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가 본 그리스의 창공
리차의 부모님이 조국 그리스를 뒤로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으니, 리차와 오빠인 미체스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미체스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고 리차는 한때 부모님이 몸을 숨겼던 루마니아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가족 모두가 프라하로 이주해 왔다. 그런데도 리차는 한번도 봤을 리 없는 그리스 하늘을, “그건 말야, 정말 쨍하고 깨질 듯이 파래라며 자랑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말하면서 긴 눈썹으로 테 두른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러곤 마치 지금 그리스의 창공이 눈부시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이었다.
“단 한 점의 구름도 없는 새파란 하늘이, 또 새파란 바다에 비쳐서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지는 거야. 파도는 방금 빨아 넌 냅킨처럼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정말이지 마리한테도 보여주고 싶어.”
도대체 몇 번이나 이 말을 들었을까. 그때마다 늘 잔뜩 찌푸린 회색 구름이 드리워진 프라하의 하늘 아래서, 어쩌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르는 조국을 그리는 심정을 생각하곤 했다.
- 본문 12쪽
리차는 그리스 군사정권의 탄압에서 벗어나 동유럽 곳곳을 전전하다가 체코슬로바키아로 망명한 공산주의자의 딸로, 외모에 관심이 많았고 성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빠삭한 아이였다. <레닌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계몽영화를 보면서는 “마리, 레닌은 꽤나 잘살았나봐”라고 꿰뚫어볼 정도로 냉철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리차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명문 대학인 카렐 대학에 입학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지만, 믿기 힘들 정도로 공부를 못하고 언제나 낙제의 위기를 맞던 친구였는데 그 소문을 믿을 수 있을까?
헤어질 때 적어준 주소지에도 리차의 흔적은 없다. 요네하라는 현 소비에트 학교의 교장이 일러준 그리스인 민단(民團)을 통해 리차의 소식을 묻기로 한다. 리차의 본명을 알게 된 곳은 카렐 대학 입학생 명단. 리차는 몇 번이나 재시험과 추가시험을 보고 두 번의 낙제를 겪으면서도 의대생으로 무사히 졸업해 독일에서 이주민들을 돌보는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아냐의 새빨간 진실
아냐 어머니가 바로 거기에 있는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니 곧 응답이 있었다. 루마니아어로 뭐라 하시더니 내게 수화기를 내미셨다.
“미르차가 직접 말하고 싶다고 하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미르차의 목소리는 인사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마리, 우리 부모님이 말하는 거, 그대로 믿으면 안 돼. 부모님 없는 데서 꼭 할 말이 있어. 오늘 저녁 시간 돼?”
- 본문 137쪽
외교관이었던 아냐의 아버지는 루마니아 공산당을 대표해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공산주의 운동 이론지)의 편집위원으로 프라하에 오게 됐다. 인도 델리에서 태어나 베이징에서 자란 아냐는 남다른 언어감각으로 소련 본국 아이들을 제외하면 가장 러시아어를 잘했고 이야기 솜씨도 빼어난, 사랑스러운 몽상가 타입이었다. 다만 심심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흠이었다. 어린 시절의 마리로서는 일종의 병이라고밖에, 절대로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짓말들이었다.
성인이 된 아냐는 영국 유학중 사귄 영국 남자와 결혼해 영국에서 살고 있었다. 조국 루마니아에 대한 마음이 깊어, 절대로 루마니아를 떠나지 않겠다던 아냐였지만, 이제는 자신을 90퍼센트의 영국인으로 믿는 국제인으로 성장한 것. 아니, 루마니아인이었던 과거의 모습은 버리고 최선을 다해 서구문명에 적응했다. 귀족 대접을 받으며 성장한 특권층이었음에도 루마니아인으로서의 자신보다 자본주의 사회의 중상류층으로 지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만족해하는 아냐를 보며 요네하라는 말로 설명하지 못할 씁쓸함을 느낀다.
하얀 도시의 야스나
“… 이 도시의 현재 이름인 베오그라드는 슬라브 민족의 일파인 세르보크로아트어로 ‘하얀 도시’라는 이름입니다만,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의외로 터키인입니다.”
여기까지 단숨에 말하자 야스민카는 우리들의 반응을 확인하듯 교실 전체를 둘러보았다. 홀딱 반할 정도로 침착하다. 목소리는 결코 크지 않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또박또박하게 듣는 이의 의식 속으로 파고든다. 떨기는커녕 차분한 몸짓과 그 당당함이라니. 너무 힘주지도 않고 천연덕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말할 내용뿐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잘 알아들을지까지도 계산해가며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 본문 174쪽
야스민카(재스민)가 본명인 야스나는 ‘명쾌하다’라는 뜻을 가진 애칭 그대로였다. 모든 과목에 천재성을 보이는 총명한 친구로 유치한 장난에 초연하고 아이답지 않게 객관적이었다. 아버지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우스타시에 대항한 파르티잔 출신이었다. 야스나가 일본 중세의 호쿠사이 판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급속도로 친해진 마리와 야스나는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1년간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지냈다.
야스나를 찾는 일은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구 유고슬라비아가 민족분쟁으로 분열되면서 보스니아에서는 끊임없이 내전이 일어나고 있었고, 요네하라는 야스나가 어느 민족인지 알지 못했다. 분란의 와중에 수소문한 바에 의하면 야스나는 무슬림이었다. 자신이 무슬림이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야스나였지만 이 때문에 함께 투쟁해온 친구들과 직장동료, 이웃들에게 외면당하게 되었다. 구 유고슬라비아의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한 야스나의 아버지는 탈출을 거부한 채, 언제 폭격당할지 알 수 없는 사라예보의 방공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