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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 양장 ] 현대문학 핀 시리즈-소설선 24이동
리뷰 총점9.1 리뷰 34건 | 판매지수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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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0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96쪽 | 276g | 110*190*20mm
ISBN13 9788972751656
ISBN10 897275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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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신작 시와 소설을 수록하는 월간 『현대문학』의 특집 지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스물네 번째 소설선, 김혜진의 『불과 나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2019년 『현대문학』 4월호에 발표한 소설을 퇴고해 내놓은 이 소설은 한국 사회에서 항상적인 향수와 회복의 대상인 마을 공동체를 김혜진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대적하고 있는 작품이다. 재개발 이후 빈부 격차로 양분된 지역사회 갈등으로 황폐한 곳, 대물림되는 빈부에 대한 불안과 집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위태로운 욕망을 깊이 있게 그려진 소설이다.

저자 소개 (1명)

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지속과 멈춤의 차이를 말하자면
도서1팀 이주은 (lje5371@yes24.com)
변화는 인간과 사회에 두 가지 감정을 초래한다. 기대감과 두려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여럿 모였을 때 이야기를 덧붙이다 보면 두려움은 커지고, 결국 바다나 강으로 훌쩍 떠나야 할 배를 산으로 보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들곤 한다.

주인공 홍이는 남일동 아이였다. 남일동은 '남일도'라는 별칭처럼 주변 동네들과 고립되어있다. 남일동 주민들은 변화는커녕, 누리고 살아야 할 것을 그저 지나치는 이들이다. 안간힘을 써 중앙동으로 떠난 부모님 몰래, 매번 남일동 약국을 찾던 홍이는 새로 이사 온 모녀 주해와 수아를 만난다.

주해는 남일동 사람들과 다르다. 누리고 살아야 할 것이 있으면 누려야 한다고 말한다. 마을버스를 들여오고, 벼룩시장을 열고, 재개발 사업을 돕고. 까치가 새끼와 살아갈 둥지를 가꾸듯이, 주해는 본인과 수아의 터전 남일동의 변화에 앞장선다. 그런데도 주민들이 주해를 환영하지 않는 것은 그가 이사 온 이유 때문이다. 간호조무사 시절 불운한 사고는 주해를 끝없이 따라다니고, 자신이 꾸려 놓은 터전을 자신의 발로 떠나게 한다.

한 사람 안에 한번 똬리를 틀면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던 불안을. 못 본 척하고, 물러서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두려움을. 오래전 남일동이 내 부모의 가슴속에 드리우고 나에게까지 이어져 왔던 그 깊고 어두운 그늘을 정말이지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 p168

강산이 변하고, 세대가 바뀌어도 계속되는 것들이 있다. 이는 애초에 바뀔 필요 없이 잘 정해진 까닭도 있고, 정해진 것을 바꾸기는 두렵거나 바꾸는 것보다 벗어나는 게 쉬워서 그렇다. 나는 전자를 '지속', 후자는 '멈춤'이라 하고 싶다. 이 순간에도 일어나는 많은 변화와 그것에 앞장서는 이들. 그들의 힘이 세상에 맞서기에 부족하여 상황이 '지속될' 때, 옆에서 떨어질 무언가를 가만히 기다리는, '멈춰버린'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남일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우체국 옆 2층 주택. 대문을 열고 나오면 2차선 도로가 바로 보이는 집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는 그 주택 2층에 세 들어 살던 신혼부부였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몇 년 뒤 우리 가족은 조금 더 안쪽으로 이사했습니다. 달산이 바로 올려다보이는 남일동의 가장 구석진 곳이었습니다.
--- p.15~16

시간이 지나고 왜 숨바꼭질하듯 숨어서 그 집을 볼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기 전까지 나는 경매로 집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서 빼앗은 집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누군가의 슬픔과 불행을 목격하는 대가로 싼 집을 구입할 때 각오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알 리가 없었습니다.
--- p.81

홍이 씨. 그렇게 해서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얻나요?
사람들 마음을 얻어야 해요?
주해는 내 팔을 잡고 소곤거렸습니다.
홍이 씨. 난 여기서 오래 살고 싶어요. 여기 아니면 갈 데도 없고요. 알잖아요. 내가 이러는 거 다른 사람들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필요해서 하는 일이에요.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요. 난 정말 잘하고 싶어요.
--- p.95

3학년 8반 남토. 아이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게 남일동 토박이의 준말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누가 먼저 시작하고,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따져 물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내가 남일동에서 중앙동으로 온 것이 아니고, 중앙동에서 남일동으로 온 경우였다고 해도 그 애들이 그럴 수 있었을까요.
--- p.100

