늙을 수 있는 사회, 정의로우며 심지어 기쁜 돌봄이 있는 사회라는 이상을 현실로 당겨오는 데 쓰일 도구를 담고 있었으면 좋겠다.
--- p.7

‘전 같지 않은’ 몸을 마주하게 되는 새벽 세 시를 떠올려보라. 가장 아끼는 음악의 축복 속에서 몽상의 글귀를 암송하고 사유의 문장들에 공명하며, 그렇게 자기만의 우주를 누리던 저 숱한 새벽 세 시의 시간들은 이제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몸이 우리를 데려가는 시간들로 바뀐다.
--- p.12

의존과 비참과 존엄은 그 ‘사이들’이 모조리 지워진 채 앙상하고 뻣뻣하게 부딪치며 서로를 부정하고 위협한다.
--- p.20

우리는 취약함을 극복할 수 있어서 시민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취약함을 공유하기에 시민이다.
--- p.64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 힘이다.
--- p.80

(보호자는) 아픈 사람의 고독한 시간에 함께 머무는 동시에, 안 아픈 사람들의 사회적 시간에도 머물러야 한다는 것, 그 두 세계와 두 시간을 오가며 조율하고 중재해야 한다는 것에 또 한 겹의 어려움이 있다. 잠을 잘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은행은 4시까지다.
--- p.98

돌보는 사람은 아픈 사람과 함께 질병을 경험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말하기 어렵고, ‘목격’되기도 어렵다(“내가/네가 아무리 힘들어봤자 아픈 사람만 하겠어?”). 그래서 간병하는 사람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아는 최대의 목격자는 환자다. 보호자는 환자와 자신, 둘만 아는 장면들 속에 조용히 고립된다. 그러나 ‘함께’ 고립된다 해도 ‘같은’ 현실에 고립되는 것은 아니다.
--- p.110

그러나 ‘토로’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토론’이다. 누군가의 토로를 수신하고, 돌보는 사람의 곁에 다가서고, 경청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문해력(literacy)이 문제다. 우리에게는 “그래도 환자가 제일 힘들지”라는 비교급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 나아가 “안 겪어봤으면 말을 말라”라는 토로의 이면과 행간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 p.123

가장 아팠던 시기에 나는 내가 ‘이곳’에 없다고 느꼈다. 나는 절벽에, 땅속에, 땅킅에, 황무지에 있었다. 이곳이 아닌 곳에 있다는 감각, 혹은 황무지를 끝없이 걷고 있다는 감각, 그건 오직 나만 겪고 나만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걸 아는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외로움은 센티멘털한 것이 아니라 혹독한 것이었다.
--- p.144

‘론리 플래닛’, 외로운 행성, 유명한 여행 가이드북의 이름이기도한 이 말이 어쩌면 질병이야기 책들을 분류하는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각자의 심연에, 각자의 벼랑에, 각자의 여로 위에 있는 아픈 사람들은 혼자 걸어가야 하지만 혼자만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질병 이야기의 저자들은 환우, ‘아는’ 사람, 경험자, 낯선 영토를 앞서 횡단한 사람들이며, 이들이 남긴 횡단의 기록은 가이드북이 될 수 있다.
--- p.162

진공 속에서 아픈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 속에서, ‘생애주기’의 시간표 속에서, 주변의 기대와 실망 속에서 아프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프다는 것의 의미와 위치에 대한 이야기다. 젊고 아픈 사람들은 눈앞에서 닫히는 문들을 계속 마주하며, 그 다음에 대해 질문하고 또 질문하다. 정답도 오답도 아닌 각자의 답들을 매일매일 고쳐 쓴다.
--- p.174

(아픈)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은 아프기 전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의 ‘건강 회복’이라고 보다, 그냥 ‘사는 것’ 자체다. 삶의 목적은 삶이다. 몸을 ‘막 쓰는’ 것만큼이나 몸을 잘 관리하는 것도, 몸을 수단으로 본다는 점에서 결국 관점은 같다. 젊고 아픈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그 반대다. 몸인 존재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꼭 건강하지 않아도 된다”.
--- p.194~195

