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공유하기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북클럽 『자본』 시리즈-09이동
리뷰 총점8.6 리뷰 3건 | 판매지수 438
베스트
철학/사상 top100 4주
신상품이 출시되면 알려드립니다. 시리즈 알림신청
1월의 굿즈 : 디즈니 캐릭터 대용량 머그/머그&티스푼 세트/클로버 북백/북파우치 3종 세트/크리스탈 문진
1월의 얼리리더 주목 신간 : 꿈꾸는 토끼 배지 증정
내 최애 작가의 신작 '최신작' 먼저 알림 서비스
소장가치 100% YES24 단독 판매 상품
쇼핑혜택
현대카드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304g | 126*186*20mm
ISBN13 9791190413084
ISBN10 119041308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의 말―학문의 염가 판매와 과대광고

1 자본주의에서, 유능한 노동자가 된다는 것

· 원근법적 물신주의 - 역사에 대한 시각적 기만
· 생산적 노동이란 무엇인가
· ‘생산적 노동’에 대한 스미스의 두 가지 규정
· 서비스 노동은 생산적 노동이 아닌 것인가
· 미덕의 불운

2 자본가의 지배와 자연의 침묵

· 자본에 포섭된 노동 - “칼 없는 계약”은 없다
· 절대적 잉여가치도 ‘상대적’이고, 상대적 잉여가치도 ‘절대적’이다
· 자연은 사고야자나무를 누구에게 선물했는가
· 자연을 지배하고 노동자를 지배하고 식민지를 지배하다
· 자본과 식인종 - 적어도 400만 명의 식인종이 산다
· 노동자는 자본가다? - 어리석은 ‘위대한 지성’

3 커져가는 계급 격차-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의 크기

· 마르크스의 『자본』은, 흐르는 강물처럼
·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에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요인
·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 잠시 기분전환을 위하여 - 잉여노동시간이 사라진 세상
· 고전파 경제학의 잉여가치율 정식 - “하데스의 투구”를 쓰고 싶은 사람들

4 임금에서 생기는 착시 현상

· 임금은 노동소득이고 이윤은 불로소득이다
·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 ‘노동의 가격’이라는 엉터리 말
· ‘노동의 가격’이라는 교활한 말
· ‘당신이 일한 만큼 받는 것’이라는 거짓말

5 임금형태를 둘러싼 술책

· 임금형태 ① - 시간급제
· 임금형태 ② - 성과급제
· 국가별로 다른 임금, 그리고 그 차이의 의미
· 아름답고 조화로운 자본주의? - 케리와 바스티아에 대한 비판

부록노트
· 노동력을 생산하는 노동에 대하여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다음과 같은 비극적 아이러니와 마주하게 됩니다. “생산적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결코 행운이 아니며 오히려 지독한 불운이다.” 그의 불운은 그가 가진 미덕의 결과입니다. 생산적이고 유능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자본주의라는 조건에서는 더 쉽게 더 많이 착취된다는 뜻이니까요. 알을 많이 낳는 암탉이 양계장이라는 조건을 고려하면 결코 축복이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 p.40

노동자는 자본가의 개인 소유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본가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사회적 편제, 자본가에게 ‘최선’이 되도록 세팅된 편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것이 포섭입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형식적으로라도 노동의 포섭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합니다. 노동자들이 노동력의 판매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노동과정은 자본가의 통제 아래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 p.51

높은 생산성과 자연의 부는 필요노동을 줄여줍니다. 그러나 이것이 잉여노동이 늘어나야 할 이유는 아닙니다. 필요노동이 일정 수준으로 줄어들어야 잉여노동이 가능하고, 필요노동이 많이 줄어들면 그만큼 잉여노동을 늘릴 여지가 생기겠지요. 하지만 그건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천혜의 자연조건이란 언제나 잉여노동[따라서 잉여가치나 잉여생산물]의 가능성을 부여할 뿐이지 결코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요.
--- p.60

하이데거 역시 기술에 따라 자연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다르게 상응하는지를 보여주었는데요. 이를테면 풍차나 물레방아를 생각해봅시다. 이 장치들은 바람이나 물의 흐름 즉 자연에 자신을 내맡깁니다. 이것들은 에너지를 저장하고 축적하기 위해 개발된 게 아닙니다. 반면 현대의 발전소들은 변덕스러운 자연을 길들이고 통제하고, 무엇보다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짜내고 비축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농업기술도 그렇습니다. 과거의 농부들에게 경작이란 키우고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씨앗과 땅에 대한 믿음이 경작의 기본입니다. 농부란 씨앗과 땅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리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반면 자연의 힘을 믿을 수 없는(그것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농부들은 화학비료를 뿌려댑니다. 힘을 짜내는 거죠. 사료에 호르몬제를 투여해 가축으로부터 고기를 짜내고, 우유를 짜내고, 달걀을 짜내는 식입니다(하이데거의 말처럼 “농업은 이제 기계화된 식품공업”입니다).
--- p.70