이곳을 떠나려는 사람이나, 남으려는 사람이나. 어쨌든 여기 사는 동안엔 안고, 견디고,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의 감정을 새삼 상기하게 된 것입니다. 오래전 어머니로 하여금 집 앞에 서서 멍하니 집을 올려다보게 만들었던 그 조마조마한 마음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여기 사는 한 그런 마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것들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누군가에게 옮아가고 번지며, 마침내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 p.125~126

이모, 있잖아. 이모 남민 뭔지 알아?
그리고 내가 햄버거를 거의 다 먹어갈 때 즈음 수아가 내 눈을 보며 물었습니다. 나는 접시 한쪽에 케첩을 조금 더 짜주며 말했습니다.
난민? 난민 알지. 오늘 학교에서 배운 거야?
아니, 난민 아니고 남민. 난 아니고 남. 남민 말이야.
남민? 몰라. 남민이 뭔데?
이모 몰라? 진짜 몰라? 남일도에 사는 난민이라는 말이잖아.
--- p.136

아니, 차라리 그 불이 여기 이 남일동 전체를 휩쓸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커지고 더 커지고 누구도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해져서 저 남일동을 모두 집어삼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 무시무시한 남일동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더는 없다는 생각을 나는 했던 것입니다.
--- p.167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편견과 배제가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
주류에서 소외된 이들의 절박함과 욕망

“내가 이러는 거 다른 사람들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필요해서 하는 일이에요.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요“

혐오와 배제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딸에 대하여』, 산업화·도시화 사회 속에서 자존감을 잃고 소외당하는 현대인의 삶을 조명한 『9번의 일』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끈 김혜진의 신작 『불과 나의 자서전』은 소외된 이들에 또 한 번 주목한 소설이다.

재개발의 광풍마저도 번번이 빗겨간 달동네 남일동의 일부가 부촌인 중앙동으로 행정 편입되며 우리 가족은 중앙동의 주민이 된다. 내 부모는 원래 중앙동에 살았던 듯 남일동에 선을 긋지만, 친구들은 나를 남토(남일동 토박이)라 부르며 은근한 멸시의 눈총을 보낸다. 졸업 후 여행사에 취직한 나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동료를 변호하다 같은 신세가 되고, 그즈음 남일동으로 이사 온 주해와 그녀의 딸 수아를 만난다.

버려진 동네 같았던 남일동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삶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내는 그녀들을 보며 나는 새로운 희망을 품지만 힘들게 입학한 중앙동 초등학교에서 수아가 남민(남일동에 사는 난민)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알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주혜를 보며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마침내 시작된 남일동 재개발사업. 조합 사무원으로 일하며 힘을 보태던 주혜의 숨겨왔던 부정한 과거가 밝혀지자 마을은 요동치고, 결국 모녀는 남일동을 떠나게 된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자 했던 주혜의 일그러진 욕망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오버랩되는 나와 내 부모의 모습을 발견한다.

“오래전 어머니로 하여금 집 앞에 서서 멍하니 집을 올려다보게 만들었던 그 조마조마한 마음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는 것을. 여기 사는 한 그런 마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것들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누군가에게 옮아가고 번지며, 마침내 세대를 건너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될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125~126쪽)

허상과 과욕에 물든 남일동에 활기를 불어넣은 주혜가 세상의 이중 잣대에 경종을 울리며 불합리한 사회를 헤쳐나가길 원했지만 결국 주혜도 같은 꿈을 꾸었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낀 나는 남일동 전체가 허물어지는 것 외에는 이 불합리함을 타계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차라리 그 불이 여기 이 남일동 전체를 휩쓸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커지고 더 커지고 누구도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해져서 저 남일동을 모두 집어삼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 무시무시한 남일동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더는 없다는 생각을 나는 했던 것입니다.”(167쪽)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동료를 변호하고, 한부모 가정이라는 편견 속에 쉽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던 주혜와 수아에게 먼저 손 내민 나는 내 부모와 다르다 생각했지만 결국 나 역시 남토라 불리던 과거를 극복해내지 못한 존재였을 뿐이다. 좀체 낫지 않던 알러지는 결국 허상을 뒤집어쓴 내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자서전이였을 뿐이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각자의 어긋난 욕망으로 그 세계와 불화하며 번번이 좌절하고 마는 한국 사회의 씁쓸한 모습을 객관적이고 냉담한 시선으로 투사한 소설이다.

