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공지능의 최전선,
그 격변의 현장을 두 발로 답파하다
한국에 공전의 인공지능 붐을 일으키고, 일반 대중들에게 인공지능의 대명사로 여겨지기까지 한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도, 그 상대로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를 기록한 이세돌 9단도 이미 은퇴했다. 그러나 그 발자취는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인공지능이라고 하는 주제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무섭게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도리어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아무리 잘 둬도 못 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라는 말과 함께 은퇴를 선언하면서, 일종의 위기의식에 다시 한 번 불이 붙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감은 비단 바둑 기사만의 것이 아닐뿐더러, 새삼스러운 것조차 아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28년 이상 언론계에 몸담으면서, ‘과학’이야말로 사회의 주도적 트렌드가 되고, 과학자야말로 트렌드 세터가 될 것이라는 것을 언론인의 감각으로 포착했다. 그 일환으로 과학 전문기자가 되기로 결심, 과학적 전문성과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 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에 재학 중인 만학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2016년 전 국민을 강타한 알파고 쇼크 이후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알파고의 ‘세례’를 받았다. 인공지능을 모르고서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 후로 인공지능 기술에 관한 집중적인 취재를 계속해왔고, 2019년에는 그 노력이 인정받아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 지원을 토대로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세계 최대의 인공지능 격전지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인공지능 기술이 활발하게 연구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를 집대성하여 하나의 글타래로 엮어냈다.
저자는 이를 ‘인공지능의 최전선’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는 단순히 가장 최신의 현장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속내가 있다. 그가 보기에 지금 전 산업 분야에 걸쳐 전개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 현장은 전장이나 다름없다. 적은 누구일까. 인간의 일자리를 뺏고, 미래를 위협하는 인공지능? 그런 일차원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정작 경계해야 할 것은 당연히 변화할 미래에 대하여 무감각한 인간 자신이다. 로봇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리라는 불안감은 이미 뿌리가 깊지만 지금 인간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다. 법률경진대회에서는 법이라고는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인과 인공지능이 협업하여 노련한 변호사들 팀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자타가 공인하는 바둑의 최고수가 인공지능에게 패배하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언제까지나 아무 것도 모르는 방관자로 남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생존경쟁이다. 저자는 무형의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가로지르는 종군기자다. 그는 법률에서 의료, 금융, 정치 등 사회의 중요한 각 분야로 뻗어나가는 인공지능 기술의 현상을 뛰어다니며 취재했다. 변화의 흐름은 사회 전체에 걸쳐 있다. 인공지능 분야를 연구하는 숱한 연구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는 10년 후면 지금과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고작 10년 전의 세상이 지금과 전혀 달랐던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 변화의 흐름을 꿰뚫지 못하고서야 당도할 미래에 적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인공지능은 지금 어디에 쓰이고 있을까.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일은 할 수 없을까. 인공지능이 할 수 없고, 인간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공지능의 ‘현재’를 미리 알고 대비하면,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AI 시대의’의 미래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아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 첫걸음이다.