19세기 정치경제학자들은 ‘자본관계’(Kapitalverhaltnis)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독특한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마르크스는 리카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리카도는 잉여가치의 원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는 잉여가치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그러니까 자신의 눈에 사회적 생산의 자연적 형태로 보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본래부터 들어 있는(inharente) 것으로 취급한다.”
--- p.76

밀은 이윤(잉여가치)의 원천을 노동의 어떤 신비한 성격에서 찾습니다. 그는 리카도를 속류화한 추종자들처럼 노동의 생산력이 이윤을 낳는다고 봅니다. “노동은 자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한다는 것이지요. 잉여가치는 ‘노동력의 가치 이상으로 연장된 노동’(외적 강제가 필요한 일이죠)에서 나온 것이지 노동을 하면 천성적으로 그 가치보다 많은 가치가 생산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자본주의의 잉여가치는 물론이고 다른 생산양식에서의 잉여생산물도 그렇습니다. 이것들은 “어떤 경우에도 인간노동의 타고난 신비한 성질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 p.78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노동자에 대한 밀의 인식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도 보여줍니다. 밀은 노동자가 생존수단을 갖고 있어서 자본가가 임금총액을 지불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그렇게 기다리는 한에서 자본을 투자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고 나서 임금을 받는다면 임금을 받을 때까지는 일정액의 자본을 해당 사업에 투자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거죠(처음에는 노동자가 생필품을 살 돈을 먼저 받고 그것을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받는 한에서 투자자로 볼 수 있다고 했지만, 곧이어 임금을 늦게 받는 한에서 모든 노동자들을 투자자 즉 자본가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 p.82

밀을 비롯해서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서도 자본주의를 보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본주의를 목격했습니다. 시각적 기만에 빠져 과거 사회형태들을 제멋대로 본 것이지요. 이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자기 시대 즉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자기 시대가 얼마나 독특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시대 속에서도 자기 시대를 보는 것이지요. 발상의 전환만으로 노동자를 자본가로, 농민을 노예로 만든다는 것은 이들이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노예제가 무엇인지를 실상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 p.83~84

저울 눈금이 어디를 가리킬지는 힘에 달려 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바로 노동일에 관한 장에서 나온 이야기죠. 자본주의에서 노동일의 최저 한계는 필요노동시간입니다. 노동일이 그보다 짧으면 잉여가치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일은 얼마만큼 늘릴 수 있을까요.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이 사태를 결정”한다고요. “총자본가 즉 자본가계급과 총노동자 즉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이 결정한다고 말이지요. 노동일은 12시간도 될 수 있고, 10시간 또는 8시간도 될 수 있습니다.
--- p.96~97

노동생산력 증대(와 노동자들의 저항)의 결과로 노동자의 생활수단의 양이 증대하는 경우에도, 심지어 노동력의 가치 이상으로 임금을 지급받는 경우에도 노동일 중 ‘노동력의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드는 겁니다. 그만큼 잉여가치는 더 늘어나고요. 증가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떡고물처럼 떼어 주어도 자본가는 그보다도 더 많이 가져가기 때문에 두 계급 간 격차가 더욱 확대되는 것이지요.
--- p.104

왜 19세기 중반 이후 노동일이 단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급 간 격차는 줄지 않고 오히려 커져갔는가. 이론적으로 노동생산력과 노동강도가 불변인 상황을 가정하면 노동일 단축은 잉여가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일 단축에 반대했던 자본가들과 그들의 정치경제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펼쳤지요. 노동일을 단축하면 큰 손실이 발생한다고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들의 가정이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일을 단축하기 전에 혹은 노동일을 단축하자마자 노동생산력이 증대하고 노동강도가 강화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노동일 단축으로 잉여가치가 축소되는 일이 없었던 겁니다. 더 벌 수 있는 것을 못 벌었다고 할 수는 있어도 잉여가치가 노동일 단축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감소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노동일 단축에도 불구하고 계급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되었던 거죠.
--- p.114~115