작가의 말

오래전 부모님이 처음 샀던 집의 주소를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집의 구조도, 그 동네의 풍경도, 사람들의 모습도 신기할 정도로 또렷하다. 당시 내 나이가 대여섯 살 정도였으니까. 그 후 여러 차례 이사를 했고, 이사한 후에는 이전 집 주소를 까맣게 잊어버리면서도 왜 그 집 주소만은 이토록 잊히지가 않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한번쯤 그 동네에 들러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도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그곳이 여전히 그대로인 것도, 어떤 식으로든 바뀌고 변한 것도, 아직은 보고 싶지가 않은 탓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그런 마음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응시를 통해 혐오를 비추는 불빛,
패배가 만들어내는 뜨거운 눈빛

공동체에 우연히 생긴 경계는 서로를 경쟁시켜 바람직한 시민/주체를 생산했다. 그 분할을 자신의 본질로 설명하려는 자기 서사로부터 혐오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자신의 노력에 대한 자부심은 분할 저편에 대한 낙인과 배제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쪽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불안과 이편으로 떨어진다는 두려움이 가족의 사랑을 타고 대대로 전해져왔다. (……) 소설은 “안타까움과 미안함” 같은 공동체에 대한 낭만적 향수로도, “후회나 죄책감” 같은 윤리적 성찰로도 비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에 서 있는 동안 내가 느낀 건 그런 실감”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재개발이 만들어내는 마음들을, 그것에 휘둘리며 자라온 ‘나’의 내력까지 냉철하게 정면으로 보는 실감을 갖고자 한다.
-김건형, 「작품해설」 중에서

회원리뷰 (34건) 리뷰 총점9.1

혜택 및 유의사항?
나와 당신들에게만 배제된 시대적 특혜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슈**살 | 2021.10.2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시대적 특혜였다.”   서울의 공공기관 사장 후보자로 내정된 사람의 해명이다. 시대적 특혜라니. 차라리 비문이었으면 싶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득권 중 기득권에 있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해명에 나는 아연실색 했다. 공공기관 사장 후보에 나오지 않았다면, 평생 하지 않아도 되었을 문장이다. 시대적 특혜라니…. 그 사람이 얻은 특혜를 왜 나와 당신들은 얻지;
리뷰제목

시대적 특혜였다.”

 

서울의 공공기관 사장 후보자로 내정된 사람의 해명이다. 시대적 특혜라니. 차라리 비문이었으면 싶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득권 중 기득권에 있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해명에 나는 아연실색 했다. 공공기관 사장 후보에 나오지 않았다면, 평생 하지 않아도 되었을 문장이다. 시대적 특혜라니. 그 사람이 얻은 특혜를 왜 나와 당신들은 얻지 못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남일동을 떠났지만, 결코 떠나지 못한 이 책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시대적 특혜 따윈 없다. 우리에게는.

 

우리는 남일동에서 살았다고 할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몇 년 그 동네에 있었던 거지 어디 가서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라.” (p.29)

 

남일동에 살았지만 살았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어려서부터 홍은 너는 이 동네 애들과 달라.” 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함께 놀던 아이들에게 무심히 던지는 어머니의 말은 홍에게 그대로 체화된 것일 테다. 한여름 땀에 흥건히 젖은 셔츠 깃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땀 냄새처럼 말이다. 의식하지 않으려 할수록 또렷해지는 욕망의 덩어리를 발견하는 순간 말이다. 어머니의 걸음에 맞추느라 거의 뛰다시피 하면서도 나는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의 무섭도록 뜨거운 체온이 나를 조마조마하게 만든 탓입니다.아이였던 홍은 어머니의 손을 놓을 수 없다. 주변부로 밀려난 부모의 손을 놓으면 그대로 낭떠러지다. 시대적 특혜를 입으신 분들에게는 사소한 실패와 가치 있는 실험 정도일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배제다. 제외되는 것이다.

 

으레 그렇듯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절대적이다. 부모의 작은 몸짓과 사소한 표정을 아이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재생산한다. 그런 것보다 더 크게 느껴진 건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슬픔의 기운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감정이란 언제나 더 부풀려지고 또렷해져서 아이들에게 가닿는 법이니까요.” 부모가 남일동에 살면서도 마치 살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어린 홍은 양가적 감정을 가져야 했지만, 너무 어렸다. 그냥, 이상했던 거다. 분명 나와 다르지 않은 아이들인데, 달라야만 했던 것.