젊고 아픈 사람들은 ‘낫거나 죽거나’라는 명령을 피할 수 있는 우회로를 찾아 헤매는 동안에도 여전히 간절히 ‘낫기’를 바라고, 가끔일지라도 진심으로 ‘죽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도 ‘낫거나 죽거나’의 이분법을 피해 가기 위한 우회로는 샛길처럼 계속 만들어진다.
--- p.204

“당신은 치매에 걸릴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문법적으로 특별한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은 어쩐지 어색하거나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우리에게 익숙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09

치매에 걸릴 준비를 하는 것, 혹은 내 주위의 누군가가 치매환자가 된 후에도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준비한다는 것은 치매가 예방되고 대비되어야 하는 불운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고 상상할 때에만 가능하다.
--- p.242

치매환자의 삶을 앗아가는 것은 치매 그 자체가 아니라 삶, 돌봄, 관계에 대한 협소한 이해일지도 모른다.
--- p.243

시간을 불가역적인 직선의 흐름으로 이해하고, 그에 따른 축적의 당위성을 앞세우는 것이야말로 ‘나이’의 상투적 이해에 핵심 아닌가. 이런 나이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나이가 들수록 덜 존재하고 더 결여하게 만든다.
--- p.269

늙어가는 이들이 변화하는 몸을 단순히 ‘기능들의 저하라는 노화의 관점’에서만 이해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변화하는 몸을 계기로 현재나 심지어 미래가 과거로 되접히는 이야기의 시간을 만나기도 한다. 여러 겹으로 덧써지며 동시에 지워진, 기억과 망각의 크고 작은 물결로 생의 시간을 이해하는 문리文理가 트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 p.269

나이가 들면서 몸의 기능들이 떨어지고 체력이 약해진다고 해서 나이 드는 사람의 몸을 그저 쇠락하는, 무엇이든 줄임으로써 가까스로 보존할 수 있는 존재로만 여기는 건 암묵적인 노년차별이다.
--- p.287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새벽 세 시는 당신에게 어떤 시간입니까?

대개는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시간이겠지요. 아주 간혹, 악몽에 눌려 잠시 깨있는 시간일 수도 있겠네요. 아, 볼일이 급해서 잠깐 일어나 있는 시간일 수도 있겠지요. 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 지르며, 제발 잠이 찾아오기를, 통증이 잦아들기를 바라고 바라는 시간,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못지않게 간절히 통증이 멈추기를 눈물을 누르고 누르며 기도하는 시간일 수도 있겠지요.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는 그런 몸들--아픈 몸들, 돌보는 몸들, 그리고 그 몸들이 서로 맺는 관계를 중심에 두고, 당신에게 말을 걸고 또 당신의 말을 듣고자 하는 책입니다.

책을 쓴 김영옥, 메이, 이지은, 전희경은, 병명은 다르지만, 상태는 다르지만, 모두가 한때 그리고 지금도 ‘아픈 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절실한 문제, 그리고 ‘아픈 몸’이, ‘돌보는 몸’이 미래의 자신의 몸일 수밖에 없는 모두에게 긴절한 문제일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연구에 몰두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그 첫 결실이 바로 이 책입니다.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 [‘보호자’라는 자리], [‘병자 클럽’의 독서], [젊고 아픈 사람의 시간], [치매,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시간과 노니는 몸들의 이야기] 등, 여기에 실린 여섯 편의 글들 제목은 어쩌면 그동안 당신이 한번도 곰곰이 생각해본 없는 말들, 또는 딱히 모르는 단어는 없지만 이리 모아놓고 보니 참 낯설고 불편한 말들이 아니었을지요? 아, “치매,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라니요.

소개글을 쓰는 저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시민적 돌봄, ‘병자 클럽’, 젊고 아픈 사람 등, 어쩌면 형용모순처럼 보이는 단어들이 나란히, 함께 있습니다. 궁금한데, 그만큼 피하고 싶은, 최대한 나중에 들춰보고 싶은 내용이 들어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지금이 아니라 멀고 먼 ‘이후’의 일이라고 미루고 미루었는데, 어느덧 저 역시 조금은 ‘아픈 몸’, 어설픈 ‘돌보는 몸’인 자리에 처했네요. 아마도 모두가 ‘곧’ 직면할 일들, 사건들에 조금 먼저 귀 기울여 보면 어떨지, 하는 ‘불편한’ 제안을 드려봅니다. [엮은이의 말]에서 옮긴 아래의 문장들이 이 책을, 이 책을 소개하는 저의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네요.