자본가는 자기 자본의 일부를 생산수단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고(불변자본), 일부를 노동력을 구매하는 데 사용합니다(가변자본). 그러니까 노동력의 가치는 가치생산물을 생산하는 데 기여한 만큼 노동자가 분배받는 몫이 아니라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상품(노동력)을 구입할 때 자본가가 치르는 값입니다(다만 값을 미리 치르지 않기 때문에 마치 분배를 받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리고 잉여가치는 형식상으로는 가치생산물 중 일부이지만, 실제로는 투자한 것 이상으로 생산된 가치생산물,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력 구매에 들인 것보다 노동력 사용을 통해 더 많이 뽑아낸 것이지요.
--- p.138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1. ‘생산적 노동’이란 무엇인가? 착시의 교정이 필요하다
- “자본주의에서 ‘유능한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행운이 아니라 지독한 불운”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을 더 깊이 공부해보자는 뜻에서 2018년부터 2년째 이어가고 있는 「북클럽『자본』」 시리즈가 아홉 번째 책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를 펴냈다. 이번 9권은 현재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가장 실감할 만한 주제 곧 ‘임금’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서 저자 고병권은 마르크스의 『자본』 I권 제5편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제6편 “임금”을 면밀히 분석한다.

이번에 다루는 『자본』 제5편의 제목은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시리즈의 이전 책에서 다룬 『자본』제3편과 제4편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에 『자본』 제5편을 다루면서 저자는 잉여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의 ‘의미’를 짚는다. 노동자의 ‘생산력’이 늘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본주의에서 생산적 존재가 된다는 것은 과연 축복인가 불행인가. 우리 시대에서 ‘생산적’이라는 말은 어떤 뜻을 내포하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의 생산활동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왔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얼마나 독특한 시대를 살고 있는가.

저자 고병권은 『자본』 제5편을 통해 마르크스가 ‘착시의 교정’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종종 내리막길이 오르막길로 보이는 것과 같은 착시 현상이 나타나는데 마르크스가 그것을 ‘이성의 눈’으로 바로잡는 작업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착시의 교정 작업은 이번 책에서는 예컨대 이런 것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지불된 임금인데도 마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은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 임금의 상대적 크기는 분명 작아지고 있는데도 임금이 과거보다 월등히 오른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매우 불운한 존재”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에서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은 단순한 노동생산물이 아니라 ‘상품’이기 때문이다. 단지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내서는 ‘생산적 노동자’가 될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자본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본가가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 규정에 부합해야 비로소 ‘생산적 노동’을 수행했다고 인정받는다. 하인의 노동이 비생산적 노동인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반면 서비스 노동이 생산적 노동일 수 있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저자 고병권은 ‘생산적 노동’ 및 ‘생산적 노동자’의 내용과 의미를 파헤치면서 고전파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생산적 노동’을 어떻게 잘못 규정했는지(애덤 스미스는 생산물의 내구성이 ‘생산적 노동’의 필수 요소라고 봤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적 노동에 대한 규정이 얼마나 이상한지를 밝힌다. 아울러 ‘노동의 가치’와 관련한 스미스의 오류를 교정하는 마르크스의 비판 내용을 정밀히 분석해 소개하면서, 자본주의에서 ‘생산적’이라는 말이 어떤 맥락에서 쓰이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자본주의에서 유능한 교사, 생산적인 교사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가 교육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아이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그것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는 교육 공장을 운영하는 자본가를 부자로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적 노동자란 튼튼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벌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가구 공장이든 소시지 공장이든 교육 공장이든 다를 게 없습니다. 생산적인 교육 노동자임을 증명하는 것은 노동대상에서 일어난 일 즉 아이들의 성장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 즉 교육을 통해 얼마를 벌어들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본문 39~40쪽, 「1장 자본주의에서, 유능한 노동자가 된다는 것」

2. 잉여노동의 제국, 자본이 만든 괴상한 나라
- “자본은 이 세상에 식인종처럼 존재하고 있다”


저자 고병권은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려 자연은 많은 것들을 낳지만 잉여가치를 낳진 않았다고 말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한 것은 잉여가치가 아니라 ‘풍요로움’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잉여가치를 생산한 것은 역사적으로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풍족한 땅, 부지런한 종족이라 할지라도 잉여가치를 생산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인간은 ‘유능한 노동자’, ‘생산적 노동자’로 자발적으로 나서 ‘잉여가치’를 생산하며 살아가게 되었을까.

노동자가 ‘노동력의 가치’를 넘어 자본가를 위한 ‘잉여가치’를 계속해서, 세대를 넘어서까지 생산하는 것은 그의 노동이 자본에 포섭되었기 때문이다. 왜 노동자는 자기 노동력의 가치 그 이상으로 생산하며 분투해야 하는가. 자본이 주권자인 사회에서 노동력의 상품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잉여가치’(잉여노동)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노동력은 상품이 된 것이므로, “군주에게 삶을 허락받은 신민이 영원한 채무자가 되어 공물을 바치듯”,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구매해준 자본가에게 영원한 채무자가 되어 잉여가치를 바친다.

