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3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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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6쪽 | 304g | 126*186*20mm |
ISBN13 | 9791190413084 |
ISBN10 | 1190413086 |
발행일 | 2020년 03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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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36쪽 | 304g | 126*186*20mm |
ISBN13 | 9791190413084 |
ISBN10 | 1190413086 |
저자의 말―학문의 염가 판매와 과대광고 1 자본주의에서, 유능한 노동자가 된다는 것 · 원근법적 물신주의 - 역사에 대한 시각적 기만 · 생산적 노동이란 무엇인가 · ‘생산적 노동’에 대한 스미스의 두 가지 규정 · 서비스 노동은 생산적 노동이 아닌 것인가 · 미덕의 불운 2 자본가의 지배와 자연의 침묵 · 자본에 포섭된 노동 - “칼 없는 계약”은 없다 · 절대적 잉여가치도 ‘상대적’이고, 상대적 잉여가치도 ‘절대적’이다 · 자연은 사고야자나무를 누구에게 선물했는가 · 자연을 지배하고 노동자를 지배하고 식민지를 지배하다 · 자본과 식인종 - 적어도 400만 명의 식인종이 산다 · 노동자는 자본가다? - 어리석은 ‘위대한 지성’ 3 커져가는 계급 격차-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의 크기 · 마르크스의 『자본』은, 흐르는 강물처럼 ·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에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요인 ·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 잠시 기분전환을 위하여 - 잉여노동시간이 사라진 세상 · 고전파 경제학의 잉여가치율 정식 - “하데스의 투구”를 쓰고 싶은 사람들 4 임금에서 생기는 착시 현상 · 임금은 노동소득이고 이윤은 불로소득이다 ·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 ‘노동의 가격’이라는 엉터리 말 · ‘노동의 가격’이라는 교활한 말 · ‘당신이 일한 만큼 받는 것’이라는 거짓말 5 임금형태를 둘러싼 술책 · 임금형태 ① - 시간급제 · 임금형태 ② - 성과급제 · 국가별로 다른 임금, 그리고 그 차이의 의미 ·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본주의? - 케리와 바스티아에 대한 비판 부록노트 · 노동력을 생산하는 노동에 대하여 주 |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공부하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 아홉 번째 책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는 마르크스 [자본] 제1권의 제5편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제6편 ‘임금’에 관한 읽기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잉여가치율과 임금을 둘러싼 고전 정치경제학의 온갖 횡설수설과 착시, 기만, 술책 등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 제3편에서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식을 다루었고, 제4편에서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식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절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일 연장을 통해서, 그리고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력 증대를 통해서 얻는다. 자본은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 오래, 더 효과적으로, 더 강도 높게 일하는 유능한 노동자로 만들었다. 제5편에서는 그렇게 잉여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과정이란 노동자가 노동수단을 가지고 노동대상에 변형을 가하는 과정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란 현물을 생산하는 노동과정인 동시에 가치를 생산하는 가치증식과정이다. 여기서 노동과정은 자본이 구매한 노동력을 소비하는 과정이고, 가치증식과정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말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생산적 노동이란 자본의 가치증식에 봉사하는 노동, 즉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일컫는다. 그러면 노동자는 왜 노동력의 가치를 넘어서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하는 걸까? 그것은 노동이 자본에 포섭되었기 때문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의 형식적 포섭이고,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의 실질적 포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의 노동이 가치증식의 요소로 계속해서 기능하는 것은 노동이 자율성을 잃고 자본의 하위요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본이 주권자인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력의 판매자 즉, 상품으로써 살아가야 한다. 우리 눈에는 자유롭고 평등한 교환으로 보이지만 포섭은 억압과 구속이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의 예속이라고 저자는 마르크스의 비판을 통해 이야기한다. 또 마르크스는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가 노동일, 노동의 강도, 노동생산력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본다. 각각의 요인이 증가, 감소, 불변인 경우 중 주요한 조합에 대해서 고찰해보지만, 어떤 경우에도 잉여가치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늘어나며 따라서 계급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됨을 보여준다. 결국 [자본] 제5편에서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은 때때로 노동력의 가격이 그 가치 이상으로 상승한다 해도 잉여가치가 커질 수 있으며,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 크기의 상대적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처럼 마르크스가 얘기한 잉여가치 생산의 의미를 살펴보는 한편, 노동의 가치와 관련한 애덤 스미스의 오류, 잉여가치에 대한 리카도의 오류를 교정하는 마르크스의 비판내용을 상세하게 분석하여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노동해방을 위한 중요한 전제인 ‘노동의 일반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일 단축의 절대적 한계는 잉여노동이 생겨날 수 있느냐에 달려있지만,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얼마나 많은 구성원들이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특정계급(자본)이 자유를 얻기 위해 다른 계급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일함으로써 전체의 자유 시간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일반성은 요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52시간 노동시간과 관련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이어 마르크스는 임금과 관련한 정치경제학의 오류를 살펴본다. 