누군가 AI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바둑계를 보게 하라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은 물리적인 실체만이 아니라, 사회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고, 변화가 일어날 때는 언제나 거기에 저항이 일기 마련이다. 구글, 테슬라와 함께 자율주행자동차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기업 ‘우버’가 한국에 진출했다가 사업을 접기도 하고, 국내의 카셰어링 업체인 ‘타다’가 ‘타다금지법’ 논란에 휩싸여 규제 대상이 되기도 한다. AI 기술이라고 해서 결코 그 예외가 될 수 없다. 실제로 AI의 발전 속도에 제도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기도 하고, AI의 위협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AI의 도입을 반대하기도 한다. 물론 이에 대처하는 움직임도 있다. 2018년에는 한 국회의원이, 변호사 아닌 자도 법률문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서 단순 법률문서를 생성·제공할 수 있도록, AI 변호사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변호사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라고 말한 것처럼, 앞으로는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의 전 분야, 온갖 산업에 걸쳐 AI가 막대한 영향을 발휘할 것이다. 이 사실 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명한 미래다. 이런 상황에서 AI를 인간의 경쟁자로 보고, 새로운 흐름을 거스르려고 하는 움직임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저자는 이런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을 향해 “바둑 기사들을 보라”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AI의 바둑에서 몰랐던 새 수법을 많이 배웠다.”, “흉내바둑 같은 변칙이나 평소와 다른 비정상적 흐름에는 굉장히 약하다.”, “너무 AI에 의지하다 보면 생각 없이 복기할 때도 가끔 있다. 본인의 생각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AI와의 협업을 통해 더 깊은 바둑의 우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저자가 만난 국내 정상의 바둑 기사들이 AI에 대해 남긴 말이다. 바둑은 모든 분야를 통틀어 가장 먼저 “AI에게 인간이 패배했다”라고 공공연하게 선언된 분야다. 그러나 그런 바둑 기사들도 패배한 채로 주저앉아있지 않는다. AI에게서 배우고, AI와 공존할 방법을 찾고 있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바둑 기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AI를 대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인간은 AI와 함께함으로써 더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의사의 의사의 의사
전자 눈을 가지지 않은 인간의 역할은?
2019년 상반기, 일본의 후지TV에서 ‘영상의학과’를 무대로 한 드라마 〈라디에이션 하우스〉가 방영되면서, 기존에 의학 드라마에서 조명되지 않았던 영상의학과 의사와 방사선기사라고 하는 직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영상의학과는 다른 내·외과의 수많은 의료진이 진료에 들어가기 위해서, 인체 조직이나 질병 등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영상화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촬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진단 및 예후 판단에도 관여하는 중추적인 역할이며 현대의 모든 의료 분과의 진료는 영상의학과를 기점으로 시작하기에, ‘의사들의 의사’라고까지 불리는 중요한 직역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앞으로는 이 영상의학과를 무대로 한 드라마나 소설 등을 보기 힘들게 될지도 모른다. 영상의학과야말로 AI가 가장 활약하기 좋은 의료 분과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AI의 역할이 인간 의사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AI를 활용할 경우 영상 판독의 속도와 정확성이 현격하게 상승하는 임상현장의 데이터를 봤을 때, AI의 역할이 점차 커지리라는 것은 명백한 미래다. 가령 유방암 진단 등을 위해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맘모그래피 진단은 아시아인에게서 높은 비율, 집단에 따라서는 절반 이상으로 나타나는 치밀 유방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유선 조직이 과밀하게 발달하면서, 석회화 병변이 유선 조직에 묻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영상처리 기술은 영상의학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기존의 영상의학과 의사가 ‘의사들의 의사’였다면, AI는 ‘의사의 의사의 의사’가 될 것이다. 점점 발전하는 기술, 기술이 가져다줄 이점을 거부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새롭게 인간이 비교 우위를 가진 역할을 찾아야 한다. 저자가 전 세계 AI 기술의 현장을 면밀히 살피는 것은 바로 그것을 찾기 위해서다.
기술론 너머의 기술론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한들 정작 그 기술을 활용할만한 사회적인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기술의 발달에 비해 운신이 무거운 사회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문화 지체 현상과 그로 인한 발목 잡기는 이미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결국 기술론이라고 하는 것은 과학기술 자체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수반하는 사회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AI 기술의 심층적인 이론에 대해서 파고들거나,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하고 AI 시대로 이행하는 거대한 전환에 대해서 평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눈을 돌리는 곳은 현장이다. 당장 우리가 맞닥뜨릴 현실에서 AI 기술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AI가 할 수 없는데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AI와 인간이 협업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AI 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어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까.
법률, 의료, 금용, 게임, 정치, 군사, 예술, 스포츠, 윤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발생하는 미시적인 변화의 흐름을 좇다 보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 현재 AI 기술의 도입과 변화를 맞이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과 앞으로 어디든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하나의 가이드가 되어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