하지만, 노동자가 만약 자본의 주권 아래 있지 않다면 어떨까? 노동이 자본과 대등하게 서 있을 수 있다면? 그때도 노동자는 자기 노동력 이상의 가치, 곧 필요노동을 넘어 잉여노동을 자본에 제공했을까. 자연조건이 좋아 하루 2시간만 일해도 그날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모두 구할 수 있는 사회가 있다고 해보자(이 사회의 필요노동시간은 ‘2시간’인 것이다). 자본주의라면 필요노동이 끝나는 점부터 잉여노동이 시작되므로, 우리는 이런 풍족한 조건이 곧 2시간 이상의 초과 노동 곧 잉여노동의 시작점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 걸까?

마르크스는 말한다. “잉여노동의 크기는 노동의 자연조건, 특히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변동할 것이다. 그렇다고 가장 비옥한 토지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성장에 가장 적합한 토지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전제한다. 반면 자본주의가 발생하지 않는 곳은 인간이 자연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나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자연에 대한 심성 내지 감정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자연을 지배해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와 자연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 전자에서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불신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인색하고 인간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반면 후자의 경우 사람들은 아이가 부모에 대해 그렇듯 자연에 대해 믿음과 신뢰를 갖고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 덕분에 인간이 살 수 있다는 거죠. - 본문 69쪽, 「2장 자본가의 지배와 자연의 침묵」

저자 고병권은, 자연에 대한 이런 태도는 자본주의체제에서 피어났다고 지적한다. 이윤에 대한 무제한적 충동이 자연이 제공하는 어떤 것도 모자라 보이게 만드는 세상, 모든 사람이 경쟁에 내몰린 세상, 생산성이 떨어지면 도태되는 세상… 이런 상황에서 자연에 은혜를 입었다고 감사하며 지낼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이 쓴 『국부론』의 핵심 메시지는 부의 원천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근면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견해에 따르면 자연은 가만두면 불모가 된다. 인간이 닦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내놓지 않는 구두쇠가 자연이다. 그래서 자본은 자연마저 지배하고자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지배 그리고 식민지에 대한 지배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무관치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동자를 쥐어짜고 식민지를 쥐어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자연을 쥐어짜는 기술의 발전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잉여노동을 해야 하고, 그것이 잉여가치의 생산을 의미하게 된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말하기 위해 식인종의 존재를 끌어들인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노동을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넘기는 것”(자기 먹을 것을 타인의 노동에서 취하는 것)을 “가로막는 절대적인 자연적 장애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은 마치 “다른 사람의 육신을 식량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절대적인 장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잉여가치가 존재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자본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이 세상에 식인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자연은 자본의 존재를 금지하지 않았다. 식인종을 금지하지 않은 것처럼. 세상에는 이런 나라가 있다. 실은 이런 나라가 더 지배적이다. 마르크스와 같은 사려 깊은 관찰자에게 이런 나라는 아주 독특하고 ‘괴상한 나라’인 것이다.

3. ‘당신이 일한 만큼 받는 것’이라는 거짓말
- “임금은 분배의 문제가 아닌 생산의 문제”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을 대표하는 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노동자가 생존수단을 갖고 있어서 자본가가 임금총액을 지불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면, 그렇게 기다리는 한에서 자본을 투자한 것과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폈다.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고 나서 임금을 받는다면 임금을 받을 때까지는 일정액을 해당 사업에 투자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다.

저자는 바로 이런 견해에, 이윤(잉여가치)을 투자한 돈(자본)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임금을 투입한 노동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부르주아 정치경제학자들의 잘못된 사고방식이 나타나 있다고 지적한다. 이윤은 오리가 알을 낳듯 자본이 낳은 것도 아니고(자본물신주의), 자본가가 생산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또한 임금은 이윤과 다르다. 임금은 노동자 자신이 “필요노동의 형태로 직접 생산한 것”이다. 노동자는 자신이 받을 것을 자신이 생산하고(엄밀히 말하면, 자본가는 아무것도 지불한 게 없다), 잉여노동을 통해 자본가가 챙겨 갈 몫까지 생산해준 것이다.