 

괜찮아요. 홍이 씨, 힘들면 그만 해도 돼요.” (p.43)

 

그런 홍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주해가 나타난다. 직장에서 바른 소리 하다 퇴사 당한 채 백수로 빈둥대며 살아도, 남일동을 떠났지만, 여전히 남일동을 떠나지 못한 채 지내도 괜찮다고 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엄마의 손은 더더욱 놓기 싫었던 것처럼 홍은 주해와 그녀의 딸에게 멀어지듯 친밀해진다. 비로소 양가적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주변부다.

 

마을버스가 들어오고 나서는 주해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주해를 모르는 사람도 마을버스 들여온 새댁이요, 하면 곧장 주해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p.52)

 

내가 이러는 거 다른 사람들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필요해서 하는 일이에요.” 주해는 살기 위해 남일동으로 들어왔다. 홍은 공간적 남일동에 그치지 않고 심리적 남일동에서 안주한다. 주해 모녀와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했지만 가까워졌고 급기야 주해의 딸을 돌봐주며 수고비를 받기까지 했다. 애초 의도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가까워지며 서로를 의지한다. 배제된 이들은 서로 어깨라도 내어주고 있어야 어김없이 찾아오는 악다구니 같은 일상을 버틸 수 있다.

 

나 그 새댁 그렇게 안 봤는데 참 무서운 사람이데. 그쪽도 감쪽같이 몰랐지? 그래서 그 일은 결판났어요? 어떻게 됐대요?” (p.162)

 

악다구니를 더욱 처절하게 만드는 것은 불신과 왜곡이다. 주해로 인해 폐허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함께 기뻐한 것도 잠시. 외부로부터 흘러들어온 달콤한 조장과 왜곡은 배제된 이들의 악다구니를 단숨에 폭발시킨다.

결국, 주해 모녀는 남일동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홍은 결심한다. 부싯돌에서 마침내 조그마한 불꽃이 솟아나고 주해로 인해 바뀌어 가던 남일동의 모습에서 발견한 조그마한 불꽃을 그냥 두지 않겠다고. 주해가 떠난 후, 남일동은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남일동 사람들은 주해가 일으킨 불꽃을 짓이겨 꺼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배제된 악다구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홍의 결심은 행동으로 옮겨졌지만, 그것마저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지난달, 남일동 제일약국 건물이 철거되었습니다.”

 

남일동의 구심점이던 제일약국이 철거되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남일동에서의 과거를 부정하는 홍의 부모, 살아남기 위해 어딘가에서 애를 쓰고 있을 주해,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멋지게 재개발될 남일동을 기대하며 스스로를 배제시킨 채 살아가는 남일동 사람들. 남일동에도, 부모가 사는 중앙동에도 발을 딛지 못한 채 표류하는 홍에게도 변하는 것은 없다.

 

시대적 특혜였다.”

라는 비문을 해명이랍시고 당당하게 밝히는 기득권, 부자들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공공기관 사장 정도 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사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리고, 아주 쉽게 잊히니까.

 

시대적 특혜라는 비문을 남긴 후보자가 공공기관 사장이 되어 남일동에 대한 선심성 공약을 발표한다면 어떻게 될까? 남일동 사람들은 180도 바뀔 것이다. 남일동뿐만 아니라 대부분, 나와 당신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정부의 코로나 방역 대책과 백신 접종에 대해 무수한 비판을 하던 사람들이 막상 백신 접종 예약이 시작되자, 누구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예약하던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똑같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업무 태만과 지속되는 파업과 시위에 대해서 욕하는 한편, 그 노조에 속하고 싶어 한다. 심리학적으로 가지기 어려운 양가적 감정이 나와 당신들, 우리들에게는 너무 쉽고 간편하다. 온갖 거짓과 가짜 정보가 판을 치고, 혐오와 배제가 일상이 된 악다구니 속에서 칼에 찔리고 몽둥이에 맞은 채 하루를 산다. 겨우 비집고 들어간 악다구니의 틈바구니에서 씨익 한 번 웃을 수 있는 것은 나와 당신들,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존재적 무력의 확인뿐이다.

오늘도 살아내야 할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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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다시 쓸 나의 자서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z*********3 | 2021.10.0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김혜진 작가의 [불과 나의 자서전]을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우리는 여러번 이사를 다녔다. 길을 사이에 두고 이사를 간다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와 동생들은 그저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문 밖으로 나오면 친구들을 만날수 있다는 사실로도 행복했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다보면 그런 추억과 상반되는 장면들이 여러가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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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불과 나의 자서전]을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우리는 여러번 이사를 다녔다. 길을 사이에 두고 이사를 간다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와 동생들은 그저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문 밖으로 나오면 친구들을 만날수 있다는 사실로도 행복했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다보면 그런 추억과 상반되는 장면들이 여러가지 떠오른다. 책을 읽고 어린시절을 반추하는 나의 목구멍에서 왠지 모를 쓴맛이 느껴진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뒷편을 바라보게 되었다. 잊고있던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듣고 느껴서 내 안에 자리 잡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의 기준이 무엇인지 감지했다. 어른이 되며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을 경제력에 빗대어 판단하려는 속물스러움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조장되는 편 가르기에 다수의 편에 서려는 옹졸함을 깨달았다.

