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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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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464쪽 | 556g | 137*197*32mm
ISBN13 9788934993223
ISBN10 8934993227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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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미야베 미유키 30년 작가 생활의 집대성. 책은 에도시대 가상의 작은 번(藩)을 배경으로, 정신 착란을 보이는 번주와 그를 지키려는 이들의 진심 어린 충정과 사랑, 숨은 과거의 이야기를 그린다. 밀도 있는 미스터리 속에 끝내 찾아올 봄의 따뜻함까지 담아낸 시대소설 - 소설M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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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마님은 흠칫했다.
산키치가 봤다는 하얀 얼굴의 악귀.
저도 모르게 여자를 봤다.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큰마님?”
여자는 말했다. 요새 남편이 침소에서 종종 이런 것을 쓰고 생각에 잠겨 있다. 어쨌거나 자신은 첩의 몸이니 남편이 하는 일에 불평할 수 없다. 그래도 대체 이런 게 뭐가 재미있다는 건지, 남편이 왜 이런 것을 쓰는지 알 수 없어서 몹시 신경 쓰인다.
“쿠리야의 미타마쿠리는 강령만 하는 게 아니고 큰마님은 천리안의 능력도 갖고 계신다고 들었거든요.”
대체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큰마님의 안력으로 간파해주지 않겠나.
“어쩌면 남편이 변심해서 저와 손을 끊을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해가 바뀌는 김에 연도 끊자고 맨몸뚱이로 저를 쫓아내면 어떻게 하지요.”
그런 생각을 하니 가만있을 수 없어서 무턱대고 이즈치 촌까지 왔다고 말을 이었다.
“제 이런 심정을 측은히 여기고 부디 도와주세요.”
큰마님은 여자의 부드러운 어조 속에 심술궂은 야유가 숨어 있음을 느꼈다.
미소 짓는 여자의 눈 속에 도전적인 적의가 엿보였다.
이 여자는 누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마님은 공포에 떨었다.
--- pp.276-277

유이 부인이 생긋 웃자 소박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꽃잎이 흩날리는 듯한 명랑함과 화사함, 긴장을 풀어주는 편안함.
아아, 이분이 나리마님께서 사랑하는 분이시구나.
충격을 받고, 동시에 매료됐다.
나 따위는 발치에도 못 미친다.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총명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너그럽고 다정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암자를 지키는 동안 내 말상대가 되어주세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답니다.”
유이 부인은 입술을 다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걸까.
“……시게오키 님은 안녕하신지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잠기고 말꼬리가 흔들렸다.
--- p.353

깊은 어둠 속에 떠오른 빛의 고리.
수면에 흔들리는 달처럼 환한 고리 속에 기타미 시게오키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랜 세월 몇 번이고 꿈속에서 찾아왔던 곳이다. 그렇건만 시게오키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현세에 있는 곳인가. 아니면 자기 마음속의 어둠에 찾아오는 걸까.
지금 비로소 알았다.
이곳은 진쿄 호다.
고코인에서 보이는 푸른 호수다. 그런데 이렇게 어두운 것은 여기가 밤이기 때문이다.
끝없는 밤. 바람도 날리지 못하는 어둠. 가득 차오른 차갑고 검은 물.
그 물속에 감추어진 게 바로 시게오키가 느끼는 공포의 근원이었다. 시게오키가 안고 있는 어둠의 근원이었다.
이곳은 죽음의 호수다.
--- pp.379-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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