『자본』 제5편 제15장에서 마르크스는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의 양적 변동’을 다룬다. 앞서 보았듯, 자본주의에서 ‘생산적 노동’이란 잉여가치를 낳는 노동이며, 잉여가치의 정체는 ‘잉여노동’이다. 잉여노동이란 ‘노동력의 가치’, 곧 ‘노동력의 가격’이 지불된 필요노동 그 이상으로 행해진 노동이다. 제5편에서 마르크스는 이전에 설명한 ‘잉여가치의 생산방식’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노동일과 노동생산력과 노동강도 등에서 나타난 변화가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본』 제6편에서 마르크스는 ‘임금형태’를 검토한다. 『자본』 제6편을 통해 독자들은 자본주의에서 왜 ‘시간급제’나 ‘성과급제’ 같은 온갖 임금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국가마다 노동력의 가격 차이가 왜 발생하며, 그 함의는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즉 노동일 연장이나 노동생산력, 노동강도의 증대가 잉여가치의 생산뿐 아니라 노동력의 가치(곧 노동력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전에 ‘노동일’ 문제를 다룰 때 살펴보았듯 ‘노동력의 가격’을 정할 때도 과학 너머의 요소인 힘, 즉 계급투쟁이 개입한다고 말한다. ‘계급 간 힘 관계’가 어떠한가에 따라 노동력의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노동력의 가격이 노동력의 가치 이상이 될 때도 있다고 전제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저항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다각도 분석을 통해 우리는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과연 적정한지 생각해보고 또 따져볼 수 있게 된다. 자본가들이 챙겨 가는 잉여가치의 크기와 노동자들이 지불받는 임금의 상대적 크기도 비교해볼 수 있으며, 임금제도를 둘러싼 자본가의 여러 가지 술책을 간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뜻 보면, 등가교환의 원리에 걸맞게 자본과 노동의 교환이 무척이나 평등하게 이루어진 것 같지만, 다시 말해 자본가가 ‘노동력의 가치’를 제대로 모두 지불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마르크스의 분석을 통해 깨닫게 된다.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이윤(잉여가치)을 얻기 위해 자본을 투자해 상품을 생산하는 체제입니다. 노동력은 자본가가 생산을 위해 생산수단과 함께 구매한 상품으로서, 생산에 투자된 자본의 일부이지요. 생산에 투자된 자본은 생산수단인 불변자본과 노동력인 가변자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본가는 시장에서 구매한 노동력을 사용해 잉여가치를 얻습니다. 이 잉여가치의 일부를 지주에게 지대로 지급하죠. 만약 그가 투자한 자본이 대부자본가에게 빌린 것이라면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로도 지급하겠지요.

이처럼 이윤과 지대와 이자는 모두 잉여가치의 특수한 형태로서, 노동력을 통해 생산된 잉여가치를 분배한 것입니다. 하지만 임금은 다릅니다. 노동력의 가치(가격)로서의 임금은 생산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자본가가 구매하는 시점에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상품들이 그렇듯 노동력을 생산(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입니다. 그리고 자본가가 구매하면서 지불한 이 가치는 생산과정에서 재생산됩니다. 가치의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는 잉여가치와 함께 노동력의 가치 즉 자신의 임금을 생산합니다. - 본문 146~147쪽, 「4장 임금에서 생기는 착시 현상」

회원리뷰 (3건) 리뷰 총점8.6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임금이란 노동에 대한 가격이 아니라 노동력의 가격이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초* | 2022.03.13 | 추천16 | 댓글1 리뷰제목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공부하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 아홉 번째 책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는 마르크스 [자본] 제1권의 제5편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제6편 ‘임금’에 관한 읽기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잉여가치율과 임금을 둘러싼 고전 정치경제학의 온갖 횡설수설과 착시, 기만, 술책 등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
리뷰제목