회원리뷰 (5건) 리뷰 총점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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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이 시간에 깨어있을 누군가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뻑* | 2020.06.04 | 추천3 | 댓글2 리뷰제목
 ‘새벽 세 시’라는 말에 깜빡 속을 뻔했다. 깨어있다면 감성을 누리기에 충분한 시간 아니던가.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밤, 아니 아침으로 향해가는 새벽 시간에 뭔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시간. 책을 읽어도 좋고, 누군가 깨어있는 사람 또 없을까 싶은 마음으로 라디오를 켜놓고 있어도 좋다. 미뤄두었던 정리하지 못한 책을 꺼내놓고 이삿짐 싸듯 정리해;
리뷰제목

 

‘새벽 세 시’라는 말에 깜빡 속을 뻔했다. 깨어있다면 감성을 누리기에 충분한 시간 아니던가.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밤, 아니 아침으로 향해가는 새벽 시간에 뭔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시간. 책을 읽어도 좋고, 누군가 깨어있는 사람 또 없을까 싶은 마음으로 라디오를 켜놓고 있어도 좋다. 미뤄두었던 정리하지 못한 책을 꺼내놓고 이삿짐 싸듯 정리해도 괜찮겠지. 뭐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만으로 기꺼이 깨어 있어도 좋은 시간이다. 그 시간에 깨어있는 게 내 의지라면 말이다. 이 책에서 마주하는 ‘새벽 세 시’는 내가 생각했던 감성과는 거리가 먼, 책임과 부담이 먼저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여러 이유로 겪게 되는 우리 몸의 변화가 가장 날카롭게 지각되는 시간이라고 했다. ‘통증의 들쑤심에 속절없이 지새우는 밤의 새벽 세 시를, 쏟아지는 잠을 떨치며 지친 몸으로 아픈 이의 머리맡을 지키는 새벽 세 시를, 나이 들어가며 ’전 같지 않은‘ 몸을 마주하게 되는 새벽 세 시’(12페이지)를 떠올려 보라고 말한다. 듣고 보니 몸에 찰싹 달라붙어 떼어지지 않는 삶의 무게를 보는 듯하지 않은가?

 

이 책은 우리가 아프고 나이 들며 살아가고 죽어가는 몸으로 사는 일에 관해 말한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삶의 그 과정이 적나라하게 들려온다. 그 과정에서 겪는 여러 가지 문제와 감당해야 할 일을 한 개인으로 몫으로, 가족의 일로 남겨둘 수 없다는 게 대다수의 생각이었다. 우리 모두 병명은 다를지라도 아픈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언젠가, 현재에, 앞으로의 어느 날에 그렇게 된다. 그래서 관심 두어야 할 문제들이다. 우리가 애써 무시하고 싶었던 고통과 질병을 마주하고, 그 정면에서 부딪히는 장면에 질문한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 할 상황을 마주한다면, 당신이 그 돌봄을 수행해야 할 자리에 있게 된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 사회가 같이 안아야 할 본질적인 문제를 꺼낸다.

 

보호자는 불현듯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히지만, 동시에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차마 도망치지 못한다. 이 ‘차마’에 담긴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많이 아픈 사람들 곁에서 돌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지금의 사회가 ‘보호자’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마음은 어째서 수시로 진창이 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지, 우리는 간병하는 이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같이’ 배우지 않는다면 아무도 배우지 못한다.(131페이지)

 

