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환경 속에서 마리나가 그나마 얻은 것이 있다면, 예술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첫걸음이었다. 엘리트 교육에 열성적이었던 부모님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 발레를 가까이하며 자랐다. 또한 베오그라드 혁명 미술관의 관장을 지낸 어머니를 따라 베오그라드의 예술가 스튜디오를 정기적으로 방문했으며,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가볼 수 있었다. 부모님의 목적이 어떠했든, 그러한 경험은 마리나를 예술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가 예술가가 되고자 마음먹었을 때 다니카는 딸이 작업할 수 있도록 방 하나를 내주었는데, 그것이 어머니로부터 받은 유일한 헌신이었다고 한다.
---「예술가로서의 시작」중에서
퍼포먼스라는 장르의 핵심은 현장성이다. 마리나는 관객의 눈앞에서 자신을 상징이자 제물로 삼아 일종의 제의를 치르는 방식을 택했다. 앞서 언급했던 「토마스의 입술」이 대표적이다. 마치 야생의 카니발처럼 날 것 그대로의 희생 제의가 현장에서 펼쳐지며, 관객은 당혹스러운 실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실제 상황」중에서
참여했던 관객들은 퍼포먼스가 종료한 순간 자신의 잔혹성을 깨달았다. 모두 자신은 다르다고 여겼을 것이다. 잔혹한 인간은 처음부터 잔혹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리라고, 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해왔을 테다. 그러나 누구라도 다르지 않다. 밀폐된 공간에서 단 6시간 동안 벌어진 퍼포먼스의 규칙만으로도 인간을 인간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사회의 구조와 오랫동안 지속된 관습은 얼마나 우리의 눈을 어둡게 가리고 정신을 교란해 왔을까.
---「우연성이 드러낸 얼굴」중에서
마리나는 ‘리듬’ 시리즈와 ‘해방’ 시리즈를 거쳐 자기 안의 에너지를 밖으로 꺼내면서 외부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 만난 것이 마리나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울라이이다. 그들이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이 관계를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예술과 삶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얽혀들어 서로의 인생에 중요한 위치를 점유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여정은 시작과 과정, 끝 모두 극적이었다.
---「울라이」중에서
사막에서 머물던 어느 날, 마리나에게 급성 편두통이 찾아왔다. 부족의 의사가 민간요법으로 그를 치료했는데 즉시 증상이 호전되었고, 순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행복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명확하게 빛나는 느낌, 유럽의 문명 사회에서는 가질 수 없던 기분이었다. 이곳에는 다른 무엇이 있다고 느꼈다. 논리와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것, 그러나 우리의 삶에 강력하게 작용하는 어떤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세계」중에서
1988년, 용의 해 3월 30일 오전 10시 47분, 마리나가 용의 머리를 밟았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황해안의 산하이관에서부터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러나 다른 시간대에 서쪽 끝인 고비사막 남서부의 자이구안에서부터 울라이가 용의 꼬리를 밟아 동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각 2,500km를 걸어 중간에서 만날 예정이었다. 12년의 공동작업 끝에 처음으로 개별적인 퍼포먼스의 수행을 시작한 것이다. 영국 BBC에서 이 특별한 대장정을 촬영해 「만리장성: 벼랑 끝의 연인(The Great Wall: Lovers at the Brink)」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했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길고 거대한 이별이었다.
---「아주 긴 이별」중에서
마리나는 관객의 맞은편에 앉아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꼈다. 그가 건넨 것은 이렇게 취약한 내 앞에서 당신도 가장 취약한 부분을 꺼내 놓아도 된다는, 조건 없는 사랑과 공감의 눈빛이었다. 어떤 껍데기나 가면을 쓰지 않고도 무조건 받아들여질 때, 사람은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드러낸다. 인지하지 못했던 가장 취약한 마음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그제야 둑이 터지듯 감정이 밀려온다. 이것은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진실한 경험이었다.
---「조건 없는 눈빛」중에서
그가 제시하는 ‘아브라모비치 메소드(Abramovi? Method)’는 현재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근원으로 향하는 마리나만의 방식이다. 티베트 불교와 호주의 핀투비 부족,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오래 전부터 전수된 마음 챙김 방법으로부터 두루 배우고 이를 작품에 적용하면서 연구한 바를 총망라한 ‘아브라모비치 메소드’는, 호흡과 근육 이완, 집중력 강화 등을 포함한 일련의 명상법이다. 이 방법을 통해 누구나 현재를 온전히 감각하고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아브라모비치 메소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