철학자 고병권과 함께 공부하는 북클럽 자본 시리즈 아홉 번째 책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는 마르크스 [자본] 제1권의 제5편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제6편 ‘임금’에 관한 읽기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잉여가치율과 임금을 둘러싼 고전 정치경제학의 온갖 횡설수설과 착시, 기만, 술책 등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 제3편에서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식을 다루었고, 제4편에서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방식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절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일 연장을 통해서, 그리고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력 증대를 통해서 얻는다. 자본은 잉여가치를 얻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 오래, 더 효과적으로, 더 강도 높게 일하는 유능한 노동자로 만들었다. 제5편에서는 그렇게 잉여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동과정이란 노동자가 노동수단을 가지고 노동대상에 변형을 가하는 과정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란 현물을 생산하는 노동과정인 동시에 가치를 생산하는 가치증식과정이다. 여기서 노동과정은 자본이 구매한 노동력을 소비하는 과정이고, 가치증식과정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말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생산적 노동이란 자본의 가치증식에 봉사하는 노동, 즉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일컫는다. 그러면 노동자는 왜 노동력의 가치를 넘어서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하는 걸까? 그것은 노동이 자본에 포섭되었기 때문이라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의 형식적 포섭이고,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의 실질적 포섭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의 노동이 가치증식의 요소로 계속해서 기능하는 것은 노동이 자율성을 잃고 자본의 하위요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자본이 주권자인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력의 판매자 즉, 상품으로써 살아가야 한다. 우리 눈에는 자유롭고 평등한 교환으로 보이지만 포섭은 억압과 구속이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 형태의 예속이라고 저자는 마르크스의 비판을 통해 이야기한다. 또 마르크스는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가 노동일, 노동의 강도, 노동생산력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살펴본다. 각각의 요인이 증가, 감소, 불변인 경우 중 주요한 조합에 대해서 고찰해보지만, 어떤 경우에도 잉여가치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늘어나며 따라서 계급 간 격차는 더욱 확대됨을 보여준다. 결국 [자본] 제5편에서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은 때때로 노동력의 가격이 그 가치 이상으로 상승한다 해도 잉여가치가 커질 수 있으며,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 크기의 상대적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처럼 마르크스가 얘기한 잉여가치 생산의 의미를 살펴보는 한편, 노동의 가치와 관련한 애덤 스미스의 오류, 잉여가치에 대한 리카도의 오류를 교정하는 마르크스의 비판내용을 상세하게 분석하여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노동해방을 위한 중요한 전제인 ‘노동의 일반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일 단축의 절대적 한계는 잉여노동이 생겨날 수 있느냐에 달려있지만, 자본주의가 아니라면 얼마나 많은 구성원들이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특정계급(자본)이 자유를 얻기 위해 다른 계급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일함으로써 전체의 자유 시간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의 일반성은 요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52시간 노동시간과 관련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이어 마르크스는 임금과 관련한 정치경제학의 오류를 살펴본다. 정치경제학에서 임금은 분배의 문제로 보고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가가 이윤을 얻기 위해 자본을 투자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체제이다. 따라서 자본, 토지, 노동에 대해 각각 이윤, 지대, 임금으로 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윤과 지대와 이자는 모두 잉여가치의 특수한 형태로 노동력을 통해 생산된 잉여가치를 분배한 것이라 단언한다. 임금은 노동력의 가치로써 노동력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량이기 때문이다. 잉여가치율을 따질 때 살펴본 정식 w=c+v+m에서 생산물의 가치(w)에 담긴 생산수단의 가치(c)는 과거에 생산된 가치를 이전한 것이고, 노동력의 가치(v)와 잉여가치(m)는 노동자가 새로 생산한 가치이다. 따라서 가치의 생산과정에서 생산수단의 가치는 재현되지만 노동력의 가치는 재생산된다. 즉, 노동자는 생산과정에서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하여 노동력의 대가로 받은 임금을 자본가에게 돌려준다. 그럼에도 임금은 나중에 받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대가로 분배받는 것이라 착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노동과 노동력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한다. 임금은 노동력의 가격으로 노동력의 가치를 화폐와의 교환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노동의 가격을 임금이라고 한다. 이는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노동력(거래상품)과 노동(가치)을 구분하지 못해서이고, 그래서 말도 안되는 노동의 가격이라 부름으로써 잉여노동의 존재를 은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임금을 노동의 가격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이런 헛소리를 믿는 까닭은 자본과 노동의 교환이 일반적으로 상품매매처럼 지각되고,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그 자체로는 비교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르크스는 제6편에서 임금형태를 검토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하여 시간급제와 성과급제 같은 임금형태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자본가들이 성과급제를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찰한다. 그를 통해 임금이 ‘일한 만큼 받는 것’이라는 말이 거짓임을 깨닫게 된다. 즉 자본은 노동력의 가치를 모두 제대로 지불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르크스는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에서 개념의 핵심은 잉여가치이고, 이는 노동과 노동력을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알 수 있음을 역설한다.

 

‘북클럽 자본 시리즈’를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 제1권에 대한 독법을 배우고 있다. 총 열두 권의 책 중 이제 아홉 권을 읽었다. 남은 세 권은 또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지, 시리즈를 다 읽고 난 후 막상 [자본]을 읽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런 궁금증을 뒤로 하고 우선은 남은 세권을 마저 읽어야겠다.