돌봄의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다. 가족의 일이니까 마음을 다해 보살피면 된다고 여기던 일에 위기는 찾아온다.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고 그 돌봄의 책임이 당연한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특성 때문인지 왜인지, 우리는 종종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가족같이’라는 말을 꺼낼 때가 많다. 서로 애틋하고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뜻일까? 이 말에 의미를 둔 적은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니 가족 같다는 말이 언제나 정이 넘치는 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돌봄의 위기가 그 ‘가족’에서 시작되고, ‘독박’에서 찾아온다는 말이 너무 와닿았다. 나도 한마디 거들면서 경험해본 사람만이 아는 그 양가감정을 슬쩍 꺼내놓아 본다. 상황이 그러하니까, 가족이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이런 이유로 누군가 독박 돌봄을 해야 한다면, 돌봄의 온전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는 한 사람은 온전한 마음으로 환자를, 가족을 돌볼 수 없다. 그러다가 환자를 방치, 학대하는 일도 생긴다. 어느 순간 간병인에서 가해자가 된 이들의 마음을 누가 제대로 읽어줄 수 있을까.

 

성장하고 독립하면서 인생을 꾸려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배워왔는데, 우리는 다시 독립적이지 못한 몸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우리가 찾아가는 젊음이 독립이었다면, 우리가 맞이하는 늙음은 의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존의 상황은 두렵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묻는 말에 나오는 답은 늙고 병든 몸은 비용이고 짐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동하지 못하고 도움이 되지 못하는 육체가 버겁다고 여긴다. 자신에게 찾아온 질병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돌봄을 피할 수도 없다. 치욕이라 여기는 돌봄과 아픔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언제부터 돌봄이 이렇게 고역이 되었나. 이 책으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우리나라의 돌봄 구조였다. 앞서 말한 독박 돌봄의 불균형이 돌봄을 긍정의 이미지로 보지 못하게 한다. 돌봄은 대개 가족 내 돌봄으로 이루어지고, 돌봄 노동자의 90% 이상이 여성이란다. 한국 사회가 만든 돌봄의 구조가 가족, 특히 여성에게 전가해온 현상이다. 그 안에서 돌봄은 고통과 희생이 되고, 때로는 학대와 방치에 가깝게 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돌봄 경험은 여성의 주도가 되지 못하고 남성이 돌봄 경험으로 기록한 책들이 더 많다. 웃기게도 이건 육아와 비슷한 흐름으로 보인다. 남성의 돌봄은 기록으로 남겨져 남다른 지식과 경험이 되는 현상이다. 왜 누가 하면 당연하고 누가 하면 배워야 할 지식이 되는가? 이는 여성의 모성과 돌봄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뿌리 깊은 인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한다. 우리 몸의 아픔과 돌봄 문제에서 같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사회 문제이다.

 

저자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하는 말은, 돌봄이 가정 안에서 누군가의 부담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거다. ‘시민적 돌봄’을 강조한다. 누구나 아프고 죽어가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인간이라면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비슷하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돌보고 돌봄을 받는 관계가 된다. 이는 각자가 겪는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시민으로 감당해야 할 ‘우리’의 일이라는 감각을 깨워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과 가정의 일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정책이 반영되어 이 문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절대 혼자 이룰 수 없는 집단이며,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공동의 부담이면서 ‘우리’가 되었을 때 받는 힘의 크기도 만만치 않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계속 말하고, 소통하며, 듣게 하는 이야기다.

 

부담인 줄 알면서도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에 다른 시선이 생긴다. 나는 환자로 누워있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보호자로 누워 있는 사람을 돌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가족의 일이었고, 누군가는 해야만 했던 일이 나의 일이 되었다. 갑자기 닥친 일이라 간병인을 구할 수 없던 그때 꼬박 일주일을 환자 옆에 있던 어느 날, 자주 마주치던 수간호사 선생님이 나에게 빨리 간병인을 구하라고 했다. 장기전이 될 텐데, 지금 이러면 보호자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다고. 간병인이 구해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간병 비용 부담도 상당했다. 어쨌든 나중에는 간병인과 교대하면서 병상을 지켰지만, 책에서 언급한 ‘독박’이란 분노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내 몸을 챙기지도 못하면서 쌓여가는 감정적 육체적 피로는 또 다른 고통을 낳고 있었다. 아, 이래서 학대와 방치가 생길 수 있다고 하는 마음의 경험을 했다고 해야 하나. 저자들이 들려주는 많은 경험과 통계 자료들이 내 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듯했다. 저자들은 한때, 그리고 지금 아픈 몸으로 살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이 더 절실하고 생생하게 들려오는 이유다. 건강하다고 여기는 이 몸이 언젠가 돌봄을 받는 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모두 아프고 늙으며 살며 죽는다. 이 모든 삶의 순간들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돌봄에 의존한다. 또한 의존하면서 의존하는 다른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돌본다. 내용과 형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돌봄은 언제나 상호적이며 쌍방향적이다. 의존과 돌봄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큼 더 다양하고 세밀하게, 복합적으로 발화되고 청취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돌봄이 어떤 노동이고 어떤 윤리적 가치인가를 차이 속에서 보편적 합의로 구성해내는 것은 어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공통과제다. (21페이지)