정치경제학에서 임금은 분배의 문제로 보고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이윤을 얻기 위해 자본을 투자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자본, 토지, 노동에 대해 각각 이윤, 지대, 임금으로 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윤과 지대와 이자는 모두 잉여가치의 특수한 형태로 노동력을 통해 생산된 잉여가치를 분배한 것이라 단언한다. 임금은 노동력의 가치로써 노동력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이기 때문이다. 잉여가치율을 따질 때 살펴본 정식 w=c+v+m에서 생산물의 가치(w)에 담긴 생산수단의 가치(c)는 과거에 생산된 가치를 이전한 것이고, 노동력의 가치(v)와 잉여가치(m)는 노동자가 새로 생산한 가치이다. 따라서 가치의 생산과정에서 생산수단의 가치는 재현되지만 노동력의 가치는 재생산된다. 즉, 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하여 노동력의 대가로 받은 임금을 자본가에게 돌려준다. 그럼에도 임금은 나중에 받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대가로 분배받는 것이라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노동과 노동력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한다. 임금은 노동력의 가격으로 노동력의 가치를 화폐와의 교환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노동의 가격을 임금이라고 한다. 이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노동력(거래상품)과 노동(가치)을 구분하지 못해서이고, 그래서 말도 안되는 노동의 가격이라 부름으로써 잉여노동의 존재를 은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임금을 노동의 가격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이런 헛소리를 믿는 까닭은 자본과 노동의 교환이 일반적으로 상품매매처럼 지각되고,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그 자체로는 비교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르크스는 제6편에서 임금형태를 검토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하여 시간급제와 성과급제 같은 임금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자본가들이 성과급제를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찰한다. 그를 통해 임금이 ‘일한 만큼 받는 것’이라는 말이 거짓임을 깨닫게 된다. 즉 자본은 노동력의 가치를 모두 제대로 지불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르크스는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개념의 핵심은 잉여가치이고, 이는 노동과 노동력을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알 수 있음을 역설한다.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 제1권에 대한 독법을 배우고 있다. 총 열두 권의 책 중 이제 아홉 권을 읽었다. 남은 세 권은 또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지, 시리즈를 다 읽고 난 후 막상 [자본]을 읽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런 궁금증을 뒤로 하고 우선은 남은 세권을 마저 읽어야겠다.
아홉 번째 책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과연 제대로인지 검증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은 여러 가지 교묘한 꼼수를 써가며 '노동자의 몫'을 가로채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고 있는 현장을 급습하는 듯 까발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교묘한 수법은 오늘날에도 '정당한 방법'인냥 많은 이들의 '상식'처럼 깔려 있어서 노동자 스스로는 자신들의 몫이 착취 당하는지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착취의 현장'을 마르크스는 오래 전에 '고발'했으며, 노골적으로 자본가들의 편에 선 '정치경제학자'들도 싸잡아서 비난하곤 했다.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이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자본론>을 꼽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마르크스는 정말 대단하다.
마르크스는 '존 스튜어트 밀'을 비판했다. 왜냐면 '노동자도 일종의 자본가다'라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밀이 말하길, "이윤은 생계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노동의 신비한 생산력에서 나온다"고 했고, "교환이 없어도 노동을 하면 이윤이 생겨난다"고도 말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필요 이상의 '잉여생산'을 해냈으므로 노동자는 스스로 부를 쌓아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고, 이렇게 남아돌도록 생산을 해냈으니 '교환'을 하지 않아도 노동자는 '이윤'을 챙긴 셈이니, 노동자는 노동을 할수록 부유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 셈이다. 또한 "노동자가 노동을 한 뒤에 임금을 받는 것은 노동을 한 뒤에 대가를 챙긴 것이니 일종의 '투자'를 한 것과 마찬가지다"라고도 말을 한 밀을 마르크스는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현실적으로 노동자가 부를 쌓은 적이 없는데도 밀은 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학자의 양심에 앞서서 그도 '자본가 계급'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신이 속한 계급에 유리한 해석을 내놓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에도 그러지 않느냔 말이다. 허나 마르크스의 눈에는 '대학자의 지성이 이토록 저렴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경제학자라면서 '노동의 현실'을 너무나 모르는 처사라면서 말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동의 형태'와 '임금 지급'에 관한 분석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또 강조한 것이 바로 '형태'의 차이점을 유심히 바라보라고 했다. '형태'만 달라져도 자본가는 앉아서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시간급제'에서 '성과급제'로 임금 지급 형태를 바꾸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시간급제'에서는 노동을 한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든, 농땡이를 부리며 일하든 '일정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물론 농땡이를 피우면 감독관에게 걸려 해고를 당할 것이다. 허나 '성과급제'로 바꾸기만 했는데, 노동자 스스로 열심히 일하게 만들 수 있다. 주어진 노동시간 동안 누가 더 많은 양을 만들어냈느냐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주기만 해도 노동자들을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로 인해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건 사실이다. 허나 자본가가 챙기는 '잉여생산량만큼의 이윤'이 더 많이 생기기 때문에 결코 자본가가 손해볼 일은 없다.