댓글 1 16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6
구매 Think 10.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異**********나 | 2020.10.28 | 추천6 | 댓글1 리뷰제목
  아홉 번째 책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과연 제대로인지 검증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은 여러 가지 교묘한 꼼수를 써가며 '노동자의 몫'을 가로채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고 있는 현장을 급습하는 듯 까발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교묘한 수법은 오늘날에도 '정당한 방법'인냥 많은 이들의 '상식'처럼 깔려 있어서 노동자 스스로는 자신들의 몫이 착취 당하는지;
리뷰제목

  아홉 번째 책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과연 제대로인지 검증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은 여러 가지 교묘한 꼼수를 써가며 '노동자의 몫'을 가로채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고 있는 현장을 급습하는 듯 까발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교묘한 수법은 오늘날에도 '정당한 방법'인냥 많은 이들의 '상식'처럼 깔려 있어서 노동자 스스로는 자신들의 몫이 착취 당하는지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착취의 현장'을 마르크스는 오래 전에 '고발'했으며, 노골적으로 자본가들의 편에 선 '정치경제학자'들도 싸잡아서 비난하곤 했다.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이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자본론>을 꼽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마르크스는 정말 대단하다.

 

  마르크스는 '존 스튜어트 밀'을 비판했다. 왜냐면 '노동자도 일종의 자본가다'라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밀이 말하길, "이윤은 생계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노동의 신비한 생산력에서 나온다"고 했고, "교환이 없어도 노동을 하면 이윤이 생겨난다"고도 말했다. 다시 말해,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필요 이상의 '잉여생산'을 해냈으므로 노동자는 스스로 부를 쌓아나가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고, 이렇게 남아돌도록 생산을 해냈으니 '교환'을 하지 않아도 노동자는 '이윤'을 챙긴 셈이니, 노동자는 노동을 할수록 부유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 셈이다. 또한 "노동자가 노동을 한 뒤에 임금을 받는 것은 노동을 한 뒤에 대가를 챙긴 것이니 일종의 '투자'를 한 것과 마찬가지다"라고도 말을 한 밀을 마르크스는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현실적으로 노동자가 부를 쌓은 적이 없는데도 밀은 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학자의 양심에 앞서서 그도 '자본가 계급'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자신이 속한 계급에 유리한 해석을 내놓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에도 그러지 않느냔 말이다. 허나 마르크스의 눈에는 '대학자의 지성이 이토록 저렴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경제학자라면서 '노동의 현실'을 너무나 모르는 처사라면서 말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동의 형태'와 '임금 지급'에 관한 분석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또 강조한 것이 바로 '형태'의 차이점을 유심히 바라보라고 했다. '형태'만 달라져도 자본가는 앉아서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시간급제'에서 '성과급제'로 임금 지급 형태를 바꾸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시간급제'에서는 노동을 한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든, 농땡이를 부리며 일하든 '일정 시간'만큼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물론 농땡이를 피우면 감독관에게 걸려 해고를 당할 것이다. 허나 '성과급제'로 바꾸기만 했는데, 노동자 스스로 열심히 일하게 만들 수 있다. 주어진 노동시간 동안 누가 더 많은 양을 만들어냈느냐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주기만 해도 노동자들을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로 인해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는 건 사실이다. 허나 자본가가 챙기는 '잉여생산량만큼의 이윤'이 더 많이 생기기 때문에 결코 자본가가 손해볼 일은 없다.

 

  또한 '성과급제'에서는 호황이든 불황이든 상관없이 자본가는 이윤을 챙길 수 있다. 호황은 말할 것도 없고 불황일 때는 '생산량'을 일방적으로 줄여버리기 때문에 더 적은 임금을 주어도 노동자들이 할 말이 없다. 도리어 쫓겨나지나 않을까 적은 임금을 받고도 버티기 모드로 들어가기 일쑤다. 또 '성과급제' 아래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감시를 하기 때문에 별도의 감독이 필요없을 정도로 편리하게 '이윤'을 챙길 수 있다. 단지 '생산량'이 얼마큼인지 결과만 확인하면 되기 때문에 더욱 편리하게 '착취'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처럼 '형태'를 유심히 관찰하면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마르크스는 역설한다.

 

  이렇게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유능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건 '착취를 잘 당하는 것'과 통한다. 재주가 뛰어나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자본가에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전락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자칫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긴다는 속담과 딱 들어맞는 경우다. 이를 테면, 빵 공장에서 1시간에 평균 100개를 만드는데 비해, 같은 시간에 200개를 만드는 노동자가 있다면 자본가는 노동자를 칭찬하는 약간의 수고만으로도 엄청난 이윤을 챙기기 때문이다. 물론 '보너스'와 같은 단맛을 느끼게 해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보다 더 많은 이윤을 자본가가 고스란히 챙긴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또한 훌륭한 작가란 좋은 글귀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가 아니라 더 많은 책을 팔아 돈을 더 많이 벌게 해주는 작가라는 점도 자본가가 파놓은 '함정'이다.

