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중년들은 억울하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자녀가 모시지 않는 첫 세대! 어릴 때 어른들 앞에서 고개 못 들고, 막상 어른이 되어선 애들 눈치 보는 세대! 지하철에서 청년들에게 자리 양보는 못 받으면서 노인들에게 본능적으로 자리 양보하는 세대! 그들이 바로 오늘날의 중년세대다.
어릴 때 못 먹어 청년층에 비해 키도 월등히 작다. 못 먹어서 키 작지, 나이 먹으니 얼굴은 주름살, 돈도 자식 키운다고 다 썼지, 밤샘은 꿈도 못 꾸는 몸, 중년은 영락없이 낙오자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책은 중년의 이야기다. 중년은 현재 필자의 나이대이다. 청년은 지났고 노년은 아직 아닌 중년의 이야기다. 중년에 들어선 나, 슬프다. 아니 슬픈 감정도 약해졌다. 화난다. 아니, 분노의 감정도 약해졌다. 그게 더 슬프고 화난다. 무엇보다 힘이 없어졌다. 낮에도 밤에도. 육체의 수압도 정신의 수압도 쭉 뻗질 못한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한 이런 상태가 싫다.
젊게 살고 싶다. 유머를 통해 인생을 즐기기로 했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말이다. 틈만 나면 친구들과 동호인들과 만나 낄낄거린다. 그러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청년이 된다. 그에 따라 몸도 청년으로 바뀌고 있다. 그 낄낄거린 내용이 글이 되었다. 이 책이 대박 나면 회원들과 또 낄낄거리며 축하주를 마실 것이다. 설령 쪽박을 차더라도 낄낄거리며 위로주를 마실 것이다. 나이는 먹어가도 유머는 놓지 않기로 우린 약속했다.
유머는 현실을 반영한다. 유머에 등장하는 중년은 한결같이 엄숙하다. 방전된 배터리처럼 힘이 없고 무덤덤하다. 어린 시절을 상기해 보니 그렇다. 내게 있어 과거의 어른들이란 무서운 존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른들은 단지 피곤에 절은 것일 뿐이었다. 그땐 그렇게 보였다. 어른들과 이야기하는 게 싫었다. 불편했다. 그 시절의 나처럼 오늘날의 젊은이들 역시 내게 그런 감정을 갖는 걸까. 그렇게 된다면 싫다. 젊은 사람의 눈에 비친 중년의 모습은 항상 화난 얼굴이다. 슬프고 지친 모습이다. 중년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중년인 나 자신이 힘을 얻고 싶기도 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한 중년 상을 바꾸고 싶다. 중년들은 나이에 대한 큰 착각에 빠져 있다. 나이 먹음이 곧 나쁨이라는 공식 말이다. 이 공식은 틀렸다. 나이 먹는 일은 괴로움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다. 나이 먹는 게 나쁜 거라는 사고방식 자체가 나쁜 거다. 『중년의 발견』의 저자인 베인브리지 교수(David Bainbridge)는 진화론의 차원에서 중년을 얘기했다. 중년이야말로 인생의 꽃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청년은 빠르지만 중년은 지혜롭다. 중년은 문화전달자다.”
야구선수의 구속이 빨라도 정확도가 늦으면 성공 못 한다. 속도와 함께 방향 역시 중요하다. 물리학에서 크기만 있는 물리량을 ‘스칼라(scalar)’라고 한다. 크기와 함께 방향이 있는 물리량은 ‘벡터(vector)’라고 한다. 청년이 스칼라 인생이라면 중년은 벡터 인생이다. 그래서 중년이 더 긍정적이며 유연하다. 때문에 중년이 더 유머러스할 수 있다. 유머는 우리에게 긍정마인드를 주고, 밝은 표정을 준다. 유머는 인생을 유연하고 좋은 쪽으로 변화시킨다. 한마디로 중년과 유머는 궁합이 잘 맞는다.
유머예찬! 유머는 힘이 있다. 유머는 활력소요, 윤활유다. 유머와 웃음이 있으면 몸이 가볍다. 얼굴에 생기가 돈다. 리더십이 생긴다. 젊은이들이 따른다. 유머가 일품인 중년, 웃는 표정이 매력적인 중장년, 친절한 아버지, 매력적인 어머니, 유쾌상쾌통쾌한 상사를 꿈꾸며 이 글을 썼다. 중년들이여, 구부정한 어깨를 펴고 칙칙한 표정도 벗어 버리자. 화사한 원색의 표정을 입자. 생각이 많아 어두운 햄릿보다 철없어도 밝은 돈키호테가 되자.
글을 쓰는 데 지지와 격려로 힘을 준 나의 소중한 가족에게 감사한다. 웃음과 칭찬으로 에너지를 준 한국유머센터 멤버들에게 감사한다. 김진배 원장을 비롯한 여러 회원들에게 감사한다. 늘 버팀목으로 지지해 준 초등학교 동창들에게 감사한다. 활기찬 하루를 시작해 주는 운동멤버들에게도 감사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마음은 청춘이로되 이미 몸은 나이를 먹어버린 그대, 중년이 되어 버린 그대. 그리고 나. 중년이라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중년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쓰고 싶었다.
우리 세대는 순종을 잘한다. 나이 먹을수록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으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열심히 실천한다. 마트에 가서 포도 한 송이를 샀다. 청년 시절엔 수박을 좋아했다. 수박을 반으로 쪼개 안을 긁어낸 후 얼음물을 집어넣고 먹는 맛이 좋았다. 청년은 수박인생이다. 사랑도, 공부도, 일도 한 방이다. 거대하고 화끈하다. 대신 깨지기도 쉽다.
이에 비해 중년은 포도인생이다. 청년처럼 무언가에 에너지를 다 쏟을 만한 체력은 못 된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송글송글 맺힌 포도알 하나하나가 다양한 행복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등산, 자녀, 부부, 사이클, 헬스, 독서, 직장, 수다, 유머클럽, 봉사, 종교활동, 여행. 이것들이 모두 인생의 포도알이라고 할 수 있다. 개중에서도 지혜가 가장 굵은 포도알일 것이다. 청년은 중년을 겪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청춘의 소중함을 모른다. 우리는 이미 겪었다. 청춘의 화끈함과 중년의 지혜를 골고루 느낀다. ‘청춘예찬’도 중년이 쓴 글이다.
유머는 마이다스의 손이다. 유머를 통해 가정과 직장의 지루하고 싱거웠던 중년의 일상이 행복과 즐거움의 현장으로 변해 간다. 이러한 행복한 변화를 눈치채기를 바란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