[불과 나의 자서전]의 주인공 최홍이 주해와 수아를 만나며 부모님이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남일동의 본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남일동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주해의 모습을, 주해와의 교류를 통해 회사 내 왕따 문제로 괴롭힘을 당한 아픔을 극복하려는 최홍의 의지가 보이는 것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았다. 결코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에 개인의 노력이라는 불씨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에 감동했다. 터무니없이 작다고 생각한 개인의 노력들이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를 삭제하는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 희망을 마주하고 나니 어쩌면 모든 것에 대해 체념하며 살았던 우리의 태도가 그 경계를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본질을 눈에 보이는 것들로 대상화하여 가치 판단하고 그에 따른 경계를 만들어 철저하게 저쪽 편의 그들과 구분 지으려는 마음. 그것은 다수에 소속되어 낙오되지 않으려는 근원적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런 것이라면 주해의 노력과 같은 작은 불씨가 큰 불로 번져서 연대의 힘을 모두가 느끼게 된다면 극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남일동 골목에 쓰레기가 버려진 것을 보고 현실의 냉혹함에 좌절감이 느껴졌다. 또한 최홍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고 본인이 경험했음에도 경계선 건너편의 불안과 욕망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 왠지 모를 패배감도 느껴졌다. 그런 최홍에게 ‘불’은 남과 다르지 않은 자신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자 경계의 소멸을 간절히 바라는 의지의 표현 도구였다.

나의 인생 속 중첩된 기억들은 안정감이 세상살이의 최고 덕목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아이를 키우는 어른인 나 역시 집에 대한 욕망은 불안감 없이 잘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의 가치를 폄하하고 싶지 않다는 소망, 그것을 가시적인 효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내가 가진 집일 거란 생각, 아이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바람을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의 행복을 규정짓는 것이 내가 가진 것, 나의 안정감만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최홍이 주해와 수아를 만나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불을 통해 현실을 직시했듯이 나 역시 나의 의식이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만 잠식하지 않도록 삶의 기준을 확고하게 세워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내게 [불과 나의 자서전]이란 책은 마치 주인공 최홍의 ‘불’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알지만 외면하고 싶던 생각과 행동을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옳지 않다고 생각되었던 것들, 부끄러운 것들의 발화를 통해 더 깊이 삶의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골목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놀았던 기억만 간직하고 싶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내 인생을 가로지르는 자서전을 쓰게 될 때 내 인생은 경계와 분할이 없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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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i****a | 2021.07.0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나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 같은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자기가 합당하게 노력하지도 않았으면서 엄청난 이익을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이게 존재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더군다가 이미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만들어진 구조는 인간 사이의 갭을 더 벌어지게 만든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가진 쪽으로 점핑;
리뷰제목

나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 같은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자기가 합당하게 노력하지도 않았으면서 엄청난 이익을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이게 존재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더군다가 이미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만들어진 구조는 인간 사이의 갭을 더 벌어지게 만든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가진 쪽으로 점핑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겠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올라갈 수 있을까.

부동산 가격은 특히나 더 가혹한 불균형을 초래하는 영역이다. 그 건물의 가치는 정말 초라하지만 주변에 있는 것들로 인해 그 가격이 훌쩍 뛰는 현상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생활의 터전인 주변 영역까지 집의 가치에 포함되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좋은 환경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거 아닐까. 그곳에서 살기위해서는 너무 많은 돈이 필요하고 너무 특별한 소수에게만 그 기회가 허용된다.

소설에서는 남일동에 살고 있거나 산 적이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남일동을 혐오한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정을 나누고 하고 싶은 것들이 똑같이 있는데도 왜 소외받아야 하는 장소가 되버린 것일까. 지역의 계급화가 사람의 계급화로 이어지는 현상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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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6건)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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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5점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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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 | 2021.09.01
구매 평점5점
우리가 이런 모습인 걸 알고 있지만 고치기엔 버거운 현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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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 | 2021.07.03
구매 평점4점
유년 시절의 기억이 생생한 공간, 그곳을 마음에 담아 기억해 나간 <딸에 대하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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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 2021.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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