 

  어찌보면 '훌륭한 리뷰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꽁짜책을 받고 글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리뷰어가 직접 책을 사서 읽고 일정한 독서시간을 할애한 뒤에 정성껏 리뷰를 남기게 된다. 대부분은 리뷰를 쓰고서 '돈 한 푼' 받지 못한다. 물론 작가를 지망하거나 취미생활의 일환이라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아도 보람을 느끼며 뿌듯해 하지만, 정작 '온라인 서점'에서는 그런 리뷰어들 덕분에 '공짜 책홍보'로 이득을 챙기며, 출판사들도 덩달아 판매고를 올리는 이득을 챙긴다. 그렇게 수고한 '리뷰어'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온라인 서점'과 '출판사'가 얼마나 있을까? 리뷰어가 '노동자'라면 당장에 조합을 꾸리고 소송을 벌여야 마땅할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기 힘든 구조다. 유능하면 유능할수록 더 많은 착취를 당하기 때문이다. 또 그만큼 '노동의 가치'도 저평가 될 뿐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아름다운 일'이 일어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유능한 재주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인정받은 만큼 '댓가'도 정당하게 받아야만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본가의 꼼수'에 걸려들어서 노동자가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빼앗기지 말자는 것이다. '월급명세서'만 봐도 상당히 복잡하다. 내가 받아야할 '기본수당'에 '추가수당'을 더해서 한 달치 월급이 딱 이 정도다..라고 쓰여진 명세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받아야 할 '기본수당'은 깎고, '추가수당'을 항목별로 세분화해서 이름도 요상한 명목의 명세서를 받기 일쑤다. 그 결과 '내가 받아야 할 액수'는 얼추 맞는 것 같은데, 회사로서는 '내야할 세금'을 깎을 수 있는 꼼수를 부린 셈이다. 그렇게 기업이 내야 할 세금이 줄어들면 '유리지갑'을 갖고 있는 월급쟁이들이 내야 할 세금이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상대적으로 세금을 더 많이 낸 '월급쟁이'에게 유리한 정책보다는 '기업'에게 유리한 정책을 내놓곤 한다. 그래도 '월급쟁이'는 아쉬운 소리를 내지 못한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아름다울 수 없는 진실'을 알고서도 불평 한마디 내뱉을 수 없는 노동자의 처지를 말이다. 마르크스가 100여 년전에 이미 지적한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댓글 1 6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6
구매 맑스가 제기한 문제는 해결되긴 커녕 더 심화되고 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c******e | 2020.04.1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드디어 자본 시리즈의 9권이 나왔습니다!! 사실은 지금 제 경제학 공부 순서 상으로는 아직 이 시리즈는 뒤에 배치된 상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뒤에 배치된 이유는 일단 맨큐의 경제학과, 환율공부, 그리고 보울스의 '자본주의 이해하기'를 읽은 다음에 최종적인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많은 분들은 노사간의 대립이 사회의 중심이었던 적은 과;
리뷰제목

드디어 자본 시리즈의 9권이 나왔습니다!! 사실은 지금 제 경제학 공부 순서 상으로는 아직 이 시리즈는 뒤에 배치된 상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뒤에 배치된 이유는 일단 맨큐의 경제학과, 환율공부, 그리고 보울스의 '자본주의 이해하기'를 읽은 다음에 최종적인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많은 분들은 노사간의 대립이 사회의 중심이었던 적은 과거의 제조업 부흥기일 뿐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봐도 국민의 70프로 이상은 분명 임금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보너스 잔치를 하는 임원급들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이지요. 그런데도 노동자계급은 더 이상 없다고, 나는 노동자계급이 아니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노동이 바로 잉여가치의 원천이란 점을 이 시리즈를 통해 절실히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여기에 대한 깨달음이 없고서는 정치판의 대립의 기저에 깔린 이해관계가 궁극적으로 어떤 구도에서 파생되는 것인지는 이해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한줄평 (5건) 한줄평 총점 9.6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열심히 땀 흘려 받는 정당한 대가조차 후려치는 세상에서 살지 않으려면...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YES마니아 : 플래티넘 異**********나 | 2021.05.09
구매 평점4점
이 시리즈 빠짐없이 잘 읽겠습니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YES마니아 : 플래티넘 h****n | 2020.12.16
구매 평점5점
다음책 나올때 되었지 싶은데요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l******3 | 2020.07.20

이 상품의 특별 구성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2,510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