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냉정과 열정 사이』『사랑 후에 오는 것들』작가,
츠지 히토나리의 최신작, 한?일 동시 출간!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고독하지만 열정적인 사랑을 말하던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이번엔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했다. 이번 신작은 도쿄의 중학교를 무대로 “21세기의 공허감을 묘사했다.”라고 하는 야심작으로, 츠지 히토나리는 18년 전, 데뷔작 『피아니시모』로 스바루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영화감독, 록 뮤지션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츠지 히토나리는 한국에서는 ‘연애소설을 잘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사회적?정치적으로 첨예한 이슈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작가이다. “소설에는 현실을 의심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미래를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힌트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라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에는 현실사회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고, 미래사회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다.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에는 외톨이 소년 도오루와 친구 히카루 등 데뷔작인 『피아니시모』의 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하지만 속편은 아니다. 80년대의 달콤한 풍요 속에 자리 잡은 공허감을 묘사한 작품이 『피아니시모』라면, 테러나 집단 자살 등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의 시대에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이번의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이다.
“문학적 원점으로 되돌아가 바로 지금의 시대를 직시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80년대는 개인이 작게, 아주 작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였지만 요즘은 어린이들이 목을 움츠린 채 살아가는 분위기라서 ‘피아니시모’를 두 번 겹쳐 썼어요. 강한 절망의 시대에 과연 소설로 희망을 쓸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2007년 4월 26일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츠지 히토나리
2. 회색 세상의 공포 속에서 펼쳐지는 진실 찾기 게임!
콘크리트로 뒤덮인 회색 도시… 그 도시에 학교가 있고, 그 학교 지하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학교가 있다. 3년 전의 유괴살인 사건과 또 다시 반복되는 학교를 둘러싼 공포… 그 회색빛 공포 속에 외톨이 소년인 도오루와 도오루에게만 보이는 친구 히카루, 그리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시라토가 있다.
주인공 도오루는 자신을 대신하여 세상에 반항하는 또 하나의 ‘나(히카루)’와 함께 살아가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다. 그리고 시라토는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남자의 마음을 가진 친구…. 정체성 불안의 소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찾아나가려는 씩씩한 소녀(소년?)를 만나, 감정을 잃어버린 회색 세상의 공포를 이겨낸다.
저자는 이 세상을 이면에서 지배하는 것, 인간의 감정을 먹고 살면서 세상에 분쟁과 증오의 씨앗을 흩뿌리며 인간의 마음에 불안을 심어놓는 존재, 이 세상이 미처 다 감추지 못해 비어져 나온 것의 상징으로 ‘회색’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회색 빛 절망 속에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변하지 않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표면과 이면의 진정한 얼굴을 알아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미국과 이슬람의 전쟁에서도 양쪽 모두가 정의를 내세웁니다. 어느 쪽이 정의인지, 전 세계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둘 다 정의이고 둘 다 악이에요. 흑백의 차이를 알 수 없습니다. 거기서 ‘회색’이 등장합니다…『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에서는 자신의 분신이 가상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썼습니다. 요즘은 가상을 사는 것이 현실이 되었지요.” -2007년 4월 26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서 츠지 히토나리
3.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이야기하는, 전혀 새로운 성장소설!
최근 일본소설의 경향이 달라지고 있다. 나오키 상의 심사위원을 맡았던 이노우에 히사시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대체로 자전적 성격을 띠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일상 속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경향이 많아졌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은 개인의 문제는 결국 사회의 문제이며 그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로 한국에서도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오쿠다 히데오,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 『사신 치바』로 유명한 작가 이사카 고타로 등의 작품은 여성적인 감수성, 쿨한 개인주의에 호소해온 그간의 일본소설과 달리, 문체는 날렵하되 문제의식은 무게감이 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이것은 불투명한 사회 속에 감춰진 진실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독자들, 상처 주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독자들의 요구인지도 모른다.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는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지 못하는 소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소설이다. 츠지 히토나리는 이 소설에서 생명은 얼마나 반짝거리는 것인지, 죽음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사랑은 얼마나 큰 기적인지를 말하고 있다.
“평소의 신발이 약간 답답하게 느껴진다…여름 방학에 키가 또 커버렸다. 늘 입던 바지와 셔츠도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너무 급하게 커버리는 탓에 감각과 사고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지, 어째 균형이 잘 잡히지 않는다. 아스팔트길을 걸으며 길과 신발 바닥이 묘하게 뜨는 듯한 느낌에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게 바로 성장한다는 거겠지, 라고 도오루는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서서히 깨닫는다.” -본문 372쪽
4.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희망 게임,
“나는 이 세계를, 이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
‘리셋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리셋(reset) 버튼을 누르면 시스템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도 컴퓨터처럼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리킨다. 내 맘에 들지 않으면 지금까지 벌여놓은 일이나 인간관계 등을 다시 쉽게 시작하려는 경향을 말하는데, 리셋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게임)를 혼동하게 되고, 참을성 없는 행동과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 위주의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리셋 증후군은 국내외 총기 난사 사건이나 자살 원인으로 지목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최근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 게임으로 제작되어 아이들이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끔찍하다 못해 두려움을 준다.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에서 도오루의 분신 히카루는 끊임없이 도오루에게 이 세상을 ‘리셋’하라고 유혹한다. 고독과 공포 속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하여 자유분방하게 세상을 야유하고 비난하는 히카루는 어차피 세계 따위는 게임과 같은 것이라며, 일단 깡그리 쓸어내고 새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츠지 히토나리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복잡하게 뒤엉켜버려 가상이 지금의 현실이 되었다며, 테러와 전쟁 등에 무감각해진 요즘 세대들의 의식세계를 소설 속에서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자살을 하는 건 인생을 리셋하고 싶기 때문이야.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게임이지. 깨끗이 죽어버리는 건 어딘가에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살겠다는 속셈이라고. 내내 게임 감각으로 살아왔으니 그런 식으로 간단히 죽어버릴 수 있지. 연탄 자살을 좀 보라고. 그거, 정말 그런 거잖아?” -본문 3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