 

이 모든 돌봄의 시간, 돌봄을 주고받았던 관계는 ‘나’의 일부다. 각자, 혼자 알아서 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이다. (80페이지)

 

 

우리는, 누구나 새벽 세 시의 몸이 된다. 우리 몸이 늙어간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당신과 나, 모두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돌봄의 현실을 같이 마주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라고, 멀고 먼 일이라고 여길 텐가. 피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 마주침을 최대한으로 미루고 싶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 시간은 내 계획대로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이미 잘 안다. 어느 순간 우리 앞에 떡 하고 나타나 현실이 된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돌봄의 고립된 세상에 남겨지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나 혼자 부담하기에는 외롭고 힘든 시간이 될 간병에 힘이 되는 ‘토로’이자 ‘토론’의 이야기인 이 책이 조금은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 2 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3
고통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A***e | 2020.05.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평범한 여학생도 사랑에 빠지면 세익스피어나 키츠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 말할 수 있지만, 아픈 사람이 머릿속의 통증을 의사에게 묘사하려고 하면 언어는 즉시 말라버린다. -버지니아 울프'몸을 통제하는 나'에서 '몸이 통제하는 나'로 이동하는 낯설고 두려운 경험. 하지만 이 낯선 경험은 곧 '몸을 통제하는 것'을 사회생활의 기본으로 삼는 사회에 대한 질문이 될 수도;
리뷰제목
평범한 여학생도 사랑에 빠지면 세익스피어나 키츠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 말할 수 있지만,
아픈 사람이 머릿속의 통증을 의사에게 묘사하려고 하면 언어는 즉시 말라버린다.
-버지니아 울프

'몸을 통제하는 나'에서 '몸이 통제하는 나'로 이동하는 낯설고 두려운 경험. 하지만 이 낯선 경험은 곧
'몸을 통제하는 것'을 사회생활의 기본으로 삼는 사회에 대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질병은 삶의 한 부분임에도 '정상적'인 삶의 바깥에 있는 것, '예방'되어야만 하는 것,
만에 하나 발생했을 때는 '치료'함으로써 정상적인 삶 밖으로 추방해야 하는 것...

떠올리기 거북한 기억이 있다. 배변을 못하는 상태에 이른 아버지를 잠시 돌보던 그때.
당신이 느끼셨을 부끄러음과 민망함을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누구나 반드시 맞이하게될 그 순간을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그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반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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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아픈이들에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김*현 | 2020.04.1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노인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가고있다.노인은 꼰대같고 왠지 모르게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우리는 늙지 않나? 우리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고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그런데 이런 사회가 지속되면 우리의 미래조차 어두워진다.돌봄이라는 것 내가 돌보거나 돌봄을 당하는 것 아프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질병과 돌봄과 가까운 사회가 된다면 조금은;
리뷰제목
노인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가고있다.
노인은 꼰대같고 왠지 모르게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늙지 않나? 우리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고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회가 지속되면 우리의 미래조차 어두워진다.
돌봄이라는 것 내가 돌보거나 돌봄을 당하는 것 아프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질병과 돌봄과 가까운 사회가 된다면 조금은 아프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런 사회를 꿈꾸고 원하는 그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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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5건) 한줄평 총점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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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5점
책 진짜 좋습니다. 강하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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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 | 2020.06.05
구매 평점5점
상호 잘 의존하는 관계적 돌봄에 대한 사회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질병, 노년,젊음리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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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 2020.06.02
구매 평점5점
너무 나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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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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