또한 '성과급제'에서는 호황이든 불황이든 상관없이 자본가는 이윤을 챙길 수 있다. 호황은 말할 것도 없고 불황일 때는 '생산량'을 일방적으로 줄여버리기 때문에 더 적은 임금을 주어도 노동자들이 할 말이 없다. 도리어 쫓겨나지나 않을까 적은 임금을 받고도 버티기 모드로 들어가기 일쑤다. 또 '성과급제' 아래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감시를 하기 때문에 별도의 감독이 필요없을 정도로 편리하게 '이윤'을 챙길 수 있다. 단지 '생산량'이 얼마큼인지 결과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에 더욱 편리하게 '착취'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처럼 '형태'를 유심히 관찰하면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마르크스는 역설한다.
이렇게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유능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건 '착취를 잘 당하는 것'과 통한다. 재주가 뛰어나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자본가에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전락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자칫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속담과 딱 들어맞는 경우다. 이를 테면, 빵 공장에서 1시간에 평균 100개를 만드는데 비해, 같은 시간에 200개를 만드는 노동자가 있다면 자본가는 노동자를 칭찬하는 약간의 수고만으로도 엄청난 이윤을 챙기기 때문이다. 물론 '보너스'와 같은 단맛을 느끼게 해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보다 더 많은 이윤을 자본가가 고스란히 챙긴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훌륭한 작가란 좋은 글귀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가 아니라 더 많은 책을 팔아 돈을 더 많이 벌게 해주는 작가라는 점도 자본가가 파놓은 '함정'이다.
어찌보면 '훌륭한 리뷰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꽁짜책을 받고 글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리뷰어가 직접 책을 사서 읽고 일정한 독서시간을 할애한 뒤에 정성껏 리뷰를 남기게 된다. 대부분은 리뷰를 쓰고서 '돈 한 푼' 받지 못한다. 물론 작가를 지망하거나 취미생활의 일환이라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아도 보람을 느끼며 뿌듯해 하지만, 정작 '온라인 서점'에서는 그런 리뷰어들 덕분에 '공짜 책홍보'로 이득을 챙기며, 출판사들도 덩달아 판매고를 올리는 이득을 챙긴다. 그렇게 수고한 '리뷰어'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온라인 서점'과 '출판사'가 얼마나 있을까? 리뷰어가 '노동자'라면 당장에 조합을 꾸리고 소송을 벌여야 마땅할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 힘든 구조다. 유능하면 유능할수록 더 많은 착취를 당하기 때문이다. 또 그만큼 '노동의 가치'도 저평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유능한 재주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인정받은 만큼 '댓가'도 정당하게 받아야만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본가의 꼼수'에 걸려들어서 노동자가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빼앗기지 말자는 것이다. '월급명세서'만 봐도 상당히 복잡하다. 내가 받아야할 '기본수당'에 '추가수당'을 더해서 한 달치 월급이 딱 이 정도다..라고 쓰여진 명세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받아야 할 '기본수당'은 깎고, '추가수당'을 항목별로 세분화해서 이름도 요상한 명목의 명세서를 받기 일쑤다. 그 결과 '내가 받아야 할 액수'는 얼추 맞는 것 같은데, 회사로서는 '내야할 세금'을 깎을 수 있는 꼼수를 부린 셈이다. 그렇게 기업이 내야 할 세금이 줄어들면 '유리지갑'을 갖고 있는 월급쟁이들이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상대적으로 세금을 더 많이 낸 '월급쟁이'에게 유리한 정책보다는 '기업'에게 유리한 정책을 내놓곤 한다. 그래도 '월급쟁이'는 아쉬운 소리를 내지 못한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아름다울 수 없는 진실'을 알고서도 불평 한마디 내뱉을 수 없는 노동자의 처지를 말이다. 마르크스가 100여 년전에 이미 지적한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드디어 자본 시리즈의 9권이 나왔습니다!! 사실은 지금 제 경제학 공부 순서 상으로는 아직 이 시리즈는 뒤에 배치된 상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뒤에 배치된 이유는 일단 맨큐의 경제학과, 환율공부, 그리고 보울스의 '자본주의 이해하기'를 읽은 다음에 최종적인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많은 분들은 노사간의 대립이 사회의 중심이었던 적은 과거의 제조업 부흥기일 뿐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봐도 국민의 70프로 이상은 분명 임금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보너스 잔치를 하는 임원급들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이지요. 그런데도 노동자계급은 더 이상 없다고, 나는 노동자계급이 아니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노동이 바로 잉여가치의 원천이란 점을 이 시리즈를 통해 절실히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여기에 대한 깨달음이 없고서는 정치판의 대립의 기저에 깔린 이해관계가 궁극적으로 어떤 구도에서 파생되는 것인지는 이해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